고전의 숲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 ‘성서인문학’으로 인생 읽기
사랑하고 존경하는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5년 동안 우리는 서양 고전 소설이라는 광활한 숲을 함께 거닐었습니다. 모두 29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이 어우러진 숲이었습니다. 그 숲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주인공들의 고뇌에 함께 아파했고, 때로는 불의에 맞서는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으며, 때로는 인간의 연약함과 위대함이 교차하는 그들의 삶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에 '성서인문학'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 길고도 풍성했던 여정을 통해 제가 발견하고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주요한 교훈들을, 함께 독해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교훈들이 성서와 인문학이라는 두 개의 창을 통해 여러분의 인생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보다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시는 데 작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인간, 그 모순되고도 존엄한 존재: 죄와 은혜의 변주곡
(예: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고전 소설들은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순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우리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속 헤스터 프린과 딤즈데일 목사를 통해, 엄격한 청교도 사회의 위선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죄의 무게와 구원의 갈망을 생생하게 목격합니다. 헤스터는 ‘A’라는 주홍 글씨를 가슴에 달고 사회적으로 낙인찍히지만,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내면적으로 성숙하고 타인을 향한 연민을 품는 인물로 변화합니다. 그녀의 바느질 솜씨는 점차 인정을 받고, 그녀는 공동체 안에서 조용히 선을 행하며 살아가지만, 그녀의 내면에서는 여전히 죄의식과 사회적 시선, 그리고 딸 펄을 향한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칩니다. 반면, 존경받는 목사였던 딤스데일은 숨겨진 죄로 인해 위선과 자기기만 속에서 영혼이 피폐해져 가며,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집니다. 그의 고통은 은밀한 죄가 한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진정한 회개와 고백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그의 마지막 고백 장면은 죄의 무게에 짓눌린 인간이 마침내 진실 앞에 서는 순간의 처절함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은 이러한 인간 영혼의 여정을 더욱 장대하고 우주적인 스케일로 확장합니다. 단테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지옥, 연옥, 천국을 순례하는 이 서사시는, 인간이 죄로 인해 얼마나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지옥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화와 회개를 통해 어떻게 점진적으로 구원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연옥편),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완전한 사랑과 진리의 합일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황홀경인지(천국편)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각계각층의 죄인들이 자신의 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는 지옥의 모습은 인간 타락의 심각성을, 연옥 산을 오르며 죄를 정화하는 영혼들의 모습은 성화의 지난한 과정을,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인도를 받아 천상의 빛으로 나아가는 단테의 모습은 구원의 소망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성서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작품의 인물들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상태,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엄한 존재임과 동시에 죄로 인해 타락하여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임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헤스터의 고독한 자기 성찰과 봉사는 마치 광야에서 연단받는 성도의 모습과 겹쳐지며, 그녀가 보여준 용서와 인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희미하게나마 반사합니다. 딤스데일의 위선적인 삶은 바리새인을 향한 예수님의 질책을 떠올리게 하며, 동시에 죄의 고백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가능성을 갈망하게 만듭니다. 단테의 여정은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간이 겪게 되는 영적인 방황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교훈.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죄성을 지닌 존재이지만, 바로 그 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경험할 때 진정한 자유와 회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은 우리 안의 ‘비뚤어진 나’를 정직하게 보게 하고, 성경은 그 ‘비뚤어진 나’를 ‘온전한 나’로 빚어가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게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기보다,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 은혜를 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9)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강하심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2. 삶의 의미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 헛됨과 채움 사이에서
(예: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지적인 젊은이 ‘내’가 크레타 섬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통해 삶의 본질적인 기쁨과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을 그립니다. ‘나’는 책과 사색, 불교 철학 등에서 삶의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조르바는 춤과 노래, 술과 여자, 그리고 현재 순간에 대한 열정적인 몰입을 통해 삶의 생생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조르바는 사업이 실패하고 모든 것이 무너져도 절망하지 않고 산투리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외칩니다. 그의 모습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소유, 혹은 지적인 만족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인간 영혼의 근원적인 자유와 기쁨에 대한 갈망을 보여줍니다. 그는 삶의 부조리와 고통 앞에서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춤추는 원초적인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두 인물, 안나와 레빈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전개됩니다. 안나는 사회적 명망과 안정된 가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의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들지만, 결국 사회적 고립과 내면적 갈등 속에서 비극적인 파멸을 맞이합니다. 그녀의 삶은 사회적 규범을 넘어선 개인적 행복 추구가 가져올 수 있는 파괴적인 결과와 그 공허함을 보여줍니다. 반면, 또 다른 주인공 레빈은 농촌에서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가족과의 소박한 삶 속에서, 그리고 끊임없는 철학적, 신앙적 고민 끝에 점차 삶의 의미와 평화를 찾아갑니다. 그는 안나처럼 열정적인 사랑이나 사회적 성공을 좇기보다, 일상의 성실함과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신앙을 통해 내면의 공허함을 채우려 노력합니다.
이는 성경의 전도서 기자가 외쳤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라는 탄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 쾌락, 부, 명예 등 세상의 모든 것을 추구해보았지만, 결국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음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허무주의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헛됨의 인식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주신 일상의 작은 선물들(먹고 마시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수고의 보람 등)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본분임을 역설합니다(전도서 12:13). 조르바의 자유분방함과 현재에 대한 몰입, 레빈의 농촌 생활과 신앙적 탐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도서가 말하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안나의 비극은 세상적인 사랑과 쾌락만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인간 영혼의 깊은 공허함을 보여줍니다.
교훈. 세상이 제시하는 성공과 행복의 기준(부, 명예, 열정적 사랑 등)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기보다,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던지고, 성경은 그 질문에 대한 영원하고도 분명한 답, 즉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참된 만족과 기쁨을 찾으라고 안내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전도서 2:24).
3. 고난의 터널을 지나는 법: 절망을 넘어선 소망의 발견
(예: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 존 윌리엄스, "스토너")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간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 대서사시입니다. 그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마녀 키르케,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 저승 세계의 망령들 등 수많은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위험천만한 시련들을 마주합니다. 그의 부하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고, 그 자신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뛰어난 지혜와 용기, 불굴의 인내, 그리고 여신 아테나의 도움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와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만나고 왕국의 질서를 회복합니다. 그의 여정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고난과 유혹,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와 지혜를 보여주는 원형적인 이야기입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오디세우스와는 전혀 다른, 평범한 대학 교수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그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없이 조용하게 흘러갑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 학과 내에서의 미묘한 갈등과 부당한 처사, 사랑하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과 강요된 이별, 그리고 결국 병으로 인한 죽음. 그의 삶은 영웅적인 투쟁이나 화려한 승리와는 거리가 먼, 어쩌면 많은 이들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고난'과 실망의 연속처럼 보입니다. 그는 영웅적인 방식으로 고난에 맞서 싸우거나 극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사랑하는 문학 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묵묵히 헌신하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나갑니다. 그의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인내와 성실함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외부 세계의 고통과 단절로부터 문학이라는 자신만의 '내면의 왕국'을 건설하고 그곳에서 위안과 의미를 찾습니다.
이러한 두 인물의 모습은 성경의 욥기에 나타난 고난의 문제와 씨름하는 욥의 모습과 다른 결을 보여주면서도, 고난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이라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 친구들의 피상적인 위로와 정죄에 맞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고 하나님께 처절하게 질문합니다. 그는 쉬운 답을 얻지 못하지만, 결국 폭풍우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지혜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신들의 도움과 자신의 지혜로 고난을 ‘극복’하려 했고, 스토너는 고난을 ‘견디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으려 했으며, 욥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질문하며’ 그분의 뜻을 구했습니다.
교훈. 인생에서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고난 자체가 우리를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문학은 고난에 대한 인간적인 반응의 다양성과 그 속에서의 저항, 인내, 혹은 내면적 성숙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주권을 신뢰하며,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욱 깊고 성숙한 믿음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섭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절망시키는 함정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4. 사랑, 그 위대하고도 위험한 불꽃: 이기심과 희생 사이에서
(예: 토마스 하디, “테스”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골 처녀 테스가 가혹한 운명과 사회적 편견, 그리고 남자들의 이기적인 욕망에 의해 희생되어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그녀는 알렉 더버빌에게 순결을 잃고, 사랑하는 남편 에인절 클레어에게는 과거 때문에 버림받으며, 결국 절망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처형당합니다. 테스의 삶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와 남성 중심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한 여성의 순수한 사랑과 행복에 대한 갈망이 어떻게 짓밟히고 파괴될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보여줍니다. 작가는 테스를 “순결한 여인”이라고 명명하며, 그녀의 비극이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환경과 운명의 힘에 의한 것임을 암시합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의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과거의 사랑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한 남자 제이 개츠비의 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꿈을 그립니다. 개츠비는 밀주 판매 등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열지만, 그의 모든 노력은 오직 데이지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의 특정 순간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데이지에 대한 이상화된 사랑 속에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결국 데이지의 배신과 함께 허무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에 숨겨진 공허함과 물질주의, 그리고 낭만적 사랑의 위험한 환상을 폭로합니다.
성경은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을 가장 완전한 사랑의 형태로 제시합니다. 이 사랑은 감정적인 끌림이나 이기적인 욕망을 넘어선, 자기희생적이고 오래 참으며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입니다(고린도전서 13:4-7). 테스가 경험한 사랑은 대부분 이기적이고 착취적이었으며, 개츠비의 사랑은 낭만적이었지만 소유욕과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또한 사랑이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랑의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합니다.
교훈. 인간적인 사랑은 아름답고 강력하지만, 동시에 매우 연약하고 위험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이기심과 집착으로 변질되어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문학은 사랑의 다양한 모습과 그 명암, 그리고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사랑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깊은 연민과 성찰을 안겨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감정적인 사랑을 넘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조건 없이 베풀고 섬기는 희생적인 사랑,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오래 참으며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도전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맹목적인 열정이 아니라, 책임과 헌신, 그리고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함께 성장해가는 관계 속에서 피어납니다.
5. 정의를 향한 목마름: 개인의 양심과 사회적 책임
(예: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 레지날드 로즈, “12인의 성난 사람들”)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주인공 핍의 성장 과정을 통해 당시 영국 사회의 계층 문제, 부와 신분에 대한 허영, 그리고 인간관계의 진실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핍은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신분 상승의 꿈을 꾸지만, 그 과정에서 순수했던 마음을 잃고 속물적인 가치관에 물들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었던 대장장이 조 가저리를 부끄러워하고, 아름답지만 차가운 에스텔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허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유산의 출처에 얽힌 어두운 비밀(탈옥수 매그위치의 돈)과 마주하고, 진정한 인간적 가치는 돈이나 신분이 아니라 성실함과 사랑, 그리고 용서와 자기 성찰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 사회 혁명을 외치지는 않지만, 불평등하고 위선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의 도덕적 타락과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로운 사회란 무엇이며 개인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레지널드 로즈의 희곡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한 소년에 대한 배심원들의 토론 과정을 긴박하게 그려냅니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배심원들이 소년의 유죄를 확신하지만, 단 한 명의 배심원(8번 배심원)이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하며 끈질기게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해 나갑니다. 그는 개인적인 편견, 무관심, 집단 심리에 맞서 증거들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합니다. 그의 용기와 끈기는 결국 다른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만장일치 무죄 평결을 이끌어냅니다. 이 작품은 사법 정의의 중요성, 편견의 위험성, 그리고 다수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개인의 양심과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의 가치를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찰은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이 외쳤던 사회 정의에 대한 메시지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라고 선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제사가 아니라 공의와 사랑, 그리고 겸손한 동행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역시 “너희는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이사야 1:16-17)고 외치며 구체적인 사회 정의 실천을 촉구했습니다.
교훈. 우리는 개인적인 경건 생활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불의와 고통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은 공감과 비판적 인식을 갖게 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기초하여 정의를 실천하고 약자를 돌보는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의 작은 선택과 행동, 때로는 소수의 목소리가 더 정의롭고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6. 내면의 성숙을 향한 여정: 오만과 편견을 넘어 온전함으로
(예: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각자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내면의 장벽을 넘어서 서로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섬세하고 유쾌하게 그립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차가운 첫인상과 사회적 평판에 근거한 편견으로 그를 오해하고, 다아시는 자신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에 대한 오만함으로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가족을 얕보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결국 진정한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이 소설은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인식과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숙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성장은 서로를 향한 비판과 자기반성을 통해 이루어지며, 진정한 관계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어린 시절의 순수한 세계에서 벗어나 선과 악,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복잡한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를 경험하며 자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치열한 성장 과정을 그립니다. 그는 신비로운 친구 데미안의 인도를 받으며 기존의 가치관과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통스러운 자기 탐색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발견합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유명한 구절처럼, 데미안은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기존의 안락한 세계를 깨고 나오는 용기와 고통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이러한 성숙의 과정은 성경이 말하는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에베소서 4:22-24) 영적 성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외적인 행위뿐 아니라 내면의 동기와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마태복음 5:3-10). 이것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 백성의 성품과 삶의 방식입니다. 또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10년간의 험난한 귀향 여정을 통해 수많은 시련과 유혹을 겪으며 인내와 지혜, 용기를 배우고 내면적으로 더욱 강인하고 성숙한 지도자로 거듭납니다. 그의 여정은 고난을 통한 성숙이라는 보편적인 인간 경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교훈. 진정한 성숙은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정하고(‘비뚤어진 나’를 직면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온전한 나’를 향하여). 문학은 우리에게 자기 인식과 성찰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성경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전인격적인 변화와 거룩한 성품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육체는 쇠약해질지라도, 우리의 내면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린도후서 4:16)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서양 고전 소설이라는 거대한 숲을 ‘성서인문학’이라는 등불을 들고 함께 여행하면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와 은혜를 어렴풋이나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인간의 고뇌와 기쁨, 절망과 희망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공감의 창을 열어주고, 성경은 그 모든 경험을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 안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궁극적인 소망을 제시합니다. 우리가 걸어온 인생길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교훈들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주홍 글자”의 헤스터 프린처럼 사회의 편견 속에서 고독했을 수도 있고,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처럼 헛된 것을 좇아 방황했을 수도 있으며, 욥이나 “스토너”의 스토너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절규하거나 침묵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경험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느냐입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삶을 어떤 이야기로 채워갈 것인가입니다.
부디 오늘 나눈 이 교훈들이 여러분의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성서와 인문학이라는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더욱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향해 비상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아름답게 완성되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서양 고전소설/희곡 29+α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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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품위 있는 인생의 향연, 윌리엄 사로얀의 “인간 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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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조리한 야만의 시대를 뛰어 넘는 교양 소설, 토마스 만의 “마의 산”
https://hubil-centre.tistory.com/67
12. 본말 전도된 사상의 순교자를 자처하는, 알베르트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
https://hubil-centre.tistory.com/69
13. 뗏목 모험인생의 자유를 구가하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https://hubil-centre.tistory.com/71
14. 천직 수행 위해 목숨 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https://hubil-centre.tistory.com/73
15.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유로지비,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미쉬낀 공작
https://hubil-centre.tistory.com/75
16. 인생의 유래와 유산을 열어 밝히는 공적(公的) 서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https://hubil-centre.tistory.com/79
17. 상상력과 ‘다오’[the Tao]를 양식으로 삼은 편력 기사,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https://hubil-centre.tistory.com/83
18.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것만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https://hubil-centre.tistory.com/86
19. 환상적인 초록 불빛에 자신을 던진 로맨티시스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https://hubil-centre.tistory.com/92
20. 벌레와 같은 현대 직장인 가장의 실존을 열어 밝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https://hubil-centre.tistory.com/95
21. 사법 정의를 구현한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https://hubil-centre.tistory.com/187
22. 혐오, 배제, 폭력의 문화를 돌파한 ‘습지 소녀’의 송가,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https://hubil-centre.tistory.com/188
23. 유럽 식민주의의 단면을 통해 어두운 인간 내부의 심연을 조명하는,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속”
https://hubil-centre.tistory.com/191
24. 공포와 호기심이란 키워드로 인간의 본질을 섬세하게 관찰한 에드거 앨런 포
https://hubil-centre.tistory.com/196
25. 도덕규범을 좇는 향기로운 삶과 연약한 인간성을 다룬 심리적 로맨스,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https://hubil-centre.tistory.com/261
26. 일상의 성화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천사의 빵’,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https://hubil-centre.tistory.com/268
27. 다이너마이트 같은 부적응자들의 서사로 자기만족을 깨뜨리는 플래너리 오코너
https://hubil-centre.tistory.com/272
28. 하강하는 욕정의 삶과 상승하는 성찰의 삶이 빚어내는 이중주,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https://hubil-centre.tistory.com/299
29. 세속의 광야를 걷는 평범한 몽상가 교수의 비범한 패배와 승리,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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