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성화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천사의 빵’,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1)
-하늘과 땅이 손을 맞잡기-
지난 세월 동안 인문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에 부단히 자양분을 공급했습니다. 고대 신학은 플라톤주의, 중세 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근세 개혁 신학은 인문주의라는 문예사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각각 예를 들자면, 먼저 고대 신학의 경우에는, 삼위일체론이 ‘일자(一者)’에 대한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활용한 점입니다. ‘일자’가 만물의 근원이자 만물을 끌어안는 포괄자로서, 우주 만물이 모두 이 ‘일자’로부터 유출되어 나왔다는 플라톤의 사상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와 사역을 설명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일자’ 안에서 정신이 유출되고, 이 정신이 한편으로 창조를 위한 모든 참된 형상(idea)들을 자기 안에 창조하며, 다른 한편으로 정신에서 유출된 영혼(psyche)이 그 형상들을 순차적으로 현실화함으로써 모든 물질세계가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자, 정신, 영혼은 하나이지만, 각각 하는 일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사상에서 영원불변하는 신적 존재로 제시된 일자-정신-영혼이, 성경의 성부-성자-성령과 외형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경이롭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오리게네스나 프로클로스 같은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은 주목하고 수용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피조물에 대한 성경의 계시가 존재와 존재물에 대한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변과 꼭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각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 교리에 담겨 있는 그리스 철학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를 이론화해야 했던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에게는 이 플라톤주의 철학보다 더 유용한 도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였겠지요. 그리스도교 최고의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플라톤주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표현은 다르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교 진리와 완전히 같은 부분이 수없이 다양한 논거에 의해 납득되도록 서술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중세 신학의 사례를 들자면, 스콜라주의의 전성시대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맞물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스콜라주의는 원래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는 데 사용된 중세 철학 및 신학 체계입니다. 스콜라주의의 주요 목표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그리스 철학가들의 사상을 조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3세기 중엽에 꽃을 피운 이 스콜라주의 덕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칭송받고, 14세기에는 거의 모든 대학과 수도원 학교에서 그의 철학이 강의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신학이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신학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자리매김된 것도 그가 스콜라신학을 집대성한 덕입니다. 가톨릭에서는 그가 집필한 “신학대전”을 기적이라고 여겨 그를 성인으로 추대할 정도였으니까요(1323년). 이 작품이야말로 그리스도교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낳은 탐스러운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세 개혁 신학의 사례를 들자면,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뮈스나 최고의 개혁주의 신학자인 칼뱅과 같은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가 스토아 철학에 관심을 보인 것입니다. 스토아 철학이 그리스도교를 견지하면서도 수용할 수 있는 종교적, 윤리적 교훈들을 상당히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1511년)의 저자로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병기한 “교정 그리스어 신약성서”(1516년)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스토아 철학의 거두인 세네카에 대한 책도 두 권이나 집필했습니다. 칼뱅은 23세(1532년)에 자기의 처녀작으로 “세네카의 관용론 해석”이라는 인문학 서적을 자비로 출간했습니다. 그 책 속에서 그는 스토아 철학과 기독교 사상의 유사성을 강조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역작인 “기독교 강요” 최종판(1559년)에 실린 섭리론에도 세네카에게 받은 영향이 남아 있습니다. 칼뱅이 평생 엄정한 성서주의자(Biblicist)로 살았지만, 신실하고 탁월한 인문주의자이기도 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반추해 보면, 고대 그리스 철학과 히브리 종교의 만남이 역사라는 여정에서 우연하게 발생한 사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교를 위해 오래전부터 그리스 철학을 준비해 주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 철학을 통해 계시로 보여 주신 당신의 말씀을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도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김용규,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참조)
이번에 주목할 작품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신곡”(La divina commedia)도 성서와 인문학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조명해 주는 뛰어난 자료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계 전체에서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꼽히는 서사시입니다. 중세의 세계관과 사상을 아우를 뿐 아니라, 중세를 마감하면서 르네상스와 근대의 문을 여는 효시가 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성경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고전, 플라톤 및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윤리학에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까지 총망라해서 그 근간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손으로 쓴 최고의 것”(괴테)이라든가, “근대의 세계는 단테와 셰익스피어가 나눠 가졌다. 제삼자는 존재하지 않는다.”[Dante and Shakespeare divide the modern world between them; there is no third. (T. S. 엘리엇)]라는 찬사가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래리 앨럼스 교수는 단테가 중세와 르네상스를 잇는 예언자로 자리매김되는 요소로 베르길리우스(BC 70-BC 19)를 기용한 점을 꼽습니다. 그는 로마의 기원을 다룬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를 집필한 시인으로서 단테가 평생 사숙한 스승이었습니다. 그의 약점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전에 태어나 활동하던 인물이었으므로, 구원에서 제외된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비록 중세 신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걸작으로 여겼으나, 어디까지나 허구적인 세계를 그린 서사시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단테는 그를 자신의 안내자로 선택했고, 비록 그가 영적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의 뒤를 쫓는 사람들의 길에 빛을 비춰 주는 존재로 그렸습니다. 이런 시도로 인해 단테는 새로운 흐름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즉 “당시 지배적이던 성경 엘리트주의(scriptural elitism)를 끊고, 비그리스도인들이 거둔 성취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하나님 진리의 여러 측면(aspects of God’s truth worthy of study)으로 되살려내는” 흐름이었습니다. 이런 흐름은 그의 세계관과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단테는 하나님이 당신의 풍성한 사랑(abundant love)을 당신의 창조 세계 안에 언제 어디서나 드러내심을 보았습니다. “최고선(the greatst good)과 최고의 악(the greatest evil)은 둘 다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고 당신의 계획을 진행해 가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잃어버리는 것이나, 헛된 삶이나, 헛된 행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단테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방식으로 ‘가톨릭’[catholic=포괄적이고 구속적인]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루이스 카우언, “고전”(Invitation to the Classics)]
단테가 망명지에서 무려 13년에 걸쳐(1308-1320) 집필한 이 작품은, 총 100곡, 14,233행에 달하는 방대하고 정교한 문학 구조물입니다. 전체 구성상으로는 3개의 ‘노래 편’(cantica), 즉 지옥, 연옥, 천국으로 나뉘어 있고, 각 노래 편은 각각 33편의 노래[canto=‘곡’으로 번역, 지옥만 34편)로 형성됩니다. 각 노래의 길이는 115행에서 160행 사이입니다. 그리고 각 시행(詩行)은 11음절로 형성되고, 3개 행이 한 단락을 이루는 ‘3행 연구(聯句)’(terza rima)를 이룹니다. 음악성과 리듬을 유지하도록 단테가 고안해 낸 ‘사슬 운(韻)’이라는 각운은, 마치 사슬의 고리처럼 각운이 한 행 건너 반복됩니다. 즉 aba bcb cdc ded (...) xyx yzy z 하는 식으로 진행되지요. 모쪼록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열독한 단테의 “신곡”이 독자 여러분에게 깊은 감동으로 와닿기를 바랍니다. "단테의 <신곡>은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을 모두 구해서 읽었다, 유일하게 전체를 외우다시피 할 만큼 읽은 책이다."(임윤찬) [줄거리 내용과 논평 중에 나오는 번역은 ‘열린책들’의 번역본 참조(김운찬 역)]
-“신곡”의 줄거리-
<지옥(Inferno)>
1300년 봄 35세의 단테는 부활절 직전의 성목요일[=4월 7일 밤]에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 이튿날 햇살이 비치는 아름다운 언덕으로 올라가려 할 때, 표범[=정욕 상징], 사자[=오만 상징], 암늑대[=탐심 상징]가 길을 막아선다. 그때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겁에 질린 그를 안내해 주기 시작한다. 그 언덕으로 올라가려면 저승 세계를 통과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듣자, 단테는 아직 죽지 않은 자기가 어떻게 저승을 여행할 수 있느냐는 의혹에 빠진다. 베르길리우스는 천국에 있는 베아트리체가 그를 돕기 위해 자기를 호출했음을 알리며 그의 두려움을 진정시킨다. 베아트리체가 자기를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단테는 존경하는 시인을 따라 저승 여행을 시작한다.
천동설의 우주관에 따라 당시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고, 이 지구를 중심으로 9개의 하늘이 돌고 있었다. 지옥은 지하에 있고, 그 입구는 예루살렘 아래에 있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지구의 중심까지 미치는 깔때기 모양을 띤 상태에서 각 부분이 서로 다른 반지름을 지닌 10개의 원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내려갈수록 더 좁아지는 특징이 있을 뿐 아니라, 형벌과 고통이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고, 그 마지막인 지구의 중심부에는 지옥의 마왕 루키페르[Lucifer=사탄]가 존재한다. 지옥의 문 위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였으니, /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이 문을 통과한 단테는 입구 지옥에서 선이나 악에도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나태한 자들이 왕벌과 파리, 벌레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접한다. 그리고 아케론 강가에는 뱃사공 카론이 죄지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데, 무서운 지진과 번개로 인해 단테는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단테는 자기가 첫째 원인 림보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에서 덕성 있는 삶을 살았으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거나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영혼들을 본다. 그들에게는 육체적 고통은 없었으나, 천국을 향한 갈망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이 있다. 그들 중에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있다. 둘째 원으로 내려간 단테는 지옥의 재판관 미노스를 본다. 그곳은 음란함과 애욕의 죄인들이 벌받는 곳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벌을 받는다. 셋째 원에 도달한 단테는 탐식의 죄를 범한 죄인들을 본다. 넷째 원에서 단테는 재물의 악마인 플루토를 본다. 이곳은 낭비 혹은 인색함의 죄를 범한 영혼들이 서로를 모욕하는 것을 접한다. 다섯째 원에서 단테는 분노의 죄인들이 벌받는 것을 본다. 두 시인은 늪을 건넜지만, 하부 지옥을 지키는 악마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 성벽의 탑 위에 불화와 분노의 화신인 세 푸리아가 나타나서 단테를 위협한다. 그렇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단자들이 불타는 관 속에서 벌받고 있는 것을 본다. 여섯째 원에서 단테는 영혼의 불멸을 부정한 에피쿠로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벌받는 것을 본다. 심한 악취가 풍겨 오는 지옥의 골짜기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의 구조와 죄인들의 분류에 대해 설명하면서, 기만이 다른 죄들보다 더 아래의 지옥에서 더욱 큰 형벌을 받는 이유를 제시한다. 일곱째 원의 첫째 둘레에서 단테는 미노타우로스를 만나고, 폭력을 행사한 죄인들이 펄펄 끓어오르는 피의 강 플레게톤 속에서 벌받는 것을 본다. 그들을 감시하는 켄타우로스들을 만나는데, 그중에 네소스가 두 사람을 다음 둘레로 인도해 준다. 둘째 둘레에서는 자살한 이들이 나무가 되어 하르파이아들에게 뜯어 먹히는 고통을 당하고, 자기 재산을 함부로 다룬 자들은 암캐들에 물어 뜯기는 모습을 접한다. 그리고 셋째 둘레에서는 신성에 폭력을 가한 자들이 뜨겁게 불타는 모래밭에서 불비를 맞는 모습을 접하는데, 남색을 행한 죄인들과 돈놀이꾼들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괴물 게리온의 등을 타고 여덟째 원으로 내려간다. 그 원에는 10개의 말레볼제, 즉 ‘악의 구렁’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들이 본 죄인들과 그 형벌은 다음과 같다.
(1) 뚜쟁이와 유혹자들 [뜨거운 모래밭에 있음]
(2) 아첨꾼들 [더러운 똥물 속에 잠김]
(3) 돈을 받고 성직이나 거룩한 물건을 거래한 죄인들 [구렁의 바위 바닥에 있는 구멍 속에 거꾸로 처박혀, 발바닥에 불이 탐]
(4) 점쟁이들과 예언자들 [앞을 보지 못하도록 머리가 등 쪽으로 돌아가 있음]
(5) 탐관오리들 [펄펄 끓어오르는 역청 속에 잠김]
(6) 위선자들 [겉은 황금빛으로 화려하지만, 안은 무거운 납으로 된 옷을 입고 다님]
(7) 도둑들 [엄청나게 많은 뱀들에게 물림]
(8) 사기와 기만을 교사한 죄인들 [타오르는 불꽃 속에 휩싸임]
(9) 종교나 정치에서 불화의 씨앗을 뿌린 자들 [신체의 여러 곳이 갈라짐, 턱에서 방귀 뀌는 곳까지 찢긴 무함마드의 영혼을 만남]
(10) 사람을 속어거나 화폐를 위조하거나 연금술로 사람을 속인 자들 [코키토스 호수 속에 꽁꽁 얼어붙음]
단테는 지옥의 가장 밑바닥 주데카에서 은혜를 배신한 영혼들이 루키페르에게 처참한 양상으로 벌받고 있는 것을 본다. 두 사람은 루키페르의 몸에 매달려 지구의 중심을 지나고, 좁은 동굴을 통해 남반구를 기어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동굴 입구에 이르러 하늘의 별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성금요일, 해가 저무는 저녁 6시 무렵부터 24시간 동안 지옥을 둘러본 후, 성토요일 저녁에 루키페르가 있는 지구의 중심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남반구 쪽으로 뚫린 좁은 동굴을 통해 연옥의 해변에 도착한 셈이다.
<연옥(Purgatorio)>
연옥은 남반구의 대양 한가운데에 높다랗게 솟아 있는 산이며, 예루살렘의 정반대 쪽에 놓여 있다. 이 산의 구조는 지옥과는 정반대다.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깔때기 모양을 띠고, 그 안에 7개의 원기둥이 포개져 있다. 이 7구역은 가톨릭이 가르치는 7가지 대죄인 교만, 질투, 분노, 나태, 인색, 탐식, 음욕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는 곳이다. 그곳에 있는 영혼들은 구원받았지만 천국에 들어갈 만큼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각자가 처한 산허리 위에 일종의 선반처럼 평평하게 펼쳐진 곳에서 자기 죄를 씻는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연옥의 지킴이 카토를 만나고, 그의 허락을 받아 정죄의 산을 오른다. 먼저 베르길리우스는 이슬로 단테의 얼굴을 씻어 주고, 갈대로 띠를 둘러 준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동안 그들은 바다 위로 천사의 배가 연옥으로 올라갈 영혼들을 싣고 오는 것을 본다. 그 영혼들 중에서 단테는 절친 카셀라를 만나 대화한다. 연옥의 산 발치에 이른 그들은 산이 너무나 험준해서 오를 길을 찾지 못하다가 한 무리의 영혼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길을 묻는다. 그들은 파문당했던 영혼들이었다. 그중에서 만프레디 왕의 이야기를 듣는다. 좁고 험한 바위 길로 올라가던 중 게으름 때문에 삶의 막바지까지 참회를 늦추었던 영혼들과 죽기 직전까지 회개를 미루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한 자들을 만난다. 밤에는 연옥의 산으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제후들의 계곡에서 밤을 보낸 다음 하늘에서 내려온 루치아의 도움으로 연옥의 문 앞에 도달한다. 문지기 천사가 단테의 이마에 P자 7개를 새겨 주자, 두 사람은 연옥 여정에 들어간다.
첫째 둘레에서 단테는 교만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등에 바위를 짊어지고 주님의 기도를 읊으며 가는 것을 본다. 그들 중 오데리시가 단테를 알아보고 말을 건네며, 이 세상에서 평가하는 영광과 명성의 덧없음에 대해 술회한다. 교만의 벌을 받는 사람들의 그림을 보는 단테에게, 천사가 나타나 그의 이마에 새겨진 P자 하나를 날개로 지워 준다. 한결 가벼워진 단테는 둘째 둘레로 올라가, 질투의 죄인들이 철사로 눈을 꿰맨 채 암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을 본다. 몇 영혼과 만나 대화한 후, 질투로 벌받은 사례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셋째 둘레로 올라간 두 사람은, 분노의 죄인들이 짙은 연기 속에서 벌받고 있는 곳을 뚫고 나아간다. 환상 속에서 벌받은 분노의 일화들을 본다. 환상에서 깨어난 그들은 천사의 안내로 넷째 둘레로 올라가는데, 밤이 되자 베르길리우스가 죄의 원인이 되는 사랑, 사랑의 본성 및 자유 의지에 대해 단테에게 설명해 준다. 한밤중이 되자, 그들 앞으로 나태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빠르게 달려가면서 죄를 씻는다. 새벽녘 꿈에 단테는 죄의 유혹을 암시하는 세이렌을 보지만, 잠에서 깨어난 후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다섯째 둘레로 올라간다. 탐욕으로 인색했던 영혼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속죄하는 곳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중에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때 두 사람은 로마 시인 스타티우스의 영혼을 만나 방금 경험한 상황의 원인에 대해 듣는다. 그는 자기가 존경하는 베르길리우스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그들과 함께 여섯째 둘레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오르지 못하도록 아래쪽이 가느다랗게 생긴 나무를 본다. 그때 나뭇잎들 사이에서 탐식의 절제를 예시하는 노래가 들려온다. 탐식의 죄인들이 해골처럼 비쩍 마른 모습으로 그들 앞을 지나간다. 그들 중 몇 사람과 대화를 나눈 후에 단테는 벌받은 탐식의 예들을 노래하는 두 번째 나무를 본 다음, 일곱째 둘레로 안내하는 천사를 만난다. 세 시인은 일곱째 둘레로 올라가고, 불꽃 속에서 영혼들이 순결의 일화들을 노래하는 것을 본다. 저녁 무렵 세 시인은 일곱째 둘레에서 벌받고 있는 음욕의 영혼들을 본다. 천사가 나타나 세 시인에게 불길을 뚫고 지나가라고 인도한다. 단테가 꿈에 예언적인 환상을 본 후, 잠이 깬 세 시인은 지상 천국으로 올라간다. 이 연옥의 순례는 부활절 일요일부터 만 사흘 낮과 밤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다음 4월 13일 수요일 아침 단테는 지상 천국으로 올라간다.
아름다운 낙원을 거닐던 단테는 그곳에서 마텔다를 만나, 지상 천국의 속성과 그 속의 두 강에 대해 듣는다. 단테가 마텔다를 따라 걸어가는 도중에, 레테강의 맞은편에서 7개의 촛대와 24장로와 4마리 짐승의 호위를 받으면서 그리폰[=사자의 몸체에다 독수리 머리, 날개가 달린 상상의 동물. 여기에서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그리스도를 상징함.]이 끄는 수레가 눈에 띄고, 춤추는 여인들, 노인들의 신비롭고 놀라운 행렬이 나타난다. 그 행렬이 멈추고 장로들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천사들이 꽃을 뿌리는 가운데 베아트리체가 내려온다. 그때 베르길리우스는 사라지고,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오랫동안 올바른 길을 벗어난 것에 대해 엄하게 꾸짖는다. 단테가 참회한 후, 베아트리체의 책망이 이어진 다음, 그녀는 단테를 레테의 강물 속에서 씻게 한다. 그리고 4가지 덕성의 여인들 [사추덕(四樞德))=예지, 정의, 용기, 절제]과 3가지 덕성의 여인들 [향주삼덕(向主三德)=믿음, 소망, 사랑]에게 안내한다. 마침내 베아트리체는 단테에게 미소 짓는다. 베아트리체가 7여인을 앞세우고, 단테, 스타티우스, 마텔다와 함께 가는 중에, 에우노에강에 도달한다. 마텔다의 안내로 강물을 마신 단테는 완전히 깨끗해진 몸으로 별들을 향해 오를 준비가 된다.
<천국(Paradiso)>
천국은 프톨레마이오스의 견해에 따라 9개의 하늘과 그 너머의 엠피레오[=축복받은 영혼들의 공동체]로 이루어진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의 하늘을 비롯하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목성, 토성, 불박이별들의 하늘, 그리고 그 모든 하늘들을 회전시키는 ‘최초 움직임’(primum mobile)의 하늘이 있다. 9품계로 구별되는 천사들이 각각 정해진 하늘을 관장한다. 그 너머에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는 최고 빛의 하늘인 엠피레오가 온 우주를 움직이며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단테는 아폴로에게 이 마지막 위대한 작업에 월계관을 씌워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응시한 채 하늘로 날아오른다. 빠른 속도로 첫째 하늘인 달의 하늘에 도착한다. 야기에는 순결의 서원을 했으나 타인의 폭력으로 인해 서원을 완전히 채우지 못한 영혼들이 거주한다. 여기서 단테가 서원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 베아트리체가 설명해준다. 그런 다음 그들은 둘째 하늘인 수성으로 올라가 이 세상에서 큰 뜻을 품고 일했던 많은 영혼을 만난다.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만나 로마 법전의 위대한 편찬 사업에 대해 듣는다. 그 영혼들을 만난 후 단테의 마음에 생긴, 죄에 대한 의문과 연관하여 베아트리체가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지상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이유와 육신의 부활에 대해 얘기해 준다. 그들은 셋째 하늘 금성으로 올라가서 사랑에 사로잡힌 영혼들을 만난다. 그중에서 카를로 메르텔로는 자기 동생의 타락을 비난한 후에, 인간의 다양한 기질과 어떻게 훌륭한 아버지에게서 어리석은 아들이 태어날 수 있는가 설명한다. 이어 쿠니차의 영혼이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한탄하면서 그들의 미래에 대해 예언하고, 폴코가 자기 소개하면서 부패한 성직자들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다. 넷째 하늘인 태양의 하늘로 올라간,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철학과 신학 분야에서 이름을 떨쳤던 영혼들을 만난다.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가 참다운 사랑에 대해 얘기하면서, 12명의 영혼을 소개한다. 아퀴나스가 단테 마음속에 있는 의혹에 대해 설명하면서, 성 프란치스코의 업적과 그의 제자들을 찬양하고 도미니쿠스 수도자들의 타락한 생활을 비판한다. 그의 말이 끝난 후 다른 무리의 영혼들을 만나는데, 그중 보나벤투라가 성 도미니쿠스의 공덕을 찬양하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부패를 개탄한다. 프란치스코 수도자였던 그는 아퀴나스가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찬양한 것에 대해 보답하려는 의도였다. 솔로몬에게서 육체 부활 후에 어떤 상태가 되는지 설명을 듣고,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다섯째 하늘인 화성의 하늘로 올라간다. 믿음을 위해 싸웠던 영혼들이 십자가 형태를 이루면서 눈부시게 빛나는 모습을 본다. 그곳에서 단테는 고조부 카차구이다의 영혼을 만나게 되고, 그는 피렌체의 검소한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였다가 순교하여 곧바로 천국으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카차구이다는 단테가 힘겨운 망명 생활을 하게 될 것이며, 베로나의 칸그란데 델라 스칼라의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저승 세계에서 본 모든 것을 그대로 시로 적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라고 권한다. 그리고 카차구이다는 믿음을 위해 싸웠던 위대한 자들의 영혼을 부르면서 소개해 준다.
단테는 여섯째 하늘인 목성의 하늘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정의로운 영혼들이 날아다니며 글자 모양을 이루었다가 독수리의 형상으로 모인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나 훌륭한 덕성을 가진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단테가 질문하자, 그 독수리는 인간의 지성으로는 하나님의 정의를 헤아릴 수 없다고 대답한다. 독수리는 자기 형상을 이루고 있는 영혼들 중 일부를 소개하는데, 다윗이 눈동자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듣는다. 독수리는 트라야누스와 리페우스가 어떻게 천국으로 올라오게 되었는지 설명해준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일곱째 하늘인 토성의 하늘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관조의 삶을 살았던 영혼들 중에 성 다미아니의 영혼이 하나님의 심오한 뜻에 대해 얘기한 후, 성직자들의 타락에 대해 한탄한다. 그의 말이 끝나자 커다란 함성이 들려온다. 그 함성의 원인에 대해 베아트리체가 설명해 준 후, 성 베네딕투스의 영혼이 다가와 관조의 영혼들을 소개하고, 수도원의 타락에 대해 한탄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여덟째 하늘인 붙박이별들의 하늘로 올라가고, 발아래에 일곱 행성과 함께 있는 작고 보잘것없는 지구를 내려다본다. 그 하늘에서 단테는 그리스도가 내려오는 것을 본다. 아름다운 장미 같은 성모 마리아와 백합꽃 같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나타난다. 단테는 그리스도의 찬란한 빛을 바라볼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위로 올라가고,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 마리아 주위를 돌며 노래한다. 그리고 모두들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늘의 여왕’을 합창한다. 베아트리체의 부탁으로 축복받은 무리가 단테를 반갑게 맞이한다. 성 베드로가 단테에게 믿음에 대해 질문하고, 단테는 삼위일체의 교리에 맞게 대답한다. 그의 대답에 만족해 한 베드로가 단테를 축복한다. 그때 단테는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시인으로서 월계관을 쓰고 싶은 희망을 표현한다. 성 야고보가 단테에게 희망의 덕성에 대해 질문하고, 단테의 만족스러운 대답에 영혼들이 노래한다. 이어서 나타난 성 요한의 찬란한 빛에 베아트리체의 모습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성 요한이 단테에게 사랑의 덕성에 대해 질문한다. 단테의 답변을 듣고 축복받은 영혼들이 노래로 화답한다. 시력을 다시 회복한 단테는 아담의 영혼이 오는 것을 보고, 그와 대화한다. 베드로의 영혼이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를 꾸짖는다. 사도들의 영혼은 위로 올라가고, 단테는 다시 한번 지구를 바라본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아홉째 하늘인 최초 움직임의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는 탐욕으로 인한 인간의 타락을 탄식한다. 최초 움직임의 하늘에서 단테는 처음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지만, 그 강렬한 빛에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베아트리체가 아홉 하늘들의 움직임과 상호 관계와 아홉 품계의 천사들에 대해 설명한다. 베아트리체가 천사들과 여러 하늘들이 창조된 방식과 일부 천사가 반역한 원인과 천사들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천사에 대해 그릇된 관념을 퍼뜨리는 학자와 설교자들을 비판한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최고의 하늘 엠피레오로 올라간다. 눈부시게 빛나는 빛의 강과 같은 그곳 한가운데의 빛을 중심으로 천사들과 축복받은 영혼들이 장미꽃 같은 형상으로 둘러싸고 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를 그 안으로 데려간다. 단테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동안 베아트리체는 자기 자리로 올라가고, 성 베르나르두스가 나타난다.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감사의 말을 올린 다음, 성 베르나르두스의 권유에 따라 장미 사이에서 성모 마리아를 본다. 성 베르나르두스는 단테에게 장미 속의 축복받은 영혼들을 소개해 준다. 그중에는 죄 없이 죽어 구원받은 어린아이의 영혼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단테에게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기도하라고 권유한다.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여, 은총을 바라는 단테가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눈이 더욱 밝아진 단테는 하나님의 빛을 직접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안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관조하고, 태양과 모든 별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이 천국 경험은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나 만 하루 동안 경험한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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