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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我)-나를 알라

인생의 유래와 유산을 열어 밝히는 공적(公的) 서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1. 4. 4.

인생의 유래와 유산을 열어 밝히는 공적(公的) 서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1)

 

코로나 팬데믹의 최대 피해자는 아마도 어린아이들일 것입니다. 그들 중 다수가 팬데믹 이전부터 궁핍한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중위 가계 소득의 50% 이하인 가정을 가난하다고 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으로 보아 2018년 현재 미국 어린이 중 21.2%가 궁핍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사정은 프랑스의 두 배이고 폴란드의 세 배나 됩니다. 미국 내의 기준으로 보면 어린이들 중 1/6에 해당하는 1,300만 명이 궁핍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 어린이들이 사는 곳은 미국 각 주에 걸쳐 집단적으로 몰려 있습니다. 예컨대 클리블랜드(어린이 중 1/2이 가난한 곳)나 사우스 다코다나 아팔래치아 중부 지역과 같은 시골 지역뿐 아니라, 뉴욕 북동부에 위치한 브롱스나 샌프란시스코 외곽과 같은 도시 지역에도 퍼져 살고 있는 것이지요. 세계 최강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사회 안전망이 빈약하게 갖추어져 있고 극단적인 정치, 사회적 양극화로 정치 체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미국 어린이들이 가난한 처지에서 고통당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투표권도 없고 자신들의 권익을 돌보아주는 로비스트들도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사회 보장제도로 인해 가장 수혜를 많이 입고 있는 노인 계층과 대별되는 상황인 것이지요. 어떤 정치인도 자기들에게 표를 선사해줄 수 있는 노인들을 무시하지 못하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제대로 주목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이 가난한 어린이들 중 다수는 성년인 18세가 되면 느닷없이 자신들의 곤궁한 처지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수많은 경제, 사회적인 연구에 따르면 가난이 집중된 지역에서 자란 가난한 아이들은 나중에 심각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학력이나 경력 면에서 준비가 잘 되지 않아 수입은 많지 않은 데다 건강도 악화되어 수명도 길지 않을 뿐 아니라, 범법 행위에도 노출될 위험도 높고 자기 가정을 결손 상태로 몰아갈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국 상황에서 어린이 빈곤을 경감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공적인 사회 안전망을 가난한 어린이 중심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절실합니다. 그렇게 조치하는 것이 가난의 대물림을 선제적으로 방지하는 효과적인 길이 됩니다. 예컨대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식품 구입권(food stamps)에 의존하는 어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란 어렵지만, 가난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상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심신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지금까지 각 주마다 사정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편적인 무상 급식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급식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에게 창피를 주는 “점심 창피주기”(Lunch shaming)이라는 현상이 왕왕 벌어지곤 했으니까요. 다음으로는 인종 통합 교육을 실시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어린이들은 이미 차별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자기들과 처지가 같은 아이들과 함께 살며 같은 학교를 다닐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되면 가난은 그 어린이들의 미래의 건강, 전과 유무, 직업 및 행복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현금 지원과 같은 아주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식들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현금을 바로 지급해 주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상상력을 품고 연구에 임한 이들의 결론은 이와 다릅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빈곤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에 연간 28억 불에 달하는 현금 지급을 실시하는 것만으로도 어린이들의 가난을 획기적으로 경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28억 불이라는 돈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 주의 감옥 유지를 위해 쓰는 금액의 1/4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보자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연구뿐 아니라 실제 역사도 이 현금 지급의 효과성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보편적인 아동 현금 수당(cash child benefits)을 지불하기 시작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물론 이 정책은 현금을 복지 국가를 확대하는 기반으로 여긴 진보층의 지지를 받았지만, 가족의 재정 형편을 보강해주고 여성들이 일해야 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으로 여긴 보수층의 지원도 겸하여 받았습니다. 미국 이웃 나라인 캐나다도 이 아동 수당 덕을 톡톡히 본 사례에 속합니다. 2015년부터 실시된 이 정책으로 인해 단 2년 만에 아동 빈곤을 20%나 줄일 수 있었지요.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적인 충격을 받고 있는 미국에서도 현재 아동들에 대해 조기 투자하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어린이들의 보편적인 복지를 위해 매달 300불 혹은 350불을 지불하는 방안을 두고 논의 중에 있습니다(“The Economist” 참조).

 

우리나라 사정은 통계상으로는 미국과 차이가 납니다. OECD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빈곤 아동의 수가 미국의 절반 수준인 12.3%에 불과하니까요. 이 수치도 적은 것은 아니지만 이 빈곤한 아동들이 정상적으로 자라 의젓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은 선진국들이 이미 실시 중인 해결책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무상 급식도 2007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특정 지역 학교들이 실시하기 시작하여, 2020년 현재 전체 학생 중 97.4%가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동수당도 OECD 국가 중에서 이 제도를 실시하지 않은 4개 국가(미국, 터키, 멕시코, 대한민국)에 포함되어 있다가, 2018년 9월이 되어서야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도 소득인정액 하위 90% 수준이라는 조건을 단 선별적 지급에 불과했고 그것도 만 6세 미만의 아동들에게만 국한되었다가, 2019년 9월부터 만 7세 미만의 아동에게로 확대된 상태에 불과합니다(매달 10만 원).

 

이렇게 전 세계 아동 빈곤의 문제를 한번 돌아보게 된 것은, 이번에 독해할 책이 바로 아동의 가난과 비참한 처지가 깊숙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영국 작가”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1812-1870)의 대표작인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입니다. 그는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게 되면서 불우하고 굴욕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예컨대 10살 때 아버지가 빚을 갚지 못하고 투옥되는 바람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둔 채 구두약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세금을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들이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문학적 자산이 되어, 그는 산업혁명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고발한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아동노동과 같은 열악한 노동 현실과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실감 나게 묘사하면서, 약자들의 편에 서서 사회 개혁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이 오랜 세월 동안 대중적 호소력을 간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장남수 교수는 “그가 보여주는 문제의식의 현재성과 문제를 탐구하고 형상화하는 빼어난 솜씨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광의의 민중성과 무관하지 않다”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헤스케드 피어슨은 먼저 그가 자신의 특장인 관찰력과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공감대통합적인 세계관”을 형성하여 인간성 회복”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다음으로 그가 당시의 노동계층의 비참한 삶의 양상을 폭로하면서, 그들도 정의와 건강한 환경과 자유 그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 점을 꼽습니다. 끝으로 디킨스의 작품과 삶을 관통하는 유쾌한 희극성”이야말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디킨스에게 열광하는 참된 이유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가난이나 결핍과 같은 가장 어두운 그림자조차도 디킨스의 명랑함을 지울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는 도리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모든 사람에게서 최선을 끌어내는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난한 자, 고통당하는 자, 박해 받는 자들의 동정자였다. 그가 죽음으로써 세상은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한 명을 잃었다.”(He was a sympathiser with the poor, the suffering, and the oppressed; and by his death, one of England's greatest writers is lost to the world)라는 자신의 묘비명에 걸맞은 삶을 영위한 작가였습니다. 영문학에 있어 대표적인 성장 소설로 자리매김한 “위대한 유산”을 통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떠한 인물이 되어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지에 대해 한번 묵상해 보겠습니다. (번역은 열린책들”<류경희 역> 것 참조.)

 

-“위대한 유산” 줄거리-

(1권) 부모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일곱 살짜리 핍은 형제들이 다섯 명이나 죽고, 20세 연상인 결혼한 누나와 함께 살고 있다. 매형인 대장장이 조 가저리가 핍을 데려와 함께 살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처럼 힘도 세지만 약점이 많은 누나는 지극히 청결한 주부였으나, 자신을 노예 같은 존재로 여기며 사는 탓에 남편인 조와 동생인 핍을 박해하며 지낸다. 같은 수난자 신세이지만 마음 착한 조는 늘 핍을 도와주고 위로해 준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교회 묘지에 있는 부모의 무덤을 살펴보고 있던 중에 근처에 있던 유형선에서 탈주한 죄수 한 사람을 만난다. 자기가 먹을 만한 음식과 자기에게 채워진 사슬을 제거하기 위한 줄칼을 가져오라면서 위협하는 그의 말대로 핍은 음식과 줄칼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그 죄수는 탈옥수들을 검거하기 위해 동원된 군인들에게 다시 체포된다. 그런데 잡힐 때 그는 다른 탈옥수 한 명과 치열하게 다투던 중이었다.

 

이런 핍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그 지역에 사는 미스 해비셤이라는 여성이 핍에게 자기 집으로 일주에 한 번씩 방문해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새티스 하우스라는 그녀의 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 새롭게 만난 에스텔라는 예뻤지만 도도하고 무례한 태도로 핍을 대한다. 마치 자기가 여왕인 것처럼 핍을 업신여기고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도 자기에게 입맞춤을 해도 좋다면서 뺨을 내주기도 한다. 자기를 무시하고 경멸하는 에스텔라로 인해 핍은 마음속으로 큰 상처를 입는다. 미스 해비셤은 흰 드레스를 입고 흰 구두와 면사포를 쓰고 머리엔 신부 장식용 꽃을 달고 있었다. 사실상 그 하얀색 물건들은 오랫동안 그 빛을 잃어버려 퇴색한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방 안에는 거미와 쥐와 바퀴벌레가 판을 치고 있었고, 그녀는 아무도 자기에게 축하한다는 말(예-생일 축하)을 하도록 용납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시계와 방 안의 괘종시계는 9시 20분 전에 멈추어 있었다. 핍이 그 집에서 한 일은 미스 해비셤 앞에서 에스텔라와 카드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매주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서 줄곧 방안의 무거운 공기가 짓누르고 무거운 어둠이 방 안의 구석들을 고요히 덮고 있는 상황을 접하면서, 핍은 에스텔라마저 곧 썩어 가기 시작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핍은 미스 해비셤이 도제 훈련비를 내놓아 준 배려로 조의 대장간에서 도제로 일하기 시작한다. 자기도 원해서 시작한 도제 생활이었지만 1년이 지나자 자기를 “싸구려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먼지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되면서, 자기 장래에 대해 낙담에 빠진다. 자기의 앞길에 지루하게 인내하는 삶 외에는 모든 재미난 일들과 낭만적인 일들에는 관여하지 못할 운명이 펼쳐질 것을 예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핍의 누나는 조가 고용한 일꾼인, 사악한 올릭에게 대장간에서 잔혹한 폭행을 당한 후, 뇌가 많이 손상되어 듣지도, 말하지도, 기억도 잘 하지 못하는 신세에 처하게 된다. 그때부터 핍의 친구이자 첫 선생이었던 비디가 대장간으로 이사 와서 조 가정을 돕는다. 그래서 핍은 비디에게 자기는 전혀 행복하지 않고 자기 직업과 자기 삶이 너무 싫다면서, 미스 해비셤 집에 사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지독하게 사모하기 있기 때문에 그 아가씨를 위해 신사가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핍이 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게 된 지 4년이 흐른 뒤 핍에게 놀라운 행운이 찾아든다. 어느 날 매형과 함께 선술집에 앉아 있는데 낯선 남자 한 사람이 그들에게로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이전에 미스 해비셤의 집에서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런던의 유명 변호사인 재거스로서 핍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사람의 유산 상속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 준다. 다만 본인이 직접 밝히기까지는 그 유산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다고 한다. 핍이 유산 상속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 마을에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이 핍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변한다. 그 놀라운 소식으로 인해 충격과 불안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핍은 신사가 되기 원하던 꿈의 성취를 위해 런던으로 향하기로 마음먹는다. 핍이 도제 연수 중 그만 두고 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으려는 조의 배려에 힘입어 핍은 곧바로 런던으로 떠나게 된다. 핍은 비디에게 매형인 조를 조금이라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지만, 비디는 그런 말이 주제넘은 것 같다며 거절한다. 조가 자긍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자기가 감당할 능력이 있고 존중받으면서 잘 메우고 있는 그런 자리에서 누가 자기를 빼내려고 한다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 게 그 이유였다.

 

(2권) 런던으로 이주한 핍은 재거스 변호사 사무실에서 런던 생활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재거스가 맡아 놓은 금액에서 핍이 원하는 생활비를 주기적으로 인출해 주겠지만, 핍이 너무 돈을 많이 써서 빚을 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자기가 핍을 제지할 것이라는 뜻도 밝힌다. 그의 사무원인 웨믹의 도움을 받아 얻은 셋집에 들어가 보니, 이전에 미스 해비셤 집에서 만나 장난으로 주먹싸움을 한 허버트가 자기를 돕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인 매슈 포켓이 핍의 신사 교육을 책임지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그의 아버지와 사촌 지간이었던 미스 해비셤의 비밀을 듣게 된다. 그녀의 결혼식 날에 모든 것이 준비되고 결혼식 하객들이 죄다 초청된 상태에서, 신랑은 나타나지 않은 채 그녀에게 편지 한 통만 전달되었다. 바로 그 시간이 9시 20분 전이었다는 것이다. 매우 냉혹한 어조로 결혼을 파기한다는 내용이 담긴 그 편지를 받아 든 그녀는 바로 그 시각으로 모든 시계들을 정지시켰다. 이후 지독하게 앓아누운 그녀는 회복한 이후에 온 집 안을 방치하여 황폐해지게 했을 뿐 아니라, 밝은 대낮의 햇빛을 결코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에스텔라를 입양하여 아름다운 여인으로 길러 남성 전체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한편 핍은 웨믹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방문한다. 공과 사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그는 사적인 생활에서는 아버지를 모시면서 최대한의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사는 작은 집을 개조해서 성처럼 만들어 놓고는 집 주위에 작은 개울을 만들고 도개교를 설치해 두었을 뿐 아니라, 발사가 되는 대포도 설치해 두고 산다. 이튿날은 재거스의 집에도 초대를 받게 된다. 웨믹의 권고대로 핍은 재거스 집의 하녀 중 한 명에 주목하게 되는데, 재거스의 지시대로 공손하게 섬기고 있는 그녀는 40대로 보였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던 중에 미스 해비셤의 전갈을 들고 온 조가 핍을 방문하게 된다. 에스텔라가 고향에 돌아와 있으니 핍이 그들을 방문해 주기 원한다는 전갈이었다. 그렇지만 조는 핍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경어를 남발하면서 아주 짧은 시간을 함께 나눈 채 서둘러 고향으로 떠나 버린다.

 

고향으로 돌아온 핍은 조와 누나의 집을 방문하지 않은 채 호텔을 숙소로 잡는다. 미스 해비셤 집에서 만난 에스텔라는 더욱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져서 핍이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여전히 자기를 조롱하고 놀리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핍에게 익숙한 누군가의 표정이 읽히는 것을 핍은 느낀다. 그리고 자기 친척 중 가장 천박한 사람인 드러믈이 에스텔라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런던으로 돌아온 후에 핍은 에스텔라의 편지를 한 장 받는다. 그녀가 런던을 거쳐 리치몬드로 가려고 하는데 자기를 데리러 와서 자기와 동행해 주기를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런던의 마차역에서 만난 에스텔라는 핍에게 미스 해비셤의 친척들이 핍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준다. 그들은 미스 해비셤이 핍의 후원자라고 이해한 채 그로 인해서 그녀의 유산 문제에서 자기들이 손해를 볼지도 몰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후 누나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핍은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식에 참석한다. 비디를 통해서 그녀가 죽기 전에 조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고 핍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조와는 다정한 시간을 가졌지만 비디는 핍이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핍은 속물적인 생활과 사치스러운 습관에 빠져 들어, 정말로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펑펑 쓰기 시작했다. 유산 상속자라는 자신의 지위가 함께 사는 허버트에게도 악영향을 미쳐 그의 무사 태평한 성격을 부추겨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쓰게 만든다. 그러한 낭비로 인해 소박한 허버트의 삶이 타락되어 그의 마음의 평화가 근심 걱정과 후회의 감정으로 교란되는 단계까지 진전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갈수록 소소하게 안락한 생활을 더욱 안락한 생활로 만들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핍은 상당한 액수의 빚을 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핍이 성년(21세)이 되어 미스 해비셤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에스텔라를 다시 만나게 된다. 우연찮게도 에스텔라와 미스 해비셤 사이에 독기 어린 신랄한 말들이 오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이 그렇게 반목하는 모습을 핍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해비셤이 에스텔라가 목석같이 차다고 하고 차갑고도 차가운 심장을 가졌다고 공격하자, 에스텔라는 현재의 자기의 모습은 어머니인 해비셤이 만들었으며 해비셤이 자기에게 원하는 사랑은 자기에게는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결코 준 적이 없는 사랑을 달라시면 어떻게 하냐고 되묻는다.

 

핍의 23세 생일이 지난 지 일주일 후에 폭풍우 치는 밤을 뚫고 핍의 집으로 손님 한 사람이 찾아온다. 핍은 그가 바로 옛날 고향에서 자기에게 음식과 줄칼을 가지고 오라던 그 탈옥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기를 에이블 매그위치라고 소개한 그는 자기가 바로 지금까지 핍에게 생활비를 조달해 준 인물이라는 점을 밝힌다. 지금까지 종신 유형수로 뉴사우스웨일즈에서 복역하던 중 탈출할 기회를 잡아 그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자기는 “사회의 해충 같은 인간쓰레기”에 불과하지만, 사랑하는 꼬마였던 핍을 신사로 만들어 평탄하게 살게 하려고 죽자 사자 일했다고 말한다. 핍에게 보은의 감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때 교회 묘지에서 핍이 생명을 구해 준, “그 거름 더미 속에서 쫓기던 개 같던” 자기가 신사를 만들어 낸 사실을 자랑할 수 있다는 걸 핍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를 핍의 두 번째 아버지로 자처했다. 그런데 자기가 종신 유배형 받은 상태에서 도망쳐 온 상태였기에, 다시 붙잡히는 날에는 교수형에 처해질 상황임도 밝힌다. 그의 출현은 핍이 지금까지 타고 온 인생이라는 배가 처참하게 난파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동안 그는 자기에게 유산을 제공해 준 이가 미스 해비셤이고, 에스텔라가 자기 짝으로 정해져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느낀 고통들 중에서 가장 예리하고 통렬하게 느낀 고통은, 교수형에 처해질 그 죄수 때문에 매형인 조를 버렸다는 것이었다.

 

(3권) 매그위치는 핍에게 한 가지만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자기 요구 조건은 그저 핍 옆에 서서 바라만 보는 것이라면서, 두툼한 지갑을 핍에게 던진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 다 핍의 것이라면서, 돈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면서 자기의 신사가 ‘신사답게’ 자기 돈을 쓰는 걸 보려고 모국에 돌아왔으며, 그게 바로 ‘자기’ 기쁨이라고 고백했다. 허버트의 조언에 따라 핍은 매그위치에게 질문을 던져 그의 인생 역정에 대해 귀 기울이게 된다. 핍은 매그위치가 “그 흉악한 천재, 그 수많은 악당들 중 최악의 악당”이라고 일컫는 콤피슨이라는 비열한 인물을 만나 내내 이용만 당하다가, 그를 폭행한 것으로 다시 감옥에 들어가 종신 유배형을 선고받게 되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런데 허버트에게서 이 콤피슨이란 자가 바로 미스 해비셤의 연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던 자였고, 그의 동업자였던 아서라는 인물이 미스 해비셤의 남동생이었다는 것을 듣게 된다.

 

핍은 이제 잡히면 교수형을 당할 처지에 놓인 매그위치를 위해서는 해외로 도피하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 이전에 미스 해비셤과 에스텔라를 꼭 만나보아야겠다고 결심한다. 먼저 미스 헤비셤에게 자기에게 유산을 준 은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밝힌 후에, 자기가 그 은인이 미스 해비셤이라고 착각하도록 그녀가 끌어들인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자애로운 처사였느냐고 따진다. 그녀는 도리어 자기가 누군데 자애롭기를 바라느냐고 핍에게 핀잔을 준다. 핍은 계속해서 매슈 포켓과 허버트도 자기가 품은 것과 동일한 착각을 품고 있었지만, 그녀의 다른 친척들과는 달리 그동안 자기를 선대해 주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자기가 허버트에게 도움을 주고 지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가 없는 사정이 생겼다고 말하면서, 미스 해비셤이 그에게 평생 도움이 될 만한 자금을 좀 내어 줄 수 없는지 부탁한다. 그녀에게 이 사실을 통보한 후에 핍은 에스텔라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에스텔라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길 거절한다. 더구나 좀 더 훌륭한 남자에게 자기를 맡기라는 핍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실망스럽게도 그녀는 드러믈과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지친 자기로서는 이제 충분히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변화시켜 보려 한다고 고백한 것이다. 핍이 런던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웨믹에게서 중대한 경고를 듣게 된다. 누군가가 핍을 감시하고 있고 매그위치의 숙적인 콤피슨이 런던에 잠입해 들어와 있다는 정보를 접한 후에, 핍은 허버트와 상의한 후에 그녀의 약혼녀인 클래라의 집에 매그위치를 숨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를 방문해 달라고 부탁한 미스 해비셤은 허버트를 도와줄 수 있는 방도로 핍이 제안한, 합자 회사의 동업자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자금 용도로 900 파운드를 내어 놓으면서 그 일을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후에 그녀는 핍에게 놀라운 고백을 한다. 자기에게 수첩을 하나 주면서 첫 장에 적혀 있는 자기 이름 밑에 ‘나는 그녀를 용서합니다’라고 써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핍은 두 말하지 않고 자기에게 그동안 가슴 아픈 과오들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 해드릴 수 있다고 응대한다. 해비셤에게 냉혹하게 굴기에는 자기도 너무나 많은 용서와 인도가 필요한 사람이라면서, 핍은 자기 인생은 앞도 못 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인생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때 그녀는 핍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음을 터뜨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이냐?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이냐!”(What have I done!)라고 수십 번을 외친다. 너무나도 난감한 상황에 놓인 핍이 그녀를 안정시킨 후에 떠나려고 밖에 나왔다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껴져 다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 보니, 그녀 옷에 불이 붙어 그녀가 위기에 처해 있었다. 가까스로 불을 끄는 와중에 핍도 화상을 심하게 입는다. 그렇지만 해비셤은 누워 있는 상태에서도 핍에게 계속 주문해댄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이냐!”라는 고백과, “그 애가 처음 왔을 때 나는 그 애를 나와 같은 비참한 불행으로부터 구해 줄 생각이었어.”라는 술회와 더불어, “연필을 잡고 내 이름 밑에 ‘나는 그녀를 용서합니다’라고 써다오”라고 라는 주문을 거듭해서 내뱉었던 것이다.

 

런던으로 돌아온 핍은 허버트로부터 매그위치가 자기를 더욱 특별하게 생각한 이유를 듣게 된다. 핍을 볼 때마다 핍의 나이쯤 되었을 자기 딸, 즉 자기가 비극적으로 잃어버린 어린 딸이 너무나 생각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핍은 매그위치의 정체를 허버트에게 알려주면서 그 사람이 바로 에스텔라의 아버지라는 소식을 전해 준다. 그리고 나중에 매그위치에게서 그가 재거스 집에서 지내는 하녀의 남편이라는 사실과 그녀가 자기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죽일 거라고 말했다는 것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접한다. 그 이후로 그는 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재거스가 당시 투옥될 그 하녀를 설득해서 그 딸을 포기하고 미스 해비셤에게 입양시킬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 당시 미스 해비셤이 딸아이를 입양할 계획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핍과 허버트는 매그위치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살 수 있도록 계획을 진행하게 된다. 작은 보트에 매그위치를 태운 후에 외국으로 떠나는 증기 여객선에 접근해서 그 배에 올라타는 계획이었다. 그 와중에 그를 계속 추격하고 있던 콤피슨의 고발로 그는 다시 체포되는 운명이 된다. 매그위치는 자기가 타고 있던 보트로 접근해 오던 밀고자 콤피슨을 처치하던 중에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고 한쪽 폐에 부상을 입게 되었으나 실망하지 않는다(콤피슨은 조류 위로 굴러 떨어져 죽어 버림). 오히려 그렇게 위험을 무릅썼던 일에 대해 아주 만족해하면서, 이제 자기 없이도 신사가 될 수 있는 핍을 보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렇지만 그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그의 재산은 국왕의 재산으로 몰수되게 되어 있었기에, 핍은 그의 재산에 더 이상 손대지 않는다.

 

핍은 사형 선고를 받은 매그위치를 떠나지 않고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와 함께 한다. 핍이 자기 곁에 있으면서 더 편안해진 것으로 기뻐하면서, 어떤 일에도 불평하지 않겠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긴다. 그렇지만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핍은 그가 사랑했지만 잃어버린 딸이 살아서 유력한 친지들을 만나 아름다운 숙녀가 되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자기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점을 일러 준다. 그를 보낸 후에 핍은 한동안 앓는 신세에 처하게 되는데, 그동안 빚쟁이들까지 몰려온다. 이런 그를 구해준 이는 바로 조였다. 자기의 돈으로 그 빚을 처리해 주고 그가 정신을 차리고 회복될 때까지 그를 자기 비용을 들여 돌보아 준 후 다시 자기 일터로 돌아간다. 자기를 때리면서 자기의 배은망덕을 지적해 주라는 핍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그의 깊은 필요를 채워주는 데 전력을 다한 것이다. 결국 미스 해비셤도 죽고 만다. 그녀는 재산 대부분을 에스텔라에게 양도했지만, 그녀가 사고 나기 직전에 매슈 포켓에 대해 핍이 이야기해 준 것으로 인해 그에게 “에누리 없는 4천 파운드”를 남기는 유언 보충서를 써 두었다.

 

그 후 조와 비디는 결혼하게 된다.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팔아 빚을 완전히 청산한 핍은 해외로 나가 허버트와 합류하여 11년 동안 근무하다 영국으로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가 있던 중 중 미스 해비셤의 집 안을 둘러보다가 그곳에 서 있는 에스텔라와 조우하게 된다. 드러믈과 결혼한 후 학대를 당하던 중 그가 최근에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미스 해비셤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상큼한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렸지만, 그 아름다움에 내재된 위엄과 말할 수 없는 매력들은 여전히 간직한 그녀는 도도했던 눈에 슬픔 어린 부드러운 눈빛을 띠고, 무정했던 손길에 정다운 감촉을 품은 여인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러면서 에스텔라가 그 가치를 도무지 깨닫지 못한 채 저버린 것들에 대한 기억을 최근 들어 마음속에 간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자, 핍은 그녀가 늘 자기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에스텔라는 다시 한번 핍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제 휘어지고 부러진 자기가 이전보다 더 훌륭한 모습으로 변화되었기를 바란다면서 옛날처럼 착하고 사려 깊은 모습으로 자기를 친구로 대해 주길 바란다고 응대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