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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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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정의를 구현한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사법 정의를 구현한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검찰 공화국’에 살면서 신뢰도 꼴찌 격인 사법부에 신체 및 재산상의 안위를 맡겨야 할 운명에 처한 우리나라 국민의 처지가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법 정의가 구현되는 날을 꿈꾸고 그 날을 위해 기도하며 사법 개혁의 길을 새롭게 도모해 가는 게 절실한 과제입니다. 그 날을 꿈꾸는 데 도움이 되는 길 중 하나가 문학을 통해 덕스럽고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이 펼쳐지는 이야기의 세계를 접하는 것입니다. 캐런 스왈로우 프라이어 교수의 지적처럼 세계 최고의 문학에 제시된 좋은 삶에 대한 비전은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지식과 갈망을 함양하는 매개(agents)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 2023. 6. 1.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정의를 선양하고 공동선을 실행하는 민주 사회 구현- -검사와 ‘삼무’(三無) 정권-현 정권을 대표하는 단어로 제게는 세 단어가 떠오릅니다. 무지(無知), 무도(無道) 및 무리(無理)입니다. 지난 1년간 현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이 언급한 몰상식하고 자가당착에 빠진 그 숱한 말은 우리나라 국민들을 좌절하게 했습니다. 그 말의 배후에는 자신들의 무지에 대한 무지가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159명의 희생자를 낳은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대통령과 총리나 주무 장관이 취한 태도는 부도덕의 끝판왕이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현 대통령은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한 적 없고, 무책임하고 무능한 주무 장관을 징계하기는커녕 두둔만 해댔으며, 심.. 2023. 5. 19.
“운명에 대한 교육”으로 위무해 주는 문학 세계 “운명에 대한 교육”으로 위무해 주는 문학 세계 “장미의 이름”의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문학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에코의 위대한 강연”). 주로 소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소설이란 있을 법한 세상을 묘사하고 구성하는 문학 세계이므로, 독자가 진위를 판단하는 기준은 현실 세계가 아니라 소설 속의 가능한 세계라고 지적합니다. 가능한 세계는 아주 많지만,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너무 동떨어진 배경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셜록 홈스의 이야기는 당시의 런던을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만약 왓슨이 다뉴브강 넵스키 광장 모퉁이에 서 있는 에펠탑을 보려고 세인트 제임스 공원을 건너갔다.”라고 하면 우리는 이상하게 느낄 것입니다. 세인트 제임스 공원은.. 2023. 5. 4.
기쁨: ‘항상 기뻐하라’가 불가능한 명령이라고? 기쁨: ‘항상 기뻐하라’가 불가능한 명령이라고? 신약성경을 읽어 보면 “항상 기뻐하라”(Rejoice always)라는 명령이 두 번 나옵니다. 빌립보서 4:4와 데살로니가전서 5:16입니다. 이 명령에 사용된 영어 단어 rejoice는 아주 만족해 하는(very pleased)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항상 기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런 상태는 감정의 본질상 우리가 용을 쓴다고 해서 형성되는 게 아닙니다. 더구나 감정이란 것은 항상 똑같은 상태로 유지될 수도 없습니다. 항상 가변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요. 그러므로 이 명령은 그런 감정 상태를 항상 만들어내라는 의미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명령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는 영적 실존의 세계를 누리고 있다는 점에 .. 2023. 4. 21.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5)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5) -오독은 문맥 읽기 실패의 결과- -교회가 진보를 지연시킨 과정(How the Churches Have Retarded Progress)- 러셀은 교회가 도덕이라고 부르는 것을 고수하면서 그것을 무고하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가톨릭교회는 매독에 걸린 남자와 결혼한 순진한 소녀에게, “이것은 영속적인 성사(聖事)다. 그대는 평생 함께 해야 한다.”(“This is an indissoluble sacrament. You must stay together for life.”)라고 말한다는 것이지요. 교회는 여전히 세계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모든 진전과 개선을 가로막는 대적으로서 인간의 행복과 전혀 상관없는 편협한 행동 규정들(a certain.. 2023. 4. 5.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4)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4) -오독은 문맥 읽기 실패의 결과- 러셀은 사람들이 종교를 수용하는 것은 지적인 논증(argumentation)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자기 지론을 한 번 더 언급합니다. 감정적인 근거로 종교를 수용한다고 봅니다. 종교가 사람들을 덕스럽게(virtuous) 해 준다고 말들 하지만, 자기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지요. 그러면서 새뮤얼 버틀러(1835-1902)가 풍자소설인 “에레혼 재방문”(Erewhon Revisited, 1901)에서 이 주장을 패러디한 것을 지적합니다. 전작인 “에레혼”(1872)에는 외딴 어느 나라에 도착한 힉스라는 사람이 그곳에서 얼마간 보낸 후 기구를 타고 그 나라에서 탈출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20년 후 그가 그 나라로 .. 2023. 3. 29.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3)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3) -오독은 문맥 읽기 실패의 결과- 이 항목에서 러셀은 그리스도에게 한 가지 가장 심각한 결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지옥을 믿었다는 점입니다. 자비심이 심오한 사람이라면 영원한 형벌(everlasting punishment)을 믿을 수 없겠지만, 그리스도는 영원한 형벌을 진정으로 믿었고 자기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거듭 보복적인 분노(a vindictive fury)를 가했다면서 이것은 최고의 탁월성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태도는 소크라테스와 비교된다면서,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고 훨씬 현인답게 온화하고 우아한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하지요. 그리스도의 이런 면모를 드러내는 것으로 아.. 2023. 3. 22.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2)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2) -오독은 문맥 읽기 실패의 결과- 러셀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야기한다면서,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마태복음 5:39)라는 성구를 인용합니다. 그러더니 이것은 새로운 원리가 아니라 노자나 붓다가 이미 말한 내용이라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실상 수용하지 않는 원리라고 주장하지요. 그 후에 아래와 같은 마태복음 세 구절을 더 언급하면서, 이것들은 탁월한 원리요 가르침이지만 자기도 따르지 못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실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태복음 5:42)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 2023. 3. 15.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1) 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1) -오독은 문맥 읽기 실패의 결과- -책 읽기의 기본원리- 하나님의 계시로 형성된 성경은 기본적으로 문학 작품입니다. 그 문학적 측면을 고려한다는 말은 우선 각 책이 어떤 종류의 ‘문학’(literature)인지 주목하는 것입니다. 역사서인지, 시가서인지, 예언서인지, 서간문인지 구분하고 그 장르에 맞게 이해해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책의 저자가 자기의 글을 어떻게 읽어주기를 바라는지 식별하게 됩니다. 잠언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과 역사서를 읽고 이해하는 방식은 달라야 하지요. 예컨대 잠언 3:5을 보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기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권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2:1-5을 보면, 전심을 다해 명철을 찾으라는 명령이 제시됩니다. 이 모.. 2023.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