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의 복음서 읽기(4)
-오독은 문맥 읽기 실패의 결과-
<정서적인 요소(The Emotional Factor)>
러셀은 사람들이 종교를 수용하는 것은 지적인 논증(argumentation)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자기 지론을 한 번 더 언급합니다. 감정적인 근거로 종교를 수용한다고 봅니다. 종교가 사람들을 덕스럽게(virtuous) 해 준다고 말들 하지만, 자기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지요. 그러면서 새뮤얼 버틀러(1835-1902)가 풍자소설인 “에레혼 재방문”(Erewhon Revisited, 1901)에서 이 주장을 패러디한 것을 지적합니다. 전작인 “에레혼”(1872)에는 외딴 어느 나라에 도착한 힉스라는 사람이 그곳에서 얼마간 보낸 후 기구를 타고 그 나라에서 탈출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20년 후 그가 그 나라로 돌아와 보니 그를 하늘로 승천한 ‘태양의 아이’(Sun Child)로 숭배하는 새로운 종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승천 축제가 곧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종교의 대제사장인 핸키와 팬키 교수가 자기들은 힉스를 발견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서로에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매우 분개한 그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이 모든 허풍(humbug)을 폭로하고 에레혼 사람들에게 나, 즉 인간인 힉스가 기구를 타고 올라간 거라고 말할 거예요.’ 그렇지만 그는 이런 말을 듣고 설득당해 그곳을 조용히 떠나지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모든 도덕이 이 신화(myth)에 얽매여 있고, 그대가 승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모두 사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적에 덧붙여 러셀은 그리스도교를 고수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더 악해진다고 말들 하지만, 자기가 보기에는 그리스도교를 고수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사악해졌다(extremely wicked)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종교재판(the Inquisition)의 예를 듭니다. 무려 수백만 명이나 되는 불행한 여성들(millions of unfortunate women)이 마녀로 화형당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학대가 자행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모든 도덕적인 진보가 조직화된 세계 교회의 지속적인 반대에 직면했다고 강변하기까지 합니다. 급기야 그리스도교야말로 “이 세상에서 도덕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대적”(the principal enemy of moral progress in the world)이라고 주장하지요.
---->러셀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것이 사람들을 덕스럽게 하는지 아니면 사악하게 하는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러셀은 후자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믿음이란 게 허위적인 신화(myth)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덧붙여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은 매우 사악해졌다고 주장하면서, 종교재판을 예로 듭니다. 먼저 첫째 지적부터 살펴봅시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사건을 믿는 지적인 이유-
러셀이 왜 “에레혼 재방문”이라는 풍자소설을 인용했을까요? 그곳 주민들이 힉스가 기구 타고 하늘로 사라진 것을 오해해서 그를 ‘태양의 아이’로 믿고 있듯이, 그리스도교인들도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이란 속임수 때문에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들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상황이 전개된 데에는 그리스도교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협잡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시사합니다. 그리스도교인의 덕스러운 삶이란 게 이런 엉터리 신화(myth)에 근거하고 있으니 자기가 주목하지 못할 만큼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 신화(myth)라는 단어는 이 소설 속에서는 난센스, 근거 없는 허구라는 뜻입니다. 인문학적인 전문 용어(technical term)로 사용될 때는, “장대한 서사”(grand narrative) 혹은 “서술된 세계관”(narrated worldview), 즉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stories that people tell to make sense of the world)라는 의미를 띠고 있지만(J. R. R. 톨킨), 특정 문맥에서는 이렇게 거짓부렁이라는 뜻을 띠기도 합니다. 러셀은 이 항목 속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 되는 부활과 승천도 같은 부류에 속한다고 시사하고 있지요.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점부터 의심하는 그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속임수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논의한 대로 예수님의 역사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는 러셀과 같은 외로운 주장을 더욱 무색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교의 주장에 조금도 호의적이지 않은 무신론자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역사적인 사실이니까요.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빈 무덤과 자기 목숨을 걸고 그의 부활을 증언한 수많은 제자들의 헌신은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기 힘들게 합니다. 도리어 초자연적인 세계의 존재를 열어 밝히는 상황이 됩니다.
러셀에게 이런 초자연적인 사건들의 문제는 지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은 지력이나 논리를 활용하지 않은 채, 그저 큰 능력의 소유자(a big brother)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감정 때문에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일들을 믿는다는 것이지요. 우선 그리스도인들이 믿을 때 지성이나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일까요? 사람들 간에 지적인 정보의 양이나 논리적인 추론 능력은 서로 차이가 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이 기본적인 자연법칙을 모르거나 지성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해서 성경상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 진술의 의미를 감정적인 차원에서 믿는다는 말은 허튼소리에 불과하지요. H. G. 웰스가 지적한 대로, 그리스도교는 예로부터 유대교와 함께 ‘책으로 이루어진 종교’(book religions)라고 불릴 만큼 글을 통한 교육을 중시했습니다. 두 종교가 그 험난한 역사 가운데서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읽을 줄 알고 교리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덕이 컸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지성”(personal intelligence)에 호소하는 종교가 그 이전에는 없었을 만큼, 그리스도교는 독특했습니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야만인들이 침입하여 서유럽 전체가 혼돈의 시기에 접어들 때도 그리스도교는 학문의 전통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H. G. 웰스의 세계사 산책”) 이런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는 데도 역사가라는 러셀이 그리스도인을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폄훼하다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요셉이 자기 약혼자인 마리아가 임신했음을 알고 ‘가만히 파혼하려’(to send her away secretly) 했습니다(19절). 그녀의 임신을 부정의 증거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만한 생물학적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꿈에 나타난 천사의 설명과 지시를 받고 초자연적인 역사가 이루어진 것을 깨닫게 되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지요(20-24절).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안식 후 첫날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무덤의 문을 열고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그런 상황을 접한 여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with fear and great joy) 급히 달려가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지요(1-8절). 만일 그 여인들이 천사의 출현과 예수님의 부활이 초자연적이고도 예상을 뒤엎는 환희에 찬 사건이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무서움과 큰 기쁨이 함께 교차하지 않았겠지요. C. S. 루이스가 지적한 대로, “자연에 존재하는 통상적인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눈치채지도 못할 것입니다.” 러셀과 같은 무신론적 유물론자는 부활과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존재를 자기식의 논리로 설명해서 없애 버리려고 애쓰겠지만, 자연법칙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사람이라면 초자연적인 기적을 인식할 수조차 없겠지요. 게다가 예수님의 부활은 직접 목격한 증인들이 무려 5백여 명이나 되고(고린도전서 15:1-8), 그 목격 기간도 무려 40일이나 됩니다(사도행전 1:1-3). 이것을 집단적인 환각 상태(collective hallucination)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적인 기본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이 복수의 시간대와 다양한 상황 속에서 똑같은 환영을 줄곧 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집단 환각설보다는 초자연적인 부활 현실이 더 개연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신약성경은 이러한 부활의 증인들이 기록한 역사서요, 서신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기록에 대한 서지학적인 증거와 일반 역사 증거 및 그 저자들에 대한 내적 증거들은 그 기록의 신빙성을 더해 줍니다. 이런 역사적인 기록들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과거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물론 과거의 기록이 상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성경 중 열왕기하에 보면 히스기야 왕 시절에 유다를 침략한 앗수르 왕 산헤립 군대 185,000명을 천사가 나타나 하룻밤 새에 송장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19:35). 그런데 같은 사건을 두고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수많은 쥐가 나타나 산헤립 군대의 활시위를 모두 갉아 먹었기 때문에 그들이 물러갔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지성과 논리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까요? 이 경우에 후자를 택한 사람이 전자를 택한 사람을 두고 지력과 논리력이 뒤진 사람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인간 지성과 논리력의 용도와 그 한계를 깨닫고 초자연적인 세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마음을 닫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리어 후자보다는 전자 편을 들지도 모릅니다. 그 수를 알 수 없는 쥐 떼가 불쑥 나타나 앗수르 군대의 활시위만 몽땅 갉아 먹은 탓으로 그들이 물러갔다는 것은 개연성이 낮아도 너무 낮기 때문이지요. 결국 어느 쪽이 역사적 진실인지 선택하는 일은 이 기록들을 읽는 독자의 지력과 세계관에 달려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두 가지 역사 기록 모두 지력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며 거짓부렁이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요. 이런 인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유력(思惟力)이 떨어지거나 역사 기록을 접할 때 지녀야 할 에이비시, 즉 “호의적인 해석은 문서 자체에게 부여되어야 하는 것이지, 비평가가 가로채서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는 없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언도 모르거나 무시하는 자이겠지요. 비록 자기가 역사로부터 배운 게 있다고 자랑할지라도, 그가 과거 역사에서 배운 지식은 보잘것없을 것입니다. 독불장군식의 사유력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한 자연법칙으로 설명되는 역사적 사건이나 상황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러셀이 역사가이기도 하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자연계의 실재에 닿지 못하는 자연법칙과 수학의 세계-
한발 더 나아가, C. S. 루이스가 지적한 대로 자연계의 물리적 실재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그 수학적 속성 외에는 없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H2O’라는 수(numbers)가 물이라는 물리적 실재에 대한 우리 지식의 알맹이(substance)로서 우리 정신과 그 실재를 잇는 유일한 매개체(the sole liaison)가 될 뿐, 물 그 자체의 본질(nature)은 숨겨져 있지요. 그리고 자연법칙을 언급할 때에도, 자연이 취하는 실제적인 사건의 경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무릇 자연법칙이란 어떤 사건이 일단 벌어지고 난 후 따라야 하는 패턴이지, 이 세상의 전체 역사에서 자연법칙이 만들어 내는 사건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5천 원에 5천 원을 더하면 그 결과는 1만 원이지만, 그 산수 자체는 우리 주머니에 1원도 보태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자연법칙을 통해서는 자연의 정상적인 과정을 꿰뚫어 볼 수 있거나 자연이 지금처럼 운행하는 이유를 죄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연법칙은 본질상 ‘만약과 그러므로’(“ifs and ands”)의 세계, 즉 ‘만약 A라면 B다.’(‘If A, then B.’)나 ‘C이므로, 따라서 D다.’(‘Since C, therefore D.’)와 같은 형식을 취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B나 D의 조건이나 전제가 되는 A나 C가 애당초 어떻게 해서 그런 특성을 띠거나 그런 상태였는지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A나 C가 왜 A’나 C’의 특성을 띠거나 그런 상태이지 않았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무엇보다 A'나 C'에 해당하는 경우의 수가 지력이나 논리력의 한계를 넘어서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보면, 작중 화자와 하룻밤 사랑을 나눈 아름답고 열정적인 과부 소르멜리나가, 사모하던 그녀로 인해 자살한 한 청년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받던 중 공격을 받아 참수를 당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복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그 청년이 그 과부를 짝사랑합니다. 그 사랑이 받아지지 않아 자살합니다. 그것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 미움 때문에 그녀를 공격합니다. 그 공격의 결과 그녀는 참수당합니다. 이런 사건이 현실 세상에서 발생했다고 가정한다면, 이런 질문들이 가능합니다. 그 청년이 왜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 과부가 왜 그 청년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을까? 그 청년은 왜 계속 구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마을 사람들이 왜 과부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았을까? 그들이 왜 과부를 공격하는 대신 추방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공격으로 왜 그 과부가 중상을 입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까? 과부를 죽이더라도 왜 그냥 사약을 내리지 않았을까? 더 많은 질문이 가능하겠지만, 이런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서만이라도 각 상황을 꿰뚫는 합리적이고 적확한 답변을 하는 게 가능할까요?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A'나 C'에 해당하는 모든 경우의 수가 전개되지 않은 이유들을 모두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지력과 논리를 절대시하는 게 위험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러셀 자신도 이 글 앞 부분에서 '자연법 논증'에 반박하는 중에, 자연 법칙이란 “그저 우연에서 출현할 법한 부류에 속한 것의 통계적 평균치”(statistical averages of just the sort that would emerge from chance)라고 언급했지요. 즉 자연 법칙은 절대적(absolute)이거나 결정론적인(deterministic)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별 사건의 통계적 행동에서 나타나는 패턴이나 규칙성을 설명한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러한 통계적 패턴은 내재적 필연성(inherent necessity)이나 목적론[teleology, 우주에 목적이나 설계의 증거가 있고 이것이 설계자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는 교리]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계에 내재된 무작위성(inherent randomness)과 불확실성(indeterminacy)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습니다(“The Scientific Outlook”,1931). 무신론자인 그가 자연계 배후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존재와 경륜을 인정할 리는 없지만, 무작위하거나 불확실하게 보이는 현상들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 속에는 우리의 제한된 지력과 수학적 논리 과정으로는 파악하지 못하거나 그것들을 초월하는 일들이 무수하게 많습니다. 그 속에는 러셀과 같은 인물들이 신화로 여기는 일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에 덧붙여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된 문제에 대해서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즉 그 청년이 어떻게 그 과부를 짝사랑하게 되었을까? 이렇게 그 이전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 모든 사건들의 흐름에는 어떤 시작 시점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시작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창조(creation)와 같은 사건에 직면하게 됩니다. 시작이 없었다면, 그 본질상 과학적 사고로 파악할 수 없는 “영원한 추진력”(everlasting impulse), 혹은 “숙명”(Destiny), 즉 “우주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비물질적, 궁극적, 일방적인 압력”(the immaterial, ultimate, one-way pressure which keeps the universe on the move)에 직면해야 하지요. 이런 시나리오는 가끔 일어나는 기적적인 사건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사건에 적용됩니다. 14세기 영국의 신비주의 여류 작가였던 노리치의 줄리안(Julian of Norwich)이 본 환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헤이즐넛(a hazel nut) 같은 작은 물체를 손에 들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창조된 전부이다.”(This is all that is created.) 너무 작고 연약해 보이는 그 물체가 어떻게 그렇게 단단하게 붙어 있는지 그녀가 의아해했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그 조그마한 존재도 역시 창조라는 시작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주적인 실체인 셈입니다. 결국 러셀이 자기의 사유력과 논리의 기반으로 파악한 자연 세계의 궁극적 기원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과학적 사고로는 파악할 수 없는 ‘영원한 추진력’이나 ‘비물질적이고도 일방적인 압력’뿐입니다. 그의 선택이 창조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일까요?
-종교재판의 진실-
다음으로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은 매우 사악해졌다는 러셀의 주장을 살펴봅시다. 그리스도교에 대해 신랄하기보다는 편파적인 비난이지요. 더구나 그리스도교가 온 세상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온갖 학대를 자행했고 세계의 도덕적인 발전을 막는 최대의 적이었다는 엄청난 주장을 펼치려면 그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정이 이러한데도 그 사례를 단 한 가지, 즉 종교재판만 들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도 과장된 정보로 포장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종교재판은 한 마디로 신성모독(a blasphemy)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반하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러셀이 주장한 대로 그 피해자 규모가 수백 만이나 되지는 않았습니다. 유럽 전체에서 진행된 재판 사례를 따지자면 희생자 수는 배로 늘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주목하는 종교재판인 ‘스페인 종교재판’을 통해 처형당한 사람의 수는 5-6천 명 정도입니다. 유럽의 종교재판의 대략적인 전모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의 논의에는 존 딕슨의 “벌거벗은 기독교 역사”가 많이 참조되었음.)
1184년 교황 루키우스 2세가 최초로 종교재판을 선언했으나 그로부터 50년 뒤인 그레고리 9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종교재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로 도미니크회 신학자들로 구성된 이단 단속반이 유럽 곳곳을 다니면서 이단의심자들을 ‘설득’하여 올바른 교리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들 중 절대다수는 간단한 보속을 행하거나 미미한 형벌을 받았지만, 끝까지 이단의 입장을 고수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국가 당국으로 넘겨져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거론하는 종교재판은 다른 유럽 지역과는 차별성을 보이면서 350년간(1478-1834) 진행된 스페인 종교재판을 가리킵니다.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콘베르소’(converso) 문제를 1478년부터 종교재판에서 다루기 시작한 그곳에서는, 1483년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가 대심문관으로 임명되면서 ‘콘베르소’를 체포하고 심문하고 처형하는 일들이 본격화됩니다. 그 이후 20년 만에 모든 유대인들이 그곳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마법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이단까지 다루게 되었지요. 그들 중에는 16세기 중엽부터 스페인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개신교도들도 포함됩니다. 에드워드 피터스 교수에 의하면 이 350년간 스페인에서 종교재판을 통해 처형된 사람이 약 5-6천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처벌이 가혹했던 첫 50년간 약 2천 명, 그 이후 300년간 약 3천 명 정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숫자는 당시 이단심문관들이 꼼꼼하게 기록해 둔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신빙성을 더합니다[50년 전에 유럽 정부와 교회 기관들이, 1998년에 바티칸의 ‘성무성성’(聖務聖部, Holy Office=현 ‘신앙교리성’)이 연구자들에게 관련 자료들을 공개함].
종교재판의 사례를 통해 러셀은 아마도 노벨상 수상자(1979년)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가 언급한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선한 사람들이 악을 행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종교다.”(“Good people doing evil takes religion.”) 그가 이 말을 한 문맥을 보면, 미국에서 노예제를 지지하는 설교 때문에 남부의 ‘선한 사람들’(good people)이 그 반인륜적인 노예제를 편한 마음으로 영속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등장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놓치고 있는 지점이 있지요. 역사상 2, 5, 7, 18세기에 진행된 모든 노예제 폐지 운동(anti-slavery movement) 참여자 절대다수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노예제를 반대한 이유는 본질상 신학적인 것,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된 영광스럽고 고귀한 존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논의 중인 종교재판이 아무리 참혹한 비인도적 사례였다고 해도, 역사상 비종교적인 대의에 의한 폭력 사례 앞에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참사들이 죄다 무신론 탓이라는 말을 하자는 게 결코 아닙니다. 다만 무신론이 필연적으로 부도덕한 행태를 낳는 것은 아닐지라도, 무신론하에서는 인명을 신성시하는 종교에서와는 달리 이런 폭력 사태나 그 주동자의 만행이 논리적으로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러셀은 그리스도교를 매도하기 위해 단 한 가지만 예로 들었지만, 저는 6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첫째, 프랑스혁명(1789년) 이후에 진행된 공포정치 9개월간(1793-1794) 무의미한 재판을 받고 익사형, 총살형 또는 단두대 참수형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이 17,000명에 이릅니다. 러셀처럼 과학과 이성을 떠받드는, 소위 계몽주의 합리주의자들로 구성된 혁명가들이 9개월간 처형한 사람의 수가 350년간 진행된 스페인 종교재판 때보다 무려 3배나 된다는 말이지요. 이 경우도 다음에 이어지는 사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둘째, 이 글을 쓴 러셀도 이미 목도했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4년 반 만에 무려 1,500-2,00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셋째, 러셀이 곧 경험하게 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으로 6년 반 만에 무려 5,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넷째, 소련에서 레닌에 이어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해 간 이오시프 스탈린은 1,500-2,0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다섯째, 중국에서 스탈린식의 무신론과 공산주의를 적용한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을 진행하면서 1,000-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여섯 번째, 1970년에 세상을 떠난 러셀이 경험하지 못한 사례입니다. 스위스에서 교육받은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혁명가인 폴 포트는 자신의 공포정치를 통해 그 나라 총인구 800만 중 1/4에 달하는 2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무엇을 드러내고 있을까요? 종교나 비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즉 잔인해지는 인간의 악한 성향이 문제였다는 말입니다. 지난 인류의 역사는 종교뿐만 아니라, 합리주의나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잔인해지는 인간의 악한 성향을 막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지적한 대로입니다. “선악을 나누는 경계선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을 가로지른다.”(“The line dividing good and evil cuts through the heart of every human being.”) 러셀의 주장대로 이 세상에서 도덕적인 진보가 지속되었다면(‘every moral progress that there has been in the world’), 어떻게 그 진보의 정점에 도달해 있어야 할 20세기에 들어서 이렇게 동서양에 걸친 대규모의 인명 살상이 가능했을까요? 그것조차도 ‘조직화된 세계 교회의 지속적인 반대’ 때문이었다는 말일까요? 그리스도교야말로 과거와 현재에 ‘이 세상에서 도덕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대적’이라는 러셀의 진단은 언필칭 지성과 논리를 빙자하여 떠벌리는 악의에 찬 반그리스도교적인 선전 선동에 불과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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