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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같은 현대 직장인 가장의 실존을 열어 밝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1)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1. 7. 27.

벌레와 같은 현대 직장인 가장의 실존을 열어 밝힌,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1)

작년부터 진행 중엔 ‘코로나 19’로 인해 대인 활동보다는 언택트(Untact=Un+Contact)나 온택트(Ontact=On+Untact) 활동이 훨씬 더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지요.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 시간까지 회사에서 근무하던 가장이 재택근무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학교가 파한 후에 이어지는 과외 수업으로 밤 시간까지 공부하던 자녀들도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받는 경우도 흔한 풍경입니다.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집안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한 가족 간의 활동을 증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도래한 것입니다. 물론 집에서 일을 처리하거나 수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한데 모인 시간 전체를 가족 활동으로 안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직장이나 학교의 과외 활동 시간이나 출퇴근 시간만큼은 곧바로 가족들의 몫이 될 수 있겠지요. 가족들끼리 나눌 기회가 없었던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고, 함께 즐기지 못한 오락이나 여행도 감행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번 팬데믹 위기 환경을 절호의 기회로 바꾼 가정들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위기로 더 극한 난관에 처하게 된 가정들도 적지 않다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우선은 수입이 급감하여 경제적인 타격을 입어 난감해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특히 대면 업종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경제적인 충격으로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 중에 직업을 잃은 이들도 많습니다. 특히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던 근로자들 중에 이런 이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자녀들이 학교로 가지 않고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돌보는 일로 자기 직업에 정상적으로 시간을 드리지 못하는 근로자들도 많습니다. 특히 자녀를 둔 여성 근로자들의 고충이 더 심할 것입니다. 이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자녀들 점심 식사까지 준비해 주고 과외 시간까지 돌보아주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었으니까요.

 

이런 연유로 가족들이 얼굴을 맞대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은 현실이 도리어 가족 관계를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연휴 기간이나 휴가 기간을 맞아 가족들이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스러운 가족 대면 시기가 전개된 것이지요. 경제적인 압박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제 때 식사하는 것도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고, 달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외국 사례에서 접합니다. 심지어는 가족 간의 긴장과 감정적인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다가 결국 가정 폭력으로 연결되는 경우도 이전보다 더 많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팬데믹 훨씬 이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가정 폭력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오던 차였으니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예컨대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지)에서는 1/5의 여성들이 매년마다 배우자에게 폭행당하고, 유럽에서도 5%의 여성들이 그런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콩고 같은 나라의 경우입니다. 전자에서는 80%, 후자에서는 75%나 되는 여성들이 특정 상황(음식을 태우거나 아이들을 방치할 때)하에서는 자기들이 남편들에게 맞는 게 싸다고 말하거나 믿고 있으니까요.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 가운데서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새롭게 던진 화두는 “가족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우리가 이 질문을 하지 않은 지난 세월 동안, 우리나라 가족의 모습이 얼마나 현격한 변화를 겪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핵가족 시대도 지나간 듯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4인 이상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가 채 되지 않으니까요.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이젠 ‘한 부모 가정’이 수두룩합니다. 이혼한 후에 주로 여성이 자녀를 맡아 양육하는 가정입니다. 결혼한 후 자녀 없이 사는 가정도 있지만, 아예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으로 만족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더 낫다고 여기는 독신주의자들도 많지만,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아 1인 가구를 이루고 사는 청년들도 한둘이 아닙니다. 2021년 1분기 말 우리나라 전체 가구 수는 2315만 7385가구이고, 그중 4인 이상 가구 수가 454만 7368가구(19.6%)인 데 반해, 1인 가구 수는 913만 9287가구로 전체의 39.5%를 차지한 것에 주목해 보세요.

 

이렇게 핵가족이라는 기존 개념마저 해체되거나 축소되는 상황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묵상하기가 여간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 변화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요인들이 어떤 것들인지 확인해 두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낮아진 것에 대해서, 마우로 기옌이 “2030 축의 전환”(2030: How Today's Biggest Trends Will Collide and Reshape the Future of Everything)에서 지적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즉 낮은 출생률은 ‘현대 기술’(modern technology)의 비약적인 발전이라는 요소에다 '도시화, 여성의 교육 수준 향상과 사회 진출, 그리고 많은 자녀를 갖는 대신 적은 자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마음을 바꾼 부모’(urbanization, women’s education and labor force participation, and the growing preference for giving children greater opportunities in life as opposed to having a large number of them)라는 요인들이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라는 것이지요.

 

혹시 알고 계신지요? “199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을 비교하면 미국 성인들의 연평균 성관계 횟수가 1/9로 줄었다.”(American adults had sex about nine fewer times per year in the early 2010s compared to the late 1990s,)는 통계 말입니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성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마련해 준 온갖 오락거리로 인해 사람들이 성관계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중국의 출생률 감소가 중국 공산당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One-Child Policy)의 결과라는 주장이 오해라는 것 말입니다. 사실은 출생률 저하는 그 정책이 실시되기 전부터 진행 중이었고, 앞에서 언급한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사람들이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이, “여성의 발전이 중국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을 능가했다.”(women's progress outdid China's one-child policy.)라고 언급한 것이나, “경제발전이 최고의 피임”(Economic development is the best contraceptive.)이라는 구호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지요. 점점 더 많은 중국 여성들이 고등 교육을 받고 사회로 진출함에 따라, 자녀를 많이 낳을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가족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문학 작품들이 많이 있겠지만,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변신”처럼 충격적인 가족 관계의 실존적 현실을 그리고 있는 소설은 드물 것입니다. 그런 측면을 단지 이 소설의 외연에 불과하다고 보고, 다른 심오한 주제들로 이 작품의 행간을 독해하고 해석하려는 비평가들이 여럿 눈에 띕니다. 그렇지만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소설 내용을 간과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비평이 될 수 없습니다. 본문이 먼저 있고 난 후, 해석이나 비평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충실한 본문 관찰에 근거하지 않은 해석은 누가 시도한다 하더라도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자기의 색안경으로 덧칠한 비평일 뿐이니까요. 더구나 작가가 작품 속에서 명백하게 드러내거나 암시적으로 제시한 내용을 무시한 채, 작가의 전기나 작가의 해석에 너무 기대어 본문의 의미를 드려내려는 시도도 건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학 작품은 작가의 손을 벗어나는 순간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품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쓴 작품이라고 해서 그 작품의 내용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자기가 자녀를 낳았다고 해서 그 자녀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그 자녀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며 간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꼴불견입니다.

 

충실한 본문 관찰이란 독해 원리에 따라, 카프카의 대표작인 “변신”을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영국 시인인 W. H. 오든이,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가 작가로서 당대에 차지했던 입지에 비길만한 우리 시대의 작가를 거론한다면 첫 번째로 떠올릴 만한 인물이 카프카다.”라고 극찬한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번역은 “열린책들”(홍성광 역)의 것 참조.]

 

-“변신” 줄거리-

(1장)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자기가 흉측한 모습을 띤 갑충으로 변한 것을 발견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그 상황이 꿈이 아니었다. 그는 출장 다니면서 옷감을 파는 영업 사원이었다. 7시에 근무가 시작되는 직장에 가기 위해 늘 4시에 자명종 시계를 맞춰놓고 자곤 했지만, 그날은 벌써 6시 30분이나 되었다. 다음 기차 시간인 7시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평상시처럼 일찍 일어나지 않은 그가 염려되어 어머니가 방문을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6시 45분 된 것을 알려주었다. 그가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을 깨달은 아버지도 방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면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채근했다. 여동생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오빠 몸이 안 좋은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가 출장 다니면서 생긴 습관대로 밤에 모든 문을 걸어 잠가두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방문을 열어 볼 수가 없었다.

 

7시 15분이 되자 회사 지배인이 집으로 찾아왔다. 사환만 보내도 충분한 일을 이렇게 지배인이 직접 나타난 게 납득하기 힘들었다. 조그만 태만에도 바로 커다란 의심을 사는 이런 회사에 근무하는 신세가 된 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레고르가 몸이 좋지 않은가 보다며 변호해 주는 부모님에게 지배인은 자기들 같은 사업가들은 몸이 좀 불편해도 사업을 생각해서 두 눈 딱 감고 이겨낸다고 응수한다. 동시에 그레고르를 향해 파렴치한 빙식으로 회사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다면서, 오늘 아침에 사장이 그레고르가 직무에 태만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암시하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에게 맡긴 수금에 관한 일이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그레고르의 영업 실적이 형편없었다면서 그의 일자리가 철밥통이 아니라는 점도 일깨워 주었다.

 

그레고르는 당장 문을 열어 주겠다고 말하면서, 왜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지배인이 자기에게 퍼붓는 비난들은 근거 없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그의 말은 지배인에게 짐승의 소리로만 들릴 뿐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에 불과했다. 의사를 데려오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여동생이 나가고 열쇠 수리공을 불러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하녀가 밖으로 나간 다음, 그레고르는 입으로 열쇠를 깨물어 돌려 자물쇠를 열었다. 그의 모습을 본 지배인은 비명을 질렀고, 어머니는 두 손을 맞잡은 채 그레고르 쪽으로 걸어가다가 펼쳐진 치마 속에 쓰러져 버렸으며, 아버지는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는 꺼이꺼이 울어 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침착을 유지한 그레고르는 바로 옷을 입고 견본 모음집을 챙겨 떠나겠다고 말한다. 사장님께도 신세 지고 있고 부모님과 여동생을 돌보아야 하는 자기 처지로서는, 여행하는 게 고달프긴 하지만 판매 장애 요인을 없앤 이후에 더욱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한다. 사람들이 출장 영업 사원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으나, 지배인이 자기편을 들어줄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말을 조금 듣고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했다. 지배인이 이런 기분으로 돌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지배인에게 달려갈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으나, 그 덕분에 가느다란 다리들이 바닥 위에 확고하게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레고르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고 애를 쓰자, 그가 자기 가까이로 오는 것을 느낀 어머니가 두 팔을 내뻗으며 사람 살리라고 외쳐 댄다. 그러다가 식탁에 이른 어머니가 식탁 위에 올라앉는 통에 커피포트가 쓰러져 양탄자 위에 커피가 줄줄 흐리기 시작하자, 그레고르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 몇 번이나 허공을 덥석 물어 댔다. 그동안에 지배인은 계단을 뛰어 내려간 후 ‘어휴!’하고 소리를 내지른 후 종적을 감춰 버렸다. 혼란에 빠진 아버지는 사정없이 그레고르를 몰아 대면서 ‘쉿쉿’하는 소리를 질러댔다. 속히 그레고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아버지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그를 앞으로 몰아 댄 통에, 문 입구에서 그의 옆구리가 쏠려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게다가 문에 꽉 낀 그의 몸을 아버지가 힘껏 걷어차는 바람에 그는 피를 철철 흘리며 방 안으로 날아가 버리게 되었다. 아버지가 그 문을 닫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2장) 저녁 무렵 문 쪽으로 기어가던 그레고르는 문가에서 음식 냄새를 맡게 된다. 사발에 우유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 안에 흰 빵 조각이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평소에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우유에 머리를 박고 맛보았지만 제 맛이 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역겨운 기분만 들었다. 이제는 자기 가족이 조용히 생활하는 것을 눈치챈 것도 생경했지만, 자기 방문이 다 열려 있는데도 아무도 들어오려고 하지 않은 것에 어색함을 느낀다. 그렇지만 오직 여동생만이 하루에 두 번씩 자기 방으로 다가와 음식을 갖다 놓고 갔다가 나중에 자기가 먹은 후에 음식물들을 치웠다. 신선한 음식들은 맛이 없었지만 치즈나 야채나 소스는 잘 먹을 수 있었다.

 

자기가 변신한 사건이 있던 그 첫날 하녀가 당장 내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이젠 여동생이 어머니와 요리를 했다. 식구들이 별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아서 그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바로 그날에 아버지는 자기 집의 재정 상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동안은 그레고르가 벌어다 준 돈으로 편안히 지냈을 뿐 아니라, 그레고르는 심금을 울릴 정도로 바이올린을 잘 켜는 여동생을 내년에 음악 학교에 보내 주려고 계획하던 차였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터져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아버지는 옛날 재산의 일부가 남아 있고 이자도 조금씩 늘어 재산이 약간 불어나 있었던 데다가 그레고르가 가져온 돈도 차곡차곡 모아 두어 그 액수가 제법 된다고 일러 주었다. 그렇지만 그 돈은 비상금 정도였을 뿐이었으므로, 먹고살기 위한 돈은 앞으로 벌어야 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노인에 불과한 아버지나 천식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돈을 벌 수가 없어, 이제부터는 열일곱 살 난 여동생이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처음 2주간은 부모님이 그의 방에 들어와 볼 엄두조차 못 내었지만, 어머니가 불쌍한 아들을 보고 싶다며 소리를 질러 대다가 급기야 그와 대면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레고르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보다는 벽과 천장을 기어 다니거나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여동생이 그의 방에 있는 서랍장과 책상을 치워 주기로 마음먹는다. 그 일을 도와주러 엄마가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가 그만 그가 벽에 걸려 있는 그림 위에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양팔을 벌린 채 소파 위로 쓰러졌다. 그때 여동생이 자기를 향해 주먹을 치켜들고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로 소리치는 모습에 그는 놀란다. 어머니를 깨울 약물을 가지러 가는 여동생 뒤를 따라 옆방으로 갔다가, 여동생이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 깨뜨린 병 조각에 그레고르는 얼굴을 다친다. 잠시 후에 도착한 아버지는 은행 수위가 입는 것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화난 표정으로 그레고르를 향해 다가왔다. 아버지의 동작에 따라 이리저리 피하던 그레고르는 급기야 아버지가 던지기 시작한 사과의 표적이 된다. 마치 그에게 폭탄 세례를 퍼붓기로 작심한 듯이 아버지가 그에게 사과를 계속 던지던 중에 그의 등을 살짝 스치고 지나간 것도 있었지만, 사과 하나가 그의 등에 정통으로 박히고 만다. 그는 그 자리에 쭉 뻗어 버리고 만다. 그때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 나와 아버지를 향해 달려가서 아버지의 뒷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으면서 그레고르를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3장) 그 상처 때문에 그레고르는 회복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동안 아버지는 수위 노릇을 하고 어머니는 양장점에 넘길 고급 속옷을 바느질하고 여동생은 점원으로 취직했다. 여동생은 나중에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인지 속기와 불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각자의 일로 지친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필요 이상으로 돌보아줄 생각도 하지 못했고, 살림이 더 쪼들려서 하녀도 내보내야 했다. 심지어 어머니와 여동생의 장신구마저 팔아 치우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이사는 가지 않고 버텼다. 다른 친척이나 친지들 가운데 자기들만 유독 이런 불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과 완전한 절망감 때문이었다.

 

가족들은 더 이상 그레고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음식을 먹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자기 방 청소를 전담하는 여동생도 대충 하는 눈치였다. 한번은 어머니가 그의 방을 대청소하면서 물을 많이 쓰는 바람에 바닥에 물기가 있어 그레고르가 소파 위에 드러누워 있자, 여동생이 어머니에게 한바탕 해 대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파출부가 새로 왔기 때문에 그레고르가 소홀히 취급받지는 않게 되었다. 그 늙은 과부는 그레고르의 모습에 놀라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그를 말똥구리 취급하며 놀려 대기도 하고 의자를 집어 들어 그를 내려칠 의도를 비치며 겁을 주기도 했다.

 

그레고르는 이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의 방은 온갖 불필요한 물건들이 쌓이는 곳으로 변모했다. 심지어는 방 하나를 세 명의 하숙인에게 세를 내준 후로는 다른 방에 있던 물건들도 그의 방에 모이게 되었다. 파출부가 부엌에서 쓰는 재 담는 통과 쓰레기통도 그곳에 두었다. 그 물건들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던 그레고르는 죽도록 피곤하고 서글퍼졌다. 하숙인들이 거실에서 식사하고 식구들은 부엌에서 식사하는 상황이 전개되던 어느 날,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자 하숙인들이 거실에서 연주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 연주 소리에 이끌린 그레고르는 그만 자기 방에서 나와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여동생의 치맛자락을 당기려고 마음먹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연주의 진가를 알아줄 사람이 자기밖에 없기 때문에,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가지고 자기 방으로 좀 와 달라고 암시하려던 것이었다.

 

바로 그때 하숙인 중 한 명이 그레고르를 발견하고는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버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바이올린 연주가 중단되고 아버지는 그 하숙인들을 그들의 방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그들 중 한 명이 하숙집 생활이 이렇게 역겨우니 당장 집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방세도 내지 않고 손해 배상 청구를 할 생각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다른 두 명도 그렇게 하겠다며 합세했다. 아버지는 안락의자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더니 그곳에 쓰러져 버렸고, 그레고르는 몸이 탈진했는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여동생은 손으로 식탁을 치면서, 저런 괴물을 더 이상 오빠의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면서 이제는 자기들이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 처지에서 집에서마저 계속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서 그레고르를 내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동생은 그레고르가 몸을 돌이켜 자기 방으로 가려는 동작도 자기에게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그가 방 안에 들어서자마다 여동생이 문을 벼락같이 닫아 빗장을 걸고 완전히 잠그고 말았다. 그 와중에 그의 가느다란 다리들이 구부러지면서 꺾이기도 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꼼짝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레고르는 가족을 생각하면서 감동과 사랑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자기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여동생보다 자기가 더욱 단호했던 것이다. 새벽 세 시를 치는 소리가 들리자 창밖의 세상이 온통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에 고개가 아래로 꼬꾸라지면서 그레고르는 마지막 숨을 힘없게 쉬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파출부 할멈이 와서야 그가 죽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저기 누워 완전히 뒈졌어요!”라고 가족들에게 알리자,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한 잠자 씨는 “자아, 이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다.”라고 입을 연다. 그는 빼빼 말라 있었고 그의 몸은 납작한 모양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자기들 방에서 나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침 식사를 찾고 있던 하숙인들에게, 잠자 씨는 당장 자기 집에서 나가 줄 것을 요청한다. 당황해하던 그들은 잠자 씨의 태도가 결연한 것을 눈치챈 뒤 나가겠다며 모두 꽁무니를 뺀다. 잠자 씨 가족은 오늘 하루를 푹 쉬면서 산책하기로 결정하고는, 각각 결근계를 쓴다. 이제는 일을 그만두고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휴식하는 게 꼭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파출부 할멈이 옆방의 그 물체를 치우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주고 나가자, 잠자 씨는 그녀도 이제는 내보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도시의 근교로 나갔다. 좌석에 편히 등을 기댄 채 미래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장의 상황을 개선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이사를 가는데 뜻을 모은다. 이야기꽃이 피는 동안 딸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낀 잠자 씨 부부는 이젠 딸에게 착실한 신랑감을 구해 줄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쭉 펴자 잠자 씨 부부에게는 그 모습이 자기들의 새로운 꿈들과 멋진 계획들을 확인해 주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