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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아(我)-나를 알라

내면의 자산으로 풍요로운 인생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1. 7. 3.

내면의 자산으로 풍요로운 인생

이번 달 23일이 되면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올림픽 하면 제게는 “참여하고 잘 싸우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올림픽 정신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여기에서 잘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기량으로 정정당당하게 타인과 경쟁하는 것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렇듯 다른 사람과 경쟁하거나 비교하는 것이 항상 불건전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기량을 자신의 것과 비교하여 자신을 더욱 개발해가고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올림픽은 각 종목마다 세계적인 수준과 기록을 자랑하는 이들이 한데 모여 더욱 진전된 육체적, 정신적 능력 개발을 지향하는 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속해 있는 직장이나 공동체 속에서도 얼마든지 이러한 긍정적인 비교는 가능합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어 운동하고 건전한 생활 방식을 채택하여 건강을 관리하는 이를 보면, 나도 좀 더 건강 증진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잘못된 생활 방식을 고쳐야겠다는 마음이 움틉니다. 지혜롭고도 지속적으로 시간 관리를 잘하는 이를 보면, 나도 좀 더 효과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측면에서 성장해야겠다는 동기가 솟아납니다. 늘 밝고 명랑한 얼굴로 동료를 대하고 긍정적인 말과 태도로 일과를 이끌어가는 이를 보면, 나도 표정과 말과 응대하는 태도를 보다 성숙하게 바꾸어가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습니다. 항상 겸허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과업을 탁월하게 완수할 뿐 아니라 티 내지 않고 동료와 팀을 돕는 이를 보면, 나도 내면의 세계를 가꾸어 더욱 아름다운 인품을 간직한 자로 거듭나야겠다는 뜻을 품게 됩니다.

 

그렇지만 남과의 비교가 불건전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주로 다른 사람의 장점이나 성공 사례를 보고 나를 더욱 개발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보다는, 그 장점이나 성공 사례를 시기하거나 폄하하는 경우들입니다. 이런 상황은 우선 자아상이나 자기 신원이 개입되는 문제이지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은사나 됨됨이에 대해 우리에게 부여된 책임은 그것들을 최대한도로 개발하여 가장 가치 있는 영역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각자와 다른 능력이나 은사나 됨됨이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설령 내 것과 동일한 특정 능력이나 은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개인적인 특성 면에서는 반드시 서로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개인적인 특성들의 총합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유일하고 특이한 존재인 것이지요. 그런데 나의 다양한 면모를 온전히 개발하여 가장 가치 있게 활용하는 게 내 인생의 과업인 줄 알면서도, 왜 남에 대한 시기와 폄하의 덫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일까요?

 

-‘내 안목’이 만드는 지옥 같은 세상-

아마도 “지위 경쟁” 혹은 “지위 불안”이라는 용어들 속에 내재된 ‘세상의 안목’이 한몫할 것입니다. 이 용어들 속의 ‘지위’란 ‘세상의 안목’으로 판가름 나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더욱 적실한 이유는 세상이 그렇게 볼 것이라는 ‘내 안목’ 때문입니다. 자기가 특정 영역에서 최선을 경주하여 뛰어난 업적을 거두었어도, ‘세상의 안목’이 그 동일한 영역에서 자기보다 더 탁월한 업적을 달성한 타인을 더 높이 평가한다고 ‘내 마음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지요. 마크 맨슨이 소개한 적 있는 한 인물을 주목해 보세요.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인 메가데스(Megadeth)의 기타리스트인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입니다. 그는 2,500만 장의 앨범 판매라는 뛰어난 음악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지는 최근 우리나라 뉴스 한 가지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BTS 앨범은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 공인 음악차트 ‘가온차트’ (2021년) 3월 앨범 차트 기준으로 올해 3월까지 누적 판매량 총 2032만 9305장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 가요계 역사상 최다 음반 누적 판매량이다. 종전까지 가수 신승훈(1700만 장)이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신동아”)

 

앨범 판매량으로 보자면, 현재 전 세계 가요계 정상에 우뚝 서 있는 BTS의 업적과 비견되는 성과를 달성했으면서도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쫓아낸 다른 헤비메탈 밴드인 메탈리카(Metallica)를 의식하며 평생 불행하게 살다 갔다고 하지요. 그 밴드가 자기를 배제한 것을 영원히 후회하게 해 주겠다("this old band would forever regret their decision")는 그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그 밴드는 무려 1억 8,000만 장이나 되는 앨범을 판매했으니까요. 2003년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밝힌 대로, 머스테인은 자기를 여전히 실패자로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a tearful Mustaine admitted that he couldn't help but still consider himself a failure.”) 자기가 이룬 그 모든 성취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으로는 자기를 항상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놈으로만 인식했으니까요. (“Despite all that he had accomplished, in his mind he would always be the guy who got kicked out of Metallica.”) 결국 머스테인을 지옥 가운데 살게 한 것은 타인과의 비교나 그것에 대한 세상의 평가라기보다는, 이런 상황에 대한 자신의 왜곡된 안목과 기준이었습니다. 그의 기준은 “메탈리카보다 더 인기 있고 더 성공해야 한다”(Be more popular and successful than Metallica)는 것이었으니까요.

 

-서로 다른 차원의 것들을 비교하는 어리석음-

이처럼 동일한 영역에서 자기가 주목하는 특정 기준으로 타인들을 시기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것들을 서로 견주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예컨대 수학 잘하는 능력 같은 지적 능력과 달리기 잘하는 능력 같은 신체적 능력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이 경우에 전자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후자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시기하거나 폄하하는 게 옳거나 지혜로울까요?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세상에서 별로 주목하지 않는 재능이라면 비교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겠지만, 수학이나 달리기와 같이 대학 입시나 운동 영역에서 효용성이 큰 능력으로 평가받는 능력은 이런 식으로 비교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이런 경우에 더 심각한 사례도 있지요. 바로 내면적인 자질과 외면적인 성과를 서로 비교하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문학에 대한 심오한 지식과 재산 ‘49억’(우리나라 성인이 부자로 생각하는 올해 기준)을 보유한 재력을 비교하거나, 일상 속에서 명랑하고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자세와 대기업 임원직이라는 지위를 비교하는 경우입니다. 혹시 이런 비교가 낯설게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다음 시 한 편을 읽어보세요. 미국 작가인 커트 보니것이 쓴 “조 헬러”(Joe Heller)입니다.

 

-조 헬러-

 

맹세코, 실화이다.

지금은 작고한,

저명하고 익살맞은 작가였던 조지프 헬러와

난 쉘터 아일랜드에 있는

한 억만장자가 배설한 파티에 참석했어.

 

내가 말했지. “조, 소감이 어때

우리 파티 주인이 어제에만

그대의 소설 ‘캐치-22’가

모든 시기를 통틀어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나니 말이야.”

그런데 조는 대답했어. “난 그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어떤 소중한 것을 갖고 있어.”

내가 물었지. “조, 도대체 그게 뭔데?”

조가 대답했어. “내가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지식이야.”

꽤 멋진 답변이지! 편히 잠들기를!

(-Joe Heller-

by Kurt Vonnegut

 

True story, Word of Honor:

Joseph Heller, an important and funny writer

now dead,

and I were at a party given by a billionaire

on Shelter Island.

 

I said, “Joe, how does it make you feel

to know that our host only yesterday

may have made more money

than your novel ‘Catch-22’

has earned in its entire history?”

And Joe said, “I’ve got something he can never have.”

And I said, “What on earth could that be, Joe?”

And Joe said, “The knowledge that I’ve got enough.”

Not bad! Rest in peace!)

 

조 헬러 혹은 조지프 헬러(1923-1999)는 “캐치-22”(Catch-22)라는 걸작 반전 소설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작가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이 소설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파격적 구성과 냉전 시기의 현실에 대한 풍자 어법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유명세로 인해 작품명인 'Catch-22'가 영어 사전에 등재되기까지 했습니다. “본질적으로 모순적인 일련의 규칙들이나 조건들로 인해 바람직한 결과나 해결책을 낳기 불가능한 상황”(A situation in which a desired outcome or solution is impossible to attain because of a set of inherently contradictory rules or conditions)을 가리키지요. 예컨대 회사에서는 경력이 있는 지원자를 뽑으려고 하는데, 그 경력을 쌓으려면 일부터 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작중에서 'Catch-22'의 상황은 이러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 서쪽 지중해에 있는 가상의 섬 '피아노사'에 주둔한 공군부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지요. 전투기 조종사와 폭탄을 투하하는 폭격수들은 원래 규정에 따라 출격을 50회만 하게 되면 미국으로 귀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지휘관이 부대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 그 출격 회수를 60회로 올렸다가 다시 70회로 자꾸 상향 조정함으로써 아무도 귀국하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주인공인 요사리언 대위는 스웨덴으로 도주하게 되지요. 이렇게 전투기 조종사들과 폭격수들이 처한 진퇴양난의 상황이 바로 'Catch-22'입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만 1,000만 부가 팔렸습니다.

 

이 시 속에서 커트 보니것이 주목했던 것은 억만장자의 하루 수입이라는 엄청난 외면적 성과였습니다. 그것을 지적하면서 헬러의 소감을 물어본 것까지는 괜찮았겠지만, 그것과 헬러의 대표작인 “캐치-22”의 수입과 연관 지은 것은 그가 보유하고 있는 ‘충분한 지식’이라는 내면적인 자질의 가치를 간과한 행태였지요. 이런 어리석음을 미국 작가 앤 라모트가 이미 지적했습니다. “당신의 내면과 다른 사람의 외면을 비교하지 말라.”(Never compare your insides to everyone else's outsides.)​ 오로지 타인의 외면적인 재산이나 지위나 명예에만 눈멀고 내 내면적인 지식이나 상상력이나 체험들의 가치를 백안시하는 순간, 나는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실상이 없는 상징적 대상에 불과한 재물, 자리 및 자랑만을 붙잡으려 하고 내 자아를 이루고 있는 본질적 요소들을 내팽개치는 순간, 나는 어둠의 세계로 직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기와 폄하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외면을 시기하는 순간 내 외면뿐 아니라 내 내면까지도 폄하하는 사태가 벌어지지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내면적인 가치를 망각할 때 온 세상은 지옥입니다. 시기와 폄하가 교차하는 내 마음속이 바로 지옥이니까요.

 

-내면의 양식으로 풍요로운 인생-

조지프 헬러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 외면적인 재산이나 지위나 명예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잘 압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본질을 이루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자성의 “채근담” 한 구절이 밝히 드러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내가 고귀한 신분일 때 다른 사람이 나를 받드는 것은 이 높은 관과 큰 띠를 받든다는 것이요, 내가 미천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이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내 본모습을 떠받드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찌 기뻐할 것이며, 내 본모습을 업신여기는 것도 아닌데 내가 어찌 화를 내겠는가?"(前 170)

 

사정이 이러한데도 얼마나 우리 마음이 외면적인 것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지 모릅니다. 그것들로 타인을 평가하여 시기와 폄하라는 극단을 오가고, 그 여파로 인해 자기의 본질적인 내적 자질들로 자만하거나 비굴해지는 극단을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얼마나 잦은지요. 세상의 안목에 초연하고 특정 기준에 주목하는 내 안목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절실한 이유입니다. 홍자성이 지적한 ‘내 본모습’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감사함으로 누리며, 그것을 보다 성숙한 단계로 개발하여 가치 있게 활용해 가는 데 진력해야 합니다.

 

조지프 헬러는 자기의 내면적인 본모습 중 지적인 자산의 가치에 주목했지만, 우리 본모습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성격 특성을 논의할 때 제시되는 대표적인 다섯 가지 특성['빅 파이브'<big 5>] 중 네 가지도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는 내면적인 자산이 됩니다. 그 네 가지가 바로 개방성(Open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Extraversion), 친화성(Agreeableness)이고, 여기에다 신경성(Neuroticism)까지 합쳐서 ‘빅 파이브’를 이룹니다. 이 특성들의 첫 철자를 모으면 ‘OCEAN’(대양)이 되지요. 하노 벡과 일로이스 프란츠에 따르면, 개방성이란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뜻이고, 성실성은 신뢰할 만하고 꼼꼼하다는 뜻입니다. 외향성은 사교적이고 다정하며 낙관적이라는 뜻이고, 친화성은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겸손하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한편 신경성은 겁이 많고 쉽게 긴장하고 예민하다는 뜻이지요. 한 발 더 나아가 성격과는 다른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하고 연단된 갖가지 성품도 소중한 내면적 자산입니다, 즉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로 대변되는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가 바로 그러하지요.

 

우리 본모습의 다양한 면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파이 이야기”(Life of Pi)를 쓴 캐나다 작가인 얀 마텔이 2012년에 출간한 흥미로운 책 한 권을 참조해 보겠습니다. 그 책 제목은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101 Letters to a Prime Minister)입니다. 마텔이 2007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당시 캐나다 수상이었던 스티븐 하퍼에게 격주로 보낸 편지 101통을 묶은 책이지요. 그는 그 책 서문에서 자기를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수상이 어떤 책을 읽는지가 자기에게는 무척 중요하다고 전제합니다. 그가 읽기로 선택한 책으로써 그의 생각과 행동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스티븐 하퍼 수상이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같은 러시아 소설, 스트린드베리의 “줄리 아씨”와 같은 스칸디나비아 희곡, 카프카의 “변신”과 같은 독일 소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프라이의 “문학의 구조와 상상력”과 같은 철학적 탐구서를 전혀 읽지 않았다면, “그의 마음의 진가는 대체 무엇이겠는가?”(what is his mind made of?)라고 질문합니다. 연이어 다음과 같이 도전합니다. “그가 인간 조건에 대한 자기의 통찰력을 어떻게 얻었겠는가? 그의 감수성을 구축하는데 어떤 자료들이 활용되었겠는가? 그의 상상의 색깔과 무늬, 그리고 그것의 시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는 무엇이겠는가?”(How did he get his insights into the human condition? What materials went into the building of his sensibility? What is the colour, the pattern, the rhyme and reason of his imagination?)

 

이런 질문을 아무에게나 던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텔이 주장한 대로 어떤 시민이 공직에 취임하게 된다면 유권자들이 그(녀)의 재산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듯이, 그(녀)가 가진 “상상력이라는 자산”(imaginative assets)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은 알 권리가 있을 것입니다. 수상처럼 자기들을 지배하는 사람이 무엇을 어떤 수준으로 상상하는지 아는 것이 유권자들을 위하는 길이 된다는 것이지요. 자칫 잘못하다간 그 수상의 꿈이 유권자들의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his dreams may become my nightmares). 이러한 맥락에서 마텔이 지도자들에게 외치는 권고를 한번 묵상해 보세요.

 

"소설과 희곡과 시는 인간과 세계와 삶을 탐구하는 가공할 만한 도구이다. 지도자라면 인간과 세계와 삶에 대해 당연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성공한 지도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말한다. ‘효과적으로 이끌고 싶다면, 책을 광범위하게 읽어야 합니다!'라고." (The novel, the play, the poem, these are formidable tools to explore people, the world, life. And a leader must know about people, the world, life. And so to citizens who aspire to be successful leaders, I say: if you want to lead effectively, you must read widely.)

 

이 서문을 읽으면서 많은 정치, 사회, 종교 지도자들이 제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마텔의 도전과 권고를 그들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더구나 내년도 대선과 지방선거를 위해 국민을 대표한다면서 이미 등장한 인물들뿐 아니라 장차 쏟아져 나올 그 수많은 후보들에게 마텔의 도전적인 질문들을 던졌을 때, 그들 중에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을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이것이 어찌 국민들을 이끄는 지도자들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인간과 세계와 삶에 대해서 알아야 할 사람은 지도자들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깨닫고 누려야 할 지식이요, 체험입니다. 마텔이 지도자들의 자격으로 구체적으로 제시한,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 감수성 및 상상력과 같은 내면적인 자질들도 우리 모두가 추구하고 누려야 할 내면적인 자산입니다. 이러한 인문학적인 자산에다 다양한 지식, 다채로운 인격적 특성 및 성숙한 성품과 같은 내면적인 자산까지 더해진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다 풍요로울까요? 헛된 것을 추구하는 세상의 안목과 특정 기준에 주목하는 왜곡된 자신의 시각을 떨쳐 버리고, 이러한 내면적인 자산을 한껏 누리며 산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넉넉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