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능력치의 최대한’으로 자족하자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있다. 운명이 아닌 소명의 길이다. 시간이란 테스트를 통과한 자기 인식이 가리키는, 자기만 가야 하는 진로 말이다. 흔히 자기 능력이나 은사를 통해 그런 소명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기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소원이나 열망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만일 자기 직업이 그런 소명과 직결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그야말로 ‘vocation’(직업)이 ‘calling’(소명)이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 임윤찬처럼, 평생 피아노나 바이올린 연주하는 것이 꿈인 음악가들은 얼마나 행운아들인가. 일전에 그 책을 읽은 정지우 작가와 같이, 글쓰기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문필가들도 얼마나 복에 겨운 사람들인가. 그렇지만 이 세상에는 직업이 생계를 마련하는 경제적인 수단일 뿐인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들 중에는 나름대로 다른 소명을 꿈꾸거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따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가 나중에 적절한 시기가 되면, 직장을 박차고 나와 그 소명을 성취하는 여정으로 발을 내딛기도 한다. 그리고 직장인 중에는 특별한 소명의식 없이 근무하다가, 은퇴하게 되면 여가를 즐기는 것만으로 여생을 보내기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확연한 것은 자신의 됨됨이와 재능과 꿈으로 드러나는 자신만의 소명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인생을 영위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는 점이다.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2002)의 말을 들어보라. 그녀는 사람이란 누구나 새로운 가능성을 띠고 이 세상에 태어나기에, 인생극장이라는 이 세계와 인생에서 각자의 역할이 맡겨진다고 보았다. 수십 억의 인구가 있기에, 수십 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역할은 우리 각자만 감당할 수 있을 뿐, 다른 누구도 대신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만의 역할을 잘 인식하고 수행해 가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한발 더 나아가 린저는, 자신만의 고유한 인품과 역할을 갖추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고,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축복’이라면서,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진정한 죄’라고 설파한다(“고독한 당신을 위하여”). 우리 각자에게 허락된 가능성과 역할이 세상 안목으로 초라해 보여도 상관없다는 점도 덧붙이면서, 린저는 자신의 작품인 “완전한 행복”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사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이 완전히 겸허한 가운데 스스로 작고 충실하고 초라한 하느님의 심부름꾼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할 때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가는 거의 믿지 못할 정도입니다.” 칭송받아 마땅한, 현명한 백발노인다운 말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 현실을 좀 돌아보자. 최근 전국 곳곳에서 대학교수와 학생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오늘은 연세대 교수 177명이 ‘당신은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면서, 구약성서 중 미가 2장 1절과 3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망할 것들! 권력이나 쥐었다고 자리에 들면 못된 일만 꾸몄다가 아침 밝기가 무섭게 해치우고 마는 이 악당들아, (...)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 이제 이런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이어서 갖가지 참사와 사건과 정책을 통해 드러난 윤석열 정권의 불의와 무능과 난맥상을 하나하나 짚으며, ‘국민 주권’의 외침이 거리를 메워 탄핵의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한다. 그저께(19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경북대 교수/연구자 179명도 이제 문제의 차원이 달라졌다며,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말을 듣지도, 물러나지도 않는다면 우리가 끌어내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다.”라고 선포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오늘 야당 한곳에서는 대통령 탄핵 사유 15가지를 적시하고 탄핵소추안 초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기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대구, 경북 지역에 있는 대학과 대학생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을 뿐 아니라, 해고를 명하고 끌어내리겠다는 형국이다. 이제는 연세대 교수들이 발한 하나님의 재앙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즉각 하야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후의 봉사가 된 시점이다. 그의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반면교사다. 검사로서 그가 보여준 오만방자하고 선을 넘는 면모는 그 폐해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신분으로 그가 취한 온갖 무도하고 기이한 언행은 그 폐해의 범위와 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적인 불이익을 초래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국민들의 심령에 끼친 악영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만일 그가 검사의 삶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바로 인식했다면, 그 직위에서 최선을 경주하고 멈추는 게 옳았다. 지금은 깨달았을지 모르지만, 거기까지가 자신의 분수였다. ‘9수’까지나 해서 도달한 곳이 아닌가. 그런데 자신의 가능성과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탐욕을 발한 결과, 오늘날의 정치적 파국을 맞게 되었다. 일찌감치 자신은 대통령이 될 자격과 능력과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했어야 했다. 우리도 자신의 분수와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가능성과 역할을 바로 붙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1960년생이다. 자기 분수를 모른 채 과욕 속에 표류하는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 인생 여정과 대비되는 삶을 빚어낸 1960년생 한 인물이 떠오른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다.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로서 2011년 1월 6일부터 35미터 85호 크레인 위에서 309일간 농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국 각지에서 한진중공업 앞으로 달려온 ‘희망버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딸이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보내주지 않는 아버지를 떠나 열여덟 살에 홀로서기를 시작한 그녀는 온갖 잡일을 거쳐, 1981년 7월 1일 한진중공업 용접공으로 취직이 된다.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기 며칠 전이었다. 5천 명이나 되는 조선소 현장직 직원 중 유일한 비혼 여성이었던 그녀는, 대학 진학을 꿈꾸며 야학에 다니다가 “전태일 평전”(1983)을 만나게 된다. 5년 동안 일한 후에 노조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자, 회사의 눈총을 받던 중에 1986년 7월 14일에 해고당한다. 이때부터 그녀의 본격적인 고난이 시작된다. 이런 그녀와 인터뷰한 은유 작가가,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끝까지 싸우게 하는지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사실상 편하게 사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다. 싸우는 대신 회사에서 제시한, 매달 200만 원 받고 사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면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괴로울 것이기에, 노동운동가로 사는 길을 내내 택했다며 이렇게 고백한다. 동료들을 위해 싸우는 그 길이 좋은 이유는, “제일 큰 게 떳떳함이죠. 어디에도 누구한테도 굴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라고 말이다(은유, “크게 그린 사람”).
자신에게 돈을 제시하는 회사 측을 향해, “나는 돈도 필요 없다. 하루를 일하더라도 내 발로 걸어 나오고 싶은 게 내 꿈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그녀의 기개가 경이롭고 자랑스럽다. 자신의 복직이 아닌, 동료들의 정리해고 철회만을 요구 조건으로 내세우며 35미터 크레인에 올라갔던 것도, 그녀가 돈보다 더 높은 가치에 눈을 두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후회 없는 싸움을 전개하는 중에, 그녀는 새로운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나는 크레인에 있으면 오감이 열리는 경험, 내 능력치의 최대한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접공으로서 현장 동료들을 보살피며 공생공락(共生共樂)하는 소명을 최대한으로 누리는 경지에 도달한 그녀가 부럽다. 그런 지복을 누린 그녀가 과연 동갑내기 윤 대통령의 도를 넘은 삶을 부러워하거나 넘보기라도 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결국 꿈에도 그리던 복직이 이루어진 것은 그녀 인생의 화룡점정(畫龍點睛)이었을 테다. 60세 정년 전까지 복직되지는 않았지만, 해고된 지 37년 만인 2022년 2월 25일에 명예복직되어 바로 그날 퇴직하게 되었으니까. 그 이틀 전 그녀가 트위터에 자축 인사로 올린 글을 보라, “수천 번을 마음속으로 외쳤던 말, ‘저 복직해요!’” 그녀의 꿈이 성취된 날이었다(은유, “크게 그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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