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섭리
언젠가 영어 성경으로 빌레몬서를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19절 때문이었다.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I, Paul, am writing this with my own hand, I will repay it (not to mention to you that you owe to me even your own self as well).)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오네시모를 다시 돌려보내면서,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부탁하는 문맥이다. 오네시모가 그에게 빚진 것이 있으면 자기가 갚겠다면서 한 말이다. 그러면서 슬쩍 한 마디 덧붙인다. "빌레몬, 너도 내게 빚졌다는 걸 알고 있지?"라고 말이다.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진 게 도대체 무엇일까? 영어 성경이 이렇게 열어 밝힌다. “you owe to me even your own self” 빌레몬이 ‘자기 자신’(your own self)을 바울에게 빚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장이 아닌 진실이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해 그가 영생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나도 ‘나 자신’을 빚진 은인이 한 분 떠오른다. K 목사님이다. 1979년 10월 어느 날 대학 캠퍼스에서 1년 상급생인 K 형님을 만났다. 형님의 인도로 성경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더 깊이 배울 수 있었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비밀도 확연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에 덧붙여 나 자신의 참모습도 더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약 6년간 캠퍼스에서 공부하고 훈련받을 기회가 열렸다. 그 후에 교육 전문인 자격을 갖춘 다음, 동남아시아에 있는 한 나라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곳 회교도들의 학문적인 깊은 필요를 채우는 과정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만일 1979년 그날 형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이후에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지 알 길이 없다. 다른 고교 동창생처럼 운동권 선배를 만나 가열차게 학생 운동에 매진하다가 구속되기도 하고, 나중에 정계에 진출했을 수도 있겠다. 혹은 다른 대학 동창생처럼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하여 공부하다가 교수직으로 빠질 수도 있었겠다. 혹은 같은 과 동기생이나 K 형님처럼 신학대학원으로 진학해서 목회자가 될 수도 있었겠다. 그렇지만 이런 경력들은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에 불과했다. 과거의 한 가지 만남이 이러한 변화들을 일구어 낸다고 한다면, 다른 갖가지 선행 요인들이 빚어 낼 시나리오들은 얼마나 많을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가 여러 가지 우연한 일이 겹친 결과였다. 내 어머님은 아버님의 두 번째 부인이셨다. 아버님의 첫째 부인이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병사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그분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나는 태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님이 어머님과 재혼하지 않으셨다면, 내 존재는 불가능했다. 게다가 나는 집안에서 다섯 번째 아들이다. 만일 형님 두 분이 한국전쟁 난리 통에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태어날 기회가 있었을지 알 길이 없다. 유약하게 태어나 유아기 때 발생한 심한 배탈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나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때 아이가 배탈로 죽는 경우는 흔한 일이었기에, 나는 두 형님처럼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잊혀졌을 것이다.
우연한 일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한다. 브라이언 클라스(Brian Klass)가 쓴 "어떤 일은 그냥 벌어진다"(Fluke: Chance, Chaos, and Why Everything We Do Matters)에 보면, 제2차세계대전 말 미국의 원자폭탄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정황이 소개된다. 원래 나가사키는 원폭 투하 대상에서 거론되지도 않은 도시였다. 그렇지만 그곳은 원래 투하 예정지인 교토를 대신한 희생양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토는 옛 수도이고 새로운 군수 공장이 들어서서, 비행기 엔진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거점 지역이었다. 그곳을 폭격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기에 첫 번째 폭탄의 투하 장소로 이미 확정된 터였다. 그런데 어떻게 교토가 살아남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그 엄청난 재앙을 안아야 했을까? H. L. 스팀슨이라는 미국인 한 명의 로비 때문이었다. 그는 1926년 10월 30일에 아내와 함께 교토를 방문하면서, 그 도시의 아름다운 풍광과 유서 깊은 사찰들의 매력에 푹 빠진 경험이 있던 자였다. 그가 이 중대한 전시에 육군 장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교토 원폭 투하를 거듭 반대하다가 벽에 부딪히자, 트루먼 대통령에게 두 번씩이나 호소했다. 그 결과 교토는 그 화를 면하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가 그 핵폭발의 재앙을 뒤집어쓰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가사키도 원래 투하 예정지[히로시마, 요코하마, 고쿠라]가 아니었다가, 나중에 마지막 후보지 목록[히로시마,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에 마지막 위치에 이름이 올려진 터였다. 그런데 8월 9일 투하 시점이 되자 고쿠라 상공에 구름이 잔뜩 덮여 있어, 폭격기가 할 수 없이 대체한 곳이 바로 나가사키였다. 만일 당시의 폭격기가 조금 늦게 출동했거나, 고쿠라 상공에 구름이 끼지 않았다면, 나가사키의 운명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수십 년 전에 한 부부가 우연하게 교토를 방문한 것이 그곳을 살렸고, 우연하게 고쿠라 상공에 낀 구름이 그 도시를 살린 것이다. 현재까지도 일본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떠한 큰 사고에서 벗어났을 때 '고쿠라의 행운'이라고 부른다.
인생사에서 왕왕 전개되는 이러한 우연들을 다루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브라이언 클라스가 떠올린 생각처럼, 이 세상의 모든 상황이 "길들일 수 없는 우주"가 던져놓은 "우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난잡하고 불확실한 "혼돈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 우연한 상황들을 현재 우리가 가진 지각과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필연적 섭리로 수용하는 것이다. 즉 우연하게 보이는 일들 배후에 작동하는 '지혜롭고 의도적인 하나님의 주권'(God's wise and purposeful sovereignty)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지는 우리 모두의 자유다. 다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전자의 경우, 혼돈 속에서 우리가 찾은 '새로운 의미'라는 게 과연 어떤 성격을 띤 것일까? 이 전자의 시각으로는, 혼돈한 상황만 우연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우연의 소산이 아닌가. 그런데 우연의 산물이 우연한 사실을 파악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내게는 말장난처럼 들린다. 이에 반해 후자의 경우는 이 우주 속에 이미 의미가 존재한다고 본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는 우연처럼 보이는 온갖 사실들 배후에, 우리가 현재 인식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선하고 지혜로운 목적과 의도가 있다고 신뢰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C. S. 루이스가 다음 글 속에 개진한 입장이다. “만약 우주 전체에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우주에 빛이 없고, 따라서 눈을 가진 생명체도 없다면, 우리는 어둡다는 것을 결코 알 수 없었을 것과 같은 이치다. 어둡다는 말도 무의미했을 것이다.”[If the whole universe has no meaning, we should never have found out that it has no meaning: just as, if there were no light in the universe and therefore no creatures with eyes, we should never know it was dark. Dark would be without meaning.("Mere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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