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초록 불빛에 자신을 던진 로맨티시스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
우리나라가 7월 2일 자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되었습니다. 외교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세계 10위 경제 규모, 서울 녹색미래(P4G) 정상회의 개최, G7 정상회의 참석과 같은 사례에서 드러난 세계적인 경제 수준과 국제적 위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합니다. 이미 국제 사회에서 여러 가지 지표를 통해 선진국으로 분류되던 우리나라의 위상을 공식적인 국제 기관을 통해 인정받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국제 사회에서 그 위상에 걸맞은 국제적 역할과 책임을 감당해 가는 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개발도상국을 돕는 측면에서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관계를 원활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감당하는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의미 있게 기여할 미래를 기대합니다. 이에 덧붙여 국내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선진국다운 면모들을 혁신적으로 제고해 가기를 고대합니다.
김누리 교수가 논의한 것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그 경이로운 경제 수준이나 세계가 칭송하는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OECD 회원국 중에서 15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년 자살 비율은 세계 평균의 서너 배가 되는데, 그 주된 원인은 ‘살인적인 경쟁’ 때문입니다. 심지어 청소년 3명 중 1명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노인 자살 비율은 어떤 통계에 비추어 볼 때 세계 평균의 10배가 되기도 하는데, 그 일차 원인은 ‘노인 빈곤’입니다. 노인 빈곤율이 무려 44퍼센트나 되니까요(2016년). 덴마크가 1.4퍼센트이고 네덜란드가 3퍼센트에 불과한 점을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 노인들이 얼마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사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먼저 자산 불평등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상위 1퍼센트가 전체 자산 중 약 26퍼센트를, 상위 10퍼센트가 6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하위 50퍼센트[국민 절반]가 2퍼센트만 가지고 있지요. 부동산 불평등은 더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상위 1퍼센트가 55퍼센트를, 상위 10퍼센트가 97.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지요. 이 말은 국민 중 90퍼센트가 2퍼센트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수치를 참고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평등은 우리가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입니다. 경제학자 정태인에 따르면, 가계와 정부의 순자산을 국민순소득으로 나눈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베타 지수’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의 불평등 수준은 ‘자본주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합니다. 이 베타 지수가 높다는 말은 자산소득이 노동소득에 비해 더 급속하게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전반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 부동산으로 인한 임대 수익, 다른 자산을 활용한 이자 및 배당 수익이 축적되고 세습됨으로써, 노동소득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노동을 영위하는 현장마저도 ‘헬조선’을 방불케 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노동하고 있습니다. 줄잡아 독일인이 1년 동안 1,300시간을 일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2,000-2,300시간을 일합니다. 즉 독일인보다 5개월 정도 더 일하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은 성인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인적인 경쟁 교육 속에 놓인 우리나라 아이들의 상황도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온갖 과외에 시달리며 사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우울증이 세계 최고이니까요.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사망률, 혹은 ‘기업 살인율’[영국식 표현]도 세계 최고입니다. 1994년부터 2016년까지 단 두 번을 제외하고 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현재 우리의 일상생활이 과거보다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진 것은 맞지만, 이렇게 불평등하고 위태로운 사회가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누리 교수는 그 이유로서 우선 공동체의 해체를 지적합니다. 어려운 일이나 중요한 일이 발생할 때 서로 도와주는 사회적 관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OECD 사회관계지수 조사에서 최하위라는 것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사회가 일종의 세습 자본주의로 고착되는 상황에 주목합니다. 이제는 재물과 권력뿐 아니라 기회까지도 독점하는 승자독식 사회가 된 것이지요. 여기에다 학벌 계급화 현상까지 덧붙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기존의 권력 집단이 와해되어 유례없는 평등지향적 사회가 탄생했지만, 그 계급 없는 평등의 공간을 학벌 계급이라는 것이 뒤집고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한 형국이지요.
김누리 교수는 연이어 이런 ‘헬조선’을 야기한 근본 요인을 지적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입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절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자유시장 경제’(free market economy)를 지지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 우리나라 국회의원 300명 중에 290명 정도가 인간의 자유를 신장시키기보다는 기업과 시장과 자본의 자유를 극대화하기에 더 몰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세계의 보편적인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통해 판단”한다면, 수구와 보수 진영에 해당하는 정당들이 마치 보수와 진보인 양 행세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 지형이지요(본 블로그 중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로 승화된,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과 ‘1984’<1> 참조). 이런 상황은 독일 연방회의(2013-2017)와 극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당시 독일 연방의회 의원 631명 중에 자유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자유민주당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정당 지지율 5퍼센트를 넘기지 못해[4.8퍼센트에 그침] 의회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를 기조로 삼은 기독교민주당[기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 소속 정당], ‘사회(민주)주의적 시장경제’(socialistic market economy)를 주장하는 사회민주당[사민당], ‘생태적 시장경제’(ecological market economy)를 지지하는 녹색당 및 좌파 정책을 천명하는 좌파당이 연방 의회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사회적 시장경제’와 ‘사회(민주)주의적 시장경제’는 서로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활용하는 공통점은 갖고 있지만, 전자는 시장경제의 폐해인 실업과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데 비해, 후자는 존엄한 인간됨의 기본 조건인 교육, 의료, 주거 영역은 시장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 교수의 요지는 분명합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신장하는 데 최우선을 두는 정당들이 만든 법안과 기업과 시장과 자본의 자유를 극대화하기에 몰두하는 정당들이 만든 법안들이 서로 얼마나 현격한 차이를 보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각 법안들이 바로 독일이라는 선진국과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과거와 현재의 사회적 현실을 낳은 모태가 되었습니다. 줄잡아서 의료 분야를 제외하고, 교육, 주거, 직업 및 다른 불평등 영역들 각각에서 혁신적인 법안들이 창출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사회가 얼마나 참혹한 대가를 더 치러야 할지 추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산재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던 영국의 예를 참고해 보겠습니다. 그 나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업에 대한 처벌 수위를 혁신적으로 높이는 ‘기업살인법’[산업재해법을 개명한 것]을 제정함으로써, 산재 사망률을 극적으로 떨어뜨렸습니다.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산재 사망률을 자랑하고 있지요. 이러한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국회는 지난 1월 8일에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아직까지도 신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에 경도되어 있는 우리나라 국회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소박한 오늘의 현실을 누리면서 풍성한 내일의 소망을 꿈꾸는 데 주된 자원이 되는 교육과 주거와 직업의 문제가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룰로 일관되는 사회가 어떻게 건전하게 지속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선진국 진입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오랫동안 꿈꿔 오던 목표였습니다. 이 목표를 이루고서도 물질지상주의가 몰아가는 살인적인 경쟁 체제와 모멸적인 갑질 문화 속에 내몰려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아이러니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고대한 사회가 어린이도, 청년도, 노인도 어느 계층도 인간다운 삶의 여유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라니 허망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번 글에서는 개인적인 혹은 공동체적인 꿈을 추구해 가는 과정과 그 다양한 면모의 의미를 천착한 소설 한 편을 독해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 그토록 선망하던 선진국, 미국 사회의 진면목을 한 로맨티시스트의 삶의 여정을 통해 계시해준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입니다. 지금부터 백 년 전인 1925년에 출간되었지만, 놀랍게도 현재의 미국과 우리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거울 노릇을 톡톡히 감당하는 소설입니다. 44세의 나이로 요절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이자, ‘영어로 쓴 위대한 20세기 소설’ 중 2위를 차지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 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으로서 미국에서만 매년 30만 권이 팔리고 있지요. 우리나라에 많은 팬을 두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기 최고의 소설로 꼽는 작품입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면 이 작품을 꺼내 놓고 아무 데나 펼쳐 보곤 한다는데, 단 한 번도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이런 작품 만나기가 쉽지 않지요. (번역은 민음사<김욱동 역>의 것 참조.)
-“위대한 개츠비” 줄거리-
(1장) 닉 캐러웨이는 1920년대에 예일대를 졸업한 후에 뉴욕에서 증권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기 고향을 그리워한 탓으로 시내가 아닌 시 동쪽 외곽에 있는 롱아일랜드 섬의 웨스트에그 지역에 집을 얻어 살아간다. 한 달 달세가 80불인 자기 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저택(한 계절 당 집세가 12,000-15,000불)이 옆에 버티고 있다. 개츠비의 집이다. 어느 날 자기 육촌인 데이지가 사는 집으로 초대받아 간다. 섬 다른 한쪽인 이스트에그에 있는 대저택 주민이다. 그녀의 남편은 닉이 예일대에서 알고 지내던 미식축구 선수인 톰 뷰캐넌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 외에 그 집에는 여자 골프 선수인 조던 베이커도 있었다. 루이빌 출신으로서 데이지가 그곳에서 소녀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였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던 중에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로 톰이 통화하러 가고 잇따라 데이지가 가버린 사이에, 닉은 조던에게서 톰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톰과 데이지가 애를 쓰지만, 더욱 어색한 대화만 이어지다 닉은 혼란한 감정만 잔뜩 안고 그 집을 떠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지가 자기 아이를 데리고 그 저택을 뛰쳐나오지 않는 것도 납득되지 않았지만, 톰이 자기가 바람피우고 있다는 사실보다 ‘유색 인종 제국의 발흥’(The Rise of the Colored Empires)이라는 책 한 권 때문에 심란해하고 있는 사실은 역겹기까지 했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닉은 옆집 주민인 개츠비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어두운 밤바다를 향해 떨리는 몸으로 두 팔을 뻗고 있는 모습을 접한다. 그때 바라본 바다 쪽에는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초록 불빛 하나’가 보였을 뿐이다.
(2장) 톰은 닉을 데리고 자기 정부(情婦)인 머틀 윌슨을 만나러 간다. 자동차 정비소 주인인 윌슨의 부인인 머틀은 어느 날 기차에서 톰과 만나 연인 관계를 맺은 상태였다. 머틀은 그날 자기 여동생인 캐서린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서 집을 나섰다가 나중에 톰과 합류하여 자기들이 마련해 둔 아파트로 간다. 캐서린뿐 아니라 한 층 아래 사는 사진작가인 맥키 부부도 그곳에 합류하여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곳에서 닉은 캐서린에게서 톰과 머틀이 각각 자기 배우자를 아주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머틀은 자기 남편인 윌슨에게 한동안은 미쳐 있었으면서도, 지금은 도저히 자기 사랑을 얻을 만한 인물이 못 되었다면서 폄하한다. 그런데 각각 이혼한 후 재혼하지 못하는 이유가 데이지가 가톨릭이라서 이혼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캐서린의 거짓말을 접하게 된다. 닉이 앉아 있기가 거북한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자정이 거의 되었을 때, 머틀이 데이지의 이름을 언급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톰과 언쟁을 벌이다 톰이 그녀의 코를 부러뜨린다. 어수선한 집안을 뒤로 하고 닉은 맥키와 함께 밖으로 나온다. 그의 집에 잠시 들렀다가, 닉은 펜실베이니아 역의 지하 대합실에 누워 새벽 네 시 열차를 기다린다.
(3장) 그해 여름에 닉은 개츠비 저택으로 초대받아 간다. 밤마다 음악이 끊이지 않고 무수한 남녀가 나방처럼 몰려드는 그 저택의 파티는 가관이었다. 두 대의 모터보트가 수상 스키를 이끌고 주말이면 롤스로이스가 승객 수송 차량이 되며, 두 주에 한 번은 출장 요리사 군단이 진을 치고 요리를 제공하고, 저녁에는 오케스트라가 도착해서 연주하며, 저택 안 진입로에 자가용들이 5중으로 주차되고 온갖 화려한 복장을 차려입은 하객들이 현란하게 북적대는 파티장이었다. 그 손님들 대부분은 초대받지도 않았지만 그곳의 파티를 즐기러 온 사람이었지만, 닉은 정식으로 초대를 받아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리라고 예상치도 않았던 조던 베이커를 다시 만나게 되어, 함께 어색함을 달래게 된다. 닉은 개츠비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던 중에 개츠비에 대한 온갖 억측을 듣고 있다가, 자기 연배로 보이던 한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어와 담소를 나누다가 자기가 개츠비인 것을 밝힌다. 자기가 최근에 수상비행기를 구입했다면서 이튿날 아침에 시운전할 때 함께 타보자고 제안하자, 닉은 쾌히 승낙한다. 다른 곳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여러 번 자리를 비운 개츠비는 나중에 조던만을 자기에게 불러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다. 나중에 조던은 닉에게 굉장한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다음에 자기를 만나러 한번 오라고 제안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닉은 분주한 사무실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뉴욕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닉은 간혹 고독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게 되나, 뉴욕 거리를 오가는 숱한 회사원들에게서도 고독이 느껴진다.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한여름에 다시 만난 조던 베이커에게 닉은 호감을 느끼고 사랑한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지만, 고향에 두고 온 어떤 여자와의 모호한 관계를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자기에게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미덕의 발현이라고 여긴다.
(4장) 닉은 개츠비가 함께 점심 식사를 하자는 제안에 따라 뉴욕으로 간다. 그곳에서 도박사인 울프심을 만난다. 개츠비는 망설이더니 자기에 대한 억측이 너무 많아 자기를 닉에게 설명해 주고 싶다고 밝힌다. 그런데 스스로 그 일을 하지 않고, 그날 오후에 닉이 조던과 만날 때 그녀가 자기에 대한 소개를 해 줄 것이라고 일러 준다. 왜 직접 이야기해 주지 않느냐고 묻자, 옳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그녀를 통해 자기 진실을 전하고 싶다고 시사한다. 북적이는 레스토랑에서 톰을 발견한 닉이 개츠비에게 그를 소개해주자, 개츠비는 긴장되고 당황한 기색을 띠더니 닉과 톰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그 자리를 뜨고 만다. 조던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데이지가 바로 개츠비가 1917년 전쟁 전에 만나 사귄 적이 있는 애인이었다는 것이었다. 루이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가씨인 데이지가 어느 날 자기 집 근처에서 개츠비 장교와 함께 있는 장면을 조던이 목격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데이지는 해외로 파병되는 그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가려고 했다가 엄마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조신하게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사교계에 데뷔하여 시카고 거부인 톰 뷰캐넌과 결혼했다. 결혼 직전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결혼한 이후에 그녀는 톰에게 집착한다. 그러다가 톰이 바람피운 것이 발각되기도 했지만, 데이지는 딸을 낳고 프랑스, 칸, 도빌 등지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와 시카고에 정착한다. 두 사람은 파티광들과만 어울렸지만 데이지는 술을 마시지 않고 좋은 평판을 유지한다. 그러던 중 육 주 전에 조던에게서 개츠비란 이름을 듣고 나중에 조던에게 찾아와 다시 확인하고는, 그가 바로 자기 하얀 자동차 안에 있던 장교 개츠비였다는 것을 확신한다. 조던이 닉에게 이런 이야기를 다 들려 준 후에, 개츠비가 웨스트에그에 그 저택을 구입한 것이 바로 그 롱아일랜드 만 건너편에 데이지가 살기 때문이었다고 일러준다. 그러자 닉은 개츠비가 언젠가 손을 뻗어 닿고자 했던 것이 하늘의 별이 아니라, 데이지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조던이 개츠비의 부탁이라며 닉에게 말한 게 뜻밖이었다. 닉이 데이지를 자기 집으로 한번 초대해주고, 바로 그때 자기도 불러 줄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5장) 그날 밤에 집에 도착할 무렵, 닉은 개츠비의 집 꼭대기부터 지하실까지 불이 환히 밝혀져 있는 것을 목격한다. 그 빛이 관목들과 전깃줄에게까지 비쳐 웨스크에그 한쪽 끝이 불빛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닉은 그때 자기 방들을 살펴보는 중이라는 개츠비를 만나, 이튿날 데이지에게 전화해서 차 마시러 오라고 초대하겠다는 의향을 밝힌다. 그날 밤에 코니아일랜드로 가자는 제안, 함께 수영하자는 제안, 돈을 좀 벌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개츠비의 제안을 모두 거절한 채 닉은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사무실에서 닉은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집에 차 한 잔 마시자고 초대하면서, 톰은 데려오지 말고 혼자 오라고 일러둔다. 공교롭게도 약속한 날, 비가 쏟아졌지만, 개츠비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에 데이지가 오후 4시경에 도착했다. 두 사람 다 간단한 인사를 건넸지만, 끔찍한 침묵을 지키며 있다가 닉이 그 둘만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서로 대화를 시작한다. 5년만의 만남이었다. 닉이 다시 그들을 만나러 들어갔을 때 데이지는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개츠비는 행복에 겨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개츠비는 데이지와 닉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집 구경을 시켜준다. 그 집을 마련하는 데 3년이 걸렸다면서, 외롭지 않도록 늘 흥미로운 사람들, 유명 인사들로 늘 북적이게 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1층의 화려한 방들과 살롱과 도서관을 거쳐 위층으로 올라간 그들은 개츠비의 소박한 방으로 들어간다. 유일하게 화려하게 순금으로 장식된 화장대에 데이지가 앉아 브러시로 머리를 빗자, 개츠비는 그 옆에 앉아 눈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당황했다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지나간 후, 이제는 데이지가 자기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 감탄한 탓에 완전히 소진된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가겠다는 닉을 완강히 저지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밀회를 더욱 강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개츠비 집에서 죽 치고 살고 있는 ‘하숙생’(the boarder) 클립스프링어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키며 음악을 즐기던 중에, 급기야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닉이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개츠비에게 다가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그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어렴풋이 의심이 생긴 듯한 표정”(the expression of bewilderment had come back into Gatsby’s face, as though a faint doubt had occurred to him as to the quality of his present happiness)을 알아차린다. 그렇지만 자기를 추스르고 데이지에게 다시 몰두하는 개츠비를 그곳에 남겨둔 채 닉은 빗속으로 걸어 나온다.
(6장) 닉에게 털어 놓은 개츠비의 과거는 이러했다. 그는 노스다코타 출신으로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자란 제임스 개츠였다. 열일곱 살에 자기 운명이 바뀔 것을 직감한 순간에 자기 이름을 개츠비로 바꿨다. 슈피리어 호수에서 조개잡이나 연어잡이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던 그에게 결정적인 행운이 찾아온다. 네바다의 은광과 유콘 강 유역의 광산을 소유한 댄 코디가 자기에게 돈을 긁어내려 한 신문 기자 출신 엘러 케이에게 당하여 요트를 타고 유랑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오 년 후 어느 날 리틀걸 만에 당도하게 된 것이다. 자기에게 접근한 개츠비가 영리할 뿐 아니라 야심 찬 젊은이인 것을 간파한 코디는 그를 고용하여 자기를 돌보아 주도록 한다. 술에 취했을 때 방탕해지는 자신이 야기하는 상황에 대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미국 역사의 한 시기에 개척지의 창녀촌과 술집의 무자비한 폭력을 동부 해안에 이끌고 온 난봉꾼 개척자”(the pioneer debauchee, who during one phase of American life brought back to the Eastern seaboard the savage violence of the frontier brothel and saloon)였다. 그로부터 5년이 더 경과한 즈음에 그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개츠비는 그로부터 상속받을 유산마저 엘라 케이에게 다 빼앗겼지만, 그는 그동안 축적한 배움으로 “구체적인 한 인간의 실체”(the substantiality of a man)를 갖추게 된다.
개츠비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일요일 오후에 그의 집에 건너갔을 때, 누군가가 톰 뷰캐넌을 데려온다. 피차 잘 모르는 척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지만, 데이지를 사이에 두고 피차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던 차였다. 데이지가 혼자 나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린 톰은 그다음 토요일에 개츠비의 파티에 나타나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한참 구경하다 돌아간다. 개츠비의 실체를 모르는 톰은 그저 요즘 신흥 부자들처럼 대형 밀주업자라고만 여기면서, 그 파티에 모여든 짐승 같은 인간들을 한데 모으느라 힘깨나 들었겠다며 비아냥거린다.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데이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 파티를 즐기는 것을 눈치 채자, 톰은 개츠비의 실체를 반드시 캐내겠다고 다짐하며 파티장을 떠난다. 한편 개츠비는 데이지가 자기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안절부절못한다. 톰을 향해 ‘난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어요’(I never loved you)라고 말하고 4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루이빌로 돌아가 새로운 결혼식을 올리는 게 그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닉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그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 것을 권고해도, 개츠비는 막무가내였다. 과거를 반복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7장) 닉이 개츠비에 대해 최고로 궁금해 할 때 개츠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데이지가 그 이튿날 자기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고 초청한 것을 전해 준 전화였다. 그해 여름에 가장 더운 그날 닉과 개츠비는 데이지 집으로 가지만, 톰의 정부인 머틀 윌슨이 전화를 걸어 톰을 찾고 데이지는 개츠비의 입술에 키스를 하는 공공연한 애정 행각들이 서슴없이 연출된다. 다 함께 식사를 나눈 후, 너무 더운 날이라 온갖 짜증을 내던 데이지를 못 견뎌하던 톰이 뉴욕으로 놀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자기 차를 개츠비와 닉과 조던이 타고 개츠비 차를 자기가 몰고 데이지를 데리고 가겠다고 떼를 쓴다.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데이지를 사이에 두고 톰과 개츠비가 설전을 벌이는 상황이 연출된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지난 5년 간 톰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고, 톰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하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 사이에서 고뇌하던 데이지는 처음에는 톰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가, 곧 이어 개츠비가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며 그를 나무라며 자기는 한때 톰을 사랑했고 개츠비도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개츠비는 톰에게 데이지가 그를 떠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톰은 그녀가 훔친 반지를 자기 손가락에 끼워줄 저질의 사기꾼과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응대한다. 그러면서 개츠비가 그동안 간여해 온 사업이라는 게 밀주업이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런 상황을 괴로워하던 데이지가 톰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재촉하자, 톰은 그녀에게 개츠비와 함께 개츠비의 차를 타고 먼저 돌아가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 이후에 톰은 닉과 조던을 데리고 자기 쿠페에 올라 롱아일랜드로 향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윌슨의 가게 앞에 차량 서너 대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예사롭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것을 직감한 톰이 내려서 그 상황을 파악하게 된다. 자기 정부였던 윌슨의 아내 머틀이 지나가는 차에 치어 끔찍한 상처를 입은 채 즉사한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는 윌슨이 자기 아내를 치고 달아난 차가 노란색 신형 자가용인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 차는 톰이 그날 낮에 운전하다가 윌슨의 주유소에 들러 주유했던 차였던 것이다. 그는 윌슨에게 오후 내내 그 노란 차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경찰에게도 자기를 윌슨의 친구로 밝히면서 윌슨이 사고를 낸 차를 안다면서 그것이 노란 차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톰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데이지가 집에 와 있는 것을 확인한다. 닉은 함께 저녁을 들고 가라는 톰의 제안을 거절하고 택시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그때 그 근처에 있던 개츠비를 발견하게 된다. 그와 대화하는 중에 머틀을 친 차가 바로 개츠비의 차였고, 당시 데이지가 몰고 가다가 난 사고였다는 것을 발견한다. 개츠비는 자기가 몰았다고 이야기할 계획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데이지가 별 일 없이 자는 것을 보고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한다.
(8장) 그 이튿날 개츠비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것을 인식한 닉은 그의 집으로 간다. 그와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데이지와 자기가 어떻게 만나 사랑하게 되었는지 듣게 된다. 거부의 딸인 그녀를 만나 교제하는 동안 그녀와 자기 사이에 엄연한 철조망 혹은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라 화려하게 사는 그녀에 비해 자기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마치 자기가 데이지 집과 견줄 수 있는 집안 출신이며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재원을 가진 것처럼 그녀를 속인다. 결국 그녀를 정복하기까지 한다. 처음엔 그런 관계를 맺은 후 헤어지려했지만, 그 사이에 그녀를 정말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떠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그는 전쟁에 차출되어 떠나야 했고,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정부에서 그를 옥스퍼드로 파견하는 통에 제때에 그녀에게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녀는 다른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톰을 사귀게 되어 결혼하게 된 것이다. 개츠비가 데이지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것은 그가 옥스퍼드에 있을 때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닉은 출근해야 할 시간을 넘겨서 개츠비와 헤어진다.
한편 머틀 윌슨의 시체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진 상태에서, 윌슨은 계속해서 머틀을 기억하면서 그녀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점을 파고든다. 자기가 목격한 바로는 머틀이 무작정 그 노란색 차에 뛰어든 게 아니라,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을 알아보고 그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다가 그 차에 치였다는 것이다. 윌슨 곁에서 지키고 있던 조수 마이클리스가 깨닫지 못한 측면이었다. 그리고 윌슨은 머틀이 바람을 피운 것과 어느 날 코에 크게 상처 나서 돌아온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고 여겼다.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먹지도 않은 그는 걸어서 루스벨트 항으로 간 후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세 시간 동안은 그의 행적이 묘연했다. 그 세 시간 동안 그는 결국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노란 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고 자인한대로, 그 차가 개츠비 소유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두 시 반쯤 웨스트에그에 나타나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개츠비의 집의 위치를 묻는다. 결국 그는 개츠비의 집으로 몰래 들어가 수영장에 있던 개츠비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9장) 두 해가 지난 후에 닉은 바로 그 날들을 회고한다. 경찰들, 사진사들 및 신문기자들은 끊임없이 개츠비의 집을 드나들었지만, 호기심이 발동한 동네 아이들을 제외하면 다른 이들은 그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윌슨은 그저 ‘비탄에 빠진 나머지 정신 착란을 일으킨’(deranged by grief) 남자로 규정되어 그 살인 사건은 간단히 처리되었다. 죽은 개츠비에 대해 마지막으로라도 최소한의 관심을 보일 법한 사람들조차 그러지 않는 상황에서 닉이 장례 절차를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닉이 데이지에게 전화했지만 그녀는 톰과 함께 집을 떠나버렸고, 개츠비의 동업자인 울프심에게 연락을 해도 닿지 않았다. 그에게 개츠비의 집으로 와달라는 편지를 써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참석하지 못한다는 답장이었다. 그때 닉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반발심이 솟구치기 시작하여, “그들 모두에 맞서 내가 개츠비와 한편이라는 냉소적인 연대감”(a feeling of defiance, of scornful solidarity between Gatsby and me against them all)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흘째 되는 날 미네소타에 살고 있던 개츠비의 아버지가 장례식에 참석하겠다는 전보를 보낸 후 개츠비 집에 도착한 이튿날 장례식이 계획되었다.
그동안 개츠비 집에서 빌붙어 살면서 ‘하숙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클립스프링어가 그날 개츠비 집으로 전화를 한다. 닉이 장례식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하자, 그는 피크닉이 계획되어 있어 어렵겠다고 답변한다. 이에 덧붙여 개츠비 집에 있는 자기 테니스 신발을 하인을 시켜 좀 가져다주도록 부탁하면서 자기 주소를 부르자, 닉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장례식 아침에 뉴욕에 직접 가서 울프심을 대면했지만, 그는 그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난색을 표하면서 “죽은 후에는 모든 걸 그대로 내버려두자는 게 내 철칙”(my own rule is to let everything alone.)이라고 응대한다. 장례식 시간인 오후 세 시가 되어 루터교회 목사가 도착한 후에 삼십 분을 더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조문을 담은 메시지 하나도, 꽃 한 송이조차도 오지 않았다. 결국 개츠비 아버지와 목사와 닉, 그리고 나중에 묘지에 따로 도착한 조문객 한 사람[어느 날 개츠비의 서재에서 서가를 둘러보던, 올빼미 안경을 쓴 남자]이 하인들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한다. 닉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그 남자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설마요! 세상에나! 날이면 날마다 수백 명씩 드나들지 않았습니까!”(Go on! Why, my God! they used to go there by the hundreds.)라고 외치면서 “더럽게 불쌍한 인간이로구만.”(The poor son-of-a-bitch)이라고 덧붙인다.
닉은 대학 시절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동부에 있다가 중서부 지역인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느낀 짜릿하고도 격정적인 전율을 기억하면서, 자기가 그곳의 일부인 것을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적이 있었다. 이제야 그는 “이 이야기가 결국 서부의 이야기였다는 것”(this has been a story of the West, after all)을 깨닫게 된다. 톰과 개츠비, 데이지와 조던, 그리고 닉, 자기들 모두에게 서부 사람들로서, “동부의 삶에 온전히 적응할 수 없게 만든 어떤 공통된 결함”(some deficiency in common which made us subtly unadaptable to Eastern life)이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동부가 참 멋지고 우월한지 뼛속 깊숙이 인지하고 있을 때조차도, 동부는 어딘지 모르게 늘 뒤틀린 데가 있는 모습으로 자기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개츠비의 죽음 이후에 동부는 닉에게 “자기 자신의 시력으로는 어떻게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뒤틀려 버렸다”(distorted beyond my eyes’ power of correction)고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닉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닉은 떠나기 전 자기가 만든 쓰레기를 “저 친절하고 무관심한 바다가 내 쓰레기를 쓸어 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not just trust that obliging and indifferent sea to sweep my refuse away)는 생각이 들어, 조던 베이커를 만나 관계를 정리한다. 그녀는 닉의 말엔 반응하지도 않은 채 어떤 남자와 약혼했다면서, 자기를 거절한 게 닉이라고 갑자기 말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닉이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라고 심한 판단 착오를 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덧붙인다. 닉은 이제 자기 나이가 서른인데,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나이보다 다섯 살 더 먹었다고 말하고는 그녀와 헤어진다. 10월에는 톰을 5번가에서 만난다. 그의 악수를 받지 않고 닉이 “그날 오후 윌슨에게 뭐라고 말한 건가?”라고 따지자, 톰은 사실을 얘기했다면서 응대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채비하고 있는데 들이닥친 윌슨이 주머니에 총을 숨긴 채 그 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라고 위협했기 때문에, 그가 개츠비라고 일러주었다는 것이다. 개츠비는 막돼먹은 놈으로서 자기 무덤을 팠고, 닉과 데이지를 속였을 뿐 아니라 개를 치고 달아나듯 머틀을 치고 달아난 것을 보라며 닉을 다그친다. 닉은 할 말이 막혔고,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닉은 다시 한번 깨닫는다. 톰과 데이지, “그들은 경솔한 인간들이었다.”(They were careless people.) 마치 어린아이와 얘기하는 것처럼 어리석게 느껴져 그와 악수를 나누고는 헤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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