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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보편적 원리를 실천하라

하강하는 욕정의 삶과 상승하는 성찰의 삶이 빚어내는 이중주,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1)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5. 1. 25.

(Moscow, Russia, Courtesy of Sergey Sh)

하강하는 욕정의 삶과 상승하는 성찰의 삶이 빚어내는 이중주,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1)

지난 두 달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습니다.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에 윤석열 대통령이 예고 없이 긴급 담화를 열고 기상천외한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10시 50분에 국회의 모든 출입구가 폐쇄되고 국회의원들의 출입이 제한되었습니다. 11시 25분에 박안수 육군 대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고, 11시 30분에 계엄사령부가 포고령 제1호를 발령했으며, 11시 50분에 군용 헬기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 착륙한 후 일부 병력이 국회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의사당 안으로 들어왔지만, 11시 6분경에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이 국회의원, 국회 관계자, 취재진에 대해 신분 확인 후 출입을 허용하라고 지시한 후에 국회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진입했습니다. 그리하여 12월 4일 새벽 1시경에 국회에 있던 의원들이 계엄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후 오전 4시 30분이 되어서야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계엄령을 해제하고 계엄사령부를 해체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이후 45년 만이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선포된 이 비상계엄령은 약 6시간 만에 해제된 것입니다.

 

내란에 해당하는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윤 대통령은 12월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재적의원 300명 전원 투표, 찬성 204명]됨으로써 그 직무가 정지되었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세 번씩이나 불응하던 그는 2025년 1월 15일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긴급 체포되었고, 1월 19일에 구속되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는 그가 "증거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경천동지할 일이 또 발생합니다. 이날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새벽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여 법원 내 기물을 파손하고 시설을 파괴하는 난동을 벌인 것입니다. 심지어 경찰을 폭행하기도 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찾아 나선 이들도 포착되었습니다. 총 86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현재까지 58명이 구속된 상태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법치주의와 사법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대 범죄이자,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적한 대로, “대한민국 역사상 법원이 이렇게 습격당한 예가 없었습니다.” 한 국회의원이 지적한 대로, 심지어 “OECD 국가 중에서도 이렇게 법원이 침탈당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특히 제 눈에 띈 것은 체포된 86명[남성 77명+여성 9명] 중 20대와 30대가 총 45명으로 전체의 약 52%를 차지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복합적인 사회적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였으므로, 이런 무모한 폭력성이 20-30대 전체의 경향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폭력적인 청년들을 낳은 요인으로 파악되는 몇 가지는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는 보수화된 젊은 남성층이 증가한 것, 둘째는 탄핵 찬성 집회에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는 것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 심리가 작용한 것, 셋째는 일부 극단적인 유튜버들이 젊은 청년들을 자극하고 선동한 것입니다. 첫째와 둘째 요인은 페미니즘과 연관된 것들인 데 반해, 셋째 요인은 극우 유튜버들의 준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평등 정도가 객관적인 지수상으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여초사회’ 및 ‘남성 역차별’ 담론이 확산되면서 스스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젊은 남성들이 이전보다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청년 남성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며 젊은 남성 유권자의 표를 결집하는 데 성공한 이가 바로 현 대통령이었습니다. ‘석열이 형’의 이미지로 자신들에게 각인된 현 대통령이 체포되고 구금된 상태에서, 영향력 있는 몇몇 극우 유튜버들이 공권력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그 젊은 청년들의 소영웅주의를 자극하여 과격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긴 정황들이 숱하게 드러났습니다.

 

독재 정권을 타도하자고 나선 이전 저항 세대조차 꿈꾸지 못했던 헌법 기관 침탈을 스스럼없이 저지른 그 젊은이들의 행태는 우리나라 보수 진영의 일탈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꾀하고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헌법과 법률 따위는 무시한 채 얼마든지 폭력까지도 불사할 수 있는 반헌법적 세력이 우리나라 도처에 잠재해 있다는 것이 이번 계엄령 사태 전후에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정점에는 현 대통령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이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비상계엄을 모의하고 실행한 장관들과 장군들을 보세요. 이 21세기에도 아직 부당한 상관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려는 국무위원과 군 장성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중대한 시기에 묵인과 방조로 일관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대부분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비록 지난해 12월 11일 국회에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사과하긴 했지만, 그것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야당 의원의 사과 요구 압력에 잠시 응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보여주기식에 불과했다는 것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던 한 총리와 현재 그 직을 이어받은 최 부총리의 행태를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국회에서 결의한 법률안 12개 법안에 대해 모조리 거부권을 행사했고[각각 6개 법안씩], 국회 몫인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는 절차도 보류하거나 그 3명 중 2명만 임명하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현 대통령의 아바타 역할 이상의 월권을 행사한 것이지요. 그들이 모시는 주군은 여전히 내란 우두머리인 현 대통령일 뿐이라는 방증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그 공복의 대표인 대통령을 통해 자기들에게 자리를 맡긴, 국가 권력의 원천인 국민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다 국민이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추태와 망발을 보세요. 그 엄중한 계엄 상황에서 여당 국회의원 간에 혼란을 야기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추경호 원내 대표. 온갖 핑계를 대며 계엄령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여당 국회의원들. 계엄을 "고도의 정치 행위"라고 옹호하고 내란죄 성립 요건을 왜곡하며 계엄을 정당화한 윤상현 의원. “야당 의원들이 총칼, 군홧발 운운하며 탄핵 선동”한다며 비난한 나경원 의원. “윤석열 정부의 성과를 제대로 알리지 못해 계엄이 발생했다.”라고 주장하고 “민주당의 무도함을 알리지 못했다.”라며 오히려 야당을 비난하더니 급기야 ‘백골단’으로 자처하는 극우 청년단체의 기자회견을 주선하여 큰 논란을 일으킨 김민전 의원. 반헌법적인 국가 비상사태가 전개된 상황에서 이렇게 처신한 국회의원들이 과연 전통적인 가치,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보수 진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보수 지지 세력을 자기 기반으로 삼기 위해 보수를 참칭하면서, 자신과 자신들이 속한 카르텔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반헌법적이고 반사회적인 인물들일 뿐입니다.

 

이 보수 참칭 카르텔의 최전선에 극우 유튜버들이 존재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유포하여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온라인 세력입니다. 이들은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이루어졌다는 허위 정보와 집회 현장에서 진압에 나선 경찰을 중국 공안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음모론을 퍼뜨렸습니다. 이들의 활약으로 허위 정보와 음모론을 맹신하는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자기 정보나 능력을 확신하고 스스로 과대평가해 행동하는 경향, 연구자 이름을 딴 명칭]가 확산하여 사회 분열이 심화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콘텐츠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영향력은 현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인사들과 보수 지지층에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 극우 채널의 구독자 중 18~34세의 비율이 높아, 젊은이들까지 극단적인 사상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러운 점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 젊은이들이 이번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와 같은 반헌법적인 행위를 부추기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펼친 그 유튜버들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이 혼란한 정국 상황이 전개되는 중에 장편 소설 한 편을 정독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라고 일컫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1878)입니다. 지금부터 딱 150년 전인 1875년부터 1877년까지 2년 반동안 “러시아 통보”에 연재된 소설입니다. 그가 그 이전에 집필한 “전쟁과 평화”(1867)가 ‘과거에 관한 책’이었다면, 이 작품은 ‘당대의 삶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목만 보면 안나와 정부(情夫)인 브론스끼의 불륜을 다룬 치정극(癡情劇)이 주를 이룰 것 같지만, 실상은 개인이 사회적 기대에 휘둘리는 모습을 탐구하면서, 중층적인 인간 존재의 면모를 조명하는 걸작입니다. 즉 그들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긴 하지만, 그들의 관계와 대조되는 레빈과 키티의 결혼 생활과 성숙의 과정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한 상태에서, 그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삶과 가치관, 당대의 세태와 일상 및 사회적 시대정신과 구체적인 이슈들에 대한 묘사와 분석이 복합적으로 펼쳐집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작가가 일기 쓰기를 중단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것이 “1870년대 러시아의 연대기와 작가의 일기를 합쳐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이명현 교수[고려대 노어노문학과]의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중대한 사회적, 경제적 격변을 겪고 있던 1870년대의 러시아는, 헌법과 법률을 유린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세력이 엄존하고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채 헤매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한 2020년대의 대한민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기존 가치와 신념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가 확산하고 개혁에 대한 희망은 차단되는 한편, 철도가 곳곳에 급속하게 건설되고 있었으나, 은행이 설립되고 파산되는 소식이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지만, 톨스토이가 이 시기를 삶의 기반이 되는 도덕이 무너진 혼란의 시기로 인식할 만큼 도덕적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퇴행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특히 상류층의 도덕적 타락은 톨스토이를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로마 제국의 쇠퇴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이명현 교수). 이런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톨스토이는 안나와 브론스끼의 비극적인 치정 관계를 통해 당시 사회가 경험한 도덕적 공허감과 영적 파산 상태를 열어 밝히는 한편, 자신의 자전적 요소를 지닌 인물인 레빈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고뇌와 성찰의 과정을 추적해 갑니다. 이런 측면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 소설이자, 동시에 반사회 소설이다.”라고 언급한 토마스 만의 논평이 어느 정도 파악됩니다.

 

또 다른 러시아의 문호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가 “완전무결한 예술 작품”으로 칭송했고, 가장 위대한 소설 세 편을 뽑아 달라는 질문을 받고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가 “안나 카레니나”, “안나 카레니나”, “안나 카레니나”라고 답변했다는 이 탁월한 작품을 여러분도 일독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린책들’의 번역본 참조(이명헌 역), 작가명과 작품명만 널리 알려진 대로 표기했음]

 

-“안나 카레니나의 줄거리-

<1부> 모스끄바와 뻬쩨르부르끄 사교계의 절반이 친척이나 지인일 정도로 인망이 높던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아내 소유의 재산이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게다가 가정교사와의 불륜으로 가정불화까지 일으키게 된다. 그의 아내 돌리는 남편의 배신에 큰 상처를 받아 떠나겠다고 다짐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남편이 보이는 연민마저도 불쾌하게 여길 정도로 돌리의 상처와 분노는 깊었다.

 

이런 상황에서 스쩨빤의 누이동생인 안나 까레니나가 남편 까레닌과 아들 세료자를 뻬쩨르부르끄에 남겨둔 채 오빠의 가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스끄바를 방문한다. 안나는 기차역에서 젊은 장교 브론스끼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돌리의 여동생 키티는 브론스끼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지만, 안나의 등장과 함께 브론스끼의 마음은 안나에게로 향하게 된다.

 

안나는 사교계의 귀부인이나 여덟 살짜리 소년의 엄마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유연한 몸놀림과 싱싱한 기운, 미소와 눈빛에서 분출되는 생기로 젊은 처녀 같은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다. 키티는 안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면서도, 그녀의 매력에 무섭고 잔혹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한편 스쩨빤의 어린 시절 친구인 레빈은 오래전부터 키티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스쩨빤은 레빈을 젬스뜨보[지방자치회] 활동가이자 신임 지방 자치회 의원으로, 또한 한 손으로 81킬로를 들어 올리는 체조 선수이자 축산업자,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며 키티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러나 레빈의 청혼은 브론스끼에게 마음이 있던 키티에 의해 거절된다. 레빈은 자신의 외모와 능력에 대한 열등감으로 키티가 자신을 사랑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좌절한다.

 

<2부> 뻬쩨르부르끄로 돌아간 안나는 브론스끼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후 그녀는 브론스끼를 다시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결국 불륜 관계에 빠진다. 처음에는 브론스끼의 구애를 진심으로 싫어한다고 믿었던 안나였지만, 그가 나타나지 않은 연회에서 깊은 비애를 느끼며 자신을 기만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브론스끼의 구애는 싫기는커녕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일생의 관심사였던 것이다. 브론스끼는 안나에게 당신이 내 인생의 전부라며 뜨겁게 사랑을 고백하고, 안나는 그와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면서도 남편과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브론스끼에 대한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한편 브론스끼에게 버림받은 키티는 깊은 상처를 받아 건강이 악화된다. 자신을 치료한다는 것이 마치 깨진 화병의 조각들을 이어 맞추려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일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산산조각 났다. 키티는 독일 조덴의 온천장으로 요양을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경건주의파 신자인 마담 슈탈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병자들을 섬기는 바렌까의 헌신에 큰 감화를 받는다. 키티는 바렌까와 함께 봉사하며 완전히 회복되어 러시아로 돌아온다.

 

레빈은 실연의 아픔을 잊기 위해 농촌으로 돌아가 농장 일에 몰두한다. 그는 농사일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으면서도,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형 니꼴라이와 현존하는 악을 정당화하는 데 지적 능력을 동원하는 이부(異父) 형 세르게이 이바니치(혹은 꼬즈니셰프)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고민한다. 레빈은 스쩨빤에게 주어진 것에 기뻐하고 없는 것에 한탄하지 않기 때문에행복하다고 말한다.

 

<3부> 안나와 브론스끼의 불륜은 급속도로 사교계에 퍼져나가 두 사람은 고립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안나를 “알렉세이 브론스끼라는 그림자”를 달고 돌아온 사람에 비유하며 비난한다. 질투심이 강하지 않았던 안나의 남편 까레닌은 아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위적인 삶이 마치 낭떠러지 위의 다리와 같았고, 이제 그 다리가 끊어져 심연이 드리워진 것 같다고 느낀다. 까레닌은 이혼을 거부하며, 안나가 브론스끼와의 관계를 지속할 경우 아들 세료자를 데려가겠다고 위협한다.

 

레빈은 자신의 영지에서 계속 일하면서 영적인 사유와 내적 갈등으로 씨름한다. 이때 스쩨빤이 돌리가 시골 영지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으니 그녀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레빈은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돌리가 자신과 키티 사이의 일을 이해하려 하고 키티의 행동을 변호하려 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느낀 레빈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키티를 잊기로 결심하고 농민 여성과의 결혼까지 고민한다. 그러나 언니의 영지로 마차를 타고 가는 키티를 우연히 보게 되면서,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모스끄바로 돌아온 키티 역시 레빈의 진심을 느끼게 되고, 레빈이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자 그의 마음을 받아들여 결혼을 약속한다.

 

<4부> 안나와 브론스끼의 만남이 계속되자 까레닌은 변호사와 이혼 상담을 시작한다. 당시 러시아에서 이혼은 불륜의 무고한 당사자만이 요청할 수 있었고, 유죄 당사자의 자백이나 간통 행위의 현장 적발이 필요했다. 까레닌은 안나에게 브론스끼의 연애 편지 일부를 넘기라고 요구하지만, 변호사는 그것이 불륜의 증거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스쩨빤과 돌리는 까레닌의 이혼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던 중 안나가 딸 애니를 어렵게 출산하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까레닌은 마음을 바꾸어 브론스끼를 용서한다. 그러나 까레닌의 관대하고 고결한 태도에 당혹감을 느낀 브론스끼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까레닌의 극진한 간호로 회복한 안나는 그의 용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혐오하면서 브론스끼에 대한 애정으로 갈등한다.

 

까레닌과의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된 안나는 브론스끼가 중앙아시아 따시껜뜨 군부대로 떠난다는 소식에 절망한다. 그러나 떠날 준비를 하던 브론스끼는 까레닌이 이혼을 허락했다는 소식을 스쩨빤에게 전해 듣고는, 안나와 재회한 후 퇴역해 버린다. 결국 안나는 이혼을 거부한 채 브론스끼와 자신의 딸과 함께 이탈리아로 떠난다.

 

<5부> 스쩨빤은 레빈과 키티의 화해와 약혼을 이끌어내는 중매자 역할을 한다. 레빈은 스쩨빤의 주선으로 영성체와 고해성사에 참여하지만, 교리에 대한 의심으로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그 성스러운 의식 속에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결혼 생활을 통해 삶의 기쁨과 책임감을 느끼던 레빈은 사경을 헤매는 니꼴라이 형을 돌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는 당황해하는 자신과 달리 이전의 경험을 살려 고통받는 형을 지혜롭고 효과적으로 보살피는 키티의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형이 성찬식과 성유 성사를 받고 죽음을 맞이할 무렵, 레빈은 키티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은 안나와 브론스끼에게 실망을 안겨준다. 안나는 브론스끼와 단둘이 있게 된 것이 처음에는 기뻤지만, 교제할 러시아인들이 없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브론스끼 역시 안나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의 열쇠라 믿었으나, 점차 지루함과 불만족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러시아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사교계의 외면을 받는다. 안나는 불안과 고독 속에서 모르핀에 의존하게 되고, 브론스끼와의 관계도 악화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들 세료자를 만나기 위해 까레닌 가정의 관리인 리지야 이바노브나에게 간청했으나 거절당한 안나는, 결국 무작정 그 집을 찾아가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과 마지막 만남을 가진다. 과거의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고자 했던 안나는 뻬쩨르부르끄 상류층이 모두 참석하는 극장 공연에 브론스끼의 만류를 뿌리치고 참석하지만, 옛 친구들에게 거절당하고 옆자리의 귀부인으로부터 공개적인 모욕을 당한다. 결국 두 사람은 브론스끼의 시골 영지로 떠난다.

 

<6부> 레빈의 영지에서 돌리와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장모인 공작 부인이 함께 여름을 보낸다. 레빈은 많은 처가 식구들의 방문에 다소 불안해하던 중, 방문객인 자유분방한 청년 베슬로프스키가 임신한 키티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자 극도의 질투심을 느낀다. 함께 나선 사냥에서 잠시 이 감정이 우정으로 변했으나, 계속해서 키티에게 치근덕대는 베슬로프스키를 참지 못하고 그에게 떠나달라고 부탁한다.

 

베슬로프스키가 떠난 후, 그에게서 안나와 브론스끼가 근처 저택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돌리는 안나를 위로하러 방문한다. 품위 있고 소박한 레빈과 키티의 가정생활을 경험한 돌리는 호화로운 의식주와 격에 맞지 않는 오락, 그리고 대규모 병원 건립에 몰두하는 안나와 브론스끼의 삶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더욱이 안나가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딸의 육아에는 무관심한 것을 보고 놀란다. 브론스끼는 안나와 그다지 애틋한 사이를 유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돌리에게 안나가 까레닌과 이혼하도록 설득해 달라는 감정적인 부탁을 한다. 이튿날 돌리는 서둘러 레빈의 영지로 돌아온다.

 

안나는 브론스끼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극심한 질투를 느낀다. 그녀는 브론스끼에게 집착하고 그를 통제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두 사람의 갈등만 심화시킨다. 안나와 브론스끼 사이에는 사랑 옆에 싸움을 일으키는 악령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들은 서로에게서 악한 기운을 몰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브론스끼가 지방 선거를 위해 며칠 동안 집을 떠나자, 안나는 그가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면 결혼해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녀는 다시 까레닌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 후, 브론스끼와 함께 시골을 떠나 모스끄바로 향한다.

 

<7부> 키티의 출산을 위해 모스끄바를 방문하는 동안, 레빈은 도시의 빠른 템포와 값비싸고 경박한 사회생활에 무의식적으로 매몰되어 간다. 스쩨빤과 함께 신사 클럽에 가서 브론스끼를 만난 레빈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스쩨빤과 함께 충동적으로 안나를 방문한다. 이것이 레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난 순간이었다. 공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안나는 호감을 품은 레빈을 쉽게 매료시키고, 레빈이 키티에게 안나를 방문했다고 고백하자 키티는 그가 안나와 사랑에 빠졌다고 비난하며 충격과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레빈이 경솔했던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면서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된다.

 

이튿날 키티는 오랜 난산 끝에 미짜라는 아들을 낳는다. 레빈은 작은 아기를 보고 두려워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는 아내 키티의 출산 과정을 지켜보며 삶의 신비와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의 영혼 속에서 아름다운 무엇인가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며, 그것은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레빈은 농부 포카니치와의 대화를 통해 신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삶의 의미는 인간의 이성과 욕망을 초월한 신의 뜻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세상을 살아가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러한 무지로 인해 자살하게 될까 봐 두려울 만큼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스쩨빤은 새로 생긴 위원회에서 자리를 얻고 안나의 이혼 승낙을 받기 위해 까레닌을 만나러 뻬쩨르부르끄로 간다. 그러나 위원회 일로 유대인 관료에게 모욕을 당하고, 까레닌과 리지야 이바노브나의 광신적인 행태를 목도하며 충격을 받는다. 리지야가 추천한 프랑스 영매가 스쩨빤의 방문 중 꿈에서 본 환상을 근거로 까레닌에게 메시지를 전하자, 까레닌은 스쩨빤에게 안나의 이혼 요청을 거절하는 서한을 보낸다.

 

브론스끼는 러시아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반면 안나는 배제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긴장된다. 특히 안나의 마음속에 비통함, 권태감, 질투심이 증폭되면서 두 사람은 자주 다투게 된다. 그러던 중 안나는 시골 저택에서 수면을 돕기 위해 시작한 모르핀을 남용하다가 결국 중독되고 만다. 그녀는 브론스끼에 대해 점점 더 질투심과 비이성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가 다른 여성들과 연애한다고 의심할 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계획에 따라 부유하고 명망 있는 소로끼나 공작 영애와 결혼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격렬한 다툼 후 두 사람은 다시 시골 영지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출발 전날, 브론스끼가 자기 어머니의 편지를 전해주러 방문한 소로끼나 공작 영애를 미소로 맞이하는 것을 본 안나의 분노가 폭발한다. 그녀는 시골 영지로 가지 않겠다며 브론스끼에게 윽박지르지만, 그는 어머니의 영지로 볼일을 보러 떠난다. 정신적, 감정적 혼란 속에서 안나는 브론스끼에게 돌아오라는 전보를 보내고, 작별을 고하러 돌리와 키티를 방문한다. 홀로 시골로 떠나기 전 브론스끼의 어머니의 영지에 들르려 했으나, 기차역에서 당장은 돌아올 수 없다는 브론스끼의 답장을 받는다. 안나는 브론스끼와의 관계가 파탄에 이른 것으로 여긴 채, 극도의 절망에 빠져 달리는 화물 열차 아래로 몸을 던진다. 그녀는 죽음을 통해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세료자의 수치와 모욕도, 내 치욕도, 그 모든 게 죽음으로 구제될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죽으면 그이도 후회하고 날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게 되겠지. 나 때문에 괴로워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8> 레빈의 이부(異父)  세르게이 꼬즈니셰프는 최신 저서가 독자와 비평가들에게 무시당하자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 운동에 몰두한다. 한편 스쩨빤은 그토록 원하던 자리를 얻게 되고, 까레닌은 브론스끼와 안나 사이의 아기 애니의 양육권을 갖게 된다. 안나의 죽음으로 깊은 죄책감과 절망에 빠진 브론스끼는 자살 충동을 느끼다가, 터키에 맞서 일어난 정교회 세르비아 반란에 의용군으로 참전하기 위해 러시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조국을 떠난다. 그는 삶이 저에게 하등의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쓸모가 있다.”라, 삶이 하등의 필요가 없고 이미 식어 버린 마당에 그걸 바칠 만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게 기쁠 뿐이라고 말한다.

 

레빈은 폐병으로 죽은 형 니꼴라이의 죽음 이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자살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디서 오고 무엇을 위한 것이며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삶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한 농부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레빈은 진정한 마음의 변화를 겪고, 삶의 의미는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어린 시절 배운 기독교 원리를 다시 받아들인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되며, 각자가 자신의 신앙과 믿음에 대해 스스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변화에 대해 키티에게 말하지 않기로 한다. 후에 레빈의 영지에 번개를 동반한 폭풍이 몰아쳤을 때, 그는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키티와 아들 미짜의 안전을 걱정하며 키티를 사랑하는 만큼 아들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에는 신앙으로의 회귀가 완전한 의로움으로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에 불만을 느끼지만, 결국 레빈은 새롭게 받아들인 믿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인간이며 계속해서 실수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제 그의 삶은 의미 있고 진실되게 의로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