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 길, 공생공락(共生共樂)
참나무 밑에서 소나무가 죽는다. 번성한 참나무가 햇빛을 독식하기 때문에 그 아래 있는 어린 소나무가 생장하지 못한다. 한편으로, 소나무는 참나무를 비롯한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한다. 그 뿌리에서 타감작용(他感作用, allelopathy) 물질인 갈로타닌(gallotannin)이라는 독한 물질을 내뿜어, 그 주변에서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두 나무는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각각 서로 다른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침엽수(conifer, 바늘잎나무)인 소나무는 햇볕을 많이 받아야만 자라는 양수(陽樹)인 데 반해, 활엽수(broadleaf, 넓은잎나무)인 참나무는 볕을 적게 받아도 잘 자라는 음수(陰樹)다. 소나무는 영양분이 부족하거나 산성인 토양에서 잘 자라며, 척박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한다. 참나무는 비옥한 토양에서 번성하며, 도토리를 통해 곤충, 새,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을 지원하여 생물 다양성을 증진한다. 소나무는 추운 환경과 건조한 조건에 더 잘 적응하며, 겨울에도 잎(바늘잎)을 유지해 광합성을 지속한다. 참나무는 겨울에 잎을 떨어뜨려 물 손실을 줄이고, 낙엽 분해를 통해 토양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두 나무가 같은 지역에 있으면, 서로 다른 요구로 인해 공유 자원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소나무는 비교적 햇빛을 많이 요구하는 양수이므로,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어린나무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잡초들이나 키 작은 나무들만 자라는 곳, 혹은 벌채한 뒤나 다른 원인에 의해 숲이 파괴된 곳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살아간다. 그런데 소나무 숲 사이에 참나무가 어렵게 자리를 잡게 되면, 비교적 그늘에서도 잘 성장하는 특성 덕에 빠른 속도로 그 공간을 장악해 간다. 소나무에 가려 빛이 약한 처지에서도, 참나무는 때를 기다리며 생산한 양분을 줄기 속에 잘 간직해둔다. 그러다가 노쇠한 소나무나 허약한 소나무가 환경 변화로 인해 쓰러지게 되면, 비축한 양분으로 급속하게 자라 오른다. 참나무들은 소나무에 비해 빠르고 왕성하게 수관을 형성하기 때문에, 소나무가 점유한 지역의 하늘을 서서히 점유해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나무 개체 수는 점차로 감소하게 되지만, 참나무가 장악해 가는 그 숲은 다양한 식물들이 존재하게 되면서 기후와 토질이 가장 적합하게 균형을 이루는 극상림(極相林)으로 성숙한다. 사실상 참나무란 나무는 세상에 없다. 그 이름은 한 무리의 나무 종류[참나무과 참나무속]를 통칭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신갈나무, 떡갈나무, 깔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가시나무 같은 것들이 다 참나무로 불린다(김흥식, “한국의 모든 지식”). 이처럼 외관상 아주 평온한 것 같은 숲속은 항상 각 나무가 주위의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는 매우 긴장된 세계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경쟁 관계는 침엽수와 활엽수 간의 경쟁 관계로 보아 무방하다. 그런데 침엽수와 활엽수 간에도 아름다운 상생 관계를 보여주는 예도 존재한다. 바로 전나무와 자작나무와의 관계다. 전나무는 침엽수로 소나무과(Pinaceae)에 속하고, 상록수로서 추운 기후와 고산 지대에 적응해서 산다. 자작나무는 자작나무과(Betulaceae)에 속하고, 낙엽성 활엽수로서 독특한 온대 및 냉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나무는 서로 생태적으로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자작나무는 맨땅이나 화재 후와 같은 교란된 환경에서 빠르게 자라기 때문에 선구식물(先驅植物, pioneer species)로, 그늘을 제공하고 낙엽으로 토양을 풍부하게 만들어 다른 종의 생장을 돕는다고 해서 간호사 나무(nurse tree)로도 불린다. 전나무는 자작나무가 개선한 토양과 그것이 제공해 주는 보호 환경[극단적인 햇빛이나 서리로부터 보호]을 활용하면서, 천천히 자라가다가 결국 안정된 숲을 형성한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햇볕으로 양분을 만든 자작나무가 ‘토양 속 곰팡이 균사(菌絲)’(soil fungi)가 만든 네크워크[뿌리와 곰팡이의 공생관계]를 통해, 그늘진 곳에서 사는 어린 전나무에게 탄수화물을 공급해 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열 종류 이상의 균사 공생체[균근(菌根), mycorrhiza]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이유미 국립수목원장, “경향신문”, 2016.12.27.). 이런 양분 전달은 일방적인 게 아니다. 이 두 나무는 모두 토양 균사와 공생관계를 가지면서, 이것을 통해 영양소를 서로 교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을이 깊어지면서 자작나무가 잎을 떨구고 나면, 여전히 잎을 달고 있는 전나무가 광합성을 멈춘 자작나무에게 양분을 공급해 준다. 이러한 간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전나무는 방풍림 역할을 하면서, 극단적인 날씨에는 자작나무에게 안정적인 미기후[microclimate, 지면에 접한 대기층의 기후로서 식물의 생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어떠한가. 전나무와 자작나무와의 관계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일구어가야 할 상호의존적 공생관계의 본이 될 만하지 않은가. 사실상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이러한 공생관계의 결과였다. 부모와 자녀 관계, 교사와 학생 관계, 멘토와 맨티 관계, 친구 관계와 같은 사랑의 공생관계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는가. 부모나 교사나 멘토나 사정이 나은 친구가 전나무[혹은 자작나무] 역할을 감당했다면, 자녀나 학생이나 멘티나 어려움에 처한 친구는 자작나무[혹은 전나무] 역할을 맡은 셈이었다. 전나무[혹은 자작나무] 그룹이 안정된 환경, 지도, 보호, 자신감, 조언, 지혜, 정서적 지원을 자작나무[혹은 전나무] 그룹에게 공급해 주면, 도움을 입은 자작나무[혹은 전나무] 그룹이 활력, 에너지, 호기심, 학습 의욕, 신선한 아이디어, 열정, 감사로 화답하는 식이었다. 그 결과 부모와 자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더 많은 사랑과 도움을 주며 진화한다. 교사와 학생들은 서로에게서 배우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는 관계가 형성된다. 멘티는 지식과 자신감을 얻고, 멘토는 성취감과 새로운 관점을 통해 더욱 성장한다. 친구들 간에는 서로에게 더 강한 유대감과 성장을 제공하는 깊은 우정이 형성된다. 전나무와 자작나무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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