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읽기와 성경 읽기
장승포 해안도로를 걷다 보면, 이름을 모르는 꽃과 나무들이 많다. 이럴 때 누가 옆에서 하나하나 이름을 가르쳐 주면 참 좋겠다. 이름을 알게 되면, 꽃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이전보다 새롭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숲해설가 한 분의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나무 이름 알아맞히기’에 대한 지식을 전수해 주는 영상이었다. 그분은 4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을 확보하라. 즉 나무가 심어진 곳의 위치[중부 혹은 남부 지방]와 고도를 알라는 것이다. 둘째, 전체적으로 그 나무를 관찰하면서 특징을 파악하라. 즉 그 수형이나 꽃이나 열매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셋째, 나무의 잎을 보라. 즉 잎이 둥근지, 뾰족한지 구분하고, 잎의 거치[=가장가리에 나 있는 톱니 모양 자국] 여부와 그 형태에 유의하라는 것이다. 그 거치는 느티나무나 참나무에는 있기 때문에 주요한 표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잎이 마주나느냐, 어긋나느냐의 여부와 잎 뒷면까지 보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예컨대, 측백나무나 편백나무를 구분할 때 참고할 사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지에 붙어 있는 가시 여부도 살펴야 한다고 한다. 찔레인지, 아카시[가지에 가시가 있음]인지 구분할 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나무의 수피[나무껍질]나 겨울눈을 보라. 아카시나무나 다래나무는 겨울눈이 수피 안쪽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무를 접할 때 유용하게 참고할 지식이었다.
그 내용을 복습하다 보니, 이 지식이 성경을 읽을 때도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어떤 성경 본문을 이해하려면, 이런 순서를 따라 해보는 게 지혜롭겠다는 것이다. 첫째, 그 본문의 위치를 파악하라. 즉 그것이 구약에 있는지, 신약에 있는지를 살핀 후에, 어떤 장르에 속하는 책 속에 위치해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이다. 둘째, 전제적으로 그 본문을 관찰하면서 내용의 특징을 파악하라. 아마도 '육하원칙'(5W1H & So What)에 따라 질문하면서, 본문의 특이한 면모에 주목해 보는 과정이다. 셋째, 그 본문에 등장하는 단어나 구에 유의하라. 그 본문의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중요한 용어나 특정한 구의 의미를 묵상해 보는 과정이다. 넷째, 행간을 읽어라. 본문 속에는 확연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행간을 읽음으로써 취할 수 있는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제는 실제 본문에 한번 적용해 보자. 성경 본문은 사무엘하 25:2-17절 말씀이다. 첫째, 그 본문의 위치를 보자. 구약 성경의 역사서 중 한 권인 사무엘상이다. 이 사무엘상은 이스라엘 역사 중 사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무엘과, 초대 왕인 사울 및 2대 왕 다윗을 다루고 있다. 둘째, 이 본문의 구체적인 상황을 보자. 언제, 어디서 이 일이 발생했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이 죽은 후, 다윗이 바란 광야로 갔을 때였다. 그리고 그 근처 갈멜에 있는 나발의 목장에서 양털 깎는 날이었다. 누가, 무엇을 했나? 다윗이 ‘나발’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 일행에게 먹을 것을 좀 베풀어 달라고 호의를 청했다. 그는 ‘고집이 세고 행실이 포악하였다.’(3절) 나발이 어떻게 반응했나? 다윗을 주인 사울에게 반역하여 떠나가버린 불량한 종으로 매도하면서, 축제의 음식을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왜 다윗은 나발에게 격분했나? 자기 일행이 나발의 재산과 가축을 보호하는 울타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 주었지만, 호의를 베풀어 달라는 겸허한 부탁을 그렇게 야멸차게 거절하고 자신을 모독하는 발언까지 해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격분한 다윗은 칼을 차고 나섰다. 셋째, 본문에 등장하는 단어나 구에 유의하자. 나발은 다윗을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10절)이라고 부르고, 다윗 일행을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11절)이라고 불렀다. 다윗은 당시 이미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2대 왕으로 임명한 인물이었으나, 폐위당한 사울 왕의 집요한 추격과 살해의 위협을 피해 다니는 처지였다. 나발의 무지와 무례와 배은망덕한 태도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넷째, 읽을 행간이 있는지 살피자. 그 당시에 양털 깎는 날은 모든 것이 풍부하므로, 나그네를 선대하는 축제일과 같았다고 한다. 다윗이 이날을 택하여 호의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나무 이름 알아맞히기 방식으로 이 본문의 의미를 파악해 보았다. 이러한 의미 분석에 의하면, 완악하고 포악한 나발에 대한 다윗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나발의 비열한 행위가 칼을 차고 나서는 다윗의 반응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은 다윗이 때로는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해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이 사건 배후에 역사하고 계셨고, 다윗이 잔악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보호하신다는 것을 이어지는 본문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 이상이 이 사무엘상 본문을 순전히 텍스트 내용에 근거하여 독해한 것이다. 그러나, 이 본문을 읽고 아래와 같이 해석한 한국의 역사학 교수가 있다.
“이렇게 사회의 불순분자들을 모아 세력을 형성한 다음 이 지역 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주변의 목동이나 상인에게 보호세를 요구하고, 남의 재산을 빼앗고, 남의 여자를 강탈했던 자가 바로 다윗이다. 분명 그런 짓은 산적이 하는 일이었고, 망명 초기에 다윗은 산적 대장으로 활동했음이 분명하다.”
본문 내용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나 정치한 해석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자신의 선입견을 뒷받침해주는 ‘증거 본문’(proof text) 하나만, 그것도 나발의 말(25:10-11)만 달랑 제시하고는 자기 의견 개진하기에 바쁘다. 그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바로 뒤이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아래와 같이 단정적으로 심판하면서, 인류의 유산인 성경과 연면한 역사를 품고 있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를 폄훼한다.
“이스라엘의 신 야훼는 그런 자를 사랑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다. 또 유대인과 기독교 신자들이 믿고 있는 성경은 다윗의 그런 ‘산적질’을 영웅적인 행위로 묘사하고 있으며, 그런 산적 두목을 이스라엘의 건국자로 삼았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정기문, “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이러한 평가를 접하며, 이전에 버트런드 러셀이 복음서를 오독한 것에 대해 바로잡는 책[“러셀의 섀도복싱과 신앙인의 터널 비전”]을 펴낸 때가 떠올랐다. 그를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국내외 지식인들이, 수박 겉핥듯이 성경 본문을 읽고는 이렇게 새도복싱을 해대는지 모른다. 좀 더 겸허하고 진정성 있는 역사학자를 언제쯤에나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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