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ingual Version>
성서인문학에 빚진 그리스도교
아직도 ‘성서인문학’(Biblical Humanities)이라는 표현을 접하면,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신성한 하나님의 계시를 세상의 학문으로 혼잡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테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리스도교 역사 가운데 철학이 신학에 끼친 선한 영향력에 대해 무지하기 십상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된 것 자체가 인문학적 연구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이 오늘날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전달된 것이 누구의 덕일까? 수많은 인문학자의 서지학적 연구와 번역 덕분이다. 먼저 ‘에스라’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그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다양한 구약의 계시를 집대성한 학사(scribe)였다. 학사 혹은 서기관은 히브리 성경의 본문을 정확히 필사하고 보존하는 책임을 맡아, 본문의 정확성을 유지하며 후대에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다. 특히 에스라는 성경 보존자, 율법 교사, 영적 지도자, 행정가로서 서기관의 다면적인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인물이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이후에, 그와 그의 팀은 그때까지 전수된 하나님의 계시와 구전된 내용을 정리하는 과업을 완수했다. 이 시기에 정리된 히브리 성경(‘타나크’)은 매우 세심한 훈련을 통해 관리되고 전달되어, 그 이후의 세대로 계승되고 확산되었다. 그러다가 AD 90년에 개최된 ‘얌니아 회의’에서, 이 히브리 성경이 “이것이 우리의 정경이다!”라고 선언되고 인준된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에스라는 성서인문학자, 즉 신학자와 인문학자의 역할을 겸한 인물이었다.
다음으로 살펴볼 사람들은 번역가들이다. 유대인들에게 계시된 구약이라는 히브리어 성경을 보다 광범위한 많은 사람이 읽게 된 것은 누구 덕일까? 그것이 그리스어 혹은 헬라어로 번역되어 헬라 문명이 전파된 곳에서는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번역가들의 공로가 크다. 물론 어떤 전승에 의하면, 이 번역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2세(BC 308-246)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세계 최대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당시 50만 권 소장]의 설립자인 그는 히브리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도서관에 소장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와 ‘코이네 헬라어’[Koine Greek, 헬레니즘 시대, 로마 제국 및 초기 비잔틴 제국 시대에 사용되고 쓰인 그리스어]에 능통한 학자와 학사(서기관)들을 초빙하고 가장 신뢰도 높은 사본을 준비하여 번역 작업을 진행하도록 배려했다. 번역에 참여한 학자들 수를 고려하여 ‘70인역’[Septuagint, 정확히 72명=6 곱하기 12지파]이라고 불린다. 한편으로, 현대 그리스도교 성서 학자들은 이 번역이 한 번만에 번역된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 ‘말라기’(BC 420년경)의 사역부터 AD 1세기 초 세례 요한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에 걸친 기간] 중 약 2백 년에 걸쳐 서서히 번역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손성찬, “모두를 위한 기독교 교양”).
당시 유대인들은 이 번역이 절실했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본토로 귀환한 유대인들이 모국어를 수호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세대가 넘어감에 따라 모국어 구사 능력이 서서히 낮아지고 그 지역의 유력한 언어를 사용하려는 경향이 더 짙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어는 구어 기능을 잃어버린 채 ‘종교 언어’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은 구어로는 아람어[페르시아 언어이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공용어]를 사용하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이미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리스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부터 로마 제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그 지역을 아우르는 언어로 자리매김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 번역된 구약 성경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던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대체해서 널리 읽히게 된다. 그리고 당시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던 로마 제국 전역에서도 많은 사람이 이 구약 성경을 독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약 성경 사도행전에서 전도자 빌립을 통해 구원받게 되는 에티오피아 내시를 보라(8:26-39). 그때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 본문이 바로 이 ‘70인역’ 중 일부였다. 이 번역이 로마 제국 전역에 대중화되어 있었기에, 그가 이 성경 본문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에티오피아 내시 같은 이들은 제국 전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이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전해 듣고, 회심하여 주님께로 돌아와 초대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아마도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경건한 이방인들”(God-fearing Gentiles, 10:22, 13:43, 17:4, 17)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도, 트인 마음을 품고 있던 유대인뿐 아니라 이러한 경건한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사도행전 17:11-12을 읽어보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이 베뢰아에서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많은 헬라인이 날마다 상고한 성경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바로 '70인역' 구약 성경이었다. 그들은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번역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그리스어 ‘70인역’을 필두로 해서, 라틴어 불가타 성경(The Vulgate)이 AD 4세기에 번역되어 천 년 이상 서방 교회의 표준 성경으로 사용되었고, 3-4세기부터 콥트어[이집트 기독교인], 고대 시리아어[동방 교회], 고트어[고트족], 아르메니아어[5세기], 고대 슬라브어[9세기]로도 번역되었다.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의 선두 주자였던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1522~1534)하였고, 영국에서는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이 최초의 영어 신약성경(1526)을 번역함으로써, 그 이후에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1611)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란시스 하비에르(Saint Francis Xavier, 1506~1552)와 예수회 선교사들은 성경을 일본어, 타밀어, 중국어와 같은 아시아 언어로 번역하며 보급했다. 킹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 KJV(1611)]은 영어 번역의 대표적인 이정표가 되었다. 18~19세기 동안 영국 성서 공회와 같은 선교 단체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원주민 언어로 번역을 촉진했다. 19세기에는 줄루어, 요루바어와 같은 아프리카 언어로 번역이 확대되었다.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은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소래교회를 설립한 서상륜 선생과 로스 선교사가 1882년에 발간한 쪽복음 성경인 ‘누가복음서’였다. 오늘날 최소 3,800개 이상의 언어로 성경 일부가 번역되어 있다. 700개 이상의 언어로는 성경 전체가, 1,600개 이상의 언어로는 신약성경이 번역되었다. 아직 성경이 없는 공동체를 위해 오디오 성경, 앱 등 기술을 활용한 번역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이 성경 번역가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물론 성경에 박식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학도 깊이 공부한 사람들이었을 테다. 그렇지만, 그 지식만으로는 성경을 번역할 수 없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뿐 아니라, 번역으로 탄생할 ‘목표 언어’(target language)에도 정통해야 한다. 단순히 언어만 잘 해서도 안 된다. 다채롭고 원색적인 성경의 문학적 양상을 목표 언어의 문학적 표현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문학적 역량이 겸비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 언어가 품고 있는 문화적 요소를, 목표 언어가 품고 있는 문화적 대응물로 녹여 내야 한다. 역사적 지식과 안목도 요청된다. 성경에는 역사적인 기록물이 적지 않다. 그 기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동 역사뿐 아니라 ‘신구약 중간사’와 로마 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정통해야 한다. 특히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마지막 장(4장)에서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 1장까지는 단 한 장 사이지만, ‘신구약 중간사’라는 4백 년의 역사가 생략되어 있다. 이 시기는 신약의 역사와 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중요한 왕조들이 교체되고, 유럽의 판도가 두세 차례 바뀌었으며, 새로운 문화들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의 언어와 내용을 잘 이해하는 바탕 위에다,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정통한 지식에 덧붙여 성경의 언어를 가장 적실한 ‘목표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역량을 평생 키운 이들만이 이 고통스럽고 영광스러운 과업에 참여했고, 지금도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므로 성경 번역가들은 죄다 ‘성서인문학자’들이다. 그 역이 반드시 성립되지는 않더라도. 그들의 헌신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 모두 앞에 우리 글로 된 성경이 놓여 있다.
그래서일 게다. 성경을 읽으면서 인문학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작은 호의는 보답하고, 중간 정도의 호의는 인정하며, 큰 호의는 배은망덕으로 갚는다.”(Most people return small favors, acknowledge medium ones and repay greater ones-with ingratitude.)
(English Translation)
Christianity Indebted to Biblical Humanities
Even today, some people frown upon the term "Biblical Humanities," thinking it contaminates the sacred revelation of God with worldly disciplines. However, such individuals are often ignorant of the positive influence philosophy has had on theology throughout Christian history. They may also be unaware that the very transmission of the Bible itself is a product of humanistic scholarship. Consider this: how is it that the Bible, originally written in Hebrew and Greek, has reached us today in Korean or any other language? It is thanks to the bibliographic research and translation efforts of countless humanists.
Take Ezra, for instance. He was a scribe who compiled the Hebrew scriptures into what became the Old Testament. Scribes were tasked with meticulously copying and preserving the biblical text to ensure its accuracy for future generations. Ezra exemplified this multifaceted role, serving as a custodian of scripture, teacher of the Law, spiritual leader, and administrator. After the Jews returned from Babylonian exile, Ezra and his team consolidated the revelations and oral traditions handed down to them, resulting in the Hebrew Bible ("Tanakh"). This carefully maintained scripture was later canonized during the Council of Jamnia in AD 90. Ezra was both a theologian and a humanist scholar, embodying the dual roles that characterize Biblical Humanities.
Next, consider the translators. The Hebrew scriptures were made accessible to a broader audience through their translation into Greek—the Septuagint. This monumental project is said to have been initiated by Ptolemy II (308–246 BC), ruler of Egypt and founder of the great Library of Alexandria. He sought to include the Hebrew scriptures in his library, commissioning scholars proficient in Hebrew and Koine Greek to undertake the translation. Although the legend of 72 translators completing the work in unison may be apocryphal, modern scholars believe the translation spanned about two centuries during the intertestamental period. Regardless, the result allowed the Hebrew Bible to reach Greek-speaking Jews and Gentiles across the Hellenistic world, where Koine Greek was the lingua franca.
The need for this translation was acute. Returning Jewish exiles struggled to maintain their native Hebrew, which was becoming a "religious language" as Aramaic and Greek gained dominance. The Septuagint thus replaced the inaccessible Hebrew scriptures for many, allowing even Greek-speaking non-Jews to engage with the text. Consider the Ethiopian eunuch in Acts 8, who was reading Isaiah in the Septuagint when Philip shared the gospel with him. Such moments underscore the significance of this translation.
The legacy of translation didn’t stop there. The Septuagint paved the way for the Latin Vulgate in the 4th century, which became the standard for the Western Church for over a millennium. Over the centuries, translations appeared in Coptic, Syriac, Gothic, Armenian, and Old Slavonic, among others. In the Reformation era, Martin Luther translated the Bible into German (1522–1534), and William Tyndale’s English New Testament (1526) profoundly influenced the King James Bible (1611). Missionaries like Francis Xavier introduced translations in Asian languages such as Tamil, Japanese, and Chinese. Today, at least portions of the Bible exist in over 3,800 languages, with the complete Bible available in more than 700 and the New Testament in over 1,600.
Who were these translators? Certainly, they were learned theologians, but their work required more than theological expertise. They needed mastery of Hebrew, Greek, and the target language. They also had to be skilled writers capable of preserving the Bible's literary richness and cultural nuances. Understanding history was essential, particularly the intertestamental period, which shaped much of the New Testament context. Translating the Bible required a lifetime of dedicated study and the integration of theological, linguistic, literary, cultural, and historical knowledge—a quintessentially humanistic endeavor.
Thus, Bible translators were, and are, Biblical humanists. Thanks to their tireless efforts, the scriptures are now accessible in languages worldwide. When people dismiss the importance of humanities in biblical studies, Benjamin Franklin’s words come to mind: “Most people return small favors, acknowledge medium ones, and repay greater ones—with ingratitude.” Let us not repay this great favor with ingratitude but recognize the immense contributions of Biblical Humanities to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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