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학(學)-평생에 걸쳐 학습하라

'영덕회'와 '잉클링즈'(The Inklings)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1. 10. 14.

'영덕회'와 '잉클링즈'(The Inklings)

이 주 전에 경북 영덕에서 목회자님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다변화된 목회, 넓고 깊은 독서”라는 제목을 중심으로 함께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저를 불러 주신 그 지역 목회자님들 중 모두 열네 분이 참석해 주셨는데, 사모님 두 분과 목사님 열두 분이셨습니다. 작년에 뵈었던 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여간 반갑지 않았습니다.

 

목회 현장의 다변화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기에, 우선 교회의 존재 목적을 중심으로 그 다변화의 필연성을 나누었습니다. 즉 교회 안팎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역인 예배(worship), 성도들에 대한 사역인 양육(nurture) 및 세상에 대한 사역인 전도와 긍휼(evangelism and mercy)이 균형을 이루어야 할 당위성을 다루었습니다. 두 번째로 대위임령의 확대된 의미를 논의하면서 그 다변화의 요목을 살펴보았습니다. 곧 복음전도와 가르침, 긍휼사역과 정의 구현 및 생태학적 관심과 행동이 대위임령에 포함되는 내용임을 다루었습니다. 셋째로 ‘만인사역자주의’를 토의하면서 그 다변화의 구현 현장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즉 모든 성도들을 선교 동반자들(mission partners)로 여겨 그들을 잘 준비시켜 각자의 삶의 현장으로 파송하는 측면을 상고했습니다. 넷째로 탄력성 있는 목회 사역의 의의를 짚어 보았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전망을 논의하면서 미국의 법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언급한 내용 중에 이런 주제에 적실한 언명이 있었습니다. 즉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노력할 때, 그 사회는 발전한다.”라는 것입니다. 이에 덧붙여 팀 하포드가 “메시”(MESSY)라는 책에서 거듭 역설하는 주장에도 귀 기울여 보았습니다. “다양성을 갖춘 독일의 숲처럼 다양성을 갖춘 경제는 문제가 생겨도 금방 회복한다. (…) ‘재주가 많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Jack of all trades, master of none)라는 옛말은 (…) 한 개인에게는 이 말이 맞을 수 있지만 도시나 한 나라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많은 것을 잘하는 나라는 대개 그것 모든 것을 잘한다. 이것이 번영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힘차게 도약하는 길이기도 하다.”

 

목회 현장의 다변화와 연관된 이런 주제들을 나눈 후에, 이런 다변화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넓고 깊은 독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해 보았습니다. 먼저 그 세미나에 참석한 분들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목회자인 팀 켈러의 인터뷰를 소개했습니다. 그 인터뷰의 요점은 이러합니다. 현대를 사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성경이나 신학보다 자신들의 소셜미디어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뉴스의 홍수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가르치고 깨우치기 위해서는 성경과 신학 자료뿐 아니라 인문학 서적들도 아주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도전 거리로서 “파이 이야기”(Life of Pi)를 쓴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2012년에 출간한 책인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101 Letters to a Prime Minister)도 소개했습니다. 그의 결론도 켈러와 동일하지요. 성공한 지도자가 되기를 열망한다면, 인간과 세계와 삶을 탐구하는 가공할 만한 도구인 “소설과 희곡과 시”를 비롯하여 광범위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서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을 드리기 전에 아래와 같은 주제들로 함께 토의하는 시간을 좀 가졌습니다.

 

(1) 아래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자.

“나를 위시한 많은 설교자들이 인문학과 담을 쌓고 산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인문학 책 읽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인문학 책은 세상 책이므로 신앙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세상 책을 읽으면 영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김도인 목사, 아트설교연구원 대표)

(2) 아래 글처럼 독서를 통해 나를 치유하거나 나를 확장한 경험이 있는가?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오르한 파묵, “새로운 인생”)

(3) 아래 글이 내게 적용된 경우가 있는가?

“나는 태양이 떠오른 것을 믿듯이 기독교를 믿는다. 그것을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에 의해 다른 모든 것을 보기 때문이다.”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4) 독서를 통해 목회적 영성을 개발하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하기 원하는가?

 

주로 첫 번째 주제를 중심으로 나눔이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목사님들의 말씀을 들은 후에 제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첫째, 인문학 책 읽기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인문학에만 치우치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인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관건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지, 인간과 세상 이해를 등한히 하는 게 아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인간을 더 사랑하게 되고 세상의 공의와 환경의 보전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있다. 인간 사랑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반드시 하나님 사랑으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인간 사랑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부재하다면 하나님 사랑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이 두 가지는 상호배타적인 게 아니라 교호적으로 작용한다.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둘째, 인문학 책은 세상 책이므로 신앙의 정체성을 흔들리게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 과연 세상 것인가? 도리어 인문학은 세상 사람들의 사고와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최적화된 자료다. 하나님의 진리로 교정해 주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다양하고 풍요로운 인간과 피조 세계의 면모를 밝히 열어 밝히는 자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이웃 사랑의 두 가지 장애물이 무지와 이기심이라는 점에 주목하라. (수잔 갤러거와 로저 런딘, “Literature Through the Eyes of Faith”)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활용하자면, 인문학은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무지와 이기심을 깨뜨려버리는 도끼’다. 인문학을 통해 배양된, 진정성 어린 섬세함을 결여한 안목과 언어로는 자신도, 타인도, 사회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셋째, 세상 책을 읽으면 영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영성에는 ‘Being’(존재 인식)의 차원뿐 아니라, ‘Knowledge’(지식)와 ‘Doing’(행동)이라는 차원도 존재한다(조슈아 오가와). 인문학 서적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거나 당신에 대한 지식을 ‘직접적으로’ 심화시켜 주진 못한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지식을 ‘간접적으로’ 증가하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당신의 공의를 위해 행하기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조슈아 오가와는 영성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측면에서 서구권 선교사들은 ‘Knowledge’ (지식)와 ‘Doing’(행동) 중심인데 반해, 비서구권 선교사들은 존재 인식(“being” perception) 중심이라는 점을 역설한 바 있다. 이상적인 상태는 이 세 가지 요소들이 통합되거나 균형을 이룬 것일 텐데, 우리나라 선교사(혹은 목회자)들이 품고 있는 영성이 과연 그러한 통합이나 균형을 이루고 있을까?

 

참석자들에게 드린 “독서에 대한 제안”은 아래와 같이 여섯 가지였습니다.

 

1. ‘베이스캠프’를 확보하자: C. S. 루이스를 읽자.

2. 이야기와 은유를 즐기자(예수님의 본).

3. 공정 보도하는 신문/잡지를 읽자.

4. 꼼꼼하고 자세하게 읽자.

5. 쓰기와 병행하자.

6. ‘잉클링즈’(The Inklings)를 갖자.

 

이 제안들 중에서 여섯 번째만 잠깐 나누겠습니다. ‘잉클링즈’(The Inklings)는 C. S. 루이스와 J. R. R. 톨킨 및 그들의 친구들이 1933년에 시작한 비공식 문학클럽으로서 1949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루이스의 환대를 제외하면 가입 조건이 없었지만, 암묵적인 가입 조건은 글을 쓰는 것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주요 회원은 루이스, 워렌(루이스의 형), 톨킨, 찰스 윌리엄스, 휴고 다이슨, 로버트 하버드, 애덤 폭스, 찰스 렌, 오언 바필드 및 네빌 코크힐이었습니다. 주된 모임은 매주 목요일 저녁 시간에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의 루이스 연구실에서 이루어졌지만,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화요일 오전 시간에도 세인트 자일즈로(路)에 있는 “독수리와 아이”라는 카페에 함께 모여 각자 집필 진행 중인 문학작품을 낭송했습니다. 그 후에 비판이나 격려가 제공되었습니다. 이때에는 자신들의 생각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말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톨킨의 작품 중에 “새로운 호빗이라고 불리던 “반지의 제왕”이 이곳에서 낭송되었을 때, 다른 참석자들은 호평해 주지 않았지만 루이스가 그 작품의 진가를 파악하여 톨킨을 크게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루이스의 격려가 없었다면 “반지의 제왕이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하는 연구가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상 톨킨은 루이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즉 신화와 이야기와 상상에 대한 톨킨의 견해에 힘입어 루이스가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놀랍게도 정확하게 90년 전 이 세미나 개최일(1931년 9월 28일)에 루이스가 개심합니다. ‘잉클링즈’의 참석자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교리보다는 세계관에 더 관심을 두었고 일시적인 것에 담긴 영원한 것의 존재에 관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루이스가 장차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하지요.

 

특별히 ‘잉클링즈’를 거론한 것은 이번에 저를 초청해 주신 분들이 “영목회”(영덕목회자독서회)라는 모임을 형성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회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미 있는 책을 한 권씩 선정한 후 모두 그것을 읽고 나서 함께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한 분씩 돌아가면서 모임을 인도하게 되어 있는데, 인도자가 먼저 그 책의 내용을 정리한 것과 자기의 의견을 담은 글을 나누면 그때부터 격의 없는 토의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 모임을 폐쇄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그 모임의 취지에 동의하는 목회자라면 누구나(초교파적으로)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한 점도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고귀한 뜻을 격려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모쪼록 그 모든 회원들이 그 모임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실 뿐 아니라, 날이 갈수록 다변화되는 목회 현장을 보다 탁월하게 담당해 가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숙한 목회자님들과 나눈 흔흔한 교제로 인해 강사인 제가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이 모임을 주선해 주고 모임 장소(강구 “꿈의 교회”)까지 마련해 주신 이범우 목사님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