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인문학과 “내면의 자산으로 풍요로운 인생소풍길” 출간
새로운 책(여덟 번째) 한 권이 10월 1일 자로 '부크크' 플랫폼을 통해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은 “내면의 자산으로 풍요로운 인생소풍길”입니다. 그리고 "트인 마음으로 성경 읽기" 개정판이 9월 23일 자로 재출간되었고, "영어, 소통의 도구/성숙의 동반자"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성서인문학" 증보판이 각각 10월 7일과 13일 자로 재출간되었습니다('부크크').
성서인문학의 지향점
최근에 출간된 여섯 번째("인본주의자 오디세우스는 없다"), 일곱 번째("온전한 나를 찾아 가는 순례자"), 여덟 번째 책은 사실상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성서인문학"의 후속편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 책은 원래 전통적인 가치관, 근대적인 세계관 및 탈근대적인 시각들이 중첩되어 있는 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연구하는 인문학과 하나님의 계시가 기반이 된 성서가 만나는 접점에서 펼쳐진 대화의 장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 대화의 방향과 토의할 요소들을 밝히면서 그 각각의 요소들과 연관된 사례들을 간략하게 다루었지만, 그 후속편들을 통해서 좀 더 본격적으로 그 대화의 폭과 깊이를 더했습니다. 사실상 이 대화는 장차 "땅과 하늘이 언젠가 하나가 될"("And earth and heaven be one") 때를 고대하는 심정으로 마련되었습니다. 톰 라이트가 지적한 대로, 장차 언젠가 "땅과 하늘은 서로 겹칠 것입니다. (...) 완벽하고 영광스럽게 전적으로 서로 겹칠 것입니다." (Earth and heaven were made to overlap with one another, (...) but completely, gloriously, and utterly.) ["Simply Christian" (2006)-"톰 라이트와 함께 하는 기독교 여행"(ivp)] 이 표현은 "바다에 물이 가득하듯이, 주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 위에 가득할 것이다."(하박국 2:14)라는 약속이 대표하는 성경 전체 메시지의 영광스러운 결말을 라이트 식으로 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시는 그 결말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때가 되기까지 하늘과 땅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연결하는 시도가 의미 있다고 보았습니다. 톰 라이트가 언급한 대로 "하나님과 세계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God and world are different from one another, but not far apart) 때문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역사상 혹은 현재에도 하늘과 땅이 서로 겹치고 맞물리는 순간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래와 현재가 중첩되고 맞물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계시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주목해 보세요. 이 두 대상을 통해 하늘과 땅이 만나는 길이 열렸습니다. 먼저 하늘에서 땅으로 향하는 길이 열려,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길을 내내 안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날, 첫 창조 세계를 부패시킨 것들은 죄다 제거되겠지만, 첫 창조 세계에서 선했던 것들은 모두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부패한 창조 세계의 갱신'(the renewal of the presently corrupt creation)이라는 '순례의 길'(pilgrimage)에 들어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포기할 것들과 재발견할 것들이 각각 존재합니다.
이 시점에서 특히 라이트가 주목한 것이 세 가지입니다.["Simply Christian"(2006) 참조.] 즉 "정의에 대한 재검토"(Justice Revisited), "관계의 재발견"(Relationship Rediscovered) 및 "아름다움의 재탄생"(Beauty Reborn)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패한 세계 속에서 손상된 진선미(眞善美)의 전반적인 회복처럼 보이는 대목입니다. 우선 첫째 측면은 하나님의 세상이란 반드시 공정하고 바르게 일이 처리되고, 정직하고 참되며 고결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폭력이나 도덕적 무정부 상태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도와 설득과 정치행위를 통해 치유하고 '회복하는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위해 일하는 것이 일차적인 그리스도교적 소명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측면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새로운 패턴과 기준의 모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창조 세계에 속한 기쁨과 겸손의 정신으로,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친절하고, 분노하되 분노가 대인 관계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장차 새로운 세계 속에서 행하게 될 삶을 예견하며 구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측면은 현 창조 세계에서 일별하는 아름다움은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의 편린이라는 전제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교회는 모든 수준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굶주림을 느끼게 됨으로서, 미술, 음악, 문학, 댄스, 연극 등을 새로운 방향에서 탐구하여 그것들이 '실재의 중심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고속도로'(highways into the center of a reality)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술이란 것이 현재적이고도 즉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서서, 장래 이루어질 새로운 창조의 영광스러운 면모들을 일견할 수 있도록 도와 주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장래를 바라보며 그 장래의 일들이 완전히 현실화될 것이라는 약속에 비추어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현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부르심입니다.
돌이켜 보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성서인문학"에서 다룬 다섯 가지 항목[심(心), 아(我), 도(道), 시(時), 학(學)]을 중심으로 펼친 내용들은 라이트가 언급한 대로 '부패한 창조 세계의 갱신'을 위한 '순례의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기도와 설득과 정치행위를 통한 정의 회복에 방점을 찍은 논의가 적지 않았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전개될 인간 관계에 걸맞은 삶과 인격의 패턴을 다양한 실례들로 제시해 보였다는 자평도 해 봅니다. 이에 덧붙여 아름다운 역사적 사건들이나 선한 인물들의 행적을 통해서 새롭게 창조될 세계의 편린을 현시하고, '하부 창조'라고 불리는 문학 작품들을 독해해 가면서 인간들이 생래적으로 품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갈망과 영적 각성을 열어 밝히는 면에서도 어느 정도 주목할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직접 현시해 주는 미술과 음악 분야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야에 대해서도 기회가 되는 대로 연찬의 과정을 밟을 마음이 얼마든지 있지만,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성서인문학'의 취지를 좇아 의미 있는 논의들을 풍성하게 펼쳐 가기를 고대합니다.
“내면의 자산으로 풍요로운 인생소풍길”의 나가는 말
이번에 새로 출판된 여덟 번째 책 말미에 나오는 ‘나가는 말’ 속에 팀 켈러의 인터뷰 내용이 소개되어 있어 이 자리를 빌어 좀 나눌까 합니다. 소제목을 ‘해석학과 상상력의 역할’로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겸허한 공경심을 품는 것과 성경 본문의 인문학적 특성에 유의하면서 숙고하고 고찰하는 자세는 상호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성경 읽기 과정에서 반드시 양립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선용하는 것이 관건이 됩니다.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문학, 역사 및 철학과 같은 인문학이 미치는 악영향이기보다는 뉴스 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 과잉 노출되는 현상입니다. 역사책이나 철학 서적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이나 시를 읽고 즐기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한 반면, 온갖 뉴스피드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에 몰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팀 켈러가 자기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성경과 신학에 몰입되어 있는 정도는 각각 자신의 소셜미디어 거품과 뉴스피드 거품에 몰입되어 있는 정도에 도무지 미치지 못합니다.” (“The Atlantic”) 사정이 이러하니 일주에 한 번씩 교회에 가서 성경을 접하는 기독교인들이 뉴스와 소셜미디어에서 제공되는 메시지들을 어떻게 올바른 신앙 원리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예컨대 “기독교인들이 이 정당이나 다른 정당과 완전히 엮이는 것은 정말 우상숭배”라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특정 정당의 포로로 사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것입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지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상 동일 선상에 있습니다.
팀 켈러의 결론은 이러합니다. 성경의 교리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가르침 받지 않고 그 교리를 해석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상상력과 해석학의 실패라”는 것이지요. (“It’s a failure of imagination and hermeneutics.”) 우리 각자의 신앙의 집을 든든히 세워 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성경을 읽고 신학적 소양을 쌓는 연찬의 과정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특정 성경 본문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전후 문맥을 신중히 살피는 것이 우선적이지만,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견주어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받는 일이 바로 신학적 소양을 쌓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해석학과 상상력이 연관이 있다구요? 켈러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가 지금도 그토록 광범위하게 독서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강해 설교가들이 성경과 신학 자료만 너무 많이 읽는 데 반해, 철학, 문화 분석, 역사, 전기, 소설 및 시를 읽지 않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매우, 매우, 매우 광범위하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To preach imaginatively, you need to read very, very, very widely.) 동료 설교자들에게 던지는 그의 고언(苦言)입니다.
인문학, 특히 문학이야말로 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입니다. 시와 소설과 희곡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반계시를 통해 허락해 주신 갖가지 은유와 직유, 비유와 풍자를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상상력을 은사로 받은 작가들이 빚어 놓은 문학의 향연을 통해 정서적이고도 사상적인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먹고 마시며 즐기는 동안 우리의 ‘의미 기관’인 상상력도 살찌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면모들과 삶의 정황들이 더 확대될 뿐 아니라, 동일한 사건과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안목도 더 다양해지고 심화될 것입니다. 신형철 평론가의 문학론 한 대목이 이런 측면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문학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다. 아니, 단순한 것이 실은 복잡한 것임을 끈질기게 지켜보는 일이다. 진실은 단순한 것이라는 말이 있지만, 진실은 복잡한 것이라는 말도 맞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확장되고 심화된 상상력이 없다면, 복잡다기한 삶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새로운 세계를 열어 밝히는 은유의 힘”이라는 글에서 말씀드린 대로, 당대나 지금이나 당신의 성경 해석이 그토록 새롭고 혁신적인 가르침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신의 권위가 실린 말씀에다 성화된 상상력에서 비롯된 온갖 비유와 스토리 때문이 아닐까요? 상상력이 결여된 예수님의 말씀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마태복음 7:28-29).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인문학적 상상력을 개발하셨을까요? 그 방식은 분명히 우리와는 달랐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 주위에는 온갖 인문학 서적들이 곳곳에 널려 있지만, 당대에는 어느 누구도 그런 사치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열악한 상황을, 예수님께서는 치열한 관찰과 ‘앉기, 듣기, 묻기, 나누기, 답하기’라는 자기주도학습으로 극복하셨습니다. 그렇게 당신만의 인문학적 연찬 과정을 거친 게 바로 공생애 전의 30년 기간이었습니다.
성경 본문 읽기와 신학적 소양 쌓기에 있어 인문학은 적이 아니라 필수적인 우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문학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인문학을 선용하여 그 크낙한 감성적, 지적, 영적 혜택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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