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아(我)-나를 알라

인생의 유래와 유산을 열어 밝히는 공적(公的) 서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3)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1. 4. 9.

인생의 유래와 유산을 열어 밝히는 공적(公的) 서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3)

 

-증기 해머 같은 인물이 남긴 위대한 유산-

이 작품 증에 “엄청난 유산”은 남기지 못했지만 진정한 “위대한 유산”을 후 세대에게 물려준 이가 한 사람 등장합니다. 핍의 매형인 조 가저리입니다. 그는 핍이나 다른 하층 계급 사람들처럼 어려운 환경 가운데 자랐습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맞고 자란 탓에 교육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고되게 일만 하고 노예 같은 대접을 받고 착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생전에 마음의 평화라고는 단 한 차례도 얻지 못했던 여자”(a woman drudging and slaving and breaking her honest heart and never getting no peace in her mortal days)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어머님의 모습을 접했기에 조는 여자 곁에서 엇나가는 행동을 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핍의 누나에게 그토록 심한 구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감내하고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해 준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는 늘 처남인 핍을 도와주고 위로해 주려고 했습니다. 누나 외에 다른 가족들은 다 사망하고 누나가 키우던 핍을 데려와서 자기 집에서 함께 지내도록 제안한 것도 그였습니다. 자기가 매형이었지만 티 하나 내지 않고 핍을 평등한 친구로 지내면서 그의 필요들을 채워주었던 그를 핍이 존경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조의 됨됨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입니다. 한번은 동네 술집에서 핍이 조와 함께 있을 때 손님 중 한 사람이 핍에서 은화 하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그 은화를 싸고 있는 것이 1파운드짜리 지폐 두 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자, 조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것을 돌려주려고 술집으로 내달렸습니다. 핍이 미스 해비셤 집을 방문하기 시작한 후에 상심한 마음 탓에 그녀에 대해 듣기 원하는 가족들과 조 삼촌인 펌블추크에게 거짓말을 지어 낸 것을 알고, 조는 심각하게 조언해 줍니다. 거짓말은 그 왕초에 해당하는 악마에게서 비롯되어 돌고 돌아 다시 같은 놈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 후, 굽은 길을 통해서는 비범한 신분에 도달할 수 없고 오로지 올바른 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역설하면서, “그러니까 더 이상 거짓말은 하지 마, 핍. 그리고 잘 살다 행복하게 죽으라고.”(So don’t tell no more on ’em, Pip, and live well and die happy.)라고 덧붙입니다.

 

그래서이겠지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핍은 자기가 말하는 모든 일들의 공이 바로 조에게 있다고 고백합니다. 자기가 그 답답한 집에서 가출하여 군인이나 선원이 되지 않은 것도, 자신의 성실 때문이 아니라 조의 성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어느 정도 열의를 품고 대장간에서 일한 것도 자기의 근면 때문이 아니라 조의 근면과 본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감동적인 선언을 합니다.

 

“사랑스럽고 정직한 심성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어떤 사람의 영향력이 세상에 얼마나 멀리 퍼져 날아가는지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영향력이 바로 자기 옆을 지나가면서 자신의 자아를 어떤 식으로 건드리는지 아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내 도제 생활에 혹시 어떤 이익이 뒤섞이게 되었다면 그건 소박하게 만족할 줄 아는 조로 인해 생겨난 것이지, 들뜬 열망만 잔뜩 품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나로 인해 생겨난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It is not possible to know how far the influence of any amiable honest-hearted duty-doing man flies out into the world; but it is very possible to know how it has touched one’s self in going by, and I know right well that any good that intermixed itself with my apprenticeship came of plain contented Joe, and not of restlessly aspiring discontented me.)

 

즉 호의적인 태도와 정직한 심성으로 맡은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가는 사람이 장래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그의 영향력이 어떠한 범위까지 미치게 될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파장을 느끼고 그 사람의 영향을 받은 본인만큼은 자기 자아에 어떠한 변화가 이루어졌는지 확실히 깨닫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삶 속에서 맺힌 어떠한 선한 열매나 긍정적인 산물도 그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조는 자분지족(自分知足)의 달인입니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기 자리를 충실하게 감당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을 평생 살아왔습니다. 핍이 런던으로 떠나면서 비디에게 조를 부탁하면서 조가 공부하는 일(learning)과 예절(manners)을 개발할 기회가 생기면 도와주라고 말했을 때, 비디와 논쟁이 잠시 벌어집니다. 아저씨 예절이 충분하지 않냐고 비디가 응수하자, 핍은 자기가 유산을 다 물려받고 난 후 조를 “좀 더 고상한 분야”(a higher sphere)로 옮겨두는 날이 오게 되면 조의 현재 예절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합니다. 그때 비디가 한 말이 주목거리입니다.

 

“아저씨는 아마 자긍심이 너무 강해서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는 자리, 그것도 존중받으면서 잘 메우고 있는 그런 자리에서 누가 자신을 빼내려고 하는 일은 허락하지 않으실지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저씨가 정말 그러실 거라고 생각해. 분명히 네가 나보다 아저씨를 훨씬 더 잘 알 테니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주제넘은 것 같긴 하구나.” (He may be too proud to let any one take him out of a place that he is competent to fill, and fills well and with respect. To tell you the truth, I think he is; though it sounds bold in me to say so, for you must know him far better than I do.)

 

즉, 조는 자기 능력과 자기 위치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가 설득하고 권유해도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생이란 너무나도 많은 부분들이 하나로 용접되어 결합된 구성물”(life is made of ever so many partings welded together)이란 그의 인생관과 같은 맥락을 이루는 자세입니다. 그는 누군가는 대장장이(a blacksmith)로, 다른 누군가는 금세공업자(a goldsmith) 혹은 구리 세공업자(a coppersmith)로 부름 받았다고 믿었기에 그 소명을 수용하고 만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생각이 자신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올바르기 원하는 심정에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도 그는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스 해비셤의 메시지를 전해주러 런던까지 찾아왔다가 곧바로 돌아가면서 직업을 소명으로 인식하는 이러한 자신의 인생관을 남기고 떠나는 조를 보며 핍이 이렇게 고백하지요.

 

“그에게 소박하나마 위엄이 깃들어 있다던 내 생각은 틀린 게 아니었다. 이런 발언을 할 때 그가 입고 있던 복장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천국에서도 방해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I had not been mistaken in my fancy that there was a simple dignity in him. The fashion of his dress could no more come in its way when he spoke these words than it could come in its way in Heaven.)

 

마지막으로 조는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전범을 보여줍니다. 황갈색 곱슬머리에 푸르스레한 눈을 가진 미남(“a fair man”)인 그는 오랫동안 대장장이 노릇을 했기 때문에 그 몸이 근육질로 구성되어 있어 조가 살던 동네에서 그와 싸워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핍이 조를 “힘에 있어서나 약점에 있어서나 헤라클레스를 닮은 남자”(a sort of Hercules in strength, and also in weakness)라고 묘사한 게 빈 말이 아닙니다. 언젠가 조의 대장간에서 일하던 올릭이라는 비열한 청년이 조와 핍의 누나가 언쟁하는 상황에서, 조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대들고 그녀를 비웃다가 조와 한판 붙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올릭은 석탄재 더미에 처박히고 말지요.

 

그렇지만 그는 핍의 누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삽니다. 온갖 조롱과 모욕에다 손찌검 당하기도 하고 머리털이 잡히기도 하지요. 키가 크고 뼈대가 굵은 데다 쉰 명의 핍과 쉰 명의 가저리가 있어도 바로 요절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핍의 누나가 두려워서 그랬겠습니까? 어릴 때 어머니가 고되게 일만 하고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던 모습을 떠올리며 핍의 누나를 불쌍히 여긴 것이지요. 조는 자기를 구박하는 데 도가 튼 이 여인을 어여쁜 외모를 가진 여자(a fine figure of a woman)로 여기면서 함께 고통당하던 동지인 핍에게 누나의 결점을 너그럽게 눈감아 주기를 부탁하지요.

 

이런 양면성을 지닌 조를 핍이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한 곳 있습니다. 변호사 재거스가 핍이 유산을 상속 받아 런던으로 진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는 상황에서였습니다.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고 탄탄대로가 열리는 핍의 처지를 두고 조는 너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슬픔을 가누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장장이의 근육질 팔을 내밀고 그 넓은 가슴을 들썩이고 목소리가 잦아들면서”(with your muscular blacksmith’s arm before your eyes, and your broad chest heaving, and your voice dying away) 조가 떨리는 손길을 핍의 팔과 어깨에 올려놓자, 핍은 그것을 “천사의 날갯짓처럼”(as if it had been the rustle of an angel’s wing) 느낍니다. 핍은 “그때 이후로 종종 그가 힘과 부드러움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어떤 사람이든 박살을 내버릴 수 있으면서 동시에 달걀 껍질도 살살 두드릴 수 있는 증기 해머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I have often thought him since, like the steam-hammer that can crush a man or pat an egg-shell, in his combination of strength with gentleness.)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로 살아가고 자신의 소명인 대장장이의 직에 충실하면서 ‘증기 해머’와 같은 외강내유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조 가저리는, 막대한 재산을 갖고 있던 그 어떠한 재력가가 선사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을 우리 모두에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 재물만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핍이 조를 “저 착한 그리스도인(this gentle Christian man)이라고 부른 것처럼, 그야말로 그는 비범한 품위(Uncommon Decency)를 지닌 신사 그리스도인(a Christian gentleman)입니다. 그렇다고 조가 그렇게 살아온 자기를 봐 달라고 누구에게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묵묵히 그 튼튼한 손과 과묵한 입과 따뜻한 가슴으로 해갔을 뿐”(ever did his duty in his way of life, with a strong hand, a quiet tongue, and a gentle heart)입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에 나오는 대화 한 자락이 그의 삶을 그대로 대변해 줍니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요구하지 않아.”(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라이프”(Life) 지에서 네거티브 필름 관리자로 일하고 있던 월터가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찍은 ‘25번째 필름’을 찾기 위해 히말라야까지 그를 찾아갔을 때, 눈표범(snow leopard)을 찍기 위해 며칠을 눈 속에서 지내며 기다리고 있던 그가 내뱉은 말입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존재를 찾아내려면 비범한 수고가 필요한 법입니다.

 

-거울 앞에 선 여인의 통곡과 참회-

주인공의 핍을 중심에 두고 볼 때 그에게 ‘엄청난 유산’을 안겨 준 사람은 매그위치였고, ‘위대한 유산’을 선사해 준 사람은 조였습니다. 그렇지만 ‘엄청난 유산’을 남겨준 것처럼 가장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새티스 하우스의 주인인 미스 해비셤입니다. 그녀는 대장장이로 평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던 할 핍의 인생의 궤도를 최초로 수정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식 날 모든 게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랑은 나타나지 않고 달랑 편지 한 장 남겨 두고 사라져 버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어야 했던 신부 미스 해비셤은 “미칠 듯한 분노와 퇴짜 맞은 애정과 상처 입은 자존심”(her wild resentment, spurned affection, and wounded pride) 때문에 그 이후로 “햇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a woman who has never seen the sun)로 살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에스텔라를 양녀로 키우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고아나 다름없는 핍을 선택하여 자기 집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도록 시킵니다. 그가 방문하면 자기의 양딸인 에스텔라가 그와 함께 카드놀이하며 지내는 과정을 보고 즐깁니다. 핍을 부추겨 에스텔라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그녀를 사랑하도록 재촉하기도 합니다. 아직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핍은 자기를 무시하고 짓밟는 에스텔라의 태도로 인해 자기를 비하할 뿐 아니라, 그렇게 비천한 처지에 놓인 자기가 그녀를 사랑할 수가 없어 고뇌합니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미스 해비셤은 핍에게 계속 당부합니다. “저 애를 사랑해라. 만약 저 애가 네게 호의를 보이면 저 애를 사랑해라. 만약 저 애가 네게 상처를 준다 해도 사랑해라. 만약 저 애가 네 심장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해도-네 심장은 네가 더 나이가 들어 튼튼해질수록 더 깊게 찢어지겠지-저 애를 사랑해라!”(Love her, love her, love her! If she favours you, love her. If she wounds you, love her. If she tears your heart to pieces,—and as it gets older and stronger it will tear deeper,—love her, love her, love her!)

 

이런 그녀가 마치 핍에게 유산 상속을 해 준 사람인 것처럼 처신했을 때, 핍은 자기와 에스텔라가 나중에 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착각으로 오랜 세월 동안 헛된 희망을 품고 부질없는 일을 추구하는 중에 격심한 심적인 고통을 당합니다. 핍의 착각은 그와 에스텔라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해비셤이 자기 두 사람에 대한 계획이 있다고 기대했기에, 핍은 에스텔라가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여 그녀에게 사랑 고백하기를 미루어왔던 것입니다. 정작 핍이 사랑을 고백하자 에스텔라는 그저 냉담하게 반응할 뿐입니다. 사랑이라는 낱말의 의미는 알고 있지만, 핍의 말이 자기 가슴에 전혀 와 닿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말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대꾸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핍이 “비열한 놈”(Such a mean brute), “짐승 같은 놈”(a brute)이라고 여기는 드러믈과 결혼할 예정이라고 말합니다.

 

핍은 이 결혼이야말로 해비셤의 술책이라고 공언합니다. 사랑하는 남자들에게 “최대한의 모욕과 경멸”을 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에스텔라를 드러믈에게 주어 버리려 한다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들은 에스텔라는 왜 무례하게 어머니의 이름을 들먹이냐고 핍에게 핀잔을 주면서, 그건 자기가 알아서 결정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고백에도 물러서지 않고 핍은 에스텔라에게 자기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 일부요, 그녀를 처음 만난 후부터 자기가 읽은 모든 책과 자기가 봤던 모든 풍경 속에 있었다면서, 그녀는 그동안 자기 “마음이 알게 된 모든 우아한 공상이 구체화된 존재”였다고 고백하고는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지요. 바로 그때 에스텔라는 믿기 어렵다는 듯이 놀란 얼굴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해비셤의 독특한 모습이 핍의 기억에 인상 깊게 남습니다. 그녀가 “여전히 가슴에 한 손을 얹고 나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면서 연민과 회한이 가득 깃든 유령 같은 얼굴로 변해 가던 모습입니다.”(the spectral figure of Miss Havisham, her hand still covering her heart, seemed all resolved into a ghastly stare of pity and remorse)

 

핍의 기억에 남은 해비셤의 ‘연민과 회한의 표정’이 급기야 그녀의 놀라운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나중에 그녀가 불러 찾아간 핍에게 그녀는 수첩 하나를 주면서 거기에 있는 자기 이름 밑에 “나는 그녀를 용서합니다.”(I forgive her.)라고 써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해 드릴 수 있다고 답변하는 핍 앞에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이냐!”(What have I done!)라는 고백을 수없이 되뇌며, 자기 두 손을 비틀고 흰머리를 마구 뭉개고 급기야 핍의 손 위에 머리를 떨어뜨리고는 울음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핍이 도무지 접해 보지 못한 장면이었습니다. “예전에 네가 그 애에게 고백할 때까지, 그리고 바로 네 모습을 통해 한때 내가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느꼈던 모습을 거울에 비춘 듯 보게 될 때까지, 나는 내가 저지른 짓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이냐!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이냐!”(Until you spoke to her the other day, and until I saw in you a looking-glass that showed me what I once felt myself, I did not know what I had done. What have I done! What have I done!) 결국 에스텔라를 향한 핍의 사랑 고백이 미스 해비셤을 그 깊은 슬픔과 증오의 잠에서 깨운 것입니다. 진실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핍 안에서, 이전에 순수한 사랑으로 충일했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울을 발견하고는 그 이후 그 모습이 영악하게 뒤틀린 심성으로 타락해 버린 실상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렇지만 핍은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그녀의 마음에서 자기는 쫓아내도 상관없지만, 에스텔라는 경우가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백 년 동안이나 과거를 슬퍼하는 것보다는, 그녀가 빼앗아 버린 에스텔라의 선한 본성의 일부를 그 한 조각이라도 본래 상태로 되돌리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도전한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 해비셤은 자기 마음속에 새롭게 돋아난 “여성다운 진지한 동정심”(an earnest womanly compassion)이 깃든 애정으로 대답합니다. “얘야! 내 말을 믿어 다오. 사실 그 애가 처음 내게 왔을 때 나는 그 애를 나와 같은 비참한 불행으로부터 구해 줄 생각이었단다.”(My dear! Believe this: when she first came to me, I meant to save her from misery like my own. At first, I meant no more.) 그런데 에스텔라가 점점 더 아름다워지자, 몹쓸 짓을 하기 시작하여, “그 애의 심장을 몰래 훔쳐 내고 그 자리에 차디찬 얼음을 채워 넣었다.”(I stole her heart away, and put ice in its place.)라고 자백합니다.

 

이런 갑작스런 참회의 장면을 접한 핍은 너무나 난감했습니다. 미스 해비셤이 에스텔라를 양녀로 입양한 이후에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한 복수의 수단으로 그녀를 양육하는 가혹한 짓을 저지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나간 세월 동안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켜 버림으로써 깊은 수심에 빠진 그녀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는 길을 마다한 채 “교묘하고 영악하고 뒤틀린 심성”(a perversion of ingenuity)으로 병들어 왔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외칩니다. “파멸에 빠져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심히 부적합한 자의 모습으로, 헛된 참회와 헛된 후회와 헛된 자기 비하,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저주가 되어 버린 다른 모든 헛된 망상들과 같은 헛된 슬픔이 지배적인 광증이 되어 그것에 사로잡힌 그녀를 내가 어찌 동정심 없이 바라볼 수 있었겠는가?”(could I look upon her without compassion, seeing her punishment in the ruin she was, in her profound unfitness for this earth on which she was placed, in the vanity of sorrow which had become a master mania, like the vanity of penitence, the vanity of remorse, the vanity of unworthiness, and other monstrous vanities that have been curses in this world?)

 

즉 그녀의 심성이 교모하게 뒤틀려 버려 이 세상에서 저주 거리인 온갖 망상에 사로 잡혀 살고 있었지만, 그 망상 가운데 ‘지배적인 광증’은 바로 ‘헛된 슬픔’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슬픔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데 영향을 주는 수많은 것들”(a thousand natural and healing influences)을 저버렸기에 “창조주께서 정한 질서에 역행하는 모든 정신이 반드시 으레 그러하듯”(as all minds do and must and will that reverse the appointed order of their Maker) 병들어 버렸다는 것이지요. 결혼식 당일에 결혼이 파투가 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줍니다. 그것도 신랑, 신부가 예복을 다 차려 입고 하객들이 결혼식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에 이루어진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가해지는 충격의 정도를 가늠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스 해비셤의 경우입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고 깊은 동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지만, 인생에서는 그러한 상황보다 더욱 참혹하고 절망스러운 일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컨대 다음 주(4월 16일)면 또다시 추념하게 되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비견될 수 있는 절망스러운 사태가 또 무엇이 있을까요? 그저 할 말을 잃게 될 뿐이지요.

 

그렇습니다. 충격적이고도 절망스러운 슬픔을 당한 당사자에게는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뿐 아니라 미스 해비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제게 닥친 소소한 슬픔 거리들의 경우에도 그러했다면, 하물며 그분들의 경우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가 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 뜻과는 무관하게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있는 우리 인생사에는, 우리의 잘못으로든, 천재지변으로든, 타인의 잘못으로든 어떠한 불행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고 우리는 여하한 슬픔 가운데 처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평생을 아무런 슬픔 거리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슬픔은 인생의 변수가 아닌 상수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슬픔을 치유해 주는 자연적인 방식이 무수히 존재할 뿐 아니라, 인생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가 엄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픔을 당할 때 이러한 자연적인 치유의 길들을 향해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예컨대 헤르만 헤세가 언급했듯이, 구름과 바람도 슬픔에 잠긴 우리를 치유해 줄 수 있습니다. “고통과 슬픔에 깊게 상처 입은 나를 마침내 치유해 준 건 흔들리며 흘러가는 구름과 볼을 찌르는 차가운 바람이었다.” 해비셤이 자기 방 창문에 드리워진 커텐을 열어 젖히고 자기 방 문을 박차고 나와 들판으로 나아갔다면, 그 치유의 구름과 바람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우리 인생을 선하고 아름다운 섭리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해야 합니다. 이런 길을 마다하고 슬픔 가운데만 거하겠다는 것은 헛된 망상입니다. 슬플 때 마음껏 슬퍼하더라도 우리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이 ‘지배적인 광증’에 사로잡혀선 안 됩니다. 치명적인 슬픔을 당했다고 그 슬픔 가운데 머무는 결과는 거미와 쥐와 바퀴벌레가 판치는 곳에서 시간만 보내는 유령 같은 존재로 변모할 뿐이라는 진실을 미스 해비셤이라는 반면교사가 똑똑히 일러 줍니다.

 

-내 삶을 영원히 변화시킨 날-

“그날은 내게 기억할 만한 날이었다. 내게 큰 변화를 만들어 준 날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인생에서 하루를 선택하여 삭제한다고 상상해 보고, 그러고 난 후 그 인생행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독자여, 글 읽기를 멈추고 쇠로 만들어졌건 황금으로 만들어졌건 가시로 만들어졌건 꽃으로 만들어졌건 간에, 당신을 얽어매고 있는 긴 사슬이 만약 그 제일 첫 번째 연결 고리가 어떤 기억할 만한 날 맨 처음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결코 당신을 꽁꽁 얽어매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잠시 생각해 보라.” (That was a memorable day to me, for it made great changes in me. But it is the same with any life. Imagine one selected day struck out of it, and think how different its course would have been. Pause you who read this, and think for a moment of the long chain of iron or gold, of thorns or flowers, that would never have bound you, but for the formation of the first link on one memorable day.)

 

핍의 삶에 이렇게 큰 변화들을 낳은, 기억할 만한 이 날은 언제일까요? 해비셤 집을 처음 방문한 날이었습니다. 충분하다(enough)는 의미로 “새티스”(Satis)라는 이름을 가진 그 집에서, 차갑고도 도도하게 자기를 업신여기는 에스텔라와,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찢어진 가슴을 안은 채 시체처럼 홀로 앉아 있는 괴이한 미스 해비셤을 만난 날이었지요. 에스텔라가 하도 핍을 무시하고 창피를 주어서, 그가 그녀 몰래 울음을 터뜨리며 담벼락을 발로 차고 머리를 마구 쥐어뜯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날이 핍에게는 그의 인생행로를 결정지어 준 중대한 날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이겠지요. 핍은 이 날을 돌이켜 보면서 그 날이 그의 장래의 삶을 얽어매게 될 긴 사슬의 첫 연결 고리가 만들어진 날로 여깁니다. 그러면서 그 고리의 종류가 쇠냐 혹은 황금이냐, 가시냐 혹은 꽃이냐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이런 날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어느 특별한 날에 발생하거나 이루어진 일이 매개가 되어 오랜 기간 동안 그것과 연관된 것들을 계속 이어 경험하게 되는 일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므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예컨대 담배를 처음으로 입에 문, 기억할 만한 그 날로 인해 수십 년간 흡연의 쾌락과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떠안고 가야 하지요. 그리고 이영미 출판 에디터가 어느 날 동네에 있는 수영장 새벽반 코스에 등록한, 기억할 만한 그 날로 인해 자전거로 3박 4일 동안 부산에서 서울까지 국토 종주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10번 완주하며, 철인 3종 경기 선수로 거듭나는 역사가 이어지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첫 흡연 경험은 쇠나 가시 사슬의 첫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첫 수영 경험은 황금이나 꽃 사슬의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내 여생의 첫 날인 오늘, 평생 길게 이어질 황금 사슬이나 꽃 사슬의 첫 연결 고리를 한 가지 마련해 보는 게 어떨까요?

 

-다양한 문학 양식이 작동되는 공적 서사-

테리 이글턴은 이 소설에 대해 논평하면서 이 소설 속에 다양한 문학 양식이 작동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 소설은 우선 성장 소설(Coming-of-age novel)에 속합니다. 즉 주인공인 핍의 교육이나 정신적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전체적인 틀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판타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 해비셤 같은 인물은 우리 이웃이나 쇼핑몰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신화나 동화의 요소들도 볼 수 있지요. 미스 해비셤은 처음에는 관대한 요정처럼 등장하지만 실상은 사악한 마녀였으니까요. 해비셤(Havisham)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이런 면모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즉 그 이름은 Have[=갖다]와 Sham[=가짜, 사기]의 합성어로서 소유하려는 욕망의 허망함을 가리킵니다. 에이블 매그위치(Abel Magwitch)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유능한(able) 마법사(witch)로서 비천한 처지에 놓인 소년을 왕자 같은 신사로 변형시킬 수 있었지만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지요. 

 

그리고 이 소설은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으로서 19세기 산업 혁명 시기 이후에 전개된 복잡다단하고 척박한 사회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당시의 부부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사회 계층별 삶의 실상, 노동의 의미와 그 영향력, 아동들의 비참한 삶의 양태 등이 절절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조 가저리 부모의 결혼 생활이나 조 부부의 부부 관계를 통해서 당시 하층 사회에 속한 부부들이 영위하는 결혼 생활과 자녀 교육의 단면을 접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유한 계급인 신사들이 생산적인 직업과는 거리를 두면서도 교양과 예술 활동을 여유롭게 즐기는 데 몰두하는 모습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재거스처럼 자기 직업에 올인하는 경우도 있고, 웨믹처럼 공적인 일과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추구하는 사례도 있지만, 조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기 본분인 노동 현장을 지키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밝혀 줍니다. 게다가 당시의 아동들이 끊임없는 어른들의 손찌검과 매질을 당하면서 일상적으로 학대당했을 뿐 아니라 아이들은 날 때부터 악하다는 ‘복음주의적 성향’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모습도 다각도로 그리고 있습니다. 변호사 재거스가 접한 아동들의 삶의 실상에 대한 묘사는 아동들과 범법자 간의 유사점을 절절하게 담고 있기도 하지요. 

 

그래서이겠지요. 이 글을 읽는 내내 마사 누스바움이 인용한 월트 휘트먼의 글귀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는 미국 내의 정치를 논의하는 글 속에서 문예가(literary artists)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묘사를 합니다. 기본적으로 문예가는 현실적으로 참여가 많이 요청되는 존재(the literary artist is a much-needed participant.)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다양성의 중재자”(the arbiter of the diverse)이며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자”(the equalizer of his age and land)라고 역설합니다. 시인의 넓은 상상력이 “남자들과 여자들을 꿈(dreams)이나 점(dots)으로 보지 않는” 대신 “남자들과 여자들 안에서 영원을 보기”(sees eternity in men and women)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스바움은 공적인 시(public poetry)가 필요하다는 휘트먼의 요구가 그의 시대뿐만 아니라 현 시대에도 적절하다고 논평합니다. [Martha C. Nussbaum, “Poetic Justice: The Literary Imagination and Public Life”]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 '시'라는 장르에 속하지는 않지만, 휘트먼이 기술하는 공적인 역할과 기능을 감당하는 탁월한 문예 작품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공적인 삶과 연관된 문학적 상상력의 과제에 대해 헨리 제임스가 지향한 입장을 구현한 작품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합니다. 즉 “그 어떠한 것보다 더 나은 기쁨이 없을 때, 최상의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고귀하고 구현 가능한 경우를 상상하는 것이다.” (To "create the record, in default of any better enjoyment of it: to imagine, in a word, the honourable, the producible case.", 상기 책) 이 최상의 것이 당장의 현실 속에서 두루 수용되거나 구현되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아름다운 존재가 추한 존재 옆에 나란히 서 있듯이, 이 최상의 것이 조악한 것과 둔감한 것 곁에 내내 서 있기만 한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정의와 탁월성을 잊지 않고 상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기만에서 탈피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묵묵히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다 왕이 된 후에도 호비트에게 절할 줄 아는 아라고른, 빅 브라더에 맞서 고독의 시대를 감내하는 윈스턴,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다 108명이나 되는 무도한 자들과 맞짱을 뜨는 오디세우스, 사후무사를 계시하는 햄릿, 품위 있는 호머/마커스/매콜리 부부/스펭글러, 뗏목 모험인생의 자유를 구가하는 허클베리 핀, 천직 수행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산티아고,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진실을 삶으로 구현하는 유로지비 미쉬낀 공작. 증기 해머같은 신사 그리스도인 조 가저리. 이런 인물들이 우리의 상상 속에 살아 숨 쉬면서 조악하고 비열한 현실과 나란히 서 있는 한,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함께 더불어 갈망하고 추구하는 우리의 여정은 이 세상 끝날까지 내내 이어질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