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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我)-나를 알라

인생의 유래와 유산을 열어 밝히는 공적(公的) 서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2)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1. 4. 6.

인생의 유래와 유산을 열어 밝히는 공적(公的) 서사,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2)

 

-자기 존재의 신비로운 근원-

“위대한 유산”(1861년)은 유산을 전수해 주는 사람만큼이나 그 유산을 받는 사람들의 처지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유산이 갖는 양면성 때문이겠지요. 먼저 유산을 물려받은 핍의 경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핍은 일곱 살 난 어린이로서 부모 얼굴도 모른 채 다섯 명이나 되는 형제도 다 죽었고 홀로 남은 결혼한 누나와 함께 살면서 누나의 온갖 조롱과 학대를 받으며 자랍니다. 많이 맞기도 하지만, 매형인 조와 누나의 “결혼 생활에 사용되는 날아다니는 병기”(a connubial missile) 역할도 감수합니다. 조를 제외하면 주위에 있는 친척과 이웃들도 그를 무시합니다. 6펜스 잔돈 취급도 당하고, 집에 찾아온 손님들이 뾰족한 창끝으로 찔러 대는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하는 신세입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을 기회도 없었으니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글귀를 오해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제 생애의 모든 날들 동안 같은 길을 걷겠습니다.”(I was to ‘walk in the same all the days of my life,’)라는 서원을 특정한 방향으로만 가야 한다고 이해하거나, "핍의 누나는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다"(Your sister is given to government)고 조가 하는 말을 누나가 정부에 넘겨졌다고 이해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이러던 중 불려 간 미스 해비셤 집에서조차 에스텔라의 멸시와 조롱을 받을 뿐 아니라 뺨도 얻어맞으며 지내게 되지요.

 

핍에게 유산을 안겨준 매그위치는 어떨까요? 그는 자기가 태어난 곳도 모른 채 자라나 짐수레에 실려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매질도 당하고 족쇄를 차고 지내며 개한테 물리며 살아왔습니다. 자기를 돌봐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두려워하면서 내쫓거나 강제로 잡아 가두는 경험을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끝도 없이 붙잡혀 감금되어 지냈기 때문에 그러한 처지가 일상생활이 된 채로 성장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는 신세로 이미 상습범이라는 딱지가 그에게 붙어 버렸으므로, 사람들은 자기를 두고 평생 감옥에서 살 팔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늘 그에게 반감을 품은 채 악마가 어쩌고저쩌고하며 떠들어 댔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구걸이나 도둑질도 했고 기회가 생기면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일감을 주는 이들은 극히 적었습니다. 그 일감도 돈은 안 생기면서 고생만 죽도록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던 중 인정이란 찾아볼 수 없고 죽음처럼 냉혹한 인간인 콤피슨이라는 사기꾼을 만나 그의 비열한 노예가 되어 그의 손아귀 안에 든 가엾은 도구 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죽도록 일만 했지만 그에게 계속 빚을 지게 되어 그의 손아귀에 쥐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와 지낸 기간이 그 이전에 보낸 그 어떤 시절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훔친 은행권들을 유통시킨 혐의로 체포된 후에, 콤피슨은 그에게 모든 죄를 다 덮어 씌운 채 자기만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더구나 그 사건을 심리하던 법정에서 그는 교육 잘 받고 지체 높은 신사의 모습을 하고 앉아 있는 콤피슨과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비천한 처지에 놓인 자기를 차별하는 억울한 과정을 겪게 되지요. 그리하여 콤피슨에게는 7년, 그에게는 14년이 선고됩니다. 그 이후에 콤피슨과 같은 감옥선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는 기회를 노려 콤피슨을 실컷 두들겨 팹니다. 그것으로 인해 배 밑 징벌방에 있다가 탈옥을 시도하여 강기슭까지 도망치고 교회 묘지로 들어갔던 중에 어린 핍을 만나게 되었지요. 이때 그곳에서 콤피슨을 다시 만나 싸우다 체포되어 종신형을 언도받고 뉴사우스웨일즈로 유형 가게 됩니다. 또다시 탈출하여 런던으로 와서 핍과 만나 생활하던 중 다시 붙잡혀 결국엔 교수형까지 언도되지요.

 

당시에 핍과 매그위치만 이렇게 특별한 경험을 했을까요? 19세기 당시의 영국에서 아이들은 천대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즘과 같이 무료 교육과 무상 급식의 혜택에다 매달 수당까지 지급해 주면서 어린이들의 다양한 필요들을 채워 주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나는 세상이었습니다. 핍이 고백한 대로 당시 “비천한 노동자 집안 아이들”(a common labouring-boy)은 “천박한 하층민의 생활 방식”(a low-lived bad way)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충 잡아 1760년에서 1820년까지 진행된 산업혁명 기간 이후에 영국에서는 점차적으로 자유방임 경제 정책이 자리 잡으면서 노동자들의 삶은 매우 비참해졌습니다. 자본가들이 값비싼 숙련 성인 노동자 대신 값싼 부녀자나 아동을 고용하여 그들의 노동을 착취했던 것이지요. 시끄럽고 냄새나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이들은 매일 14~16시간씩 부여된 작업을 반복해야 했으니까요. 물론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합하여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운동을 전개해 나감으로써, 공장법이나 노동조합법이 제정되고 선거법이 개정되는 열매를 낳게 되었지만, 당시의 노동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핍의 후견인(guardian)을 자처한 변호사 재거스가 묘사한 당시의 사회상 가운데 아동의 처지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의 사회를 죄악으로 가득 찬 환경으로 인식하면서,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아이들에 대해선 그들 중 “수많은 아이들이 확실한 파멸에 빠지기 위해 태어난 거라는 사실뿐”(all he saw of children was their being generated in great numbers for certain destruction)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가 “형사 법정에 구경거리처럼 세워져 재판을 받는 아이들의 모습”(children solemnly tried at a criminal bar, where they were held up to be seen)을 왕왕 접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매 맞고, 수감되고, 유배 가는 것뿐 아니라, 심지어 “교수형에 처해질 자격”(qualified in all ways for the hangman)까지 얻게 되어 결국 성장해서 교수형을 당하는 모습을 습관처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업무를 보면서 만나게 된 거의 모든 아이들이 “알에서 부화하여 그의 그물망에 걸리게 되는 물고기들로 자라나”(so much spawn, to develop into the fish that were to come to his net) 기소되어 변론받고 어떤 식으로든 사악한 존재로 변화될 것이라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지요. 재거스의 이런 묘사는 당시 아동들이 얼마나 열악한 사회적 환경 가운데서 생존해가야 했는지를 비추어주는 한 가지 거울입니다. ‘확실한 파멸’이 기다리고 ‘교수형에 처해질 자격’을 갖춘 ‘수많은 아이들’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 중 그 누구도 ‘자기 갈비뼈’에서 혹은 스스로 태어난 이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는 특정한 부모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특정 도시 혹은 지역에, 특정한 시기에,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어떤 사람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라는 존 던의 시구가 새로운 의미를 띠고 다가옵니다. 예컨대 우리 부모에게 폐 관련 병력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그것의 영향력이 미칩니다. 우리의 고르지 못한 치아가 우리 자녀의 치아 형성에도 영향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에 그것도 20세기 후반 이후에 태어났기에, 일제 강점기나 한국 전쟁이나 군사 독재 정권의 피해를 입지 않은 채 우리 부모 세대가 일구어 놓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내전 중인 시리아나 예멘, 그리고 군사 쿠데타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과는 차원이 다른 복을 누리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우리 중에는 현재 신체적인 질병이나 심리적인 고통이나 경제적인 압박으로 인해 날마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들이 겪는 질병이나 고통이나 압박이 전적으로 그들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경우도 왕왕 존재합니다. 가정적인 특수 환경이나 사회적인 악조건이 빚어낸 경우들일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관건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있는 것 중에 우리 자아에게 낯설고 불쾌한 것들, 즉 우리가 만들지 않은 역사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엄존한다는 점을 깨닫고 인정하는 일입니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이 왕왕 설파한 내용과 맥을 같이 하는 시각일 뿐만 아니라,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The Serenity Prayer’)에 포함된 안목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조국, 부모, 형제, 가정 형편, 사회 상황 및 우리 각자의 됨됨이와 역량을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진심으로 수용할 때,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과 기여할 수 있는 삶의 현장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유래에 담긴 신비를 인정하고 그 실상을 받아들여 우리의 신원으로 삼을 때야 비로소 우리 인생이 다음 세대에 전수해 줄 가치 있는 유산을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엄청난 유산으로 산산조각 난 인생의 배-

김명환 교수는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인 “Great Expectations”의 의미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은 ‘유산’ 자체가 아니라 ‘유산에 대한 큰 기대’이자 당시 사회에 만연된 물질적 기대감을 가리킨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더 옳은 한글 제목은 ‘막대한 유산’이라고 제안합니다. 이 작품 속에 동일한 표현이 등장하는 문맥 여덟 군데를 살펴보면 이 제안이 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을 보세요. 변호사 재거스가 핍과 조에게 유산 상속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상황입니다. “자, 다시 이 어린 친구 얘기로 돌아갑시다. 내가 전해야 하는 사항이란 바로 이 친구에게 엄청난 유산 상속이 이뤄지게 되었다는 겁니다.”(Now, I return to this young fellow. And the communication I have got to make is, that he has great expectations.) 이 상황에서 이 표현을 ‘위대한 유산’이라고 번역한다면 어색하겠지요? 그렇지만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래로 ‘막대한 유산’이나 ‘엄청난 유산’으로 번역된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원제의 의미에 걸맞게 핍에게 전수된 유산은 ‘위대한 유산’이라기보다는 ‘막대한 불로소득’에 가까운 것으로서 처음에는 그에게 독이 되고 덫이 되었습니다. “대장간이 남자다움과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빛나는 길”이라고 믿었던 핍이 그 직업과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차에, 등장한 이 엄청난 유산은 일종의 현실 도피처가 되었습니다. 신사로서의 품위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다소 안락한 생활에서 더욱 사치스럽게 안락한 생활을 지향하게 되면서, 핍이 돈을 물 쓰듯 하게 되어 상당한 빚을 지는 지경까지 진전하게 된 것입니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 재거스가 예언한 대로였습니다. 핍의 낭비벽으로 인해 함께 지내던 무사태평한 허버트도 덩달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을 지출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소박한 삶이 타락하게 되어 그도 더 이상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근심과 후회의 감정이 밀려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핍이 우선은 그 엄청난 유산, 즉 그 막대한 돈의 유래나 의미를 오해했고, 둘째는 그 유산의 용도에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핍은 그 유산의 기원에 대해 착각하고 있었기에 그 돈의 의미를 오해했습니다. 매그위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유산이 미스 해비셤에게서 온 것으로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에게 선사된 유산 상속이 에스텔라를 자기 짝으로 정해준 미스 해비셤이 “엄청난 규모로 행운을 가져다주려는 것”(to make my fortune on a grand scale)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돈은 무기징역수인 범법자 매그위치가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번, 그의 피와 같은 돈이었습니다. 핍에 대해 한결같은 애정을 품은 채 오직 그의 은인이 되고자, 즉 그가 일 따위는 모른 채 평탄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목숨 걸고 모은 돈이었습니다. 핍이 이 돈의 출처와 의미를 알았다면, 즉 이 돈이 유복한 한 여성이 선사해 준 행운의 선물이 아니라 무기 유형수가 피땀 흘려 맺은 결실이었다는 점을 깨달았다면, 그는 이 돈을 물 쓰듯 펑펑 쓰기는커녕 애당초에 이 유산에 손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유산의 출처를 알았을 때, 핍은 결정적으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고, 그동안 “타고 항해해 왔던 배가 얼마나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는지 충분히 깨닫기 시작했다”(I began fully to know how wrecked I was, and how the ship in which I had sailed was gone to pieces.)는 핍의 말이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오해의 결과로 핍은 그 유산의 용도에 대해서도 무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엄청난 유산의 원래 용도는 핍이 신사가 되도록 성장하는 데 활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유산 소식을 가져온 변호사 재거스가 핍이 현재 살던 집을 떠나 신사 교육을 받는 것이 그 재산을 소유한 이의 바람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매그위치가 직접 자기 뜻을 밝힐 때에도 동일한 용도를 언급하지요. 자기는 비록 “하찮은 사회의 해충”(a mere warmint) 혹은 “사회의 해충 같은 인간쓰레기”(a warmint [=varmint나 vermin이란 단어의 변이형으로, 유해한 야생 동물이나, 비루한 존재로 인식되어 사회에 문제를 야기하는 사람을 일컬음])에 불과하지만, 자기 생명을 구해 준 핍을 신사로 길러 내고 있다는 자각을 자신의 은밀한 보상으로 설정해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핍에게 엄청난 양의 돈을 제공해주기는 했지만, 진정한 신사가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습니다. 핍이 ‘신사답게’(like a gentleman) 돈을 쓰는 게 그의 기쁨이었지만, 그 ‘신사답게’라는 것이 어떠한 상태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신사는 돈을 펑펑 쓰면서 사치스러운 것들에 길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허버트 어머니가 늘 손에서 놓지 않는 ‘신사록’(the red book [=귀족과 상류층 인사들의 인명과 주소를 실은 ‘웹스터 로열 레드북’])과 같은 책자 내용에 정통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 중에서 신사가 되는 길을 가장 잘 짚은 사람은 허버트 아버지인 매슈 포켓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핍이 런던에서 신사 수업을 받을 때 그를 지도해 준 스승이기도 했지요. 허버트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신사의 자질에 대해 중요한 점을 지적합니다. 무려 25년 전에 일어난 일 한 가지를 언급하면서 그때 아버지가 말씀한 내용을 상기했던 것이지요. 당시에 한 남자가 미스 해비셤에게 구애한 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그가 “겉만 번지르르한 허풍쟁이에다 그런 목적에 딱 맞는 종류의 인간”(a showy man, and the kind of man for the purpose)이라면서 그런 자를 신사로 오해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만일 그런 오해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한 신사가 아니라면, 세상이 생긴 이래 그 누구도 매너에 있어서 진정한 신사가 될 수 없다”(no man who was not a true gentleman at heart ever was, since the world began, a true gentleman in manner.)는 자신의 소신을 명백하게 밝힙니다. 이 소신에 덧붙이는 비유 한 가지가 그 의미를 더욱 열어 밝힙니다. “그 어떤 광택제도 나무의 결을 감출 수 없으며, 광택제를 더 많이 칠하면 칠할수록 나무의 결이 더 잘 드러난다”(no varnish can hide the grain of the wood; and that the more varnish you put on, the more the grain will express itself.)는 것입니다.

 

매슈 포켓이 제시하는 진정한 신사의 자질은 내적인 진정성에 기반을 둔 외적인 매너입니다. 세상이 생긴 이래 변함없이 지탱해 온 원리입니다. 광택제와 나무의 결 관계처럼 아무리 외적으로 치장하고 포장하더라도 그 내적인 자질을 감출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사의 면모를 애당초 에스텔라 때문에 신사가 되기 원한 핍이 깨달았을 리가 없었습니다. 무례하게도 자기를 그저 거칠고 비천한 아이로만 취급한 에스텔라의 눈에 들기 위해 외모상 그럴듯해 보이는 신사가 되기를 원했을 따름이었지요. 그렇지만 이런 그의 시각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는 그의 절친인 비디가 따끔하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녀는 핍이 신사가 되고 싶다는 게 에스텔라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인지 혹은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인지(“Do you want to be a gentleman, to spite her or to gain her over?”)를 따져 묻습니다. 모르겠다고 답변하면서 시무룩해 있는 핍에게 비디는 뼈아픈 조언을 해줍니다. 앙갚음을 위한 것이라면 그저 에스텔라의 말을 온전히 무시하는 것이 핍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고,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면 에스텔라는 핍이 환심을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대상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조언은 핍이 듣던 당시에도 명백한 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게 사실일지라도, 에스텔라를 지독하게 사모한다면서 얼버무리고 넘어가 버리지요.

 

사실상 비디가 제시한 조언은 핍도 인정했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현명한 사람들조차 매일 빠져드는 놀라운 모순”(wonderful inconsistency into which the best and wisest of men fall every day)입니다. 세상이 인정해 주는 신사나 군자나 유명인이나 셀럽이 되려고 하는 동기가 누군가를 염두에 둔 채 그(녀)에게 앙갚음을 해주기 위해서나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가장 뛰어난 사람들도 날마다 빠져드는 유혹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런 시도가 얼마나 모순적인 우행인지요. 한편으로는 복수를 꾀하면서 자신의 자존심이 손상되고 자신의 자아가 망가지니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시도가 환심을 살 만한 가치도 없는 대상에게 환심을 사려는 행동에 불과하니까요. 모순인 줄 알면서도 계속 그런 시도 가운데 빠져 있는 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to cheat myself)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된다면 핍의 다른 고백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기꾼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기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런데 나는 그런 터무니없는 구실들을 만들어 내면서까지 자신을 속인 사람이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All other swindlers upon earth are nothing to the self-swindlers, and with such pretences did I cheat myself. Surely a curious thing.) 한바탕의 보궐선거가 목하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구태의연한 사기꾼들이 또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들보다 더 참혹한 사기꾼은 바로 자신을 속이는 이라는 것입니다. 제 인생을 다시 돌아보는 소중한 조언이 되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