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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말

소개하는 말(2): 문맥 묵상으로 풀어 쓰는 성경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19. 8. 6.

소개하는 말(2): 문맥 묵상으로 풀어 쓰는 성경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성서 인문학”을 이루는 다섯 가지 영역, 즉 심(心), 아(我), 도(道), 시(時), 학(學) 외에 “문맥 묵상으로 풀어쓰는 성경”이라는 장이 이 블로그에 덧붙여져 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여 자주 읽고 공부하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장입니다. 지난 세월 동안 성경을 곁에 두고 읽으며 공부하던 중 제가 품고 있던 의문들을 풀어 가는 과정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들은 저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고국 방문했을 때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복음 전도 방식에 대한 말씀을 청년들에게 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뒤에서 말씀을 듣고 있었던 어느 장로님이 말씀을 나눈 뒤 나가는 저를 붙들고 고백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이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이 문제에서 해방시켜주었다.” 그분의 고백을 접하면서 언젠가 우리나라 성도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해 제가 이해한 바를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제야 그 기회를 잡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성경을 계속 묵상한 게 성경 본문을 이해해 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선은 묵상할 내용을 자주 상기하면서 다각도로 그 본문 내용을 관찰하려는 시도가 주효했지만 그 묵상을 효과적으로 이어가기 위해 조금씩이라도 기록하면서 진행해가는 게 퍽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그 묵상하는 본문의 문맥 이해가 그 본문 자체의 이해에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본문이 위치한 근접 문맥과 그것이 속한 장과 책이 일차적인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 책이 속한 구약 혹은 신약 상황도 관련 문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성경 전체 문맥을 고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학, 즉 J. I. 패커가 언급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an overall grasp of Bible teaching)가 아닐까 합니다. 각 성경 구절의 궁극적인 문맥은 성경 전체라면서 그 성경 전체란 총 66권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가르침(biblical teaching)도 포함한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성경 각 권을 잘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성경 전체의 가르침이 병행될 때 더 깊은 성경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신학이란 원래 성경 공부를 통해 귀납적으로 형성되어야 하고 항상 그 성경적인 기반에 근거하여 전달되어야 하지만 그 성경 공부라는 것도 반드시 신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근접 문맥이나 특정 본문이 포함된 장을 잘 살펴보기만 해도 특정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로마서 14:23)라고 하는 구절의 의미는 그것이 속한 로마서 14장 문맥을 관찰하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본문이 속한 책의 문맥을 고려해야 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후서 4:2)라는 말씀의 진의는 그 본문이 속한 디모데후서라는 목회서신의 문맥(성격)을 관찰할 때 밝히 드러납니다. 신약 혹은 구약 전체 문맥을 고려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당시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한 복음 전도 방식이 어떠한 것인지 이해하려면 그의 서신서를 두루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주제에 대한 다른 사도들의 가르침도 관찰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선교”나 “하나님 나라”와 연관된 성경 본문의 경우에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선교”라는 용어나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만 그 의미가 심오한 “하나님 나라” 라는 용어는 신학적인 기반과 이해가 없는 경우 상당한 오해와 곡해가 발생할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씀 묵상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중에 시편 119편 말씀을 읽다가 이전 한글 번역(“개역한글”)에는 보지 못한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라는 표현에 눈이 갔습니다. 흥미로운 표현이어서 이전 번역과 비교해보니 바로 “묵상하다”는 단어를 대체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 시편을 다시 읽어 보니 이 표현이 총 8회 등장했습니다(시119:15, 23, 27, 48, 78, 97, 99, 148). 그 구절들의 의미를 연결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주님 말씀을 묵상하게 되는 시발점은 당신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27절). 그 후에는 그 법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 그것을 묵상하려고 새벽녘에 눈을 뜨게 될 뿐 아니라 종일 묵상하게 된다(148, 97절). 그 말씀을 계속 묵상하다 보면 그것의 세밀한 부분에 더욱 주의하게 되어 그것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15절). 주의 말씀을 묵상하면 내 모든 스승보다 더 명철해진다(99절). 권력 가진 자들이 나를 비방하거나 교만한 자들이 나를 거짓으로 엎드러뜨려도 주님의 법도를 묵상함으로써 그 상황을 극복해갈 수 있다. 주님께서 장차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주님의 율례가 내 즐거움이요 충고자가 되기 때문이다(23-24, 48, 78절).>

 

이 구절들을 묵상하면서 억울할 것 많고 한탄할 것 투성이었을 요셉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소천한 후 망연자실한 가운데 수 백 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곁에 두고 그들을 어떻게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일까 고뇌하던 여호수아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 사울을 피해 무기한 정처 없이 광야 지역을 헤매고 다녔던 다윗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을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구출해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었고 그들은 그 말씀과 약속만을 붙잡고 묵상하면서 그 상황을 극복해갔습니다. 불완전한 구속의 계시만 허락되었던 그들에 비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온전한 구원의 비밀이 밝히 드러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얼마나 복된지요. 그런데 어떤 핑계도 댈 수 없을 만큼 충만한 주님의 계시를 누리고 있지만 이 복된 영적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은 채 영적으로 목말라하며 이곳저곳 다른 곳들을 기웃거린 어리석음을 범한 때가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요? 지혜롭게 사는 인생의 비결이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묵상하는 것(여호수아 1:7-8)임을 새롭게 상기하면서 당신의 법도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을 주님께 구하면서 당신의 말씀을 가까이하겠다는 결심을 다지게 됩니다(시편 119:27). 독자 여러분들과 제 생애 내내 이 말씀 묵상의 영역에서 형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영어교육과 성서인문학에 대한 강의와 강연을 신청하기 원하시면 제 이메일(ljs051@naver.com / ljs051@gmail.com)이나 댓글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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