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다오’[the Tao]를 양식으로 삼은 편력 기사,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2)
-매 시대마다 복기되는 돈키호테의 의미-
<좁은 길을 가는 편력 기사>
돈키호테는 어떤 인물일까요? 작품 속에 나타난 돈키호테는 우선 독서광입니다. 자기를 “길바닥에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읽는 천성을 지닌 인간”으로 묘사한 세르반테스를 닮아 독서에 열심을 내는 인물입니다. 그의 집에는 자신의 인생에 위안을 주고 자기 영혼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 3백 권 이상이나 됩니다. 돈키호테가 대화할 때 인용하는 책과 저자와 주인공들을 읽다 보면 그의 독서 편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문제는 독서의 대상이 온통 편력 기사 소설이라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언제든지 그의 머리는 기사 소설에 등장하는 전투, 마법, 연애 사건, 황당무계한 사건과 같은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죄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던 중에, 급기야 편력 기사로 나서게 된 것이지요.
편력 기사는 어떤 인물일까요? 돈키호테가 산양치기들에게 밝힌 편력 기사의 역할은, 재난 많고 악습이 충일한 그 시대에 “처자들을 지키고 미망인들을 보호하며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우려는 태도는 돈키호테를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마음을 다해 그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불운을 함께 더불어 탄식하고 울어주겠다는 자세가 확고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갈취당하는 양치기 소년의 처지에 개입하기도 하고, 산악 지대에 득실거리기로 유명한 사악한 산적들을 소탕할 꿈을 꾸며, 갤리선으로 끌려가는 죄수들을 풀어 주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안달루시아 출신 카르데니오를 위로해 주기도 하며, 대(大) 미코미콘 왕국의 미코미코나 공주를 돕기 위해 나서기도 하고, ‘슬픔에 잠긴 시녀’의 처지를 돕기 위해 마법사와 결투를 벌이러 나서기도 하며, 카마초 일행과 바실리오 일행 간에 큰 패싸움이 벌어질 상황을 평정하기도 하지요.
‘녹색 외투 신사’ 돈 디에고의 아들인 돈 로렌소가 돈키호테에게 “무슨 학문을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편력 기사도학’이라고 답합니다. 시학보다 더 나은 학문으로서 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학문을 그 안에 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의로운 분배와 교환의 법칙을 통달한 법학자, 기독교의 교의에 대해 정통한 지식을 갖춘 신학자, 외딴곳에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풀을 파악할 수 있는 약초 채집자, 자신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점성학자, 숫자와 연관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학자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것 외에도 수준 높은 경지에 속한 모든 종류의 덕을 체화하는 학문이라는 것이지요. 현존하는 학교 어느 곳에서 배울 수 있는 학문보다 더 우월한 학문이라고 자부합니다. 문제는 사람들 대부분이 세상에는 편력 기사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현실이라고 돈키호테는 개탄합니다. 자기의 경험에 의하면 과거나 현재나 편력 기사들은 계속 존재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깨달음을 얻는 데는 인간적인 노력은 쓸모가 없고, 오직 기적적인 하늘의 간섭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에, 돈 로렌소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과오에서 벗어나서 편력 기사의 유용성을 깨닫도록 자기가 하늘에 기도하겠다고 일러 줍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아 게으름과 태만과 대식과 폭식 그리고 안락만이 승리를 거두고 있는” 현실을 한탄합니다.
편력 기사가 역사상 계속 존재해 왔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였으며, 이 사실을 깨닫는데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시사해 주는 흥미로운 장면 한 곳이 있습니다. 돈키호테가 길 가던 중 마주친 사람들이 제단에 쓸 조각상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들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들 중 하나가 말에서 떨어지는 사도 바울을 묘사한 조각상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돈키호테는 그분은 주 하느님의 교회가 최대의 적으로 여겼던 자였다가 나중에 교회의 최대 수호자가 되신 분이라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살아서는 돌아다니는 편력 기사, 죽어서는 서 있는 성자가 되신 분으로서, 주님의 포도밭에서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농부이셨고. 이교도들을 가르친 박사이셨으며, 그분에게는 하늘이 학교이자 교수요 선생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손수 가르치셨지.”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다른 두 기사에 대한 조각상을 다 둘러본 돈키호테는 자기가 그것들을 본 게 좋은 징조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내가 업으로 삼고 있는 것을 이 성자들과 기사들 또한 업으로 삼으셨으니 말이요. 그건 무기를 다루는 일인데 그분들과 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분들은 성자로서 신성하게 싸우신 반면 나는 죄인으로서 인간적으로 싸운다는 점이오.”
즉 돈키호테가 규정하는 ‘편력 기사’의 세계에는 기사라는 직함을 갖고 용감하게 싸우면서 여자와 고아들을 보살핀 기사들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 전파를 위해 전력을 다해 희생한 바울이나 야고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포함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뿐 아니라 현재에도 정의를 구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나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도모하는 사역에 현신된 이들은 모두 이 편력 기사인 셈입니다. 이들은 시대와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 원리인 '다오'(the Tao)의 실천가들이자, 하느님 나라의 일꾼들입니다. 돈키호테는 신성하고 영광스러운 이분들의 편력 기사 반열에 자기도 포함된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신성한 방식으로 싸우셨던 것에 비해, 죄인 된 자기는 인간적인 방식으로 투쟁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오직 믿음으로 자기도 그 편력 기사단의 일원임을 고백한 것이지요. 나중에 그가 고백한 대로입니다. “우리 모두 사제가 될 수는 없는 일이고 하느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길은 많다네. 기사도는 종교라네. 성스러운 기사들은 천국에 있지.” 이 글을 읽으며 저도 감히 이 편력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2권에서 돈키호테가 공작 부부를 만나 그 집에서 대접 받게 되었을 때, 함께 배석한 성직자가 무례한 말로 돈키호테를 인신공격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초면인 돈키호테를 “머리가 텅 빈 자”라고 부르면서, 바보 짓거리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모든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어 방랑하는 일을 그만두고, 편력 기사가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궤변을 그치고, 좋게 말할 때 집으로 돌아가서 자식이나 돌보라고 야단칩니다. 이때 돈키호테가 “마치 수은 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들부들 떨며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자기를 변호한 말에 주목해 보세요. 그는 우선 그 성직자가 자신이 비난하는 죄의 내용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다짜고짜로 그 죄인을 바보나 얼간이로 말하는 불의를 지적합니다. 게다가 그 죄인의 처지에 대해 아는 것도 없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어리석음을 언급합니다. 처자식도 없는 자기에게 집으로 돌아가 자식이나 돌보라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가난하게 기숙사에서 자라 평생 기껏해야 이백 킬로미터 바깥도 여행해 보지 않은 자가 별안간 기사도 규정을 들먹이면서 기사들을 판단해도 되는지 도전합니다.
그러면서 그 성직자에게 던진 말이 돈키호테가 지향하는 기사도 정신의 압권입니다. “나는 기사이며, 만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기사로 죽을 것이오. 어떤 사람은 오만한 야심의 광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천하고 비굴한 아부의 광야로 가며, 또 어떤 이는 속임수 많은 위선의 광야로, 어떤 이는 참된 종교의 광야로 가지만 나는 나의 숙명에 따라 편력 기사도의 좁은 길을 가오. 그 길을 따르고자 나는 재산을 경멸하지만 명예는 아니오.” 즉 이 세상에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광야 같이 크고 넓은 길이 널려 있다는 것이지요. 야심의 광야, 아부의 광야, 위선의 광야들도 있지만, 그 성직자처럼 참된 종교 안에 거한다고 하면서 그토록 넓고 광활한 길을 택하는 이도 있다고 암시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광야와는 별도로 영생으로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길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에게 허락된 섭리에 의하면 그 길은 바로 ‘편력 기사도의 좁은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목숨을 걸만한 명예로운 길이었습니다. 그래서이겠지요. 편력 기사로서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원리와 그 원리를 솔선수범하는 돈키호테의 자세는 가히 초인적이라고 할 만큼 엄정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돈키호테는 시대마다 복기해야 할 편력 기사의 전범입니다.
<제정신을 가진 미치광이>
돈키호테는 이 편력 기사의 길을 어떻게 수행해 갔을까요? 우선 돈키호테의 편력 모험 중에는 상황을 잘못 판단한 기행의 사례들이 두드러집니다.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사건이 한 가지 있지요. 그것은 두 번째 여정 시작 시점에서 30개 이상이나 되는 풍차와 맞짱 뜬 사건이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그것들이 거인들로 보였으므로 그 괴물들에게 돌진하다가, 창이 박살 나고 로시난테가 중상을 입으며 자기는 내동댕이쳐지는 치욕을 겪습니다. 그런 후에 그는 성 베네딕트 교단 사제 두 명과 한 부인이 탄 마차를 보고는 마법사가 유괴해 가는 일행이라고 이해하고 공격을 감행하여, 사제들을 쫓아 보내고 하인 한 명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그 결과 그 하인도 중상을 입고 도망갔지만, 돈키호테도 갑옷과 투구도 상당히 손상되었을 뿐 아니라 자기 귀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상처를 입게 되지요.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들의 장례 행렬을 보고는 부상 입거나 살해당한 기사들을 싣고 가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그 장례를 돕던 사제 일행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약한 이발사가 쓰던 놋대야를 빼앗아 쓰고 다니기도 합니다. “머리에 얹어 놓은 그 요강”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지만, 돈키호테에게는 “맘브리노의 투구”였기 때문입니다.
이 측면과 연관하여 주목할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비록 이 기행들로 인해 관련된 사람들이 다치거나 손해를 당하는 경우가 잦았지만, 돈키호테는 그것들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누구에게 무례를 범한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미코미코나 공주에게 언급한 대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와 자기가 신조로 삼는 법도에 따라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자기에게는 그 대상들이 괴물들로, 마법사의 유괴 행렬로, 살해당한 기사의 들것으로 인식되어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들과 투쟁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시에라 모레나에서 관리에 의해 갤리선으로 끌려가는 죄수들을 구해 준 것도, “그들의 고약한 행위를 보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고통에 눈을 돌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기사의 임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동행한 산초의 증언도 그러합니다. “우리 주인은 안 그래요. 그러니까 내 말은, 그분은 꿍심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분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물 항아리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죠. 누구에게도 나쁜 짓은 할 줄 모르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만 해요. 악의라고는 전혀 없어요.” 그래서 산초는 어린이의 말에도 속아 넘어가는 그의 순박함 때문에, 그를 자기 '심장막'만큼 아끼게 되었고, 아무리 납득되지 않는 짓을 해도 그를 버리고 갈 수가 없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한편 이런 망상에 의한 기행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깊은 통찰력과 심오한 지혜를 뽐냅니다. 우선 여기서 한 가지만 나누겠습니다. 명성을 얻고자하는 인간의 강렬한 욕망에 대해 돈키호테가 산초에게 권계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먼저 에로스트라는 목동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디아나의 신전을 몽땅 태워 버린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단지 후세에 자기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명성을 얻고자 하는 유혹에 굴복한 이들의 역사적인 사례를 여럿 언급하면서, 이 명성이야말로 마땅히 죽어야 하는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업적에 대한 ‘합당한 상’이나 ‘불멸의 몫’으로 갈망하는 것이라고 일러줍니다. 그렇다면 허무한 명성보다 영원히 빛날 영광을 좇아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와 다른 처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이어지는 그의 권고에 귀 기울여 보세요.
“그러니 오, 산초! 우리의 일이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의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법이네. 우리가 죽여야 할 것은 거인들에게서 보이는 오만이요, 관대하고 용감한 가슴에 들어 있는 시기심이며, 평안한 영혼과 평안한 태도에 깃든 분노와 우리가 적게 먹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데서 오는 폭식과 잠이고, 우리 생각의 주인으로 모신 귀부인들에 대한 충성심에 들어 있을 음탕함과 호색이며, 우리를 기독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유명한 기사로 만들어 줄 기회를 찾아 세상의 모든 곳을 편력할 때 생기는 게으름이라네. 이제 알 수 있으렷다, 산초. 훌륭한 명성을 얻고 찬사를 받을 방법을 말이야.”
이 말에 담겨 있는 대조적인 자질들에 주목해 보세요. 즉 위대한 자질과 오만, 관대하고 용감한 인격과 시기심, 평안한 태도와 분노, 소식과 폭식, 경계 태세와 잠, 귀부인에 대한 충성과 음탕함, 근면한 편력 여정과 게으름. 영원한 영광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마음 챙김의 영역들이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돈키호테를 망상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로 보는 이들이 난감해 하는 그의 서슬 퍼런 통찰력입니다.
돈키호테의 행적과 관련하여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측면이 이 작품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가 특정 주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보면 신학자요, 철학가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지혜와 통찰력이 뛰어납니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진의를 오해하거나 상황에 대한 망상을 품어 그것들에 대해 과도하게 반응함으로써 자신 뿐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을 위중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녹색 외투 신사’ 돈 디에고가 언급한 대로, 그의 말은 정확하고 품위 있고 옳은데, 그의 행동은 터무니없고 무모하며 멍청하기만 했습니다. 그에게는 돈키호테가 가장 분별 있는 자이자 세상 최고의 미치광이로 보였기에, 돈키호테를 “제정신을 가진 미치광이이거나 제정신이 돌아오려고 하는 미치광이” 혹은 “일관되지 못한 미치광이”라고 부르지요. 돈키호테에 대한 신부의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이 나갈 때는 바보 같은 말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이치에 꼭 맞고 매사에 뚜렷하고 올바른 이해력을 보여 준다고 평가하지요. 기사도 문제만 아니라면, 모두가 그를 참으로 탁월한 판단력의 소유자로 이해할 거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이렇게 자신의 행적 측면에서 이중적인 상반된 면모를 지닌 인물입니다.
<상상력과 ‘다오’에 승부를 거는 용사>
편력 기사이면서도 ‘일관되지 못한 미치광이’인 돈키호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실상 돈키호테의 시대에 스페인에는 군인에게 주던 호칭으로서의 기사가 있었을 뿐, 중세의 기사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기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돈키호테는 기사가 아니었고 이전에 기사로 임명된 적도 없습니다. 객줏집을 성으로 상상한 돈키호테가 그 주인에게 부탁하여 엉터리 기사 서품을 받았을 뿐입니다. 엄숙하고 종교적인 열의로 진행되어야 할 서품식을 객줏집 주인이 거행하고, 그곳에 있던 하녀[창녀]들이 칼을 채우고 박차를 끼우는 상황이 연출되지요. 자기의 임무도 자기의 상상에 근거하여 정합니다. ‘당나귀 마을’의 군사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밝힙니다. “나는 편력 기사로서 군사의 일이 곧 나의 일이오. 그것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의무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도와주고 궁핍한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라오.” 그렇지만 이 작품 중에서 작가는 돈키호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돈키호테야말로 이 재난 많은 시대에 편력 기사의 임무와 그 수행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불의를 바로잡고, 과부를 돕고, 채찍을 휘두르고, 말을 타고 산에서 산으로 계곡에서 계곡으로 다니던 처자들이 어느 비열한 놈이나 촌놈이나 가공할 만한 거인들에게 순결을 잃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그렇다면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 혹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을 창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재훈 작가에 의하면 세르반테스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감동을 받아 이상적인 세계관을 탄생시키려 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시대 상황을 견주어보면 종교나 사랑의 자유, 정의로운 재판, 세습제도 폐지와 같은 것들이 실행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자고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시도였습니다. 당시 에스파냐에서는 합스부르크 절대왕조의 통치하에서 반종교개혁 운동(Counter-Reformation)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었기에,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집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며 놀랐던 것은, 그 1권 제일 앞에 규정 가격 증명서, 원본 심사와 정정 심사 증명서, 국왕의 출판 특허장이 제본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2권은 한술 더 뜹니다. 위의 것들에다 검열관 3인의 승인서까지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17세기 초에 에스파냐가 실행했던 엄격한 출간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지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책을 출간할 때마다 세 단계의 검열 끝에 대통령의 허가장까지 받아야 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시대 상황 속에 살고 있었기에, 세르반테스가 그 검열관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한 것이라고 원 작가는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돈키호테”는 ‘인간을 억압하는 시대에 풍자와 해학으로 사회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세르반테스라는 작가의 분신’인 셈입니다.
한편으로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의 역정을 곰곰이 묵상하다 보니, 사람이란 누구나 그와 같이 자기의 상상력의 한도 내에서 혹은 자기의 상상력이 인도하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각자가 선택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리석은 짓 혹은 미친 짓처럼 보이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처한 사정이나 우리 마음의 의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제가 인생의 황금기인 대학/대학원 생활 6년을 선교 단체 한 곳에서 보낸 것을 두고 무모하고 멍청한 짓이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정된 고등학교 영어 교사직을 내려놓고 자비로 유학하러 간 것을 바보스러운 짓이었다고 여긴 이들도 많았을 듯합니다. ‘보다 전략적인’ 다른 나라들을 제쳐 두고 척박하기만 한 땅 말레이시아로 진출한 것을 두고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언급한 이들도 여럿 있었지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뒷담화와는 무관하게, 그 세 경우는 죄다 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별하고 상상한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제 삶의 중심에 두고 제 됨됨이와 은사와 능력을 헤아리면서 그것들로 당신께 영광 돌리는 길을 상상한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제가 선택한 구체적인 길들은 독특했겠지만 그 길들을 선택한 방식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채택한 것으로 믿기에, 제 경우가 예외적인 사례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돈키호테가 편력 기사로 일컬었던 사도 바울도 그의 사역 여정 중에 정신나갔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하던 처지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베스도 총독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그를 미쳤다고 한 것이지요. “바울이 이렇게 변호하니, 베스도가 큰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 하고 말하였다.”(While Paul was saying this in his defense, Festus said in a loud voice, ‘Paul, you are out of your mind! Your great learning is driving you mad.’-사도행전 26:24)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새 몸을 입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뵙고 그분으로부터 세계 선교의 소명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는 심오한 신학적, 철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공상과 망상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명징한 이성을 구사하던 유대교 학자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뵙고 그분께로부터 말씀을 듣는 체험이 없었다면, 그 말씀에 자기 생명을 거는 극적인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베스도에게 즉각적으로 응수합니다. “그 때에 바울이 대답하였다. ‘베스도 총독님,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참말을 하고 있습니다.’”(But Paul said, ‘I am not out of my mind, most excellent Festus, but I utter words of sober truth.’-사도행전 26:25) 만일 그가 미쳤던 것이 분명하다면 지난 2천 년 간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그 미치광이의 언설에 속아 넘어간 역사적인 사기극에 불과하겠지요. 사실상 그리스도교의 초기 역사 기록은 그의 사역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경전인 신약성경 중 거의 절반[총 27권 중 13권]을 그가 기록했으니까요. 더구나 나머지 절반 중 핵심부를 이루는 사복음서 중 한 권[누가복음]과 사도행전도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동역한 의사 누가(Luke)가 집필했으니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과 차원이 다른 예도 한 가지 더 들어보겠습니다. 눈을 돌려 서두에서 소개해 드린 카를로스 1세[카를 5세로 불리기도 함]의 경우를 보세요. 상상 속의 인물인 돈키호테에 버금가는 역사 속의 군왕이었지요. 자신의 재위 기간 중 무려 30년 동안이나 스페인에서 독일로, 이탈리아로 진출하여 전쟁을 벌였고, 회교의 종주국인 오스만 튀르크, 교황 및 독일 내 신교도 제후들과도 대결했습니다. 자신의 재위 기간 중 어느 때에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우두머리로서 만인의 칭송과 존경을 받았겠지만, 그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많은 이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세계에서 유입된 엄청난 부를 허망한 곳[합스부르크 왕가]에는 낭비했으면서도 정작 투자가 긴요한 곳[에스파냐]에는 인색했을 뿐 아니라, 새로 피어나는 개신교와 발흥하는 민족 국가를 무시하거나 적대하는 실책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상 어느 시기에 복기해 보니 그가 취한 통치 행위가 마뜩찮다고 해서 그를 어리석은 왕 혹은 멍청한 왕으로 취급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졸지에 황제가 되어 엄청난 영토를 통치해야 했고, 동로마 멸망(1453) 이후 호시탐탐 유럽을 위협해 온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회교도들을 막아내는 수호자 역할도 감당해야 했으며, 거세게 불어 닥친 종교개혁의 바람을 잠재워야 하는 가톨릭의 보호자 임무까지 짊어진 그의 삶의 여정을 어느 누가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현재 논의하고 있는 시각과 연관을 지어 보자면, 그는 다만 신앙 양심에 근거하여 백성들의 복리와 제국의 안정된 번영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매 시기, 매 사안마다 대처해갔을 것입니다. 자신이 수집한 정보와 참모들과의 협의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전쟁도 하고, 조약도 맺고, 양보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이러한 추정과 일치하는 삶을 영위했다면, 그는 어느 누가 자기를 어떻게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앙인이었던 그에게는 유일하고 최종적인 심판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평가만이 가장 중요했을 테니까요. 그와는 반대로 그가 그런 추측과 어긋나는 삶을 살았다면 최고 권위를 가진 역사가가 자기를 칭송했다고 하더라도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것이 자기 인생에 대한 최종적인 평결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돈키호테의 행위와 삶을 평가하면서 그저 그가 공상에 빠져 미치광이처럼 산 것으로만 여긴다면, 그가 수행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에만 신경 썼을 뿐 그가 그것들을 실행한 이유와 방식에는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가 왜 그 일을 했고 어떻게 그 일을 진행해 갔는가를 살펴본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입니다. 비록 돈키호테가 수행한 일들이 그가 읽은 기사 소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아 당시의 상황을 잘못 관찰하고 공상으로 치달은 결과인 경우가 많았지만, 그 일을 한 동기와 의도는 고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의도를 늘 훌륭한 목적에 두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 목적이란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며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명백히 선언합니다. 자기가 하게 될 일이 모두 도리에 맞고 기사의 법도에 따라 하는 것이라는 그의 자부심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무모한 그의 행동 방식 배후에는 용기라는 미덕을 연마하려는 그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그는 용기라는 것이 비겁과 무모라는 극단적인 두 악덕 사이에 놓여 있는 미덕이라는 점을 익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용기에 도달하려면 비겁한 자세를 취하여 그 하한선에 이르는 것보다는 도리어 무모한 시도를 통해서 그 상한선을 접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고 보았습니다. 마치 욕심 많은 자보다는 낭비하는 자가 관대해지기가 훨씬 수월하듯이, 비겁한 사람보다는 무모한 사람이 용자(勇者) 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국왕에게 상신할 두 마리 사자와 맞짱 뜰 때 그가 품고 있던 소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인생의 관건으로 대두되는 것은 자기가 수행하는 일의 내용만큼이나 그 일을 실행하는 이유와 방식이겠지요. 올바른 동기와 합당하고 건실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수행한다면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을 테니까요. 즉 하나님의 말씀과 ‘다오’에 근거하여 용기와 같은 인격적 탁월성(‘아레테’)이 발휘되는 방식으로 우리의 소명을 구현해 간다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인생 여정이 펼쳐지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됨됨이와 재능과 소원을 헤아리면서 성화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소명의 얼개와 구체적인 알맹이를 마련해 가는 일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신성한 자유가 있다는 점이 저를 감격하게 합니다. 게다가 우리의 상상은 그저 막연히 그리어 보는 터무니없는 공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을 바탕으로 피어난 창조적인 심상입니다. 그 성화된 상상력이 낳을 아름답고 찬란한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영원토록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는 모든 이의 특권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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