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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보편적 원리를 실천하라

“오래된 미래”에서 온 꿈의 교회 공동체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0. 11. 21.

“오래된 미래”에서 온 꿈의 교회 공동체

(코비드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꿈꾸며”란 제목으로 한 단체의 회지에 기고한 글을 소개합니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입니다. 코비드 이후의 시대를 조망할 때 가장 확고한 준거점은 과거에 존재합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과거 속에 이미 이전의 미래가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팬데믹은 존재했고 그 세계적 유행병 후에 새로운 미래가 펼쳐졌습니다. 그 미래가 오늘날 코비드를 통과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줍니다. 예컨대 14세기부터 시작된 르네상스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존 프레임에 의하면 르네상스는 1350년부터 시작됩니다. 특별히 그 해를 지목한 이유는 아마도 유럽에서 창궐한 대역병(Great Plague), 즉 흑사병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1346년부터 시작하여 1353년까지 이 역병이 진행되었으나, 특히 1348년에서 1350년 어간에 유럽 인구 중 1/3에서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희생당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기부터 르네상스가 비롯되었다는 것이 존 프레임의 주장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전염병을 겪으면서, 삶과 죽음과 신앙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싹터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라는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으로 본 것이겠지요.

 

한편으로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으로 돌아가 인간성의 의미와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고전주의가 발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과 교부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로 돌아가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립하는 기독교의 개혁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역병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대의 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르네상스 시발점인 1350년부터 시작하여 약 170년 만인 1517년에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게 되지요.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기간 중에도 놀라운 성찰의 기회가 마련되어 그 이후에 또 다른 차원의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이루어질 것을 저는 꿈꿉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기회가 아니면 언제 우리 존재의 시원(始原)으로 돌아가 올바른 삶과 신앙의 방향을 재설정할 수 있겠습니까?

 

제게는 코비드 이후에 맞이하게 될 새로운 시대를 향한 구체적인 꿈(DREAM)이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향한 꿈입니다. 이 꿈은 ‘오래된 미래’에 근거한 것으로서, ‘D.R.E.A.M.’이라는 영어 단어 철자 다섯 개 각각을 머리글자로 하는 비전입니다. 첫째. 보편적 원리를 현시하는(Demonstrating the Tao) 교회를 꿈꿉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시대와 장소와 문화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보편적인 원리(Tao, 중국어 ‘도’<道>를 음역한 것으로 ‘다오’라고 발음함)가 존재합니다. 이 원리는 전 세계의 전통이나 문화에서 형성된 문헌 자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다른 어떠한 가치관보다 더 확고하고 일반적인 도덕관입니다. 온 누리에 편재하는 우주 만물과 인생의 전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쳐주는 기초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칸트가 지적한 ‘정언 명령’인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언급한 대로 이 ‘다오’는 기독교가 이 세상에 가져온 새로운 윤리도 아니고, 기독교가 가장 먼저 발견한 가치도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원리입니다. 그 핵심이 사랑과 진실이 되는 이유입니다(요한복음 1:1, 14). “정말이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는 고대 이집트, 니느웨, 바벨론, 혹은 중국에서 발견된 원문 내용과 유사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습니다.”(루이스) 그러므로 ‘다오’는 모든 사회와 인간관계 속에서 준행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거나, 부모/연장자/조상/자녀/후손에게 의무를 다하거나, 신뢰와 진실을 지키면서 정의를 추구하거나, 타인을 불쌍하게 여겨 넓은 도량을 베푸는 것을 반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사회가 이 세상에 항구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측면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교회는 유구무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다오’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을 무색하게 하는 부도덕한 행태를 공공연하게 자행해 왔기 때문입니다. 자기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빌립보서 3:19)한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회들의 행적을 여기에 다시 나열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다만 이 ‘다오’를 실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낸 한 인물과 그가 일군 한 공동체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조현 작가가 “울림”이라는 책 속에서 ‘살과 피를 모두 주고 간 거룩한 기업가’로 일컬은 유일한(1895-1971)입니다. 삶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유한양행을 낳았습니다.

 

천애고아로 자라나던 중 그리스도인이 된 아버지 유기연의 장남으로 1895년에 태어난 그는 러일전쟁의 기운이 돌던 1904년에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공부하다가 21년만인 1925년에 귀국합니다. “미국의 문물을 배워 조국 동포를 구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열심히 공부하던 그는 이미 미국에서 라초이식품회사(숙주나물 통조림 회사)를 세워 큰 성공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그는 국내에서 병든 동포를 구하기 위해 의약품 회사인 유한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사업에서 번 돈은 교육과 공익사업에 투자했고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을 한시도 놓지 않은 채, 미국 OSS(미 육군연락처, CIA의 전신)가 일본군과의 전투에 투입할 특수부대를 설립했을 때 한국담당 고문으로 참여했습니다. 자기 치부를 알고 있다고 여긴 그를 두려워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정부 수립 후에 초대 상공부 장관직을 맡아 줄 것을 요청했지만, 사업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이승만 정부의 정치자금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매년마다 정직하게 거금의 세금을 납부하자 의약품 함량을 속여 치부하고 있다고 여긴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으나 아무 하자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한결같이 옳은 길만을 걸으며 사업한 그는 1969년에 당시 부사장으로 근무하던 외아들 유일선과 조카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했습니다. 그들에게 특별한 잘못도 없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그의 측근이 묻자, “내가 죽고 나면 그들로 인해 파벌이 조성되고, 그렇게 되면 회사가 공정하게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자기가 시무하던 (대형)교회가 마치 자기 소유물인 양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자식에게 물려줄 궁리에 여념이 없는 파렴치한 목회자들이 득실거리는 우리나라 개신교계를 부끄럽게 하는 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그가 대학까지 뒷바라지했으니 자신의 힘으로 살라면서 외아들에게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은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딸과 손녀에게만 약간의 유산을 남기고 그 나머지 재산은 죄다 교육과 사회사업에 기증했습니다. 그 딸 유재라마저도 물려받은 땅(유한중/고 안의 땅 5천 평)을 비롯한 전 재산 205억 원을 공익재단에 기부하고 홀가분하게 천국으로 떠났지요. 자식도 재산도 “내 것이 아니다”라는 언명을 삶으로 실천한 아버지의 뜻을 헤아린 딸의 품위가 물욕으로 찌든 이 어둔 세상에 찬란한 별과 같이 빛납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이렇게 캄캄한 세상을 밝히 비추는 등대로 변혁되는 꿈을 오늘도 꿉니다.

 

둘째.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Respecting others' cultures) 교회를 꿈꿉니다. 그 옛날 우리나라 문화를 존중하며 선교 사역을 펼친 가톨릭 선교사 한 분을 소개합니다. 1911년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후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책을 저술한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라는 신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고리타분하게 살아가는 미개한 민족으로 바라본 많은 서양 선교사들과는 판이한 시각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다니며 관찰하던 중, 우리 민족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 지극하여 효 사상을 중심으로 어른들과 조상들을 존숭하는 모습에 반했습니다. 특히 부모에 대한 효성은 위대하고 고귀한 한국인의 민족혼이 이룬 것으로 보았고, 장례 예식도 그 효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자기가 속한 베네딕도 수도회가 아프리카 등지에서 그토록 심기 원했던 노동의 정신이 한반도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도 감명을 받았지만, 고된 노동 후에 명절 기간 중에 함께 더불어 여유를 즐기는 놀이 문화도 흥미롭게 주목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판이나 어음을 이용하는 상거래도 그분의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지만, 한국의 농경문화에 주목하던 중 특히 품앗이라는 노동형태에 매료되면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공동체 문화가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 감복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일본인들이 질질 끌고 다니는 나무 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짚신의 품위와 그것들을 만드는 한국인의 재간에도 탄복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1925년에 두 번째 방문하면서 116분이나 되는 길이의 영상에 담기도 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우리나라나 다른 선교지의 옛날 문화를 이렇게 다각도로 관찰하고 깊이 이해하면서 높이 상찬한 외국 선교사가 또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리어 선교지의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혹은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한 채 자기네 문화 이식에만 열을 올린 서양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차고도 넘치지요. 선교사의 아버지 격인 사도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 설교 중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민족적이고도 문화적인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엄숙히 선포했습니다.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사도행전 17:26) 민족과 국가들의 생존 시기와 장소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문화 명령(창세기 1:27-28)에 근거하여 사람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진 결과 형성된 고유한 문화가 죄악으로 물든 측면이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성경은 인간 문화의 다채로운 모자이크를 기념하고 기립니다(요한계시록 21:24, 26). 존 스토트가 역설한 대로 결국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문화들이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풍요롭게 한다면, 지금도 문화는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교회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정신과 그들의 문화 속에서 민속적 요소와 미신적 요소를 구분하는 성화된 분별력으로 그들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날이 밝아오길 오늘도 기대하고 꿈꿉니다.

 

셋째, 타인과 공감하는(Empathizing with others) 교회를 꿈꿉니다. 공지영 작가의 “높고 푸른 사다리”에 보면 마리너스 수사(Brother Marinus)에 대한 실화가 소개됩니다. 그의 본명은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1914-2001)이고 바다에서 22년을 보내며 잔뼈가 굵은 뱃사람으로서 2차세계대전 중에는 상선을 타고 군사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빛나는 업적은 따로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배 한 척으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기적입니다. 바로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부두에 모여든 사람들 중 14,000명을 구조한 것입니다. 길이 138.7미터이고 7,600톤에 달하는 ‘매러디스 빅토리호’라는 화물선의 선장이었던 그는 중공군이 6킬로미터 전방까지 진격해오는 와중에도, 1950년 12월 20일 9시경부터 이튿날 정오까지 피난민을 승선시켰습니다. 더 태울 수 없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고무처럼 공간이 더 생겨 승객 12명 정원인 그 배가 그렇게 많은 인원을 태우게 되었다고 술회했지요. 부산을 거쳐 거제로 가서 피난민들을 하선시킨 날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만 사흘이 조금 넘는 항해 기간 동안 찬 철판 위에서 먹을 것, 마실 것, 화장실도 하나 없는 상태에서 5층이나 되는 화물칸에 욱여넣어진 그 많은 인원이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도리어 5명이나 되는 아기들이 태어나 온전히 육지를 밟게 되었을 때 그와 선원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피난민들이 하선할 때 팔꿈치로 옆의 사람을 미는 사람도 없이, 자기 앞에 선 노약자들에게 순서를 양보하면서 차례대로 질서를 지키는 것을 보고 그 선원들 모두가 그 피난민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한낱 목숨을 구걸하던 피난민들이 아니라 다른 이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존중하는 존엄한 사람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제도 주민들이 그 배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주먹밥과 맑고 신선한 물을 준비해서 부두에 나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라고 먹을 게 풍족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막 도착할 다른 피난민들의 고통에 기꺼이 동감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도, 교회도, 십자가도 없는 그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펼쳐진 장면을 라루 선장은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기적에 감읍한 라루 선장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소명을 발견하는 단계까지 나아갑니다. 피난민들이 하선한 곳에 자기도 내렸을 때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를 낳은 한 여인과 대화하게 됩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인이 말합니다. “선장님, 저기 서 있는 저 소녀는 이미 부두에서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어린 동생을 업고 사람들에 떠밀려 이 배에 올랐습니다. 저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어떻게 되며 오늘 태어난 제 아들은 어떻게 될까요. 저는 죽음보다 삶이 더 두렵습니다.” 그때 선장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인이여, 약속합니다. 오늘부터 내가 죽는 날까지 그대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대들의 삶이 결코 죽음보다 두렵지 않게. 약속합니다, 여인이여.” 하나님께서 자기가 그들을 땅으로 데려가는 일뿐 아니라 이들의 삶을 위해 평생 기도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1955년 크리스마스 날 라루 선장은 수련자로 첫 서원을 한 후 1959년 크리스마스에 종신서원을 해서 생이 다하는 날까지 미국 뉴저지 뉴튼에 있는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기도하고 일하며” 평생을 섬겼습니다. 그 여인에게 한 약속을 지킨 것이지요. 더욱 신비로운 일은 그가 몸담고 있던 그 성 바오로 수도원이 수도자 부족으로 더 이상 운영이 어렵게 되자, 우리나라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발생했습니다. 왜관 수도원에서 협의차 파송된 수도사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을 즈음에, 이 라루 선장, 즉 마리너스 수도사가 그들을 청하여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기적을 나눈 후 이틀 후에 소천한 것입니다. 왜관 수도원에서 파견된 수도사들이 그 수도원의 운영을 맡기로 결정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어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면 그를 도와주라!”는 뱃사람들의 격언을 몸으로 실천하여 우리나라 피난민 14,005명을 구조한 라루 선장과 선원들 덕에 오늘날 이 코비드 팬데믹 중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과 누님이 그 ‘매러디스 빅토리호’를 통해 구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오갈 데 없고 의지할 데 없던 피난민들의 고통에 동감하여 평생을 기도로 섬긴 마리너스 수사의 후계자들이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교회를 오늘도 꿈꿉니다.

 

넷째, 품위 있는 길을 지향하는(Aiming for the high road) 교회를 꿈꿉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집필한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는 1975년에 그녀가 히말라야 오지 라다크를 방문하고 자기 생애가 송두리째 바뀐 경험을 나눈 책입니다. 고도 3,500미터 이상 되는 고원의 사막지대에서 소규모 정착지에 사는 자영농들인 그곳 주민들은, 폭염에 시달리는 여름, 8개월이나 지속되며 영하 40도 이하로도 떨어지는 겨울, 내리는 일이 거의 없는 비와 같은 기후 여건을 맞이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높은 곳에 사는 사람답게 ‘고상하고 품위 있는 길’(the high road)을 지켰습니다. 좌절하거나 질투하는 비천한 길 대신 삶의 기쁨을 누리며 그 행복을 미소로 표현하는 고상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미소는 “삶 자체에 대한 순수하고 거리낌 없는 경애심”이었습니다. 진보라는 조악한 길 대신 척박한 환경 속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면서 자립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재활용하는 고상한 길을 택했습니다. 검약이란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풍요로운 삶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빨리빨리 일을 해치우는 것으로 만족하는 길 대신 느긋한 속도로 일을 하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여가를 즐기는 품위 있는 길을 채택했습니다. 돈 버는 것을 좋은 이웃 관계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허무한 길 대신 좋은 이웃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고상한 길을 실행했습니다. 공존이라는 화두가 자기네 인생의 최우선 과제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남녀노소를 구분하면서 차별하는 비열한 길 대신 남녀노소를 똑같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품위 있는 길을 우선했습니다. 자기들은 다른 사람들과 주변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 믿으며, 자기들을 자기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여겼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자신들의 천부적인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 헬레나는 “그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와 땅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통해 물질적 풍요나 기술의 진보 같은 것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맘몬의 노예로 사는 비참한 삶 대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신의 영광을 이 세상에 현시하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오늘도 꿈꿉니다.

 

다섯째.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Making Christ known) 교회를 꿈꿉니다. 마이클 그린에 의하면 신앙의 다양성이 오늘날보다 더 심각했던 초대 교회 시절에도 선교사와 전도인들은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설득력을 가지고 예수님만을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궁극적인 주장을 선포하려고 할 때 다른 신앙의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부닥뜨리게 되었지만, 그 다른 종교를 비난하는 대신 예수님 전하는 일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방식은 사도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진 곳 말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로마서 15:20-새번역)을 야망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시는 대로 목숨 다해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서 2:8). 오늘날 선교사나 전도인으로서 부르심 받은 이들에게 적용되는 사례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는 자기와는 다른 야망을 추구할 것을 권면합니다. “조용히 살고 자기의 사업을 돌보며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데살로니가전서 4:11-NIV)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들의 “매일의 삶이 외인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4:12-NIV). 한글 번역이 ‘힘쓰다’라고 번역한 헬라 원어는 신약 성경에서 단 세 번만 사용된 단어로서 영어 성경(NIV, NASB)이 ‘야망(ambition)으로 삼다'로 번역한 용어입니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사도 바울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선교 여정을 잘 관찰해 보면 그는 거의 대부분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빌립보처럼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기도처에서(사도행전 16:13), 에베소에서처럼 회당 활용이 여의찮을 때는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전하는(사도행전 19:8-9) 주도면밀함을 지속했습니다.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God-fearing Gentiles, 사도행전 17:17, 18:7)이 있는 곳에서 말씀을 전하기를 꾀했던 것입니다. 이런 그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마땅히 할 말로써”,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골로새서 4:3-4)를 기도해주기를 간청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에게는 단 한 번도 자기처럼 직접적으로 전도할 것을 권면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부르심 받은 일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취지의 말씀을 거듭 일러주었습니다(로마서 12:1, 에베소서 4:1, 빌립보서 1:27, 골로새서 3:1, 데살로니가전서 2:12, 4:11-12 등). 우선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빛내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될 뿐 아니라(로마서 12:1), 그렇게 살아갈 때 비로소 성령께서 준비해두신 영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골로새서 4:5-6). 즉, 그들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이들의 요청에 “마땅히” 응답하여 그리스도를 전할 호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선교사들뿐 아니라 목회자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전도의 문’, ‘말씀의 문’을 열어 주시도록 간청해줄 것을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성도들은 이 일을 위해 헌신적으로 도고하는 날이 임하길 오늘도 꿈꿉니다. 한편으로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은 성도들이 일상의 현장 속에서 그리스도와 복음을 빛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간구하고 계도하며, 성도들은 각자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따라 이웃들의 필요를 섬겨가면서 은혜롭게 말하고 지혜롭게 진정성 있는 삶을 영위하는 날이 임하길 오늘도 꿈꿉니다. 그리하여 성령께서 예비해 두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복음 진리의 사랑을 받아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역사가 날로 흥왕해가길 오늘도 꿈꿉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