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도(道)-보편적 원리를 실천하라

보편적인 미덕의 화신,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1)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0. 9. 26.

보편적인 미덕의 화신,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1)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부활’(rebirth of classicism)의 의미-

서구 사회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로마 문화의 회복이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면서 종교, 영성 중심의 중세 시대로부터의 결별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왕왕 제기되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그리스, 로마 문화를 새롭게 연구하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종교에 얽매인 개인을 해방하여 자유롭게 하려는 분위기가 두드러졌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프로타고라스가 주창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인본주의적 언명이 당대의 사회 기풍을 대변한다고 보았지요.

 

물론 중세 시대가 노정한 억압적인 봉건 사회 체제나 당시의 종교가 현시한 내세 지향적인 영적 체계와 교훈으로 인해 구속받고 있던 당대인들에게, “근원으로 돌아가자”(ad fontes)라는 고전주의가 안겨준 신선한 바람은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그 신선한 바람을 자신들이 소중하게 간직해 온 신앙 세계를 개혁하는 데 활용한 당대인들이 더 많았다는 점을 놓치는 것은 여간 아쉬운 점이 아닙니다. 존 프레임이 역설한 대로, 당대의 휴머니즘(humanism)은 “인간을 신격화시킨 현대의 세속적 휴머니즘(secular humanism)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진지한 기독교적 관심을 반영한 휴머니즘”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을 그저 천국으로 인도하는 관문 정도로만 여기는 경향이 강했던 중세 시대와는 달리,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경이로운 인체를 생생하고, 정확하게 묘사한 예술, 온갖 도구를 활용하여 세상의 실제 모습을 관찰한 과학 및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 철학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는 서로 단절된 시대라기보다는 연속선상에 있는 시대였습니다. 단절의 필요가 존재하지 않았고 단절되지도 않았습니다. 르네상스는 모든 사상가들이 기독교인임을 자처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세와 르네상스가 연속선상에서 진행된 결과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갈 무렵인 16세기에 종교개혁이 발생하게 되지요. 그런 측면에서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선 종교개혁도 르네상스의 모토처럼 그 근원으로 돌아갔지요. 즉 성경과 교부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가 인간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표명한 휴머니즘을 지향했듯이 종교개혁도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역에 의한 구원(루터)과, 이성적인 논증이 아니라 믿음과 회개를 통한 하나님 알기(칼뱅)라는 방식이었습니다.

 

인간을 신격화한 세속적인 휴머니즘과 합리성을 근간으로 하는 계몽주의 시대는 17-18세기에 가서야 등장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00여 년의 기간 동안 서구 사회의 인간은 신에게 등을 돌린 채 살아왔습니다. 그 이전의 장구한 세월과 비교해 보면 놀랍게 대조되는 기간이지요. 캐나다 철학자인 찰스 테일러가 질문한 대로입니다. “우리 서구 사회에서 이를테면 1500년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2000년에는 우리들 중에 이것이 수월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왜인가?”(Why was it virtually impossible not to believe in God in say, 1500 in our western society while in 2000 many of us find this not only easy but inescapable?) 이 놀랄만한 시대적 변화가 바로 ‘근대’(modern times)를 견인하여 지금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합리성이라는 도구로 과학을 과학지상주의로, 자율성 혹은 세속성, 즉 “구속력 있는 유신론적 권위나 신념을 인정하지 않는 것”(존 프레임)이라는 도구로 인문주의를 인본주의로 변개한 ‘근대’라는 기업은 ‘탈근대’라는 이 시대(postmodern era)에도 아직 성업 중입니다.

 

인본주의와 과학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이 시대에 그것들의 시원(始原)이라고 여기는 르네상스 시대 혹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 한 권을 독해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의 성서’로 불린 ‘오디세이아’를 통해 그리스 문화와 그 정신세계가 과연 인본주의와 과학지상주의를 지지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리스인들의 성서로 불렸다. 이 두 시들은 수백 년 동안 공식적인 학교 교육과 일반 시민의 문화생활을 통틀어 그리스 교육의 기본이었다.”라고 언급한 H. D. F. 키토의 말이나, “모든 위대한 문학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디세이아’다.”(Every great work of literature is either the ‘Iliad’ or the ‘Odyssey’.)라고 지적한 프랑스 작가 레몽 크노의 말에 오디세이아의 위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정치가이며 군인)의 일화도 유명하지요. 기원전 430년경에 어느 문법학교를 방문한 그가 그곳 교사에게 호메로스의 책1권을 가져다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교사가 비치된 게 없다고 하자, 그는 바로 그 교사에게 주먹을 날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호메로스가 없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었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배움의 장소랍시고 서 있기는 하지만, 뛰어난 미덕을 배울 수 있는 수단이 하나도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알베르토 망구엘) 호메로스가 없는 학교가 배움의 장이 아닌 이유는, "그 서사시들이 그리스 문명의 본질을 이루는 모든 특성을 보유했기 때문“이라고 키토는 덧붙입니다.

 

김용규 선생에 의하면 호메로스 스타일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오직 인물들의 ‘본질’과 ‘탁월함’만을 노래하고 그 외의 것은 모두 제거해버리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본받거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보편적 인간의 전범이 된 것이지요. 인간의 보편성이라는 것은 인간성의 본질이자 탁월함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이 ‘아레테’(arete)라고 부르며 탐구한 것입니다. 프랑스 문헌학자인 자클린 드 로미이가 강조한 대로입니다. “누가 아킬레우스보다 더 영웅적일 수 있으며, 누가 헥토르보다 의무를 잘 자각할 수 있겠는가? 어느 여인이 헬레네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며, 페넬로페보다 더 정숙할 수 있겠는가?” 즉 호메로스의 인물들은 인간적 미덕의 ‘전형’이자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학자 하이데거가 지적한 대로입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은 “무엇이 신성하며 무엇이 비속한지, 무엇이 위대하며 무엇이 하찮은지, 무엇이 용감하며 무엇이 비겁한지, 무엇이 고결하며 무엇이 덧없는지, 무엇이 주인이고 무엇이 노예인지”를 가장 극단적인 표상의 형태로 열어 밝힌 것이지요. 이 같은 호메로스의 작품들 속의 인물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인간적 미덕의 전형으로 제시되었고, 그들은 그 작품들을 암송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자신들의 삶의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할 보편적 인간의 사고와 삶의 자세를 훈련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통해 그리스(그리고 로마)가 모범적인 인간상으로 내세운 인물 중 대표 격인 오디세우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인본주의의 정의에 나타나 있는 대로 신적 권위와 대비되는 자율적인 인간 이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능력이나 가치보다 더 우월한 어떠한 능력이나 도덕 가치도 부인”하는 자였을까요? 세심하게 ‘오디세이아’를 독해해 보면 ‘오디세우스’는 이런 예상 혹은 선입견을 뒤엎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자면, ‘오디세우스’는 한 마디로 경천애인(敬天愛人)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신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뜻에 순종하며 그들에게 수시로 기도했던 만큼이나, 손님들과 나그네를 존중하고 사랑한 이었습니다. 그리고 애인했던 만큼 경천한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그를 전범화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 문화를 되살리려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휴머니스트들도 그를 규범으로 삼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오디세이아를 통해 그가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했다는 근거는 찾기 힘듭니다. 도리어 “신의(神意)가 만사의 기본”이라고 주창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결코 인간을 무시하거나 경시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신의(神意)를 좇는 것이 애인(愛人)하는 길이요, 애인(愛人)은 신의(神意)를 따라 수행하는 것이라고 여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가 과연 그러한 길을 걸었는지 이제부터 조심스럽게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인용부 속의 인명과 지명은 천병희 교수가 원전 번역한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의 표기법에 따름)

 

-오디세이아 줄거리-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아를 떠난 뒤 트로이아와 동맹 관계에 있던 키코네스족의 나라인 이스마로스를 제압한다. 그곳에서 전리품을 나누고 빨리 도망치자고 동료들을 재촉했지만, 그 멍청한 동료들이 먹고 마시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키코네스족이 세력을 규합하여 무수히 몰려와 6명의 동료를 잃고 만다. 그들을 피해 나선 항해에서 폭풍으로 인해 파멸될 위기를 모면하면서 13일 만에 도착한 곳은 로토파고이족의 나라였다. 채식주의자들인 그 족속의 꾐에 빠져 로토스를 먹고 귀향을 잊어버린 동료들을 오뒷세우스가 억지로 끌고 가 배 안에 묶어 다시 항해하던 중에 오만불손한 무법자 거인들인 퀴클롭스의 나라에 닿는다. 그곳에서 퀴클롭스들은 각각 속이 빈 동굴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바닷가에서 가까운 동굴을 향해 12명의 동료와 함께 정찰 나간 오뒷세우스는 폴뤼페모스라는 퀴클롭스의 동굴로 들어가게 된다. 치즈와 새끼 염소와 양들을 가지고 돌아가자는 동료들의 말을 오뒷세우스가 듣지 않고 그 퀴클롭스에게 선물을 받아가려고 시도하다가, 그만 6명의 동료가 인육을 먹는 그의 밥으로 희생당하게 되고 만다. 그렇지만 자고 있는 그를 확인한 오뒷세우스와 4명의 동료들이 끝이 뾰족하고 무섭게 달아오른 올리브나무 말뚝을 그의 눈에다 밀어 넣고 돌려대었다. 오뒷세우스의 이름을 ‘아무도아니’라고 이해한 폴뤼페모스는 동료들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오뒷세우스 일행을 놓치고 만다. 나중에 그 대적의 이름이 오뒷세우스인 것을 안 그는 자기에 대한 옛 예언이 성취된 것을 알게 되지만, 자기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복수를 간청한다. 포세이돈이 그 아들의 기도에 대해 응답해 줌으로써 오뒷세우스는 천신만고 끝에 무려 10년이 지난 후에야 귀향에 성공하게 된다.

 

그다음에 도달한 아이올리에 섬에서 아이올로스가 오뒷세우스 일행을 반가이 맞아주고 호송해주어 마침내 고향땅이 그 모습을 드러낸 곳까지 다가갔으나, 다시 폭풍이 그들의 일행을 낚아채 먼바다로 날려 보낸다. 오뒷세우스 동료들이 그가 받은 복을 시기하다가 일어난 사건이었다. 다음으로 그들은 라이스트퀴고네스족의 땅 텔레퀼로스에 닿았으나, 그곳의 잔인한 주민들이 오뒷세우스의 동료들을 작살로 꿰어 끔찍한 식사를 위해 가져가 버리는 참상을 겪게 된다. 오직 오뒷세우스의 배만 남은 채 다른 모든 함선은 그곳에서 결딴나고 만다. 그다음에 도착한 곳이 바로 아이아이에 섬으로서 인간의 음성을 지닌 무서운 여신, 머리를 곱게 땋은 키르케가 사는 섬이었다.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일행을 둘로 나누어 그 섬을 정찰하던 중, 에우륄로코스를 필두로 앞장서서 가던 한 패(23명)가 키르케의 궁전을 발견해서 가까이 갔다가 그만 키르케의 꾐에 빠져 에우륄로코스를 제외하고 모두 돼지로 변하게 된다. 고향을 잊게 하는 약을 마시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돼지로 변한 전우들을 두고 어서 달아나자는 에우륄로코스의 제안을 물리치고 오뒷세우스는 홀로 무장하고 키르케와 담판을 지으러 간다. 가는 길에 헤르메스를 만나 훌륭한 약을 선사받은 그는 키르케를 제압한 후 그녀에게서 다시는 그들에게 고통과 재앙을 꾀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낸다. 돼지로 변한 전우들을 원상회복시킨 오뒷세우스는 만 일 년 동안 그곳에서 고기와 술로 잔치를 벌이며 보내게 된다.

 

키르케의 인도를 받아 오뒷세우스 일행은 노가 많은 배를 타고 하데스의 곰팡내 나는 집으로 내려가서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자신의 여정에 대해 문의하게 된다. 그곳에서 이미 죽은 전우인 엘피노르와 자기를 낳아서 길러주던 어머니 안티클레이아를 만난다. 그 이후에 테이레시아스를 만나, 폴뤼페모스[퀴클롭스]를 눈멀게 한 것 때문에 그 아버지 포세이돈의 간섭으로 인해 힘든 귀향길이 그에게 마련되었다는 것과, 앞으로의 여정에서 태양신 헬리오스의 가축에게 해코지하지 말라는 경계를 듣게 된다. 그 하데스에서 오뒷세우스는 고귀한 여러 여인들의 혼백들 뿐 아니라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잔혹하고 파렴치한 아내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아이기스토스가 공모하여 그를 죽임],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트로이아 전쟁 중 가장 용감했던 그리스 군 장수로서, 그의 분노로 시작하는 ‘일리아스’는 그가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 대한 원한과 슬픔을 잊고 프리아모스에게 그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내주는 장면으로 끝남]와 파트로클로스,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두고 경합이 벌어져 그리스 장수들의 투표에 의해 그것이 오뒷세우스에게 돌아가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자살함], 탄탈로스[물이 자기 턱 밑까지 닿아 있지만 마시려 할 때마다 물이 뒤로 물러나며 사라지는 상황에 처함], 시쉬포스[거대한 돌덩이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지만 그 무게가 그를 뒤로 밀어내어 다시 들판으로 굴러 내린 돌을 기를 쓰며 밀어 올리는 상황에 처함] 및 헤라클레스의 혼백을 만나 대화하기도 한다.

 

하데스에서 벗어난 오뒷세이아 일행은 아이아이에 섬으로 돌아와 키르케의 도움을 받아 쉴 새 없이 노래하는 세이렌 자매의 섬을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오뒷세우스는 전우들이 그 자매들의 목소리에 유혹받지 못하도록 밀랍을 이겨서 그들의 귀에 발라주고, 자기는 돛대를 고정하는 나무통에 자기 손발을 묶게 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즐기게 된다. 그 섬을 지나 항해하자 한쪽에는 누구도 무사히 벗어난 적이 없는 괴물 스퀼라(12개의 발과 6개나 되는 목이 있음)가 살고 다른 한쪽에는 짠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고귀한 카륍디스(3번씩 내뱉고 3번씩 빨아들임)가 거주하는 해역을 지나게 된다. 카륍디스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스퀼라가 순식간에 6명의 동료를 낚아채어 비명을 지르는 그들을 자기가 사는 동굴 입구에서 먹어치우는 가장 참혹한 광경을, 가까스로 살아난 오뒷세우스 일행은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목도해야 했다. 그곳을 벗어나 인간을 기쁘게 해주는 헬리오스가 사는 섬에 가까이 왔을 때 키르케가 권고해 준 대로 오뒷세우스는 그곳을 지나치려 했으나, 에우륄로코스가 피로와 졸음에 지친 전우들의 고충을 몰라주는 그를 비난하면서 하룻밤만 쉬고 가자고 제안한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곳에 있는 소 때와 작은 가축들을 건들지 않겠다는 맹세까지 한 동료들이 이튿날 아침에 오뒷세우스가 자고 있는 새에 가장 훌륭한 소들을 잡아 요리해 버린다. 이것을 알게 된 헬리오스가 제우스에게 그들을 벌주라고 기도하자, 제우스는 포도줏빛 바다 한가운데에서 번쩍이는 번개로 그들의 날랜 배를 쳐서 박살 내어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을 한 번에 모조리 죽여 버린다.

 

결국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의 예언대로 오뒷세우스의 배와 전우들은 파멸당하고 그만 홀로 살아남는 신세가 된 것이다. 선재들 위에 앉아 9일 동안 떠밀려가다 그가 도착한 곳은 사람의 목소리를 가진 무서운 여신 칼륍소가 살고 있는 오귀기에 섬이었다.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남편으로 삼으려는 욕심에서 속이 빈 동굴에다 그를 붙들어주고 부양하며 그에게 영원히 죽음도 늙음도 모르게 해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의 가슴속 마음을 설득하지 못한다. 그녀와 7년을 보낸 후 어느 날 그녀는 오뒷세우스에게 귀향하라고 재촉한다.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의 귀향이라는  신들의 확고한 결정을 통고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마련해 준 뗏목으로 바다를 항해한 지 18일째 되는 날 파이아케스족의 나라가 모습을 드러냈으나, 포세이돈이 폭풍으로 그의 뗏목을 박살 내버리자 그는 헤엄을 쳐서 심연을 건너 그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알키노오스의 딸인 나우시카아의 도움을 받아 알키노오스를 만나게 되고 그의 배려로 신처럼 대접받고 존경받을 뿐 아니라 청동과 황금과 옷가지 선물도 넉넉히 공급받게 된다. 게다가 그가 자기 배로 호송해 주어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 이타케에 도착하게 된다.

 

고향에 도착했지만 아직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집에 진 치고 있는 108명이나 되는 페넬로페 구혼자들을 처단하는 일이 남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뒷세우스가 비참하게 죽었다고 여기고는, 정당한 방법으로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려고도, 자기 고향에 돌아가려고도 않은 채, 방자하게도 마음 놓고 오뒷세우스 집의 재물을 아낌없이 탕진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생사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퓔로스로 떠난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돌아올 때 죽일 계락까지 짜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으나 그 음모는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오뒷세우스는 자기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거지 행색을 하고 우선 자기 집 외딴곳에서 돼지를 치던 에우마이오스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바로 이어 귀향한 텔레마코스도 돼지치기 집으로 왔다가 아버지 오뒷세우스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구혼자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다. 오뒷세우스는 계속 거지 행색을 하고 자기 집으로 가서 구혼자들의 동향뿐 아니라 집안에 있는 하인들의 동태도 살피면서, 누가 자기들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아테나도 구혼자들 중에 어떤 자들이 올바르고 어떤 자들이 무도한지 알 수 있도록 시도해 보라고 재촉했으나 그들 중에 그 재앙에서 구함 받을 만한 자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유모인 에우뤼클레이아의 도움을 받아 자기가 없는 동안 구혼자들 편에 붙어 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를 파렴치하게 적대한 여인들 12명과 그 외의 불충한 하인들도 구분해 낸다.

 

그리하여 오뒷세우스는 텔레마코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소치기 필로이티오스와 함께 구혼자들과 싸워 그들을 죄다 단 번에 처단해버린다. 오뒷세우스는 그들이 자신들의 못된 짓과 신들의 운명에 의해 제압된 것이며, 그들의 근본적인 죄악은 “자기들을 찾아오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지상의 인간들을 어느 누구도 존중하기 않았던 것”임을 명백히 밝힌다. 그렇지만 이 처단 과정에서 멘토르로 변장한 아테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 수적으로도 불리한 상황 가운데서, 아테나가 그 구혼자들이 오뒷세우스 일행을 향해 던진 창이 다 빗나가게 했기 때문이다. 그 구혼자 무리를 몽땅 제거한 다음에, 유모 에우뤼클레이아가 지적한 여인 12명을 불러 그 시신들을 옮기고 집안을 말끔히 정돈하도록 시킨 후에 그 여인들도 죄다 처단해 버린다. 최종적으로 재앙의 치유자인 유황을 가져오라고 시킨 오뒷세우스는 직접 홀과 다른 궁전과 안마당을 유황으로 구석구석 정화한다. 그 후에 잠에서 깨어난 페넬로페와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뒷세우스는 홀로 아들 잃은 슬픔 가운데 살고 있는 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찾아가 감격적으로 회우하는 기회를 가진다. 그동안 죽은 구혼자들 소식이 퍼져 그 가족들이 각자의 시신을 찾아 오뒷세우스 집 밖으로 날라 묻어주었고, 다른 도시에서 온 구혼자들은 배에 실어 각자의 집으로 날라다 주도록 배려한다. 그렇지만 자기 가족을 잃고 분노한 이들이 오뒷세우스를 찾아 라에르테스 집으로 찾아와 한바탕 복수전을 벌이려 하였으나, 제우스의 허락을 받은 아테나의 중재로 “만인에게 공통된 전쟁의 다툼”을 멈추고 양편이 서로 맹약을 맺게 함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