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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도(道)-보편적 원리를 실천하라

한 인물을 이해하는 방식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0. 4. 18.

한 인물을 이해하는 방식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광진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고민정 후보가 MBC와 인터뷰하는 영상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인터뷰 내내 문재인 대통령을 자주 언급한 그녀에게 뉴스 앵커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존재입니까, 대통령은?” 이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저한테 정치를 가르쳐준 유일한 분이시죠. 뭐, 글과 말로 가르쳐주신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제가 보고 배우고 느끼고 했던 분은 유일하게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이셨죠. 그러니 저에게 있어 문재인을 빼고는 말할 수 없죠.”

 

그녀의 인터뷰를 들으며 제가 3년 전에 쓴 글 한 편이 생각났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아도 당시 제가 이해한 바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국한 후 2년 여 동안 국내 이곳저곳을 다니는 중에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안타까웠던 점은 문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와 그에 대한 그들의 평가 대부분이 설득력 있는 분명한 팩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얼마든지 문 대통령에 대해 새로운 정보(부정적인 것까지 포함해서)를 듣고 배우기 원했지만, 제가 들은 이야기들은 상당히 부정확하고 출처가 의심스러운 정보나 선입견으로 물든 해석이라고 보이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글로 옮기기에도 난감한 이야기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설득력이 떨어진 또 다른 이유는,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제가 문 대통령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지 묻는 이도 없었을 뿐 아니라, 제가 문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문 대통령에 대한 자기 소견만을 감정적으로 펼쳤을 뿐, 그 문제에 대해 제 의견을 청취할 의향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독백이라면 누구에게도 의미 있는 정보로 다가가기는 힘들겠지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는 말은 누구나 동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기도 자기를 잘 알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적지 않은 판이니, 다른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볼 재간을 가진 이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이들도 많지만,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변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흔히 접합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변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가 봅니다. 그렇지만 현재 어떤 사람을 평가하려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과거를 돌이켜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도가 있을까요? 미래에 그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추정보다는 과거에 그가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사실에 근거하여 현재의 그를 평가하는 게 더 정확할 것입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제 평가도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가 지난 세월 걸어온 삶의 궤적을 근거로 그를 이해하고 판단한 것일뿐입니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점에 관해서도 그의 과거만큼 더 잘 일러주는 정보는 없을 것입니다. 혹시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혹은 제가 모르고 있는 중대 정보가 있다면 제게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확한 사실 여부를 잘 따져 보아 문 대통령에 대한 제 평가를 다시 조정하겠습니다. 제게 문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해 준 사람들은 묻지 않았지만, 혹시 누군가가 문 대통령에 대해 묻는다면 제가 나눠 드릴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3년 전에 쓴 글 그대로 아래에 싣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소회 -

  (2017월 6월 30일)    

지난달 10일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곳(말레이시아)에 사는 저희에게도 날마다 큰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그 고통스럽고 지루했던 ‘이명박근혜’ 시대를 마감하고 상식이 소통되고 정의의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이곳 이방 땅에서나마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시한 예능 따위에 눈 돌릴 겨를도 없이 새로운 정치가 구현되는 현장을 여러 통로를 통해 접해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무릇 한 사람의 됨됨이는 그의 과거를 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듯이 문 대통령의 인격은 지난 세월 그의 여정이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1953년 흥남 거주 피난민의 아들로 거제에서 태어나 6살 무렵 영도로 이주한 그의 가정은 어릴 때부터 연탄 배달도 해야 하고 성당의 식량 배급으로 끼니를 해결한 때도 잦을 만큼 빈한했다고 합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무능했던 상황에서 어머니가 온갖 행상을 마다하지 않은 덕에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던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영도 남항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남중고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할 만큼 학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서울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재수하여 1972년에야 경희대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한 탓에 1975년에 강제 징집되어 특전사에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여단장이 바로 전두환이었고 대대장이 바로 장세동이었다는 게 알려져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1978년에 제대한 후 1980년에 사법시험에 합격(1979년에는 낙방함)했는데 1979년 부마항쟁과 1980년 어간의 상황을 거치는 동안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된 상태에서 2차 합격소식을 유치장 속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법연수원에서도 수석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시위 전력으로 인해 차석으로 밀려났을 뿐 아니라 판, 검사로 임용되지도 못하고 변호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보다 성적이 하위였지만 판사로 임용된 고승덕이나 검사로 임용된 박원순의 경우를 보면 편파적인 조처였지요.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이후에 만난 이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그와의 만남으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생애에서 먼저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난한 환경을 벗 삼아 살면서 체험한 바를 위대한 도약의 기회로 성화시킨 그의 성숙한 인격적 면모였습니다. 장사하다 사기당하고 빚만 가득 진 아버지의 무능함을 보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실질적 가장 노릇을 도맡은 어머니의 노고를 보며 안타까움이 절절했을 청소년의 시기를 그는 반항하면서도 지속적인 독서로 내면세계를 가꾸어가며 반듯하게 자라 갔습니다. 당시 경남중고 교내 분위기는 빈부격차가 심해서 학생들 간에 위화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교가 위치해 있던 지역은 부산의 부유층이나 중산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대신동이었으나 그 학생들 중에는 문 대통령처럼 영도와 같은 가난한 지역에서 진출해 온 이들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당시 영도는 탈북 피난민 같은 가난한 이들이 잠시 정착했다가 사정이 펴지면 이주해가는 빈한한 지역이었으니 부유한 집안 출신 학생이나 교사들이 영도 출신 학생들을 어떻게 대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이런 교내 분위기를 통해 불공평하고 불의한 세상을 일찍부터 접하면서 반항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다른 한편으로 가난한 친구들의 처지를 동정하고 그들을 돕는 일상을 통해 주변에서 지켜보는 이들을 행동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문제아’(고교 시절 그의 별명)였습니다.

 

당시 술, 담배를 입에 대고 잦은 정학 처분을 받기도 한 것이 바로 이런 그의 반항아적인 면모의 일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고교 동문 건축사 승효상이 밝힌 대로 고교 시절 어느 소풍 일에 다리 저는 친구를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으로 올라가던 문재인, 어머니가 밝힌 대로 고3 때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가는 친구를 도와준다고 버스 종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문재인의 모습은 그의 반듯한 면모의 일단이기도 했습니다. 고교 재학 시절에 벌써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분노해 교내 시위를 주도한 것(1969년)은 그의 반항아적 면모가 새로운 차원으로 구현되어갔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재수를 감내해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경남고 수석 입학자였던 그의 학력을 보자면 졸업하는 그 해에 서울상대로 진학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대학 입학 후에도 이어지는 그의 반항아적 면모를 무도한 불의가 판치던 당시 사회는 더 이상 묵과하지 않았습니다. 독재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주도하던 그를 강제 징집해서 특전사로 배치시켜버렸습니다. 불공정하고 불의했던 독재 정권이 그에게 가한 이런 부당한 시련조차 그는 자신의 반듯한 면모로 당당하게 딛고 일어섰습니다. 제대한 후 당당하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 수석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출세가도인 판/검사의 길이나 고수입이 보장된 김앤장과 같은 로펌 행 대신 영광스러운 인권변호사의 길로 나서게 되었으니까요. 이 정도만으로도 그의 살아온 지난 세월은 한 편의 영화로 제작되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생애가 더욱 빛나는 두 번째 대목은 세상의 크낙한 필요에 동요되기보다 자신의 은사와 재능을 통해 기여할 길을 모색해 온 그의 겸허한 자기 인식입니다. 이것은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동업하던 그에게 1988년 들어 김영삼이 제의한 국회의원직 영입 제안을 거절한 결정적 경우에 대한 제 해석입니다. 그의 거절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었다면 제가 오해한 것일 수 있겠지만 지난 세월을 복기해 보면 그의 이런 태도는 일관성 있게 지속되었습니다. 사실상 이 제안은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의원 직을 맡으며 활동해 온 그에게 정치권력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던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당시 제안받은 노무현과 김광일이 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니 만일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문 대통령은 일찍부터 국회의원의 길을 걷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각종 인권, 시국, 노동 연관 사건을 맡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대변하는 인권변호사의 직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만들었으니 이제 책임지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2003년에 청와대로 입성할 때도 그는 “정치는 시키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나아갔으며 그 이후에도 각종 선거 때마다 징발론에 시달렸지만 “나는 정치와 맞지 않다”며 계속 거절한 바 있습니다. 이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2009년 5월 노 대통령 서거 사태 이후의 일입니다.

 

결국 문 대통령은 법조인의 자격을 갖춘 자신의 재능과 은사를 활용하여 사회적 약자를 돕고 그들을 대변하는 것이 자기에게 부여된 고귀한 역할이요 소명으로 굳게 믿은 듯합니다. 비록 고교 시절부터 사회적인 불의와 정권의 무도를 참지 못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거나 참여해왔지만 그것을 정치인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살아 숨 쉬는 한국의 젊은이로서 마땅히 참여해야 할 사회적 책무로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그러한 배경을 앞세워 정치권력을 얻기 위해 시도했을 리 만무합니다. 사실상 지난 우리나라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그와 같이 실력을 갖춘 정직하고 반듯한 이들이 정치권에 얼마나 많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무도한 정치군인들이나 시정잡배만도 못한 모리배나 정상배 같은 이들이 득실거린(거리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판을 들여다보면서 능력 있고 깨끗한 정치인이 얼마나 필요한지 절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런 정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문 변호사는 그저 묵묵히 자기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갔을 뿐입니다. 한편으로 그러한 인물에 대한 사회적 필요가 그토록 거대하고 긴박하고 엄중했지만 문 변호사는 그 길이 자기의 길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온 세상이 찾고 추구하는 그 화려한 정치인이라는 자리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어느 날 대통령 직이 부여되었습니다. 스스로 그 직책에 가장 잘 맞게 준비되었다는 믿음의 분량에 도달한 때에. 하나님께서 문 대통령을 들어 쓰실 우리나라의 장래를 바라보면서 저희 속에 흥분된 기대가 가득 차오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대통령 직을 사특하고 불의한 방식으로 탈취하지 않고(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하고 그렇지 않은 이가 또 있었나요?) 순리를 따라 공의로운 방식으로 부여받은 성숙한 한 인물이 이루어갈 미래를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만들어 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문 대통령의 지난 세월의 궤적 중 이러한 측면은 우리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때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믿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우리를 부르는 거대한 세상의 다급한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우리나라에서만 들리는 게 아닙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전 세계 뉴스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에게 뉴스 하나하나는 죄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 부르심은 또한 한결같이 다급하게 들립니다. 한 시간당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는지 또는 예수님을 통한 구속의 길을 접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지 구체적인 통계가 동반되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르심의 수자는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혹은 소통 능력에 따라 그 수는 배가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당신께서 직접 음성을 통해 말씀해주지 않는 이상 그 뜻을 분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때 긴요하게 활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우리 각자의 내면적 특성, 즉 은사와 능력과 인격이나 소원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봅니다. 복잡다단해서 분별하기 어려운 외부적인 상황과는 달리 우리 내부의 면모는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있고 오랜 기간 체험해 온 영역이라 보다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대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일정한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상황에 직면하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시행착오를 거듭해 가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의 재능과 성품 및 소원을 분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확고한 자기 이해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자기 생애를 통해 이루어가기 원하시는 뜻을 분별하라는 권면이 바로 로마서 12:3의 의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마땅히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표준새번역)

 

즉,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일(2절)은 먼저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해주신 믿음의 정도를 따라 하나님께서 빚어주신 자신에 대한 됨됨이와 분수를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사회의 비극이 주로 자신을 과대평가한 이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면 과한 주장일까요? 지난 우리 현대사만 고려하더라도 역대 대통령과 장관 및 국회의원들 중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자질과 성품을 갖추고 그 임기 동안 국가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기여를 한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 각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무리한 기간 내에 무리한 방식으로 무리한 일을 벌였다가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자신의 무리한 사업을 관철시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불법하고 무도한 세력과 결탁하여 수많은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주범이 되는 경우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과대평가에 버금가는 폐해를 낳는 게 바로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입니다. 예컨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의 경우입니다. 그 종에 대한 주인의 평가는 악하고 게으르다(26절)는 것이었습니다. 악하다는 측면이 주님에 대한 극도의 오해와 편견에 기반하고 있다면 게으르다는 측면은 자기에게 부여된 한 달란트의 가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 한 달란트의 가치를 현대의 시가로 정확하게 환산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가치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반 노동자의 15년 치 임금”에 해당한다는 어떤 성서 주석가의 지적에 주목한다면 최소한 3억(예컨대 연봉 2천만 원이라고 볼 때)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현시대 누군가가 이 억대의 금액을 어떤 방식으로든 활용하지 않고 장롱 안에 감추어 두고만 있었다면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요? 그와 같이 자신의 됨됨이와 분수를 깨달으려는 진지한 시도 없이 자신의 처지에 낙망하고 절망하여 보석 같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갈고닦지 않아 녹슨 채 일생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나 과소평가 대신 분별력 있는 자기 평가에 근거하여 60여 성상을 반듯하게 살아온 한 인물이 지금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정치권력을 획득해서 폼 나게 한번 살아보라는 온갖 사이렌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고난이 점철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은 한 인물. 무능한 아버지, 행상을 전전하던 어머니, 성당 구호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내리막길로 연탄 배달하던 중 수레 뒤에서 잡아주던 어머니가 너무 힘이 들어 손을 놓는 통에 길가에 처박혔던 그 처참한 기억을 절망의 소재로 삼지 않고 도리어 자기 재능과 자질을 더욱 확고하게 계발해가야겠다는 미래의 동력으로 삼은 한 인물이 우리 앞에 우뚝 서 있습니다. 자기에게 구호식량을 나누어주던 수녀님들을 천사처럼 바라보던 기억을 품고 어머니가 선물해주신 묵주반지를 손에서 빼지 않은 그 인물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능력과 지혜를 구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돌아보지 마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대통령 직 임기 내내 구현해가길 동역자님들과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