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믿음을 항상 맺지는 못하는 이유
믿음의 세계는 우리를 항상 인문학 공부로 이끌지만, 인문학 공부가 우리를 항상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항상 이웃 사랑으로 이끌지만, 이웃 사랑이 우리를 항상 하나님 사랑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문학이나 철학이나 역사에 대한 소양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는 점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문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철학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을 기록한 역사를 통해 보다 지혜로운 삶을 경영해 갈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러한 지식이 반드시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첫째로, 이러한 지식을 추구하는 자세와 연관될 수도 있을 테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계시에 대한 태도와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첫째 이유로 지적된, 지식 탐구 자세와 연관된 측면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두 가지 측면만 다루어보겠습니다. 우선 이성이나 지식의 용도와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전진하다 보면 그것들을 오용하거나 그것들의 한정된 범위를 넘나드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다음으로는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해 교만한 자세로 재단하는 경우도 왕왕 있습니다. 이성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세계가 부재하다고 단언하거나 그 세계에 대해 오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성과 지식의 용도와 한계: 칸트의 지적-
첫 번째 경우를 논의해 보자면, 먼저 칸트(1724-1804)를 다루어야겠습니다(이하에서 김용규 선생과 존 프레임의 글 참조함.). 그가 바로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 지식의 한계를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칸트는 먼저 물자체(物自體)의 세계(noumenal world), 즉 우리 경험과 동떨어진 실재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phenomenal world), 즉 우리 경험과 관련되어 우리에게 나타나는 세계를 구분했습니다. 이 구별에 근거하여 지식은 세계 또는 그 속에 있는 특정 사물들이 우리의 경험적 직관 속에 들어온 현상의 산물일 뿐이며, 우리는 세계자체(世界自體)나 물자체(物自體)에 대해서는 영원히 알 수 없다고 천명했습니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나 특정 사물에 대한 지식은 실체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선험적인 혹은 선천적인(a priori) ‘정신의 틀’인 우리의 감성과 오성(悟性=대상을 구성하는 개념 작용의 능력)에 의해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난 것’이나 ‘파악된 것’일뿐, 그것들 자체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참외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참외라는 실체 자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선천적인 감성과 오성을 활용하여 구성한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세계나 사물들이 죄다 환상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참외가 실재하듯이 그것들은 반드시 실재하며, 우리의 지식들은 경험의 기반인 ‘세계’와 사고의 기반인 ‘인간 정신’의 상호작용의 산물이기에 믿을 수 있다고 칸트는 주장했습니다. 바로 이점이 근대에서 사용하는 “객관적”이라는 용어의 의미이자, 과학 지식이 가진 확실성의 본질입니다. 그렇지만 이 확실성은 예로부터 연면히 내려오는, 본래적 확실성을 가진 진리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자리이자 한계입니다. 이 점을 꿰뚫은 칸트가 이성이 가진 “최대의 그리고 유일한 효용”은 진리의 파악이기보다는 도리어 “오류의 방지”라고 지적하면서, 이성이 자기 경계와 자기비판의 체계를 작동하지 않는다면 부패한다고 엄중하게 경고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이성과 과학 지식의 확실성에만 주목했을 뿐 그것들의 한계에는 눈감아 버렸습니다.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고 독일 관념 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칸트의 주장이라도 이러한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존재할 줄 압니다. 그의 주장을 그저 사변적인 논리로만 구성된 언명으로 여길뿐 그것이 옳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며 볼멘소리를 할 게 뻔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볼멘소리를 잠재울 과학적 증거가 이미 한 세기 전에 제시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을까요? 이성이나 과학 지식 속에 내재된 확실성이나 객관성이라는 것이 세계와 사물들 자체에 대한 본래적 지식이 아니라는 점은 이미 20세기에 들어와 더욱 분명히 밝혀진 바 있지요. 예컨대 독일의 양자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1901-1976)가 1927년에 발표한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주목해 봅시다. “아원자(=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예: 원자핵, 양성자, 전자>)의 세계에서는 움직이는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는 이 원리에 의하면, 아원자 수준에서는 그 대상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대상의 관찰이 불가능합니다. 예컨대 전자를 관찰하려면 전자보다 파장이 짧은 빛을 사용해야 하므로 감마선을 사용해야 하지만, 그 광선은 에너지가 높아 전자를 때려 궤도 밖으로 쳐 내게 되므로 전자의 방향과 운동량을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지만 낮은 에너지를 가진 광선을 사용하면 전자의 존재를 파악할 수조차 없지요. 즉 어느 하나를 알려면 다른 하나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친구인 파울리가 표현한 대로입니다. “자네는 p(운동량)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고, 또 q(위치)의 눈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네. 그러나 만약 자네가 동시에 두 눈을 뜨고 세상을 보려 한다면 아마 미쳐버릴 것이네.” 즉 제삼자로서 객관적으로는 자연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지요.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법에 노출된 자연이다.”라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이 바로 이 원리에 기반한 언명으로서, 이성이나 과학 지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흥미로운 점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불확정성 원리를 주창한 하이젠베르크가 말년에 자기 아내에게, “나는 신의 조화(造化)를 그 어깨너머로 엿보는 것을 허락받은 커다란 행운을 타고났다.”라고 말했다고 하지요.
우리 이성도 엄연한 한계가 있고 우리 눈에 비친 세계나 사물들 자체에 대한 지식도 이렇게 부분적이고 불완전한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측면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오로지 이성과 지식의 정확성과 객관성에만 목매는 사이비 과학자들과 몽매한 현대인들이 전 세계에 숱하게 많습니다. 이성과 지식의 진정한 용도와 그 한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단지 그것들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매력적인 재화의 극대화와 편리하고 풍족한 생활의 극대치를 확장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이지요. 바로 이들에 의해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환경 위기, 전염병 위기, 빈부격차 위기, 식량 위기, 자원 고갈 위기, 핵무기 위기 등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이성과 과학 지식이 이룩한 긍정적인 업적들을 무시하고 폄하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것들을 오용하고 그것들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자기들과 인류를 불행에 빠뜨린 미성숙한 과학자들과 무책임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지도자들을 지목하고 비판하며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재단: 도킨스의 편견-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해 교만한 자세로 재단하는 두 번째 경우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이성과 과학 지식을 오용함으로써 그런 세계에 대해 오해하거나 심지어 그 세계가 부재하다고 단언하고 전파하는 일에 여념 없는 이들도 자주 눈에 띕니다. 불가지론(agnosticism=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종교적 인식론)이나 무신론(atheism)의 입장을 뛰어넘어 반유신론(antitheism)에까지 발을 내디딘 특이한 용사들이지요. 반무신론(antiatheism)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들을 특이한 용사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월적인 존재와 초자연적인 세계에 대해 짙은 적대감을 품은 채 활발하고 요란하게 반대론을 펼쳐 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들 중에 그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나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같은 이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점은 기독교적 유신론에 대해서는 불문곡직하고 마음을 닫아 버리지만 그들의 입장에 대해서는 무한정으로 수용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자기들이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이런 인물들에 경도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이한 용사들에 의해 이성과 지식의 세계가 오도되고 오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에 대한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자인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의 아래 지적으로 족할 듯합니다.
“버트런드 러셀 이후에 우리에게 있는 전문적인 무신론자에 가장 가까운 인물인 도킨스와 같은 철두철미한 합리주의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들이 혹평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가장 덜 준비된 이들이다. 왜냐하면 이해해야 할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점이나 최소한 이해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학교 1학년생도 인상을 찌푸리게 할 종교적 믿음에 대한 저속한 풍자물을 변함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들이 종교를 혐오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더 부정확한 것이 된다.”(Card-carrying rationalists like Dawkins, who is the nearest thing to a professional atheist we have had since Bertrand Russel, are in one sense the least well-equipped to understand what they castigate, since they don't believe there is anything there to be understood, or at least anything worth understanding. This is why they invariably come up with vulgar caricatures of religious faith that would make a first-year theology student wince. The more they detest religion, the more ill-informed their criticism of it tends to be.)
‘전문적인 무신론자’ 혹은 반유신론자라면 적어도 기독교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지식과 소양을 갖추는 게 마땅하겠지만, 도킨스에게서는 그런 점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혐오로 가득 찬 채 기독교에 대해 퍼붓는 그의 혹평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다른 책(“Reason, Faith, and Revolution: Reflections on the God Debate”) 속에서 그와 히친스를 “디치킨스”(Ditchkins)라고 부르는 이글턴은 종교가 인간 역사에서 많은 불행을 초래했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동의하면서도, 자기들이 비판하고 있는 대상인 종교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없고 인간 구원을 위한 혁명적 가치를 담고 있는 성경의 텍스트에 대해서도 무지한 점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습니다. 겸손이란 털끝만치도 없이 자신들의 "무지와 편견"으로 종교를 혐오하지만, 자본주의적 야만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지요.
이상에서 인문학적인 지식이 항상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직결되지는 않는 첫 번째 이유로서 그 지식을 탐구하는 자세와 연관된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즉 이성이나 지식을 오용하거나 그것들의 제한된 범위를 넘나드는 경우와 초자연적인 존재 및 그 세계에 대해 교만한 자세로 재단하는 경우를 고찰해보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 이유를 상고해보겠습니다. 즉 신 혹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계시에 대한 태도와도 관련된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태도: 데카르트의 역할-
이 세상에는 신 혹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메시지에 대해 애초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대부분은 신을 인간이 창조한 존재 혹은 인간 사고의 결과로 형성된 사변적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신이 자신의 메시지를 계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있는 경우이지요. 예컨대 “근대 철학의 아버지”이자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카르트(1596-1650)의 사례를 통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존 프레임에 의하면, 그는 철학, 역사 및 신학 연구와 다양한 여행을 통해 진리를 추구했던 철학자였습니다. 다양한 권위(성경, 교회 전통, 헬라 철학)를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지식을 쌓아간 중세의 스콜라 철학(9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서 유럽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던 신학)과는 달리, 그는 “사실로 분명하고, 명백하게 인식되는” 진리를 찾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방법적 회의”(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하는 의심)라는 수단을 통해 진리 탐구를 시도했으나, 자기를 만족시킬 만한 확실한 것을 붙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두 손을 가지고 있다.” 혹은 “나는 지금 불 옆에 앉아 있다.”라는 일상적인 경험조차도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의심했던 그는 심지어 1+3=4라는 수학적 지식까지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악의적인 귀신이 자기를 속여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회의주의에서 그를 구한 것이 바로 그 의심 자체였습니다.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모든 명제는 다 의심할 수 있으나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명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유명한 명제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의심할 수 있으나, 의심한다는 것 자체는 생각의 존재를 입증하고, 생각은 다시 생각하는 주체의 존재를 입증한다고 본 것이지요. 그는 이 명제를 철학의 제1원리로 삼고 난 후, 이 명제로부터 ‘신의 존재’를 연역해냈습니다.
김용규 선생에 의하면, 데카르트는 자신이 회의하고 의심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확신을 얻었고, 이런 ‘불완전한 존재’라는 개념으로부터 ‘완전한 존재’에 관한 관념을 추론해냈습니다. 그림자의 존재가 빛의 존재를 전제하고, 낮은 곳의 존재가 높은 곳의 존재를 설정하듯이, 나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는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신을 “완전무결한 존재자”로 규정했습니다. 항상 충실한 가톨릭 신자로 자처한 그는 자신의 논증이 하나님의 존재를 명백하게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신의 계시나 교회의 전통을 무시한 채 주관적인 의식만을 진리의 궁극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은 그의 철학적 성찰의 결과, 신이란 존재가 인간의 피조물이 된다는 무신론자들의 논리가 가능해졌습니다. 가톨릭 신학자인 한스 큉이 언급한 대로, “신의 확실성으로부터 자아의 확실성으로 건너가던 중세적 추론 방식이 근대적인 방법으로 교체된 것이다. 즉 자아의 확실성으로부터 신의 확실성으로 건너가는 것이다.”라는 지적, 영적 대변혁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데카르트를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자율적인 이성에 근거한 이런 철학적 성찰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신 혹은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대우할지는 불문가지였습니다. 이신론(理神論)적 입장에서 이신교(理神敎)로까지 진전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 프랑스대혁명 시기에는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 당원들이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서 성서에 기록된 기적들과 연관된 조각 235개를 파괴한 다음 그곳 첨탑에 자코뱅당의 상징인 금속 모자를 씌우는 단계까지 나아갔습니다. 심지어 미국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성경에서 비이성적이라고 여겨진 모든 부분을 삭제한 “제퍼슨 성경”(The Jefferson Bible)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이 성경은 “거기에 그들은 예수를 뉘였으며, 무덤의 문에 커다란 돌을 굴려서 입구를 막고 떠났다”라는 말로 끝이 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그분의 기적적인 구원 기록들을 죄다 삭제해 버린 것이지요.
-신화로 변질된 역사: 캠벨의 오해-
신을 인간의 피조물로 여길 수 있는 사변적 기반을 마련한 “최초의 근대 철학자”(the first modern philosopher) 데카르트는 정작 늘 자기는 충실한 가톨릭 신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300년을 뛰어넘어 태어난 한 비교신화학자 한 사람은 가톨릭 신자의 자리에서 범신론 혹은 불교에 경도된 위치로 이동했습니다.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 1904-1987)이 그 주인공입니다. “스타 워즈”(Star Wars)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가 그를 자기 영적 멘토로 모셨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of Thousand Faces>, 1949)을 기반으로 하여 “스타 워즈”를 제작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아일랜드 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 중세 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장학금으로 파리 대학(소르본)에서 2년간 유학하면서 현대 미술과 현대 문학을 처음 접했을 뿐 아니라 로망스어, 문헌학, 중세 불어, 프로방스어를 공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후에 독일로 넘어가 뮌헨 대학에서 산스크리트 문학과 인도 유럽 철학을 공부하면서 힌두교에 심취하게 되었고, 프로이트, 융, 토마스 만, 괴테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되지요.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계획이었지만, 경제 사정으로 인해 1년 뒤인 1929년,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하기 2주 전에 귀국했습니다. 그리하여 준비하던 박사논문을 접은 채 우드스톡 숲 속에 있는 오두막에 세 들어 살면서 약 5년간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게 됩니다. 이때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오스발트 슈펭글러, 니체, 쇼펜하우어, 칸트, 괴테, 칼 융 등을 차례로 독파하게 되지요.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인문학을 섭렵한 캠벨이 결국 도달한 곳은 불교였습니다. 불교에 귀의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일찍이 인도의 종교지도자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 힌두교와 불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명상을 통해 내면 여행을 계속하던 그가 말년에 가서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에서 자기 이상에 가장 가까운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착이었습니다. 만년에는 자택 서재에 불교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달마대사 초상을 걸어두었다고 전해지죠. 불교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가톨릭 교회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그는 독일에서 귀국한 후에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공언하기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기독교가 자연정복 사상을 설파하고 있다고 보았고, 배타성을 띤 채 선민사상을 외치며 교리로 인해서 교파 간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데 실망했습니다. 특히 자기가 성경 속에서 신화적인 상징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기독교에서 사실처럼 다루는 것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품었습니다. 자칭 이성적이고도 과학적 언어로써 반과학적인 종교적 교의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신화를 객관적인 사실과 혼동하는 것을 배척하는 입장을 그가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은 그와 미국 언론인 빌 모이어스(Bill Moyers)가 대담하는 형식을 취해 완성한 “The Power of Myth” 시리즈(6부작) 속에 잘 녹아 있습니다. 특히 이 시리즈 2부(“The Message of the Myth”)에서 그는 성경과 다른 자료에서 비롯된 창조 신화들을 비교하면서 종교와 신화 연구가 사람들 속에서 그 적실한 관련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될 필요가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래 인용된 부분은 그가 기독교와 성경의 계시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고 있는지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캠벨: 그것(신화 작업)이 나 자신을 자유하게 해주었다. 참으로 그 메시지를 이해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것이 그렇게 해주리라는 점을 난 안다. 모든 신화, 모든 종교는 이 점에서 참이다. 즉 인간적이고도 우주적인 신비를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만큼 참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 은유에 고정되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모이어스: 은유라는 것은 ....
캠벨: 자, 예수가 승천했다. 그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신체를 갖고 있는 채로 승천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도 여전히 살아 있는 채로, 잠든 채로, 승천했다[아마도 가톨릭 교리를 인용한 듯함]. 그래서 이것은 어떤 것의 은유인 것이다. 그것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발견해야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하는 것이다.
모이어스: 그것이 무엇을 이야기한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캠벨: 그것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거기로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즉 당신도 가야만 하는 곳, 내적인 공간을 통과해서 올라가야 할 하늘, 즉 당신과 모든 생명이 비롯된 그 원천인 하늘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의미이다.
모이어스: 그러나 당신은 기독교 신앙 전통인 예수의 죽음, 매장 및 부활(우리 자신의 것을 예표하면서 보다 고귀한 실체적 진실을 띤 채 장차 몸을 극복하는)이라는 위대한 근본적인 교리들 중 한 가지를 손상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캠벨: 자, 그것이 바로 내가 그 상징을 잘못 읽은 경우라고 부르는 것이 되겠다. 그 경우가 바로 시의 관점으로가 아니라 산문의 관점으로 그것을 읽는 것이다. 그 경우가 바로 은유를 암시적인 의미(connotation)의 관점 대신 명시적인 의미(denotation)의 관점에서 읽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겠는가? 순전히 문학적인 문제이다.”
(JOSEPH CAMPBELL: It liberated my own. I know it’s going to do it with everybody who really gets the message. Every mythology, every religion is true in this sense, it is true as metaphorical of the human and cosmic mystery. But when it gets stuck to the metaphor, then you’re in trouble.
BILL MOYERS: The metaphor being ....
JOSEPH CAMPBELL: Well, Jesus ascended to heaven. The story is, he ascended bodily to heaven. The story is that his mother, still alive, asleep, ascended to heaven. So this is metaphorical of something; you don’t have to throw it away, all you have to find is what it’s saying.
BILL MOYERS: What do you think it is saying?
JOSEPH CAMPBELL: What it’s saying is he didn’t go out there, he went in here, which is where you must go, too, and ascend to heaven through the inward space to that source from which you and all life came. That’s the sense of that.
BILL MOYERS: But aren’t you undermining one of the great cardinal doctrines of the tradition of classic Christian faith, the death, of the burial and the resurrection of Jesus prefiguring our own and overcoming the body with a higher physical truth.
JOSEPH CAMPBELL: Well, that would be what I would call a mistaken reading of the symbol. That’s reading it in terms of prose instead of in terms of poetry. That’s reading a metaphor in terms of the denotation, instead of in terms of the connotation, do you understand that? A purely literary problem.)(in a transcript of “The Message of the Myth”)
캠벨이 아무리 위대한 비교신화학자라고 하더라도 그의 맹점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의 삶의 뿌리인 신화와 그 체계를 합당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언어가 철저하게 요구될 뿐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을 넘어서는 시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입장은 십분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역사적 사실을 시적 은유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이성적 입장일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승천의 의미를 다루는 상황 속에서 그것이 “순전히 문학적인 문제”(A purely literary problem)라고 지적한 그의 말대로 한번 접근해 봅시다. 문학 독해의 제1원리가 그 문학 장르와 문맥을 고려하면서 저자가 의도한 대로 읽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는 이 원리를 과감하게 어기고 있지요. 예컨대 사복음서는 장르상 역사서이며 그 저자들은 어느 누구도 문맥상 자신들이 기록한 내용이 신화나 은유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독자들이 그런 식으로 이해하기를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사복음서 모두 예수님께서 나누신 많은 비유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지만, 사복음서의 저자 그 누구도 그분의 성육신적 탄생, 삶, 죽음, 부활 및 승천을 명시적인 의미(denotation)가 아닌 암시적인 의미(connotation)로 독해하라고 제안하지 않습니다. 설령 암시적인 의미를 따지더라도 먼저 명시적인 의미를 바로 독해한 후에 시도해야 올바른 의미가 도출될 수 있겠지요. 캠벨이 호감을 갖고 읽었다는 ‘도마 복음서’는 그렇게 읽어도 자유이겠지만, 사복음서를 그렇게 독해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장구한 세월 동안 인정하고 지켜온 정경들일뿐 아니라, 그것들이 각각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발생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라는 점을 신약성경 곳곳에서 강력하게 천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군데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1-4)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eyewitnesses)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servants of the word)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요한일서 1: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what we have heard) 눈으로 본 바요(what we have seen with our eyes)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what we have looked at and touched with our hands)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즉 사복음서의 성격은 생명의 말씀(은유적 표현) 되신 예수 그리스도(실체적 존재)를 직접 경험적인 감각을 통해, 즉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그분의 말씀을 귀로 들은 사도들이 직접 기록하였거나 그들이 기록하게 한 역사적인 기록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복음서의 목적은 독자들이 이미 배운 바에 대한 엄정한 진리(exact truth)를 깨닫고 실체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교제를 누리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M. T. 브로취가 언급한 대로 어떠한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글의 성격과 목적 및 기록 상황이나 콘텍스트를 아는 게 필요한데, 캠벨이 과연 이러한 사복음서의 성격과 목적 및 기록 상황이나 콘텍스트를 제대로 납득한 상태에서 예수님 승천의 의미를 독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캠벨에 대해 예수님께서 던지실 한 마디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But Jesus answered and said to them, "You are mistaken, not understanding the Scriptures nor the power of God.) (마태복음 22:29)
그는 성경의 핵심 주제에 대해서도 오해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도 무지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기독교 이야기란 분명하게 하나의 장엄한 기적 이야기”(the Christian story is precisely the story of one grand miracle)라는 점에 대해서도 주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C. S. 루이스가 언급한 대로 불교나 회교에서는 그 종교 내에서 발생했다고 알려진 기적들이 제외된다고 하더라도 그 종교의 본질적인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철저하게 특정한 기적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주장은 모든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 즉 자존하며 영원한 존재가 자연과 인간 본성 안으로 들어와 그분의 우주 밑바닥까지 내려가셨다가 자연을 동반하여 다시 올라가셨다는 것”(the Christian assertion being that what is beyond all space and time, what is uncreated, eternal, came into nature, into human nature, descended into His own universe, and rose again, bringing nature up with Him.)이라고 루이스가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캠벨이 오해한 예수님 승천의 의미도 사실상 신약성경에 나타난 거대한 콘텍스트, 즉 성육신 이야기를 염두에 둘 때 올바로 독해할 수 있지요. “성육신 이야기는 하강과 부활의 이야기이다. 내[루이스]가 여기서 말하는 ‘부활’은 그리스도 부활 이후의 첫 몇 시간 또는 첫 몇 주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나는 아래로 아래로 하강한 후 다시 올라가는 거대한 패턴 전체를 말하고 있다.”(The story of the Incarnation is the story of a descent and resurrection. When I say 'resurrection' here, I am not referring to simply to the first few hours, or the first few weeks of the Resurrection. I am talking of this whole, huge pattern of descent, down, down, and then up again.)
-역사가 된 신화: 루이스의 발견-
신화의 세계에 심취해 있다가 가톨릭 신앙에서 벗어나 범신론이나 불교로 귀착해 버린 캠벨과는 달리, 신화의 세계에 의해 무신론에서 기독교 신앙에 귀의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C. S. 루이스(1898-1963)입니다. 다른 글을 통해 그를 다양하게 소개했기 때문에 여기서 그것을 반복하지는 않겠지만, 옥스퍼드(1925–1954)와 케임브리지(1954–1963)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30권 이상의 학술/신앙 서적을 출간한 그는 1929년에 유신론으로 회심했고 1931년(만 32세)에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유신론과 기독교로 회심하도록 도운 이는 “반지의 제왕” 작가이자 학교 동료였던 톨킨이나 기독교인 친구들이었습니다. 특히 톨킨은 이야기와 신화와 상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통해 루이스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자신에게는 하나님과 만나는 장이라고 여기며 그것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복음서의 가치를 지적했습니다. 복음서에는 역사적 사실과 초자연적이고 초월성을 띤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지적인 반응을 요청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행동해야 하지요. 한편으로는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측면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의 반응도 요구합니다. 그 내용을 맛보고 체험하면서 경이롭게 여기고 기뻐해야 마땅하지요. 특히 이 측면은 신화의 의미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신화란 우선 “자연적인 사건이나 역사적인 사건들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옛날이야기”(an ancient story, especially one invented in order to explain natural or historical events-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 이야기를 신화(myth)로 혹은 신화적인(mythic)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독법이라고 봅니다. 그 옛날이야기가 역사적 사건으로 구현된 현실과 함께 더불어 조화롭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예컨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발데르[=오딘과 프릭의 아들로서 아름다움과 친절한 성품으로 유명했으나, 로키의 속임수로 눈먼 신 휘드가 저주받은 겨우살이로 만든 창을 별 뜻 없이 던짐으로 죽임 당한 북유럽의 신]나 오시리스[=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되었다가 부활함으로써 지하 세계 및 죽은 자를 관장할 뿐 아니라 새 생명을 부여해주는 존재가 된 이집트의 신]의 신화(=옛날 이야기)의 역사적 구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루이스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준 신화(=옛날이야기)였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 루이스의 글(“Myth Became Fact”) 중 한 대목을 소개하겠습니다.
“신화가 사고를 초월하듯, 성육신은 신화를 초월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실이기도 한 신화다. 죽는 신에 대한 오래된 신화는 여전히 신화로 남은 채 전설과 상상의 하늘에서 역사의 땅으로 내려온다. 그 일은 구체적인 장소, 구체적인 시간에 벌어지고, 정의할 수 있는 역사적 결과들이 뒤따른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발데르나 오시리스를 지나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모두 정해진 대로) 십자가에 못 박힌 역사적 인물에게로 간다. 그것은 사실이 되고서도 변함없이 신화로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나는 때때로 사람들이 믿노라 고백한 종교에서보다 믿지 않았던 신화들로부터 더 많은 양식을 얻기도 했으리라 생각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역사적 사실에 동의할 뿐 아니라 우리가 모든 신화에 부여하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신화(이미 사실이 되어 버린) 또한 품어 안아야 한다. 결코 전자가 후자보다 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없다.”(Now as myth transcends thought, incarnation transcends myth. The heart of Christianity is a myth which is also a fact. The old myth of the dying god, without ceasing to be myth, comes down from the heaven of legend and imagination to the earth of history. It happens-at a particular date, in a particular place, followed by definable historical consequences. We pass from a Balder or an Osiris, dying nobody knows when or where, to a historical person crucified (it is all in order) under Pontius Pilate. By becoming fact it does not cease to be myth: that is the miracle. I suspect that men have sometimes derived more spiritual sustenance from myths they did not believe than from the religion they professed. To be truly Christian we must both assent to the historical fact and also receive the myth (fact though it has become) with the same imaginative embrace which we accord to all myths. The one is hardly more necessary than the other.)
이 문단에서 루이스가 강조한 두 가지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기독교의 본질은 신화가 역사적 사실로 구현되었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죽는 신(혹은 부활하는 신)에 대한 신화가 구체적인 역사적 현장 속에서 단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현실화되었다는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신약성경은 불트만이 주창한 “비신화화” (Demythologization=신화 없이 복음을 나타내는 것)를 거부합니다. 신화가 역사(예수님의 성육신, 죽음 및 부활)로 구현되었다는 성경의 주장을 뒤집어 역사(예수님의 성육신, 죽음 및 부활)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신화라는 개념부터 문제가 있습니다. 신화를 영원한 것이나 신성한 것을 각각 일시적인 관점이나 인간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즉 루이스나 톨킨이 활용한 신화의 의미가 아니라, 그 단어가 지닌 다른 한 가지 뜻을 취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만 참되지 않은 아이디어나 이야기”(an idea or story that many people believe, but which is not true-Longman Dictionary of Contemporary English)라는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사건들과 그것들을 진술한 세계관 대부분이 자기가 규정한 신화에 해당하므로 그가 그것들을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라고 본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과학적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관을 믿는 현대인과 의사소통하기 위해서는 신화 없이 성경을 전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그가 비록 비신화화는 신약 성경의 메시지를 재구성하거나 다시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재해석하여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사적 사건들을 역사적이지 않은 "의미"로 분해시킴으로써 복음(특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신화를 제거하고 그가 주장하는 신약성경의 진정한 관심사를 찾아내면 어떤 메시지가 나타날까요? 다름 아닌 실존주의 철학의 메시지가 드러날 뿐입니다(존 프레임과 존 스토트의 글 참조함. 실존주의에 대해서는 본 블로그 중 “20세기 코헬렛 그리스인 조르바” 참조 바람.). 어불성설이지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역사 속에 드러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인간의 불완전하고 제한적인 사변이 낳은 결과물 중 하나인 실존주의 철학과 바꾸다니요!
둘째로, 그리스도의 주장과 이야기는 우리의 지성뿐 아니라 상상력에도 반응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이 된 이 이야기가 원래 신화였을 뿐 아니라 사실이 되면서 신화의 온갖 특성을 함께 가져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신학에 깃들어 있는 신화적 광채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We must not be ashamed of the mythical radiance resting on our theology.) “Myth Became Fact”는 다음과 같은 대목으로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엉터리 영성에 빠져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신화를 만들기로 하셨다면(하늘 자체가 하나의 신화가 아닌가), 우리가 신화를 느끼기를 거부해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결혼, 완벽한 신화와 완벽한 사실의 결합이요, 우리의 사랑과 순종뿐 아니라 경이와 기쁨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각자 안에 있는 도덕주의자, 학자, 철학자에게 호소하는 만큼이나 야만인, 아이, 시인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한다.”(We must not, in false spirituality, withhold our imaginative welcome. If God chooses to be mythopoeic-and is not the sky itself a myth-shall we refuse to be mythopathic? For this is the marriage of heaven and earth: perfect myth and perfect fact: claiming not only our love and our obedience, but also our wonder and delight, addressed to the savage, the child, and the poet in each one of us no less than to the moralist, the scholar, and the philosopher.)
지금까지 인문학이 항상 믿음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지는 못하는 이유 두 번째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즉 신 혹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계시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경우였습니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 자율적인 이성에 근거한 데카르트식의 철학적 성찰에 영향받은 이들 중에는 신 혹은 하나님을 인간의 피조물로 여길 수 있는 사변적 기반까지 마련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자기 마음대로 삭제하고 무시한 이들이 많았습니다(이신교도들의 경우). 혹은 자기들의 경도된 세계관으로 실체적인 역사적 현실을 비유로나 은유로만 읽고 범신론적인 자아 성찰 혹은 자기 해탈의 시각으로 변조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조지프 캠벨), 그 역사적 현실을 일시적이고도 인간적인 문학적 묘사로만 치부한 채 실존주의 철학관으로 그것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불트만을 비롯한 비신화화 신봉자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균형 잡힌 인문학적 소양과 신학적 기반으로 신약성경이 신화와 역사적 현실이 조화롭게 구현된 것, 혹은 “하늘과 땅의 결혼, 완벽한 신화와 완벽한 사실의 결합”으로 조망한 경우(C. S. 루이스)도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캠벨의 교훈-
인문학에 박학다식했지만 성경의 주된 메시지를 오해했던 비교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게 한 가지 있었습니다. 뮌헨 대학에서 공부하다 1929년에 경제 사정으로 미국 주식시장이 붕괴하기 2주 전에 귀국해서 그로부터 5년간 우드스톡 숲 속에서 집중 독서한 기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생애에 있어 일대 전기가 된 기간이었나 봅니다. 재즈 밴드에서 색소폰을 분 대가로 식비를 조달하는 극빈한 환경 속에서도 독서에 열중하면서 지속적으로 노트 필기를 해 갔다고 하지요. 이 경험과 자료들이 그의 미래의 경력과 인생에 확고한 기반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책임질 일도 없었기에 자유로웠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게 경이로웠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5년의 경험을 근거로 그는 다양한 삶의 지혜를 나누려고 시도했습니다. 오영욱 작가가 “과거는 증명하려는 시도에 의해 남루해진다”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캠벨의 과거의 경우는 그 빛이 바래지 않았습니다. 아래에 그의 글 세 자락을 소개합니다. 오영욱 작가의 말이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대가 원하는 것을 하는 데는 / 용기가 필요해요. // 다른 사람들이 / 그대를 위해 많은 계획을 갖고 있죠. // 아무도 그대가 하기 원하는 것을 / 그대가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 그들은 그대가 자기들과 여행해 주기를 바라죠, /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요. // 난 했어요. 숲 속으로 들어갔어요 / 그리고 5년간 책을 읽었어요.” (It takes courage / To do what you want. // Other people / Have a lot of plans for you. // Nobody wants you to do / What you want to do. // They want you to go on their trip, / But you can do what you want. // I did. I went into the woods / And read for five years.)
■“이제는 내가 완전한 인생을 살았다고 느껴요. 내가 필요했던 것은 필요한 바로 그때 나타났어요. 그때 내가 필요했던 건 직업 없이 5년간 사는 것이었어요. 근본적인 것이었죠. 쇼펜하우어가 말한 대로, 우리 인생을 되돌아보면 그것이 마치 하나의 플롯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그 안에 있을 때는 그저 놀랄 일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온통 뒤죽박죽이죠. 그런데 나중에는 그게 완전했다고 인식하게 돼요. 그래서 내겐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길 위에 있다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될 것이라는 지론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길이고 아무도 전에 그 길 위에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선례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놀랄만한 일인 동시에 시기적절한 것이 되는 거죠.”(My feeling now is that I had a perfect life: what I needed came along just when I needed it. What I needed then was life without a job for five years. It was fundamental. As Schopenhauer says, when you look back on your life, it looks as though it were a plot, but when you are into it, it’s a mess: just one surprise after another. Then, later, you see it was perfect. So, I have a theory that if you are on your own path things are going to come to you. Since it’s your own path, and no one has ever been on it before, there’s no precedent, so everything that happens is a surprise and is timely.)
■“그대의 지복(혹은 환희)을 따라가세요. / 영웅적인 삶이란 개인적인 모험을 살아가는 거예요. //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 모험의 부르심을 좇아가는 일에는 // 아무것도 흥분되지 않죠 / 만일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 그대가 안다면 // 그 부르심을 거부하는 것은 / 삶의 정체를 의미하죠. // 그대가 긍정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것은 / 부정적으로 경험하게 돼요. // 가장 어두운 순간에 / 누군가 밟은 길이 없는 / 숲으로 들어가세요. // 어떤 도로나 누군가 밟은 길이 있는 곳이라면 / 그 길은 다른 사람의 길이에요. // 그대는 그대 자신만의 길 위에 있는 게 아니지요. // 만일 그대가 다른 사람의 길을 좇고 있다면, / 그대는 실현하지 못할 거예요 / 그대의 잠재된 가능성을.” (Follow your bliss. / The heroic life is living the individual adventure. // There is no security / in following the call to adventure. // Nothing is exciting / if you know / what the outcome is going to be. // To refuse the call / means stagnation. // What you dont' experience positively / you will experience negatively. // You enter the forest / at the darkest point, / where there is no path. // Where there is a way or path, / it is someone else's path. // You are not on your own path. // If you follow someone else's way, / you are not going to realize / your potential.)
(이 세 대목은 1983년에 미국 에설린 연구소<Isalen Institute>에서 캠벨의 강의를 들었던 다이앤 K. 오스본이 자신의 필기 내용에다 기존에 출간된 캠벨의 저서 중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덧붙인 일종의 선집인 “A Joseph Campbell Companion”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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