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속의 광야를 걷는 평범한 몽상가 교수의 비범한 패배와 승리,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1)
-‘모든 빛깔을 하나로 품은 무지개’: 홍세화 선생 (1947-2024)-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의 글에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를 알게 되고부터 나의 삶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사람이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돈이나 명예보다도, 한생을 일구어온 태도일 것이다.”(경향신문, 2025년 4월 3일) 이 대목에 등장하는 그는 작년 이맘때(4월 18일) 작고한 홍세화 선생(1947-2024)입니다. 고인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충청남도 아산군 염치면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중, 세 살이던 1950년 9월에 발생한 ‘황골 새지기 민간인 학살사건’[사적인 원한이나 가문 간의 알력이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이라는 기회를 틈타 순식간에 발현하여 80여 명이 학살당함] 와중에 살아남게 됩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반유신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가 제적되었으나, 1975년에 복학이 허용되어 1977년에 졸업했습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이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박정희 유신정권이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대표적인 공안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지 8시간 만에 그들이 사형 당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자, 그는 박정희 정권의 무도함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남민전”(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이라는 지하조직에 가입하게 됩니다. 학살이 벌어진 황골의 공회당에 동생 민화와 함께 갇혀 떨고 있는 자신을 자꾸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조직은 “국제제국주의의 식민지체제”와 그 하수인인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족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연합정권을 수립한다”는 목적으로 형성된 결사체였습니다.
1979년 “남민전” 조직이 적발되어 그 주요 인사들이 속속 검거되는 상황에서 그는 생사를 가를 법한 고비를 또 겪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자신이 소속한 무역회사의 파리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는 체포를 면하고 그곳에서 망명 생활을 시작하게 되지요. 유신 정권이 해외까지 체포망을 확대했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에 망명을 신청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1982년) [2006년 이 “남민전” 관련자 29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됨]. 자기가 잘 부치던 빈대떡 장사를 할 자본이 없어 택한 택시운전사 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무려 20년을 이어갔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수필집이 바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였습니다. 고교 후배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영국 유학 왔다가 돌아가면서 보내준 워드프로세서로 쓴 책이었습니다. ‘톨레랑스’(관용)의 개념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책[1995년에만 25만 부, 현재까지 60만 부 판매]으로 ‘상징자본’을 얻은 그는 2002년에 귀국한 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서 저술 및 논평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습니다. 2011년에는 진보신당(현 노동당)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2013년에는 종합 인문주의 정치 비평지인 “말과 활”(계간지)을 창간하여 우리나라 사회에서 진보적 사유와 실천을 연결하면서, 이를 학습 공동체인 “가장자리”와 연계하여 더 넓은 사회적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이 “가장자리”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연대와 학습의 공간을 지향하고, “말과 활” 역시 이러한 철학을 반영해 출판되었습니다. 2015년부터는 벌금형을 받고도 납부 능력이 없어 교도소에서 노역해야 하는 경제적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비영리단체인 “장발장은행”을 설립하여 은행장을 맡았습니다.
홍세화 선생은 주류 사회에 순응하기보다는 ‘즐거운 아웃사이더’로 남고자 하는 삶의 태도를 지향했습니다. 그는 귀국 후에도 한국 사회에 억지로 적응하려 하지 않고, 변방과 '가장자리'를 고집하며, 주류로부터 환대받지 못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사회 부적응자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온함을 간직하며 악역을 자처하는 인생관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버거우면서 기꺼운 짐’으로 여기며,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출간 이전에는 쎄느 강변에서 소멸했을 수도 있는 존재였다고 회상하며, 소멸에 몰린 존재들과 연대하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기 성숙을 추구하는 삶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자아실현을 위한 능력 함양과 ‘성찰 이성’의 성숙을 게을리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 성숙의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홍세화 선생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가치는 자유였습니다. 그는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이 자유의 의미를 훼손했다고 비판하며, 자유란 단지 외부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왜곡으로부터의 해방임을 밝힙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자유는 고결함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자유인은 고결함을 지향한다. 비단결이 고운 것은 올이 많아 섬세하기 때문이다. 자유인은 사물과 현상을 인식하는 사유의 올들에 하나의 올이라도 더 보태거나 수정하여 조금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세상을 인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결: 거칢에 대하여”) 즉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은 단지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해 내면의 고귀함을 추구하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녹아든 도덕적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비단 천이 곱고 아름다운 이유가 많은 가는 실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듯, 자유인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정교하고 세밀한 사유와 감수성으로 자기 내면세계를 형성해 가기 위해 진력하기 마련입니다. 그리하여 자유인은 세상과 사람, 사물과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생각을 가다듬고 넓혀갑니다. 그는 ‘자유’를 진정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외로움과 불안, 사회적 낙인까지 감내해야 할 뿐 아니라, 그런 것들을 즐기고 극복할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한국 사회의 부적응자’, ‘가장자리의 사람’으로 살기를 자처했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깨어 있으려는 자로서의 고독한 책임감을 품었습니다. 그는 또한 남과의 비교 경쟁에 반대하며, 자기 자신을 ’잘 짓는 삶‘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윤리적 자아 성숙, 자기성찰, 삶의 정직한 책임을 포함한 내면 윤리학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그가 추구한 또 다른 중요한 가치는 연대와 공감이었습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연대와 학습 공간인 “가장자리”를 만들고, 경제적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장발장은행”을 설립한 이유였습니다. 약한 자들을 돕고 그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진행하면서 그가 주창한 모토는, “잡초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뽑을 수는 있다.”였습니다(홍세화, “생각의 좌표”). 이 모토 속에는 추상적 혁명 의식이나 이상주의적 정치의 허망함에 대한 경계가 담겨 있습니다. “태양처럼 모든 것을 비추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듯이, 세상의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말입니다. 즉 이 모토는 세상의 불의와 구조적 모순이 단숨에 제거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을 바꾸는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메시지입니다. 잡초는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억압, 차별, 고통의 은유이겠지요.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서 뽑고, 치우고, 다시 손잡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의 모순은 ‘작고 느리지만 구체적인 실천’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약자의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천천히 걷는 연대의 철학을 반영합니다. 결국 홍세화 선생은 손 놓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책임 있게 참여하자는 윤리적 행동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세화 선생은 이 고결한 삶의 가치인 자유와 연대를 진작하기 위해서 비판적 사고와 저항 정신이 불가결하다고 보았습니다. 일찍부터 그는 아나키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과 외할아버지와의 ‘개똥 문답’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맞서 저항하는 정신을 길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들려준 ‘개똥 우화’는 이러합니다. 서당 선생이 세 형제에게 장래 희망을 묻습니다. 첫째가 “정승이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둘째가 “장군이 되겠습니다.”라고 응답하자, 서당 선생은 흐뭇하게 미소 짓습니다. 그런데 셋째가 의외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것입니다. 순간 서당 선생의 얼굴이 싸늘해집니다. 셋째는 연이어 설명합니다. 하나는 글 읽기도 싫어하면서 정승이 되길 바라는 큰형 입에, 하나는 겁쟁이면서 장군이 되길 바라는 작은형 입에, 나머지 하나는 그런 엉터리 대답을 듣고 좋아한 서당 선생에게 주겠다고요. 이 이야기를 들려준 외할아버지는 홍세화에게 묻습니다. “너라면 그 말을 서당 선생에게 할 수 있겠니?” 소년 홍세화는 “그러겠다.”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외할아버지는 이렇게 덧붙업니다. “앞으로 네가 그 말을 못 하게 되면, 마지막 개똥은 네 차지라는 걸 잊지 마라.” 이 ‘개똥 우화’는 홍세화에게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되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윤리적 경구였고, 이 경구는 그의 생애 내내 그를 지켜주었습니다. 평생 첫째와 둘째, 그리고 서당 선생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며, 침묵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 개똥’을 자신이 먹지 않기 위해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진영 논리’가 아닌 ‘양심의 논리’로 세상을 보았던 홍세화 선생은 특정 진영에 편향되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가는 모든 세력에 대해 비판을 가하며 사회적 약자와 공공선을 지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우선 보수 세력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 재벌 중심 경제,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특히 ’개인의 삶보다 국가가 우선‘이라는 전체주의적 발상, ’시장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졌습니다. 이에 덧붙여, 수구보수의 반동성과 반공주의적 이념을 지속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독단적인 정책 추진과 김건희 여사 관련 불공정 논란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수구보수 세력이 공공선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수구 언론이 우경화된 진보좌파를 ’좌파‘로 부르는 것을 “좌파에 대한 모독”이라며, 진정한 좌파의 가치가 왜곡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음으로 진보 세력에 대해서도, 그 진영 내 일부가 민족주의에 치우치거나 비판적 사고 없이 이념을 맹신하는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특히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거나, 심지어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일부 NL[National Liberation, 민족해방파] 계열 진보 인사들을 향해 “비판 없는 연대는 오히려 또 다른 억압을 낳는다.”라고 경고했지요. 그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덧붙여, 진보진영이 권력을 잡은 뒤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모습을 비판했습니다. 이 비판은 ’민주 건달‘이라는 뼈아픈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진보 진영 내부의 기득권화된 ’586운동권 세대‘[5: 50대, 8: 1980년대 대학생, 6: 1960년대 출생자]를 가리키는 이 표현은, 특히 과거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경력을 ’도덕적 완장‘처럼 사용하면서 현재의 기득권적 행태[예: 부의 축적, 권력 독점]를 정당화하는 집단이나,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돈 버는 어려움을 체험하지 않은 채” 이론적 진보만 주장하는 지식인층을 겨냥합니다. 검찰개혁, 노동권 보호, 소득불평등 해소 등에서 죄다 실패한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측근‘, ’실세‘라 불리는 사람들이 그의 눈에 모두 ’민주 건달‘로 보인 이유입니다.
홍세화 선생의 비판적 사고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전반을 향합니다. 첫째, 공공성의 죽음입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일’(res publica)이라는 ’공화국‘의 본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공성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장으로 변질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정당은 사당화되고, 공교육은 사적 이익 창출의 장으로 변질되었으며, 언론은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고 지적합니다. 둘째,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입니다. 현행 교육 시스템은 아이들을 ‘배부른 돼지’로 만들고, 암기와 문제풀이 위주로 진행되는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키우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결국 사회 귀족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노예를 양성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합니다. 셋쩨,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입니다. 지배세력이 주입한 의식을 사회구성원들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진정한 존재와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계급 배반 투표’ 실상을 비판합니다. 기득권 세력만이 자신의 계급에 맞는 의식을 갖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이 요구하는 의식을 가진다고 지적합니다. 넷째, 물질 중심주의와 비인간화된 욕망입니다. 한국 사회는 물질과 출세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회색 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비인간화된 욕망은 사회구성원들의 인간성 상실, 불신 심화, 과도한 경쟁과 효율 만능주의를 부추기며 연대와 공동체 의식 형성을 저해한다고 지적합니다. 다섯째, ‘콜럼버스의 달걀’ 사회입니다. 한국 사회를 달걀의 아랫부분을 깨뜨려 달걀을 억지로 세운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유하며, 그 깨뜨려진 아랫부분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노숙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채 고통받는 현실을 비판합니다. 이는 끊임없이 남과 경쟁하며 불안한 미래 때문에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강요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관심과 자아실현의 꿈을 사치로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여섯째, 민주주의의 한계와 엘리트의 보잘것없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민주정치에 대한 기대[부자보다 수가 많은 서민이 정치적 지배력을 갖게 될 것]를 언급하며, 현실에서는 부자들의 권력이 더욱 집중되고 강화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소위 성공한 엘리트들조차 진정한 자유인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마름’에 불과하며, 이러한 엘리트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참담함을 보여준다고 비판합니다.
홍세화 선생은 비판하는 데서 그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지금 여기에서 잡초를 뽑을 수 있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줍니다. 그가 우리 사회를 향해 제시하는 해결책 또는 지향해야 할 방향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탈의식’입니다. 지배 세력이 주입한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에 기반하여 생각하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것을 강조합니다. 둘째, 대안 교육과 ‘우리 학교 만들기’입니다. 획일적인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선택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배우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탈학교 운동’을 통해 ‘우리 학교 만들기’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셋째, 인간성의 항체 기르기입니다. 물질 중심주의에 저항할 수 있는 굳건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성숙을 통해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넷째,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입니다. 변화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무엇을 위한 삶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다섯째, ‘자연스럽게 옆으로 누운 달걀’ 사회 형성하기입니다. 경쟁보다는 연대와 협력이 중시되고,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권이 보장되며, 자아실현의 기회가 넓게 열려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종으로 선’ 달걀을 ‘횡으로 누운’ 형태로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치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여섯째, 민주적 통제 강화입니다. 사회 곳곳에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여 불의에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합니다. (홍세화, “생각의 좌표”)
이제 홍세화라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the voice of one calling in the desert, 요한복음 1:23)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지금쯤은 그동안 그를 함께 매도했던 보수, 진보 양 진영 인사들도 그를 그리워할지 모를 일입니다. 진정한 공화주의자로서 오로지 공공선과 약자의 보호라는 일관된 원칙에 따라 불편부당하게 제시한 그의 비판이 현 한국 사회에서 절실하고 시급한 성찰과 토론의 주제들을 제공했다는 점을 절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이 낳은 참담하게 ‘보잘것없는’ 엘리트들은 한결같이 공공성을 땅에 묻어 버린 채 사적 이익만을 챙기는 반면[윤석열, 한덕수, 최상목을 보세요], 물질주의와 비인간화된 욕망으로 연대와 공동체성을 상실한 사회구성원들은 그 지배세력의 바람대로 굴종하면서 불안한 미래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현세대의 문제들 말입니다.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다.”라는 자신의 결심과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라는 자신의 바람이 온전히 이루어졌으니, 홍세화 선생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돈이나 명예보다도, 한생을 일구어온 태도’를 기억하며 자신을 기리는 이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존재하니, 그는 부러움을 살 만한 인물입니다.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가 말한 대로, ‘한생을 일구어온 그의 태도’는 “모든 빛깔을 하나로 품고 계신 무지개”로 빛나고 있습니다.
홍세화 선생의 삶은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내면의 고결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러줍니다. 내면의 질곡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의 진면목으로 이웃의 고통과 슬픔에 동감하고 그들과 연대하여 공공선을 확대해 가는 삶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가치 있는 삶의 전모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진정한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은,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을 ‘승리자’로 여기는 이 시대에서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자유인’은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고 부조리해 보이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홍세화 선생은 “편하고 안락한 삶에 대한 욕망 앞에서 자유의 참된 의미는 점점 더 힘을 잃고 있”는 오늘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는 소수의 후배 동지들이, “‘조금 더 낫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합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이 말이 전해지기를 기대하면서요(“결: 거칢에 대하여”).
이번에 독해하는 존 윌리엄스(John Williams)의 “스토너”(Stoner, 1965)는 ‘보잘것없는’ 엘리트들과 ’민주 건달‘들이 수두룩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조금 더 고결하게 패배하는 자유인”이 되는 길을 열어 밝히는 수작입니다. 숱한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책으로 꼽은 이 책은 1965년 출간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21세기에 들어와서야 재발견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입니다. 수많은 서평 중 한 가지만 소개합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단순히 위대한 소설을 넘어선, 참으로 보기 드문 완전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 서사는 탁월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문장은 지극히 아름답고, 감동은 심연처럼 깊어 독자의 숨을 멎게 할 정도이다.”[John Williams’s Stoner is something rarer than a great novel—it is a perfect novel, so well told and beautifully written, so deeply moving, that it takes your breath away.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알에이치코리아”의 번역본(김승욱 역) 참조]
-“스토너” 줄거리-
윌리엄 스토너(William Stoner)는 1891년 미주리 주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평범한 인물로서, 부모의 권유로 미주리 대학교에서 농업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필수과목으로 들었던 아처 슬론(Archer Sloane) 교수의 영문학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번을 접한 후, 스토너는 문학에 깊이 매료된다.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스토너는 농업 전공을 포기하고 영문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영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다. 대학원 시절, 스토너는 고든 핀치(Gordon Finch)와 데이브 매스터스(Dave Masters)라는 동료 학생들과 우정을 쌓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핀치와 매스터스는 입대하지만, 핀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스토너는 슬론 교수와의 대화 후 학교에 남는다. 매스터스는 프랑스에서 전사하고, 핀치는 전투에 참여하여 장교가 된다. 전쟁 후, 스토너는 교수진 파티에서 젊은 여성 이디스 보스트윅(Edith Bostwick)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이디스는 스토너와 결혼하기 위해 유럽 여행 계획을 취소한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불행으로 점철된다. 이디스가 감정적으로 냉담하고, 성적으로 억압되어 스토너의 요구에 냉담하게 반응함으로써, 결혼 초기부터 갈등이 끊이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는 적대감과 긴장이 생긴다. 3년 후, 이디스는 갑자기 아이를 원한다고 말하며 잠시 동안 열정적인 성적 관심을 보이지만, 딸 그레이스(Grace)가 태어난 후 거의 1년 동안 병상에 누워 지낸다. 스토너는 홀로 딸을 돌보며 그레이스와 가까워지고, 그레이스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스토너는 점차 이디스가 딸과 자신을 멀어지게 하려는 계략을 꾸미고 있음을 깨닫지만, 스토너는 이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대체로 스토너는 이디스의 학대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레이스는 미소를 짓고 자주 웃지만 점차 감정적으로 공허한, 불행하고 비밀스러운 아이로 성장한다. 그는 더욱 열정적으로 강의를 시작하지만, 이디스와의 결혼생활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채로 흘러간다.
대학에서는 핀치가 학과장 대행이 된다. 스토너는 동료 교수 홀리스 로맥스(Hollis Lomax)가 지도하는 찰스 워커(Charles Walker)라는 학생이 라틴 전통에 대한 자신의 세미나에 참여하도록 특별한 배려를 베푼다. 그렇지만 워커는 세미나 내내 공공연하게 부정직한 언행을 취하고, 그 과목이 요구하는 지적 수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스토너는 교수로서의 양심에 따라 그를 낙제시킨다. 나중에 실시된 워커의 예비 구두시험(preliminary orals)에서도 스토너는 그를 불합격시키지만, 로맥스의 적극적인 방해 공작으로 워커의 퇴학 또는 유급 결정은 보류된다. 학과장으로 내정된 로맥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토너가 워커에게 편견과 의심과 증오를 품은 채 그를 세미나 수업에 참여하도록 했다는 누명을 씌워, 대학원장이 워커에게 예비 구두시험 기회를 한 번 더 주기로 결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그 후에 워커는 의기양양하게 영문과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온다. 이 일로 암심을 품은 로맥스는 이후 스토너의 교수 생활 내내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며, 스토너에게 흥미 없고 고된 강의 시간표를 배정하는 등의 불이익을 준다.
얼마 후, 스토너는 자기 세미나 과목에 청강생으로 참여한 영문학과의 젊은 강사인 캐서린 드리스콜(Katherine Driscoll)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게 되면서, 그 관계가 낭만적인 사랑으로 발전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륜 관계가 시작된 후, 스토너는 이디스 및 그레이스와의 관계가 개선되는 것을 인식한다. 이디스는 그 불륜 사실을 알게 되지만 개의치 않는 듯 행동한다. 그러나 로맥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영문학과에서 함께 강의하는 캐서린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스토너와 캐서린은 그들이 헌신하고 있다고 느끼는 학문적 연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관계를 끝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합의한다. 캐서린는 조용히 도시를 떠나 다시는 스토너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스토너는 나이가 들고 귀가 어두워졌지만, 로맥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문학과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그는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디스의 불쾌감을 무시한다. 성인이 된 그레이스는 엄마의 성화에 따라 미주리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 이듬해, 그레이스는 임신 사실을 알리고 아이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프라이(Edward Frye)와 결혼하지만, 그는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여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태평양 전선에서 사망한다. 그레이스는 아이와 함께 남편의 부모가 있는 세인트루이스로 이사한다. 그녀는 가끔 스토너와 이디스를 방문하고, 스토너는 그레이스가 알코올 중독 문제를 겪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 무렵 스토너는 캐서린이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책을 구한 후 그것이 자신에게 헌정되었음을 발견한다.
스토너의 삶이 저물어갈 무렵, 딸 그레이스가 그를 방문한다. 깊이 불행하고 알코올에 중독된 그레이스는 마지못해 스토너와 화해하려 하지만, 스토너는 딸이 어머니처럼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레이스가 떠나자 스토너는 자신이 사랑했던 어린 딸이 오래전에 죽었다고 느낀다. "무엇을 기대했지?"(What did you expect?)라는 생각을 반복하며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는 자신이 실패한 지점은 어디인지, 이디스에게 더 사랑스러웠을 수 있었는지, 더 강했어야 했는지, 혹은 그녀를 더 도울 수 있었는지 궁금해한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삶이 평범하고 실패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인식하게 된다. 비록 자신의 삶이 평범하고 이룬 것도 없다고 느끼지만, 문학과 지식에 대한 사랑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느 오후, 혼자 있을 때 창밖으로 수업을 들으러 가는 젊은 학생들의 모습을 보던 중 스토너는 숨을 거두고, 젊은 교수 시절에 출판한 유일한 책을 들고 있다가 그것이 손에서 떨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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