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토함’하라
요즘 책은 안 팔린다. 글 쓰는 사람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다. 그중에 나도 있다. 나는 계속 쓴다.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쓸 예정이다. 내 책이 안 팔려도 상관없다. 내게는 돈과 관계없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블로그가 내게는 맞다. 요금을 지불하라는 블로그는 사절이다. 돈 안 내고, 돈 안 벌고가 더 낫다. 만인에게 열려 있는 소통의 장이면 된다. ‘깊은 산속 옹달샘’ 역할을 자처하고 시작한 일이다.
요즘 ‘단문’의 위세가 대단하다. 가독성을 높이는 최적의 길이란다. 의미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접속사도 없애고, 부사와 형용사도 적게 쓰면 좋단다. 앞 문단에서 그 조언대로 한번 시도해 보았지만, 아이고, 무서워라. 글을 어떻게 쓸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가 떠오른다. 그는 행인을 붙잡아 그 침대에 누이고는, 그 행인이 침대보다 크든 작든 그 침대에 맞추어 잘라내고 늘여서 죽였다. 문제는 아무도 그 침대에 마침맞은 행인이 없었다는 점이다. 자기 마음대로 늘이고 줄이는 장치가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임자를 잘못 만나 세상을 뜬다. 아테네로 여행하던 테세우스(Theseus)에게 붙잡혀, 자기도 똑같이 자기 침대에 맞추어 죽임당한다.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직업이 무엇이었을까? 강도질로 먹고살았다. 우리에게서 글과 글 쓸 용기를 앗아가는 이런 프로크루스테스가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잡히지 말고 속지 말자.
우선은 자기 목소리를 글로 옮겨 보자. 단문이든, 중문이든, 복문이든 상관하지 말고, 내 뜻과 의도를 글로 써보자. 말할 게 있을 때, 그것을 놓치면 큰 것을 잃는 것이니까. 일상 중에 꼭 말하고 싶은 거리가 그렇게 많이 생기지 않는다. 나중에 기억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써놓고 보자. 이에 덧붙여, 자기 목소리를 글로 옮길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자. 당장 쓸 거리가 없어 보여도, 일단 앉아서 쓰기 시작하자. 일기를 쓴다는 마음으로, 혹은 한 주간 리포트를 써 둔다는 기분으로, 자연스럽게 글을 쓰거나 노트북/스마트폰의 키보드를 두드리자. 글을 써나가는 중에 글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우를 자주 경험할 수 있을 게다. 앞 문장이 다른 문장을 부르고, 특정한 단어나 개념이 관련된 이야기나 다른 단어를 물어 오기도 할 게다. 일단 시간을 들여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을 어떤 형태로든 흐르기 마련이다.
내 목소리를 기록해두면 먼저 내가 산다. 그 기록 과정에서 나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어서, 나와 내 처지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다. 참 자아와 참된 현실 이해는 내게 자유를 주고, 그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평온한 마음과 그 자리에서 새롭게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 기록이 나중 시점에 내게 다시 들려질 때는, 새로운 계시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은 덤으로 주어지는 복이다. 이미 운명처럼 확고하게 형태를 갖춘 잠언으로 내게 들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이 살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언제, 어디에 사는 누구일지, 현재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먼 훗날에 그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도 있다. 기록된 내 목소리는 남는다. 다음 세대의 유산이 된다. 자기 비하할 필요도, 자기 우월감에 빠질 필요도 없다. 내 목소리는, 그리하여 기록된 내 글은 그 궁극적 원천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 글의 통로였을 뿐이다.
내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기록한 내 목소리가 품고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준 극적인 예가 한 가지 있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의 지동설 이야기다. 지동설은 원래 그가 가장 먼저 제창한 원리가 아니었다. 그의 시대보다 무려 1,700년이나 앞선 시대에 살던, 알렉산드리아의 천재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310~230 BC)가 이미 태양중심설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가 천동설을 주장하고 세상을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가 취한 과감한 입장이었다. 그 주장은 단순한 추정이 아닌, 엄연한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는 먼저 지구 크기가 달의 3배가 된다는 것을 밝혔다. 월식 상황에서 지구 그림자가 달의 가장자리에 접근할 때 달과 지구가 이루는 원호 곡률을 비교함으로써 추정한 상대적인 크기였다. 다음으로 그는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도 측정했다. 반달은 상현(first quarter moon)과 하현(last quarter moon) 두 종류가 있는데, 상현은 음력 매달 7-8일경, 하현은 22-23일경에 뜬다. 상현일 때는, 달과 태양을 잇는 직선과 달과 지구를 잇는 직선이 직각(90도)을 이루어 북반구에서는 달의 오른쪽 절반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때 아리스타르코스는 삼각형을 이용해서, 지구와 달을 잇는 직선과 지구와 태양을 잇는 직선이 이루는 각이 87도가 된다고 측정했다. 이 상황에서 지구와 달의 거리를 1로 한다면,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19가 된다는 점도 계산해 내었다. 이 두 가지 측정을 기반으로, 태양이 달보다 19배 먼 거리에 있으므로, 그 지름 또한 19배 크다고 추정했다. 지구의 크기가 달의 3배이므로, 태양은 지구보다는 약 7배[19 나누기 3] 크다고 추정했다. 그러므로 태양의 부피는 지구 부피보다 7의 세제곱[약 300배]만큼 크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이런 계산 결과가 나중에 정밀한 천체 관측 기기로 밝혀낸 사실과는 차이가 난다. 그러나 망원경을 비롯한 다른 측정 기구 없이, 다만 삼각형과 육안을 이용하여 수학적 계산과 추론을 거쳐 도달할 결과였다는 점을 주목해 보라. 경이롭지 않은가? 이 결과를 바탕으로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지구보다 300배나 큰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돈다는 것은 모순이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구가 스스로 하루에 한 번 자전하며 1년에 한 번 태양 둘레를 돌 것이다.”
김경집 작가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영향을 받은 다른 사람으로 플라톤(428-348 BC)을 지목한다. 그가 이탈리아에 유학했을 때 영향받은 철학가였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름잡던 그 시절,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 중심설로부터 영감을 얻어, 이 세상의 모든 질서가 이데아를 중심으로 전개되듯이 천체에도 이데아와 같은 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김경집, “생각의 융합”).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라. 기원전 4세기에서 3세기 어간에 두 사람이 품고 있던 생각이, 16세기 들어 그들과 다른 지역에 살던 한 사람에게 전달된 기적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자신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둔 덕택이었다. 플라톤의 글은 그의 사후에 두고두고 회자되었지만, 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 및 달의 크기와 거리에 대해서"라는 저서는 무려 17세기 후에야 빛을 보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이 담겨 있는 "알마게스트"(Almagest, '가장 위대한 것'이란 의미)를 연구하던 코페르니쿠스가, 행성의 위치를 계산하고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중에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아리스타르코스의 저서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책을 통해서 태양중심설이, 자기가 지금까지 의존한 천동설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식(蝕) 현상이나 순행 또는 역행하는 행성의 운동을 잘 설명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몇 년 전에 ‘토함’이란 함자를 가진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토할 토(吐)에 머금을 함(含), 즉 속에 머금은 것을 토하며 살라는 의미라고 한다. 평생 자기가 품은 뜻을 속에만 담아두지 말고, 용기 있게 표현하고 펼치며 살라는 그 선생님 부친의 소망이 담긴 함자였다. 그 부친의 간절한 바램에 대해 들었을 때, 내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여망으로 들렸다. ‘토함’하며 살라. 특히 글로 ‘토함’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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