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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학(學)-평생에 걸쳐 학습하라

인생나눔멘토 - 교제, 학습 및 성숙의 장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19. 10. 12.

인생나눔멘토 - 교제, 학습 및 성숙의 장

올해 5월 중순부터 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인생나눔멘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적 접근 방식으로 세대 간의 소통을 진작하려는 정부 부처의 의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인데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구 현풍군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한 곳에서 초등학교 1-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담당했고 지금은 성주군에 있는 중학교 한 곳에서 중학교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각각 13주간씩 진행되고 한 주에 한 번씩 약 2시간 동안 이어집니다. 멘토인 제가 멘티(멘토링 과정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이렇게 부름)들과 함께 특정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의미 있는 활동을 진행하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배우는 시간이지요. 그동안 이 경험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내용을 몇 가지 나눌까 합니다.

 

-멘토링에 대한 전반적 소감-

지역아동센터 멘토링 과정은 한 마디로 역부족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하는 과정을 미리 상상해보았던 것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제가 인도하는 기간 동안 매번 긴장되었습니다. 매 시간마다 개성 강하지만 늠름한 멘티들이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자기 고집 피우면서도 제 인도를 따라 적극적으로 활동에 임하고 멘토링이 재미있다고 격려도 해주며 마지막 시간까지 함께 해 주었습니다. 이 경우에 비하면 중학교 멘토링은 훨씬 수월한 편입니다(이제 전체 13회 중 아직 반도 채우지 못했음). 제 전공인 영어도 좀 활용할 수 있고 초등학생들보다는 좀 더 수준 높은 내용을 중심으로 대화하고 활동할 수 있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콩나무 시루에 물 주기’ 식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들에게 들려주면서 그들의 감성과 지성에 호소해볼 계획입니다. 물이 다 빠져나간 듯한데도 그 물이 콩나물을 자라게 하듯이 그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그들을 자라게 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멘토링 진행한 내용-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주로 동시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낭독 교재를 활용하여 멘티들이 자존감을 확립하도록 하는 일과 그들이 타인에 대한 공감 어린 이해를 바탕으로 긍정적 대인관계를 육성해 가는 일을 도왔습니다. 주로 그들과 함께 시나 이야기를 낭독하기나 그룹 낭독하는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다른 활동으로 넘어 갔습니다. 주안점을 둔 낭독보다는 다른 연관 활동에 더 흥미 있어하는 멘티들을 보면서 멘토링은 멘토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을 목도했지만 꼭 그렇게 될 필요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멘토링의 목적이 순차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이 매체가 되어 멘토와 멘티 간에 소통이 진행되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데 있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넉넉하게 해 주었지요.

 

현재 진행 중인 중학교 1학년 대상의 멘토링은 영어 지문 낭독 활동 중심으로 멘티들의 인생관 확립 및 진로개발 탐색에 동기 부여해 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몇 주 전 멘토링 시간에 종이에다 친구들의 이름을 적고 그 친구들의 장점 지적해 주기(“…”은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존재인가?) 활동을 할 때가 특히 제게는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교실 전체에 장난기 섞인 반응이 난무했지만 나중에 나온 결과물은 친구들을 격려하기 원하는 멘티들의 의도가 흠뻑 묻어났습니다. 쉬는 시간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그 과제를 완수하려는 몇 멘티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한 멘티는 자기가 처음 쓴 내용을 다시 정서하는데 쉬는 시간을 다 보내기도 했지요. 이 시간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게 있습니다. 멘티들이 조용히 듣고 있다고 해서 그 내용을 다 소화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수선한 가운데 듣고 활동한다고 해도 들을 것은 듣고 들을 이들은 듣고 있다는 점을요. 예상 밖의 반응을 보여 저를 당혹케 할 때도 있었다는 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겠지요. 예컨대 “나를 통제하는 ‘박스’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를 토의할 때 다른 때와는 달리 예상 밖으로 여러 명의 멘티들이 손을 들어 자기 의견을 피력하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자아상을 정립해 가는 과정에서 참고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멘티들의 사고를 많이 자극한 것 같아 고무적이었습니다.

 

-멘토링을 통해 받은 교훈-

지역아동센터 멘토링할 때에는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에 맞는 시와 이야기와 활동을 찾고 시도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과업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처음 멘토링을 계획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활동이나 이야기도 꽤 첨가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활동(예컨대 종이접기)을 인생3막에서 다시 활용해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멘티 각 개인과 좀 더 긴밀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격려해보겠다는 꿈과 계획은 그다지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멘토링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다는 게 주된 원인이 아니었을까요? 그렇지만 예상외로 그들과 저와의 어마어마한 연령차가 소통의 장애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이차가 그 어린 멘티들에게는 장애 거리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멘티들은, “나이를 근거로 차별과 소외를 정당화하는 것이 일상이 된 사회”를 아직 절실하게 경험해 보지 않았고, “신체적 노화에 불안과 강박”을 느끼면서 “늙고 싶어 하지 않는 현대인의 욕망과 건강, 활력에 대한 압박감”을 갖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노인과 노년에 대한 선입견과 혐오를 아직 학습하지 않은 상태여서 60세가 된 제게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다만 제가 그 나이차를 장애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매 시간 소개되는 시와 이야기와 관련해서 멘티들에게 던진 질문은 저도 미리 생각해보고 나름대로 개인적인 답변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 질문들 중에는 제게도 의미 있게 적용되는 질문이 여럿 등장했습니다. 이런 경우에 제가 스스로 답변하려고 시도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기회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썬다 싱” 이야기(그가 어떤 사람과 험한 눈길을 걷다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고 그를 업어가자는 제안을 하자 그 어떤 사람은 반대하고 홀로 가다 죽었지만 썬다 싱은 다시 살아 난 쓰러진 사람과 계속 길을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난 후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쓰러진 사람, 그를 보고 혼자 가 버린 사람, 그리고 썬다 싱의 심정이 각각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보고 나중에 그들의 심정이 어떻게 변했을까를 서로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 활동을 준비하면서 썬다 싱과 그냥 혼자 가 버린 사람과 나누었을법한 가상 대화를 나름대로 아래와 같이 지어 보았습니다.

 

썬다 싱: 여보게 저기 누가 쓰러져 있는 것 아닌가?

친구: 어, 그렇네. 누가 가다 지쳐 쓰러졌구만.

썬다 싱: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그대로 두면 얼어 죽을 텐데.

친구: 자네 뜻은 알겠네만 혼자 가기도 힘든 길을 어떻게 데리고 갈 수 있겠나?

썬다 싱: 그렇다고 그대로 두고 갈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린 두 사람이니 번갈아 가며 업고 가면 되지 않겠나?

친구: 무슨 소릴 하는 겐가? 그러다간 우리 셋 모두 죽게 될 걸세. 우리 갈 길도 먼데 언제 죽을지도 모를 이 사람 업고 가다간 우리 둘도 지쳐 쓰러질 걸세. 그러니 이 사람은 운명(하늘)에 맡기고 우리 갈 길이나 재촉하세.

썬다 싱: 여보게, 그건 이 사람을 죽도록 내버려두자는 말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우리 모두 다 함께 죽을지언정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채 할 수 있겠나? 그러지 말고 함께 살려 보세.

친구: 자네 고집도 참 대단하네그려. 그렇게도 분별력이 없는가? 이 사람 살리자는 게 우리 다 함께 죽는 길인 걸 왜 몰라? 정 그렇다면 더 늦기 전에 나 먼저 앞서 가겠네. 만일 살게 된다면 다음에 어디선가 다시 만나세. (총총걸음으로 눈길을 앞서 가기 시작한다.)

썬다 싱: (큰 목소리로) 여보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나. 이 사람과 함께 가는 것에 자네가 말한 그 운명을 걸 수는 없겠나(그 하늘에 맡길 수는 없겠나)? (친구는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분주하게 발길을 앞으로 내딛는다.)

 

이렇게 대화를 만들어 놓고 보니, 의식 잃고 누워 있던 사람과 썬다 싱을 떠나 혼자 떠나가는 친구를 향해 썬다 싱이 외칠 법했던 대사가 제 가슴 속에도 울렸습니다. “여보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나. 이 사람과 함께 가는 것에 자네가 말한 그 운명을 걸 수는 없겠나?” 아쉽게도 실제 멘토링 현장에서는 시간이 부족해서 이 활동을 시도해 보지는 못했지만 제게 변화와 성숙을 안겨다 준 멘토링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멘토링 활동이 멘티들의 변화와 성숙을 돕는 것과 아울러 멘토 자신의 변화와 성숙도 기약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지요.

 

-기억에 남는 멘티-

지역아동센터에서 멘토링할 때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은 후 부모님이 시간대별로 읽을 수 있는 편지를 써 보기 활동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할 멘티들이 있을 것을 예상해서 보조 선생님들이 도움을 주도록 배려했지만 선생님 도움을 받기는커녕 자기가 쓰는 내용을 훔쳐보지 말라며 손사래 치거나 숨어 쓰는 멘티들이 여럿 있어서 놀랐습니다. 특히 편지지에 글을 쓰는 만큼 그 편지지 끝까지 채워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혼한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왼손으로 정성껏 써 내려가던 한 멘티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아빠에게 보낼 편지를 쓸 힘이 없다면서도 새 편지지를 내어 놓고 뜸을 들이더니 쓰지 못한 채 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 편지들이 그 부모님들께 전달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멘티는 멘토링 초기에는 활동이 미진하여 약간 부담이 되었던 멘티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말기 몇 번의 멘토링 시간에는 즐거운 얼굴로 적극적으로 멘토링에 참여하고 다른 멘티들을 다독이며 활동에 임하여 마지막 멘토링 시간에도 집으로 먼저 돌아가기까지 즐겁게 다른 멘티들과 함께 어울리던 그 멘티의 모습을 접하면서 마음이 흐뭇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지막 멘토링 시간에 멘티들에게 받은 사랑의 하트 모양의 조그만 편지지 속에 그 멘티의 정성스러운 글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선생님께. 이 프로그램은 조운 말과 조운 행동이고 선생님들이 너무 착해서 저는 이 프로그램에 특징이에요. 그때 엄마 아빠한테 사랑의 편지 스기할 때 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책도 정말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운 책이 많았어요. 다음에도 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미루 올림.“ (폰트만 바꾸었지만 그 멘티가 쓴 그대로임)

 

-인생나눔교실의 의미-

지인의 배려로 시작하게 된 올해 멘토 활동은 새로운 교제와 학습과 성숙의 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열 분이나 되는 전문인 멘토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삶과 역량을 나누는 기회를 통해 인생3막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접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 분 한 분이 얼마나 개성이 뚜렷하고 자존감이 높으시던지요. 도전도 되고 위로도 되었습니다. 전체 모임을 통해서도 세대 간의 소통과 연관된 주제를 깊이 있게 돌아볼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장기간 외국에서 거주한 후 새로운 곳에 막 정착한 터여서 이러한 교제와 학습의 장을 통해 여러 분들을 뵙고 소통할 수 있었던 기회가 제게는 더 없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참여한 멘토링 활동은 새로운 차원의 성숙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의 존재도 모르고 있던 제게 그 공간은 지난 세월 동안 우리나라가 변모한 모습을 대변해 주는 축소판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230만이 넘는다는 외국 이주민의 편린을 목격하고 해체되는 가정의 피해자인 어린아이들을 접하면서 제 나이의 껍질뿐 아니라 제가 이해하고 있던 우리나라 정체성의 외피도 벗겨버려야 했습니다. 제게 인생나눔교실은 나이나 혈연이나 세대나 가정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우리나라 사회의 면모에 주목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