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지도자의 발언: 신앙적 민족사관이다?
광복 74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기독교계의 원로목사 두 사람이 각각 설교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나라와 우리나라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해 진단한 글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궁금해서 오늘 두 글을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글은 짧고 시각이 분명해서 그 뜻을 파악하기가 수월했는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의 글은 그것보다 길기도 하고 양비론에다 근거가 모호한 주관적인 시각에다 감성에 호소하는 논지가 혼합되어 그 뜻이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것이 지난 5년 전(2014년)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외국에서 살고 있었지만 연일 총리 후보 사퇴한 문창극 씨에 대한 논란이 일반 사회뿐 아니라 기독교계 내에도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접했습니다. 제게 가장 극적이었던 반응은 우리나라 개신교계 유명 인사들이 어느 뉴스 매체를 통해 “문창극 후보의 역사관은 식민사관이 아니라 신앙적 민족사관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한 것입니다. 모두 6개 항목을 열거하며 서울 한 대형교회에서 강연한 그의 발언과 역사적 시각이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타당했다고 변호한 내용입니다.
우선 그 유명한 분들이 우리나라 최근 역사의 중대한 어느 시점에, 예컨대 유신독재 시기나 5.18광주민주화운동 시기에 그렇게나 거창한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예컨대 “박정희나 전두환의 정치 행태는 반역사적이고 반인륜적이다”라는 식의 성명 말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는 그들이 참된 선지자들이었다면 그런 때야말로 그런 식의 비장하고 엄중한 성명을 발표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였을 것 같은데도 제가 과문한 탓인지 한국교계를 대표한다는 그들 중에 그런 시기에 그런 성명을 발표하고 투옥되었다든지 고난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시기에 침묵을 고수하던 그들이 문 후보 강연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당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자기 이름을 내걸고 성명을 발표하더니 시종 엄중하고 심각한 어조를 띠고 논란거리인 문 후보의 발언을 “신앙적 민족 사관”이라는 미명 하에 조목조목 변호한 것을 접하자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들의 위상을 볼 때 그들의 시각은 바로 우리나라 개신교계가 품고 있는 성경 인식과 역사 인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그들이 저를 또 한 번 결정적으로 당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 중 당시의 사퇴가 마치 일부 언론과 파당 세력이 여론 플레이를 해서 비롯된 것인 양 호도한 것은 거론할 일고의 가치도 없지만 이미 만인이 접할 수 있는 그의 발언이 “개인적인 신앙고백이며 동시에 일종의 신학적인 발언”이라며 그를 상찬 하는 대목이나 그의 “발언이 인간 책임성을 균형 있게 강조한다면 식민사관을 깨뜨릴 수 있다”라며 그 발언의 진의를 왜곡한 대목은 ‘대한민국 기독교인’으로서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습니다.
그 사태는 제게 소위 기독교 지도자들, 즉 목회자, 학자, 정치가, 예술가, 교육가, (사회)사업가 등과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의 의견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묵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완벽한 지도자란 존재하지 않고 책망 받을 언행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찾을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바울에게 책망받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갈라디아서 2:11). 예수님의 수 제자였던 베드로가 당시 그 소명 과정 자체도 좀 의심스럽다고 여겨진 신참 사도 바울에게 공개 면책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제자인 만큼이나 어느 지도자의 제자 노릇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선생은 한 분뿐이시고 지도자도 한 분뿐이시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23:8,10). 그리스도 외에 우리가 순종할 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신앙이나 삶의 어느 부면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더라도 우선 열린 마음으로 청취하거나 읽어야 하겠지만 그다음으로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과연 그것이 그러한가 성경을 상고했던 베뢰아 인들처럼 말씀의 원리에 비추어 그 의견의 진위를 평가하는 자세가 절실한 이유입니다(사도행전 17:11).
만일 그 의견이 옳고 타당한 것이라면 베뢰아 인들의 경우처럼 유력한 사람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믿고 따르는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사도행전 17:12). 바울의 설교도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게 필요했다면 소위 기독교 지도자들이라고 소개되는 이들의 의견은 더욱 주의를 기울이는 게 긴요합니다. 전자는 당시 베뢰아 인들이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참 메시지였으나 후자는 그러한지 그러하지 않은지 알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그들의 삶뿐 아니라 메시지 내용 면에서 다각도의 상고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길이라고 주님께서 경계해 주신 측면들입니다(마태복음 7:15-23). “그 날에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7:22)라고 외칠 사람들이 “많다”라는 점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계하신 이 "많은" 이들은 죄다 종교적으로 지도자급 인물들이었습니다. 속지 맙시다. 직위의 권위에 속지 맙시다. 분별합시다. 말씀의 권위로 분별합시다.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과 지식으로 분별합시다. 과학적 소양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신뢰할만한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읍시다. 제가 당시 문 후보의 시각에 대해 발견한 바를 아래에 나눕니다. 제 의견도 위에서 언급한 말씀과 인문학적 교양의 잣대로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실상 우리나라가 겪은 일제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문 후보처럼 언급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수긍할 일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역사, 곧 모든 개인사와 국가의 역사에 대한 절대 주권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소견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의 고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더구나 일제시대와 6.25 전쟁은 이미 지나간 역사인 데다 그 간난의 역사를 딛고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급성장하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아마도 전화위복이라는 차원에서라면 비기독교인조차도 얼마든지 공감할 수 있는 시각이라고 봅니다. 문 후보가 그런 식으로만 발언했다면 그것은 상찬 할 일도 비난할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 후보의 심각한 오류는 여러 사람들이 이미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기독교의 언어와 논리”를 자신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정당화하는 데 교묘하게 동원”했다는 데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가장 왜곡이 심각한 역사 인식의 예를 들어보자면, 조선 시대 서민들의 누추한 생활상과 관리들의 부패상을 인용하면서 “너희들은 이조 5백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라고 하나님께서 뜻하셔서 일제 식민지 고난을 마련해주셨다고 언급한 대목입니다. 심지어 윤치호의 입을 빌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게 “민족의 DNA로 남아있었다”라고 조선 시대 민중들을 폄하하기까지 합니다. 과연 이조(그릇된 식민사관 표현) 5백 년을 한 마디로 허송세월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당한 발언일까요? 이것은 세계 역사상 대부분의 왕조가 백 년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 역사, 곧 그 유명한 앙코르 왕국(4백년, 9-13세기), 잉카 왕국(3백 년, 13-16세기) 및 무굴제국(331년, 1526-1857년) 들조차도 조선시대보다는 짧은 통치 기간을 기록했을 뿐임을 망각한 경솔한 언사에 불과합니다.
성경의 다윗 왕조도 전체 기간이 5백년이 채 되지 않은 데다(기원전 1010-586년) 중간에 남북으로 나누어진 후 북왕국 이스라엘은 2백 년(기원전 930-722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쿠데타와 암살이 반복되어 무려 9 왕조가 뒤바뀌면서 20명의 왕이 통치하다 급기야 앗시리아에 멸망당했을 뿐입니다. 더구나 이웃 나라인 중국의 역사에 대한 식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무지한 발언을 내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윤재석 씨가 언급한 대로 조광윤의 송나라(960-1277년), 테무진의 원나라(1206-1368년), 주원장의 명나라(1368-1644년) 및 누루하치의 청나라(1616-1912년)의 통치 기간만 고려해 보더라도 조선 왕조가 5백 년을 지속했다는 것은 그만큼 탄탄한 국가 경영 기반과 문화적 토대가 뒷받침되어 있었다는 점을 노정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긴 통치기간 자체가 미덕일 수는 없겠지만, 이 기반과 토대 위에 과학적이고도 세계적인 한글, 조선왕조실록, 종묘 및 고궁들과 같은 세계문화유산, 앙부일구(해시계), 세계 최초의 천문관측장치인 혼천의,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 세계 최초의 기중기인 거중기(정약용이 개발한 것)들과 같은 찬란한 문화유산들이 양산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두고 허송세월이라니요? 더구나 정도전이 토대를 닦은 조선 시대 행정부가 영의정이라는 전문 행정가 재상들의 수장이 운영하는 체제로 이어졌고 조선 시대 내내 무려 164명이나 되는 영의정을 배출한 역사는 또 어떠합니까? 그 찬란한 전문 행정가 수장의 계보를, 조선시대 전체를 허송세월로 여기는 왜곡된 역사 인식의 소유자인 문 후보 같은 이가 잇다니 어불성설이지요.
더 기가 찬 것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게 우리 민족의 DNA라는 문 후보의 시각입니다. 자기주장을 변호하거나 강화하기 위해 윤치호의 글을 인용해두고는 마치 자기는 그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양 나중에 변명한 것은 더욱 추해보일뿐입니다. 과연 우리 민족에게 게으를 여유가 있던 때가 언제였을까요? 보유한 천연 자연도 변변치 않은 가운데 숱한 외침과 자연재해 및 폭정을 겪으며 생존해오는 동안 조기만침(早起晩寢)하며 뼈 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시대가 그토록 많았다는 점을 문 후보는 과연 몰랐을지 의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동안 일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가 된 것이 과연 원래 게을렀던 우리 민족이 그동안 역사적 풍파를 겪는 중에 현격하게 변혁된 결과일까요? 또한 자립심이 부족해서 3.1 운동하고 독립운동하면서 가산을 날리고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겠습니까? 더구나 신뢰와 인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 고유의 관습인 ‘품앗이’와 상호부조, 공동 오락 및 협동노동 등을 목적으로 마을 단위로 조직된 동지동업(同志同業)의 고귀한 결사 조직체인 ‘두레’의 전통은 어디에다 버려둔 채 어떻게 우리 민족이 남한테 신세 지기 좋아하는 DNA를 타고났다는 반역사적이고도 반민족적인 타령을 그토록 천연덕스럽게 읊조릴 수 있습니까? 이런 그의 시각이 식민사관이 아니라면 식민사관의 정체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요?
조선시대 서민들의 누추한 생활상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주지의 냄새가 심하고 주민들의 피부는 때로 덮여 있고 머리와 옷에 이가 들끓는 정도의 누추한 삶은 당시 우리 이웃나라였던 중국이나 일본 등의 하층민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인류 보편적인 불행한 생활상이었습니다. 유럽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근대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민들의 위생 상태나 거주 환경 문제는 조선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이 전 세계 사료에 드러난 정보입니다. 서양에서 여자들이 하이힐을 본격적으로 신기 시작한 유래가 바로 사람들과 동물들의 오물을 피하기 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정보만 유추해보아도 이러한 세계 보편적인 누추한 생활상을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 후보가 영국인 지리학자 ‘비숍’의 글을 제대로 인용한 것이 맞다면, 당시 일본과 조선과의 상호교역으로 인해 상당한 이익과 특권을 누리고 있던 부산 동래현의 일본인들의 깔끔한 생활상과 하루하루 끼니 걱정하며 살아야 했던 부산진의 조선인 양민, 천민의 누추한 생활상과 비교하면서 의아해 한 그녀는 아마도 당시 조선과 일본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답사 초기 단계에 처해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네 차례나 우리나라를 방문하면서 1년가량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한 후에, 그녀는 우리나라 국민의 잠재력이 충분히 계발되지 못한 것이 상류층과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기인했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한국의) 땅에, 바다에,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국민들 속에 희망이 있다”라고 역설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비숍 전문가인 문화지리학자 김이재 교수에 따르면, 그녀가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을 집필한 것은 ‘한국인이 게으르다’는 취지를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농사에 유리한 자연환경이나 부지런한 농민들로 구성된 한국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인 데 반해 관료의 탐욕이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주장하면서 “탐욕스러운 지배층의 횡포와 정의의 부재로 백성들이 절망하고 있다”는 측면을 거듭 천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누추한 백성들의 생활상은 지배층과 관리들의 비루한 탐욕과 무능의 결과였던 셈이지요. 그리하여 일찍이 개국하여 개화된 문물과 문화적 역량으로 아시아 대륙을 식민지 삼아 국가 융성을 꾀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일본에게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셈이었지요.
이렇듯 문 후보의 역사관을 요약하자면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면서도 장구했던 조선시대 5백년의 역사는 한 마디로 허송세월이었으며 우리 민족이 게으르고 더러운 데다 미신이나 신봉하고 있었으니 고난을 통해 정신 차리라고 하나님께서 일제 식민 지배에 놓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학술적이거나 객관적인 근거도 없이 제시된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식민사관일 뿐 아니라 왜곡된 자신의 역사 인식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룩한 신앙 용어로 회칠한 불경스러운 행태에 불과합니다.
게으른 가운데도 기독교인들은 근면하게 일했다는 점을 은연중에 강변하면서 슬그머니 일제식민지시대가 지나갔다는 발언에서나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셨지만 공산주의자들이 득실거려 적화되지 말라고 남북이 분단되게 하셨으며 6.25 전쟁으로 인해 미국을 붙잡게 해 주셨다는 그의 논조에는 그저 주먹구구식의 논리적 비약만이 춤을 춥니다. 정치학 박사에 걸맞은 학문적 깊이나 중앙 일간지 주필에 어울릴만한 논리적 엄정성이나 유명 대형교회 장로로서의 신앙적 혜안, 어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리어 그의 경도된 역사적, 사상적 입장만이 강고하게 드러나 있을 뿐입니다.
안중근과 같은 헌신적 애국 투사 기독교인들 대신 한낱 친일변절자에 불과한 윤치호의 글을 거듭 인용한 것이나 김구와 같은 헌신적 애국지사 기독교인들 대신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흠결 많은 정치인인 이승만을 두호 하는 그의 일관된 경향을 어떻게 다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당시에 대대적으로 문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개신교 지도자라는 인물들이 지지하는 “신앙적 민족사관”이란 게 바로 이런 왜곡된 역사적 시각을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개탄을 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거룩한 용어에 주목했는지는 몰라도 문 후보가 그 용어들로 회칠해버린 왜곡된 역사 인식에 대해서 눈감아주었거나 동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선교의 문은 더 닫히게 되었습니다. 마땅히 그들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는 점을 여기에 명토 박아둡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교계가 늘 자랑하듯 전 세계에 그토록 많이 파송되어 있는 해외 선교사들 중 그러한 유명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키운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파송된 지역의 역사를 진지하게 배우고 익히려하기보다는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의 모든 역사를 허송세월로 재단해 버린 채, 현지인이 처한 삶의 처지를 경제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예컨대, ‘게을러서 못 살고’) 현지의 문화적 양상과 사회적 양태를 비성서적인 잣대로 해석해버리는(예컨대, ‘기독교 믿지 않아 더럽게 살고’, ‘기독교 믿지 않아 미신에 찌들어 살고’) ‘무늬만’ 해외 선교사들의 반열에 포함될 공산이 큽니다.
무례하고 편협한 해외 선교사들이나 협량하고 무도한 기독교인들이 그저 옛날에만, 특정한 지역에만 존재했던 게 아닙니다. 리처드 마우의 책 제목처럼 기독교계 내에서 “품위 있고 예의 바른 태도를 접하기란 진기하고 드문 일”(“Uncommon Decency”-“무례한 기독교”로 번역됨)입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자면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기독교와 기독교인에 대한 비기독교인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결코 근거 없는 게 아닙니다. 전 세계 회교권이 기독교권을 오만한 식민주의자로 인식하고 있는 상황을 바꾸는 데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비록 기독교 해외 선교사들이 그토록 거룩한 ‘로고스’를 소리 높여 외쳐댔으나 현지인의 처지를 읽고 공감해주는 ‘파토스’가 결여되거나 보편적인 인생의 원리에 토대를 둔 인격과 삶이 골격을 이룬 ‘에토스’가 뒷받침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저 허공을 쳤을 뿐입니다. 모쪼록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모든 해외 선교사들에게 우리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임하여 에토스와 파토스를 온전히 갖추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삶 속에서 구현하는 중에 당신의 로고스를 선양하는 특권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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