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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 묵상으로 풀어 쓰는 성경

믿음: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다?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19. 8. 7.

믿음: 바라는 것들을 확신하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로마서 1:17; 히브리서 10:38)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해가는 대전제입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바로 하나님과의 새로운 계약 관계 속에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그 의는 믿음으로 누리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과 분리되어 원수 되었던 상태에서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게 되어 새로운 인격적 관계를 맺게 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은 것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필수적인 게 믿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히브리서 11:6) 그 믿음의 본질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명한 히브리서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을 근거로 하여 그 믿음이란 현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우리 각자가 현재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성취될 것을 믿는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과연 히브리서 11:1이 그러한 의미일까요?

 

우선 히브리서 11:1이 10장의 내용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그 구절 전의 문맥을 살펴보는 게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성경의 장, 절은 원래의 성서 기자들이 나누어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성서학자들이 임의로 구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1:1의 전후 문맥에 주의하면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믿음의 기반(Roots)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의 문제일 것입니다. 이 문맥에서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Creator: God created the world.)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즉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창조 기사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전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결정적 논증 한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히브리서 11:3). 이러한 전제가 과거 실증주의(Positivism) 시대에는 반박될 수 있었겠지만 현대와 같은 후기실증주의(Postpositivism) 시대에서는 감히 논박하지 않는 내용입니다. 근본적으로 실험과 관찰에 토대를 두고 있던 실증주의 시대의 자연과학이 시대를 거듭해 갈수록 다양한 한계들에 직면하게 되면서 급기야 학문적 영역이나 교육 현장에 있어 영성뿐 아니라 정치, 도덕 및 정체성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는 후기실증주의 시대가 이미 도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실증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영적인 세계, 종교적인 차원에 대해 운운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 속아선 안 됩니다.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은 이미 과학의 한계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컨대 지난 세기말인 1998년에 Nature의 편집인이었던 Sir John Maddox와 유사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 확실히 드러나 있는 것은,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무지, 심지어 모순 거리가 없는 과학의 영역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What stands out is that there is no field of science that is free from glaring ignorance, even contradiction.)

 

칼릴 지브란이 언급한 대로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통해서(through) 태어났으나 우리로부터 말미암지(from) 않았듯이, 이 세상은 창조신앙이나 진화론이 주장하는 과정을 통해 창조되었을 뿐 그것들로부터 비롯된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창조된 것입니다. 성경은 그 생명의 근원을 하나님이시라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역동적으로 우리 삶 속에 실존하신다(Yahweh: God is actively present.)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히브리서 11:6).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는 단순히 당신께서 현재 존재하시고 장차도 존재하실 것을 믿는 것 이상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을 처음으로 대면한 모세가 당신의 이름을 여쭈어보았을 때 소개된 하나님의 이름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I Am Who I Am)였습니다. 이 명칭은 주님(Lord)이라고 불린 하나님의 이름인 YHWH(Yahweh)와 연관된 것으로서 히브리어 "Hayah"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Hayah"의 의미는 “존재한다”(to be)이지만 이 히브리 단어의 용례가 단순한 존재를 뛰어넘어 역동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많은 성서학자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소망에 찬 미래를 마련해주신다(Rewarder: God provides a hopeful future.)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1의 의미는 그 전 문맥을 살펴볼 때 더욱 그 의미가 밝히 드러납니다. 그 말씀의 수신자들은 이전에 고난의 큰 싸움을 싸우면서 심지어 소유를 빼앗기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기쁘게 감내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장차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10:34). 그러므로 그들이 인내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10:36) 결국 그들이 바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요 더 낫고 영구한 소유였습니다. 그저 이 세상 속에서 자신들에게 이루어지기 바라는 물질적인 이익이나 세속적인 꿈의 성취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허락될 큰 상(10:35)이요 더 나은 부활(11:35)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영위하는 삶의 두 번째 차원은 믿음생활의 실상(Realities)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은 어떻게 드러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문맥에서 세 가지를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과 동행함(Walking with God)으로 드러나야 합니다(히11:6; 창5:24). 즉 하나님과 보조를 맞추고 하나님께서 주도해 가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긴밀하게 교제, 교통 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믿음은 하나님을 찾음(Seeking God)으로 드러나야 합니다(히브리서 11:6).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며(히브리서 11:3) 우리의 현실 속에 역동적으로 임재하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는 게 기적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게 기적입니다. 셋째로, 믿음은 주님 나타나실 때까지 인내함(Persevering to the end)으로 드러나야 합니다(히브리서 10:36-38; 유다서 14). 에녹을 비롯한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호세아와 같은 선지자들의 본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 메시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들에 괘념치 않고 오로지 그것을 온전히 전하는 일에만 목숨 거는 삶을 영위했습니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유다가 당신께 반역한 기간 430년을 상징하여 430일 동안을 자기가 만든 예루살렘 모형 앞에서 왼쪽으로 눕고(390일) 오른쪽으로 누워있음(40일)으로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면서 예루살렘을 잃어버리신 하나님의 애끊는 심정에 동감한 에스겔을 주목해 보십시오(에스겔 4장).

 

믿음으로 영위하는 삶의 세 번째 측면은 믿음생활의 결과(Results)입니다. 즉 “믿음은 어떤 열매를 낳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문맥에서 다시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의 의(God's righteousness)라는 열매를 낳습니다. 성경에서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과 언약관계(covenant relationship)에 있다”라는 의미입니다(시편 51:1, 4, 17; 시편 32:1; 로마서 3:24=창세기 15:6).

 

(시편 51:1, 4, 1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32: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둘째, 믿음은 하나님의 칭찬(God's recommendation)이라는 열매를 낳습니다. 히브리서 11:5에 등장하는 에녹의 경우를 주목해 보십시오.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얻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셋째, 믿음은 하나님의 상(God's reward)이라는 열매를 낳습니다. 금세의 상도 지적되고 있지만(누가복음 18:30) 궁극적으로는 내세의 상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컨대, 영생(누가복음 18:30), 더 낫고 영구한 산업/큰 상(히브리서 10-34-35) 및 더 좋은 부활(히브리서 11:35)이라고 표현되는 내세의 차원인 상입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브리서 10:38)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결국 태초라는 어느 과거 시점에 Creator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현재 시점에 Yahweh 하나님께서 역동적으로 우리 삶 속에 실존해 계시며, 미래 어느 시점에 Rewarder 하나님께서 소망 찬 미래를 마련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이 의인은 하나님과 동행하고(Walking with God) 하나님을 찾으며(Seeking God) 주님 나타나실 때까지 인내할(Persevering to the end) 것입니다. 이 의인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시고(God's righteousness) 당신을 기쁘시게 한다고 칭찬해주시며(God's recommendation) 당신의 영광스러운 상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God's reward). 할렐루야,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