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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學)-평생에 걸쳐 학습하라

양날의 검, 정보의 바다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4. 11. 11.

 

(Courtesy of Josh Sorenson)

양날의 검, 정보의 바다

모두가 정보의 바다에 빠져 있다. 인터넷 기반에다 개인용 컴퓨터와 각자가 하루에 2,000번 이상 만진다는 스마트폰이 온 세상에 보급된 결과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챗지피티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인류가 이제껏 축적한 정보 대부분이 이 바다 속에 담겨 있다. 지금부터 약 30년 전 내가 박사 과정을 밟을 때와 비교해 보면 가히 천지개벽의 수준의 변화가 도래한 셈이다. 그 시절은 전문 서적 한 권, 연구 저널 한 편을 얻기 위해 다른 대학 도서관까지 전전해야 했던 시대였다. 그곳에 관련 자료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설령 그 자료가 발견되어도, 그것을 개인적으로 확보해서 활용하려면 복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인터넷 접속만 되면 된다. 일정한 요금이 들긴 하겠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책이나 저널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반 정보는 더 말할 게 없다. 온 세상의 책과 저널과 잡지가 실시간으로 접속이 가능하고, 갖가지 음악과 영화도 온라인상에 존재한다. 이 정보의 바다가 마련되었으니, 이제 그 정보들을 선용하기만 하면 된다.

 

한편으로 이 소중한 정보들이 사장되고 있는 게 아이러니다. 구본권 작가가 자기 책에서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의 게시판에 올라온 흥미로운 질문 한 가지와 그 답변 한 가지를 소개한 적이 있다.

 

질문: “1950년대 사람이 60년 뒤인 오늘날의 디지털 시대로 시간여행을 왔다고 가정할 경우, 그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오늘날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답변: “나는 주머니 속에 인류가 쌓아온 지식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늘 갖고 다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주로 고양이 사진을 보고, 모르는 사람들과 말다툼을 하는 데 사용한다.”

 

구 작가는 인류의 지식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종의 절대반지’라고 표현하면서, 이 반지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도구를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한다(구본권, “공부의 미래”). 우리 주위를 돌아보라. 스마트폰의 특성과 용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을 충분히 통제하여, 원하는 상황에서 적절하게 선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화기와 인터넷 통신과 금융 활동과 정보 검색과 엔터테인먼트 향유 기회를 융합한 단말기로서 그 활용 방도가 광범위한 데 비해, 그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도가 낮고 그 세부적인 통제력도 미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작동 가능한 기능 중 극히 일부만 활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어린 학생들의 경우엔 그 특정 기능의 매력에 빠져 그 도구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성인들의 경우에도 특정 정보에 매료되어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무한정의 고급 정보를 활용하는 면에서도 각 개인의 차가 엄청나다. 자신에게 긴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능력부터 시작해서, 챗지피티를 활용하여 더 가치 있는 고급 정보로 가공하는 능력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드러난다. 레딧의 예언처럼, 다수의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그 보배로운 정보의 바다를 서핑하기는커녕 그곳에 발도 담그지 않은 채, 해변가에서 노닥거리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불상사가 왕왕 발생한다.

 

다른 한편으로 홍수 같이 쏟아지는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이전보다 더 절실하게 부각된다. 그래서 구 작가는 이 영역에서 절실한 능력의 본질을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라고 덧붙인다. 즉 참과 거짓,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지적 능력이다. 구 작가는 이 비판적 사고를 배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네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지금보다 더 나은 지식이 있음을 이해하라. 모든 지식과 정보가 완벽하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주장의 근거를 흔들어라. 해당 주장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의도를 읽어라. 해당 정보의 배경과 맥락에 유의하면서, 그 정보를 만든 이의 뜻을 파악하라는 말이다. 넷째,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라. 사실은 객관적인 실체로서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 않으므로,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의견은 특정 대상에 대해 품는 생각으로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참과 거짓을 가릴 수 없다. 즉 의견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영역이라는 말이다(구본권, 위의 책). 우리에게는 이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와 직결되는, 이러한 비판적 사고 역량이 절실히 요구된다.

 

결국 정보의 바다라는 크낙한 보고를 선사받은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과제는 세 가지인 셈이다. 첫째,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라는 정보 활용 도구의 특성과 용도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측면에서 성장해야 한다. 둘째, 무한한 바닷물과 같이 많은 정보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관점으로 선택하고 통합하며 업그레이드하는 측면을 부단하게 연마해야 한다. 셋째, 그 정보를 비판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그 각각의 경우에 정보의 바다와 그것을 활용하는 도구는 양날의 검과 같이 작용한다. 첫째 과제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자신의 오감을 맡기거나 특정 기능에 탐닉하게 되어, 자연과 이웃들과의 소통과 교감이 단절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둘째 과제가 실패하면, 자신이 경험하는 현상과 상황에 대한 섬세하고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자신이 탐구하는 특정 영역에 대한 지식의 업그레이드도 실현될 수가 없다. 그저 고인 물만 마시다가 올드비(oldbie) 혹은 '고인물'로 변질되고, 그 혼탁한 물을 남에게 건네주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셋째 과제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 우리는 숱한 오보와 허위 정보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온갖 정보와 주장과 거리를 두면서, 그것들의 근거와 의도를 파악하여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뭇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