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와 문필가의 안빈낙도(2)
-에드거 앨런 포(1808-1849)-
이미 네 번에 걸쳐 논의해 본 에드거 앨런 포의 경우를 관찰해 보겠습니다. 탐정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에드거 앨런 포는 시대를 앞서간 작가로, 집필을 통해 생활하려고 마음먹은 미국 최초의 전업 작가였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순회극단 배우였던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유아 시절에 비극을 경험합니다. 1세 때 아버지가 아내와 자기를 버리고 집을 나갔고, 그 이듬해에는 어머니마저 폐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고아가 된 포는 버지니아의 리치먼드에 사는 존 앨런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양자로 들어가지만, 성장할수록 앨런과 불화가 심해져 도박과 술에 빠지게 됩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양아버지와 관계가 틀어진 포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홀로서기를 감행했습니다. 시와 소설을 쓰면서 잡지사의 편집장으로서 활동을 이어간 것입니다. 그러던 중 26세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13살짜리 사촌 동생[고모인 마리아 포 클렘의 딸] 버지니아 클렘과 결혼했습니다. 그렇지만 집필 활동과 편집장 생활이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습니다. 1830년대 편집자로 일할 때 주급이 10달러[330달러=44만 원(2023년)]였으니, 월급은 40불[1,320불=177만 원(2023년)] 정도 된 셈이니까요. 그 급료는 당시 일반적인 미국 노동자가 받은 금액 정도였습니다. 사정이 열악할 때마다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술과 마약에 자꾸 더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버지니아가 각혈하면서 결핵의 징후를 보인 후로 5년간 앓다가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진 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그녀가 죽은 후 포는 술에 절어 폐인으로 2년을 더 살다 불티모어 거리에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의 진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26가지 설이 존재함.]
포는 미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기치를 높이 든 인물로 유명합니다. 탐정소설이란 장르를 열었을 뿐 아니라, 19세기 작가였지만, 20세기나 21세기의 현대 문학적 시각으로도 얼마든지 해석이 될 수 있는 앞서간 작품을 집필한 탁월한 작가입니다. 인간과 미국이란 사회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했던 트웨인이나 에머슨과는 달리, 그는 인간과 미국이란 사회의 어두운 심연을 파헤친 독특한 작가이기도 합니다[김성곤 교수]. 천재적인 작가이면서 뛰어난 문학평론가이기도 했지만, 시대를 앞서가고 사회를 뛰어넘는 면모로 인해 그는 미국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일평생 힘들고 외롭게 살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독특하고 모난 성격과 술과 마약에 절은 면모는 그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지요. 잡지에 시와 소설과 산문을 기고하여 원고료를 받고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여 수입을 얻어 생활하려 했던 그는 내내 가난한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그의 시 중 걸작으로 인정받은 “큰까마귀”(The Raven)가 여러 잡지에 발표되어 격찬을 받았지만, 그가 받은 보수는 겨우 9달러[363달러=48만 원]에 불과했으니까요.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던 당시 상황 탓이었습니다. 오직 글로만 먹고 사는 전업 작가의 삶이 얼마나 험난한지 그의 삶이 웅변적으로 대변해 줍니다.
그의 단편소설을 읽던 중 그가 갈망했을 법한 삶을 영위한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탐정소설 3부작의 주인공인 C. 오귀스트 뒤팽입니다.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소개되는 그의 면모는 비범합니다. 명문 집안 출신이었지만 연이은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덕에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출세나 재산을 되찾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저 얼마 남지 않은 유산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절약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이런 삶의 방식 덕에 그는 “쓸데없이 남아도는 재산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without troubling himself about its superfluities) 그가 즐긴 유일한 사치품이 책이었기에, 헌책방도 많아 책 구하기가 수월한 파리가 그가 살기에는 제격이었습니다. 열독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는 박식했고, 그를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 열정을 전염시킬 정도였으며, 그의 생기발랄한 상상력은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밤을 그 자체로 사랑했습니다. 낮에는 모든 덧문을 닫아 두고 촛불만 켜두고, 어둠이 다가오면 거리로 나가 돌아다니며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의 현란한 빛과 그림자 속에서 조용한 관찰만이 제공할 수 있는 무한한 정신적 흥분을 찾곤 했습니다.”(seeking, amid the wild lights and shadows of the populous city, that infinity of mental excitement which quiet observation can afford.) 그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요즘 나는 관찰하는 게 무슨 숙명처럼 되어 버렸다네.”(observation has become with me, of late, a species of necessity.) 이런 일상이 켜켜이 쌓여 그는 “창의적인 측면과 분석적인 측면을 동시에 지닌 비범한 인물”(a double Dupin—the creative and the resolvent)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삶 속에서 아마도 포가 그리워했을 법한 ‘안빈낙도’[安貧樂道,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겨 지킴]하는 복을 목도합니다.
-김수영(1921-1968)-
“풀이 눕는다”로 시작되는 시 “풀”[지상에 발표된 시인의 마지막 시]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은 시대가 변해도 “퇴색하지 않는 현대성”으로 우뚝 서 있는 비범한 작가입니다. “동양적 교양과 서구 합리성의 결합,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회통, 자유를 향한 열망과 정직한 자기반성”[최재봉 기자]이 주조를 이루는 시와 산문을 많이 남겨 후세대 사람들에게 큰 덕을 끼쳤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김수영은 1968년 6월에 마포구 자기 집 앞에서 인도로 뛰어든 버스에 치여 그 이튿날 사망했습니다. 버스에 치인 그날 아침 아내 김현경 여사로부터 돈을 재촉받은 그가 자기 번역 원고에 대해 가불받기 위해 신구문화사로 갔던 날이었습니다. 가불받은 돈[5만 원=155만 원(2023년)] 중 3만 원[93만 원]을 아내에게 건네주고 지인들[이동문 시인, 정달영 기자, 이병주 작가]과 술을 마신 후 귀가하다 이 참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자기 차[외제차 폭스바겐]를 타고 가라는 이병주의 말을 듣거나 정달영이 잡아주려 한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면 그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마지막 날의 일정은 가난한 문인의 쓰라린 삶을 대변해 줍니다. 돈에 자유롭지 못하고 그것으로 인해 쪽팔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애써야 하는 문필가들의 삶 말입니다. 그렇지만 김 시인은 이 돈 문제를 에둘러대거나 구차한 영역으로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시 178편 중에 돈이 언급되는 시가 36편[약 20%]이나 되니까요[김행숙 시인]. 그중에는 “돈”이라는 제목을 품은 시도 포함됩니다. 그의 산문 중에도 돈 문제를 언급한 글이 있습니다. “마리서사”라는 제목의 글 속에서 그는 자기에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세 가지 있다고 언급합니다. 그것은 “죽음과 가난과 매명(賣名)”입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자기가 시를 통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듯이 죽음에 대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난 40여 년을 헛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가난에 대해서는, 신문팔이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면서 자책감과 수치심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고 술회합니다. 아마도 보편적 인간의 문제로서 언제나 가까이 존재하는 가난이 그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속수무책인 자신의 현실을 짚은 것이겠지요. 매명에 대해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아래와 같이 외칩니다. “매명의 구원. 지난 1년 동안에만 하더라도 나의 산문 행위는 모두가 원고료를 벌기 위한 매문/매명 행위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있는 것도 그것이다. 진정한 ‘나’의 생활로부터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나의 머리는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받을 원고료의 금액에서 헤어날 사이가 없다.”
자신의 진면목을 유지하면서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한 채 원고료를 벌기 위해 허덕대는 자신의 모습을 비참하게 바라본 고백입니다. 한편으로는 김 시인처럼 자기 글 쓰기를 매문(賣文)이라고 치부하는 것이 도가 지나친 결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글에 대해 정당한 댓가를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전업 작가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글 쓰기를 부업으로 하는 이라도 당연한 자기 권리 주장이 아닐까요? 자기 글에 대한 댓가를 기대하고 받는 것을 왜 죄악시해야 합니까? 만일 자기가 돈 때문에 곡필한 것이 아니라면 왜 매문이라고 자아 비판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글 쓰기를 매문(賣文)이라고 치부하는 김 시인에게서 지속적인 마음챙기기에서 비롯된 섬뜩한 자기 성찰을 발견하게 됩니다. 절대적인 자유 속에서 시를 짓기 원했던 시인은 자본에 계속 침식당하고 급기야 점령당할 조짐이 보이는 자기 마음을 간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에 초연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돈은 늘 경계해야 할 대상이지요. 그래서였겠지요. 시인은 "돈"이라는 시 마지막에 이런 선언을 합니다. “아무도 정시(正視)하지 못한 돈―돈의 비밀이 여기 있다”
치열하게 47년의 생애를 보내고 이 세상을 떠난 시인은 굴곡진 현대사로 점철된 우리나라 사회를 정시하면서 누구보다 지성인들의 역할이 중차대하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지성인이란 조선 시대의 '선비'와 같은 존재로서 정의를 갈구하기에 자기 일신을 항상 불의에 저항하는 자리에 두는 이입니다. 사정이 아무리 열악해도 지성인은 "아름다운 이성"을 견지하고 “조리 있는 설득"으로 일반 민중과 논의하고, 가능한 한 “조용히 아름답게 그러나 강하게” 투쟁하면서 그 길이야말로 올곧은 저항의 길이 됨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는 것이 선비라는 "천직”을 수행하는 자세라고 시인은 믿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일갈합니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얼마나 뒤떨어졌는가. 학문이고 문학이고 간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벅찬 물질 만능주의의 사회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정신의 구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 지성인은 눈에 뜨이지 않게 또 눈에 뜨이지 않는 성과를 위해서, 그러나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정신을 위해서 싸워야겠고, 그러한 무장이 항시 되어 있어야겠다” (“자유란 생명과 더불어” )
-어떻게 살 것인가?-
독서가와 문필가의 삶이 녹록치 않은 때가 언제 있었겠습니까만, ‘이 벅찬 물질 만능주의의 사회’ 속에서는 생존이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몰려 있습니다. 일반 사회의 격심한 빈부격차가 여기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지요. 천문학적인 인세를 누리는 극소수의 전업 작가와 생활전선에서 돈을 벌면서도 생계를 염려하며 문필 활동을 경주하는 이들 간의 간격은 누구도 메울 수 없습니다. 이 가난한 작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특히 이번에 대략적으로 살펴본 작가들이 선시해 주는 조언을 잠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가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혹시 굶어 죽은 작가를 알고 계시는지요? 저는 모릅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회에서 빈곤하게 사는 경우는 허다하지만, 굶어 죽는 사람을 접하기는 아주 드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난을 무척이나 두려워합니다. 빈핍하게 살다 무슨 변이라도 경험하게 될지 몰라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가난을 두려워 하는 것은 가난이 안겨다 줄 최악의 경험(=공포)에 대한 공포에 불과합니다. ‘공포에 대한 공포’ 이지요. 무시무시하게 보이지만 그 공포는 무력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과감히 물리쳐야 합니다. 우선은 가난의 결과가 뒤팽의 경우처럼 안빈낙도일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다음으로 허균의 주장처럼 기난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탁월한 작품을 낳는 모판이요, 산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가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겠지만, 가난의 결과를 미리 재단하여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 잡히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근근이 먹고 살아도 괜찮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소명을 수행해 가는 보람과 기쁨이 있다면, 그 정도의 댓가 정도는 지불해야 되지 않을까요?
둘째, 지혜롭게 벌고 투자합시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 작가에게 필요한 것으로 제시한 “연간 500파운드[39,170파운드=6,400만 원<2003년>]와 자기만의 방”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A Room of One's Own” , 1929). 그녀는 운 좋게도 그 조건을 고모가 유산으로 마련해주았지만, 일반 작가들에게는 그런 일이 생길 리가 만무합니다. 우리 각자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이 주목해야 할 사항입니다. 젊을 때부터라면 시간이라는 무기를 벗삼아 좀 더 전략적으로 투자하여 경제적인 자립을 실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돈은 모으는 것이 아니라 불려나가는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금융 의식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가 예금적 사고라면, 후자는 투자적 사고이니까요. 단기간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어리석은 투자 방식 대신 투명한 데이터와 과학적인 통계에 근거한 건전한 투자 방식을 선택해서 장기간 생활의 여유분을 부어간다면, 해가 갈수록 안정된 투자 수입과 복리의 혜택까지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결정적인 영역에서 젊음이란 특권을 허송하지 맙시다.
셋째, 죽음에 대비합시다. 이번에 소개한 네 명의 작가는 각각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허균은 정치적인 희생양으로, 제인 오스틴은 암으로, 에드거 앨런 포는 원인불명의 불상사로, 김수영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난이 그 부수적 요인은 되었을지라도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또한 현재의 기준으로 보자면 죄다 요절했습니다. 허균은 48세, 오스틴은 41세, 포는 40세, 김수영은 46세로 모두 40대에 세상을 떴으니까요. 그들은 가까운 장래에 도래할 법한 가난보다 자신들 인생의 마지막과 그 이후를 주목해야 했습니다. 불가해한 영역이라고 제쳐둘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관한 초자연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가능성들을 모색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남기고 간 문학적 유산의 가치는 드높습니다. 비범한 문화적 업적이었고 길이 남을 정신적 유업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죽음 너머의 세계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지금 그 세계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넷째, ‘잘살기’보다 ‘잘 살기’에 주목합시다. 모든 사람들이 생계를 걱정하듯이 작가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직장을 가지고 있든지 전업 작가이든지 생계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버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입니다. 이 극소수에 포함되는 작가라도 장래의 생계와 윤택한 삶을 위해서 더 많은 재산을 확보하려 들 사람이 많습니다. ‘더 많은’의 끝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최소 수입의 양을 정하고 그것이 채워지면 자족하지 않는 한 끝이 없을 것입니다. 빈곤했던 포도 자기가 편집자로서 벌던 수입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추어 생활해 갔다면 어떠했을까요? 뒤팽이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삶을 쓸 데 없이 많은 수입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고 복된 환경으로 여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넉넉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 넉넉함의 정도를 설정하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자제하기가 쉽지 않아 지속적으로 그것에만 목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역사와 현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민감하게 이웃의 필요를 파악하고 주목해야 할 작가 본연의 심중에 ‘잘살기’에 대한 욕망만이 똬리를 틀게 됩니다. 그야말로 “The tail is wagging the dog.”[본말이 전도된 상황] 현상이 발생한 것이지요. 김수영 시인이 처절하게 고뇌하며 ‘정시’(正視)한 영역입니다. 이 점을 깨달았을 때 돌이키면 됩니다. 오스틴이 본 보여 준 것처럼, 무엇보다 먼저 오직 자기만의 시각과 필치로 자기와 이웃의 영혼을 함께 살리는 좋은 글을 쓰는 보람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가난이란 게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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