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배우고 글 쓰고 나누는 제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아(我)-나를 알라

공포와 호기심이란 키워드로 인간의 본질을 섬세하게 관찰한 에드거 앨런 포(4)

by 이승천(Lee Seung Chun) 2023. 9. 23.

공포와 호기심이란 키워드로 인간의 본질을 섬세하게 관찰한 에드거 앨런 포(4)

-세심한 관찰의 힘-

호기심이 뱔현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 가는 데는 관찰이라는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특정한 대상에 대해 아무리 호기심이 크더라도 그 대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합당한 분석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 호기심은 무위로 그칠 공산이 큽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긴박하고 두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마음을 챙겨 호기심을 품고 사태를 관찰하다 보면 그 상황의 본질을 꿰뚫어보게 되기도 하고 그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혜안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공포소설 속에 나타난 호기심과 관찰의 역할을 살펴본 데 이어, 이번엔 탐정소설 속에 드러난 이 두 요소의 기여에 대해 논의해 보겠습니다. 포의 단편소설 중에는 가상의 인물인 C. 오귀스트 뒤팽(C. Auguste Dupin)이 등장하는 세 편의 탐정소설이 있습니다. 현대 추리소설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간주되는 것들이지요. “모르그가의 살인”(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마리 로제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Marie Rogêt) 및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입니다. 그중 두 편이 김석희 작가 번역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두 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모르그가의 살인”(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이 소설은 레스파나예 부인과 딸 카미유가 파리의 자기 집안에서 살해된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레스파나예 부인의 목은 심하게 베인 상태여서 그 시신을 옮길 때 머리가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반면에 그녀의 딸은 목이 졸린 채로 굴뚝에 거꾸로 박혀있었다. 두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이 살인 사건이 당황스러운 점은 그것이 내부에서 잠긴 4층 방에서 발생했고, 당시 진행된 난투극을 듣고 그 집으로 갔던 이웃들의 증언이 구구했다는 것이다. 모두 두 가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 상태에서, 그중 하나가 프랑스인의 목소리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두 번째 목소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못했고, 그 사람의 국적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명백한 증거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 전날 그 희생자들에게 금화를 전달해 준 아돌프 르봉이라는 은행 직원이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화자의 친구인 뒤팽은 그 기이한 사건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이전에 르봉이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을 기억하고는 수사에 착수한다. 경찰청장 G에게 도움을 청하여 허가를 받아, 범죄 현장과 그 주변을 세밀하게 조사할 수 있었다. 그 후 뒤팽은 화자와 함께 앉아 목격자 기록과 함께 분석을 시작한다. 먼저 금화가 두 여성의 방에서 도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르봉의 유죄를 부인한다. 그 살인자가 카미유의 시신을 처리한 것으로 보아 초인적인 힘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가 피뢰침을 민첩하게 타고 올라가 여닫이 창문 셔터를 통해 그 방으로 들어가 두 여성을 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세밀하게 구상해낸다. 그러면서 레스파나예 부인의 움켜쥔 손가락에서 수거한 특이한 털뭉치를 보여 주면서, 뒤팽은 오랑우탄(orangutan)이 두 여성을 살해했다고 결론짓는다. 그는 지역 신문에 오랑우탄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는지 찾는 광고를 냈고, 곧 한 선원이 오랑우탄을 찾기 위해 도착한다.

 

그 선원은 자기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보르네오에 있을 때 포획한 오랑우탄을 데리고 파리로 왔지만, 팔지 못한 채 그놈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느날 그 오랑우탄이 면도하는 것을 흉내 내던 중 면도칼을 갖고 도주하다가 모그르가로 진입하여 그 여성들 집으로 잠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레스파나예 부인을 대상으로 이발사 흉내를 내던 중 그녀의 비명을 듣고 분노가 치밀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뜯고 목을 베었으며, 카미유에게도 달려들어 그녀의 목을 졸라 죽이기까지 한다. 당시 그 선원은 동물을 잡기 위해 피뢰침을 통해 그 방 창문에 접근했다가 그 살해 장면을 목도한다. 그 주인의 얼굴과 마주친 오랑우탄은 겁에 질려 뛰어다니며 가구를 부수고, 딸의 시신을 굴뚝에 처박아 넣은 후, 부인의 시신을 창문 밖으로 내던진 후 도망친다. 결국 이웃들이 들은 두 목소리는 오랑우탄과 그의 것이었다. 결국 오랑우탄은 그 선원에게 붙들린 후 파리 동물원에 팔리고, 르봉은 구금에서 풀려나게 된다.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 파리 경찰청장 G는 궁정의 귀부인의 침실에서 그녀의 편지가 도난당한 사건을 파리의 유명한 아마추어 탐정 C. 오귀스트 뒤팽에게 알린다. 도둑은 파렴치한 장관 D로, 그 귀부인을 방문하는 동안 그 편지와 중요하지 않은 편지로 바꾼 후 그 내용을 사용하여 그녀를 협박한다. 뒤팽은 G가 내린 두 가지 결론에 동의한다. 편지를 공개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특정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장관 D가 아직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과 장관이 편지를 가까이에 두고 언제든지 공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편지를 찾기 위해 장관의 집과 개인을 철저히 수색하고 가구, 벽, 카펫 등을 철저히 조사하여 숨겨진 은신처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뒤팽이 G와 그의 부하들에게 수색을 반복할 것을 제안하면서 편지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자 G는 이를 제공한다. 한 달이 지났지만, 경찰은 여전히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고, 좌절한 G는 편지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5만 프랑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뒤팽은 G에게 그 금액의 수표를 써 달라고 부탁한 후, 뒤팽이 그 편지를 책상에서 꺼내자마자 G는 기뻐하며 귀부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달려간다.

 

뒤팽은 화자에게 그 편지를 어떻게 되찾았는지 정확히 설명한다. 우선 청장과 경찰이 최선을 다해 사건을 조사했지만, 그들이 범한 실수는 D 장관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뒤팽은 자신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해, 상대를 관찰하고 지적 능력을 파악한 후 이를 바탕으로 추측하여 ‘홀짝게임’에서 항상 이겼던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또한 G 청장이 범한 실수 한 가지를 더 언급한다. D 장관이 시인이기 때문에 바보라고 가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뒤팽은 D 장관도 수학자이자 시인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편지의 위치를 추리할 때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D 장관은 경찰이 자신의 집을 수색하고 있다는 사실과 어디를 수색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뒤팽은 D 장관이 편지를 눈에 잘 띄는 곳에 숨겼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D 장관을 찾아가 직접 편지를 찾아 내기로 결심한다.

 

장관 관저에 도착한 뒤팽은 눈이 약한 척 하면서 ’녹색 안경‘을 착용한 채 도난당한 편지를 찾기 위해 집안을 샅샅이 뒤진다. 그는 곧 벽난로 근처에 걸려 있던 값싼 카드 꽂이의 슬롯 중 하나에 아주 너덜너덜하고 낡아 보이는 편지를 발견했고,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도록 처리한 편지라고 믿는다. 그는 다음 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핑계로 출발할 때 금제 코담뱃갑을 두고 떠난다. 두 번째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외부 거리에서 소란이 발생했는데, 뒤팽이 미리 사람을 고용해 길거리에서 공포탄이 든 소총을 쏘게 한 것이었다. 이 소동으로 장관의 주의를 분산시켜 뒤팽은 그 편지를 다른 사본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괴물’, ‘파렴치한 천재’인 D 장관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뒤팽은 화자에게 D 장관 때문에 한때 골탕 먹은 일이 있다고 고백하며, 그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주기 위해 거짓 편지에 간단한 인용문을 포함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흉악한 계획은 아트레우스에게는 걸맞지 않더라도, 티에스테스에게는 마땅하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두 형제간의 암투와 복수를 다루는, 크레비용의 희곡 “아트레우스”에 나오는 구절]

 

“모르그가의 살인”을 근대 탐정소설의 선구자로 꼽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 작품을 통해 사설탐정 오귀스트 뒤팽(Auguste Dupin)이 탄생했을 뿐 아니라, 이미 발생한 불가사의한 사건을 탐정이 논리적 추론으로 해결하는 탐정소설의 원형적 서사 기법이 처음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뒤팽이 이 작품 속에서 정체불명의 인물이 저질러 오리무중의 상태에 놓인 살인 사건을 처리하고, “도둑맞은 편지”에서는 궁정의 귀부인의 편지가 그녀의 눈앞에서 도난당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십분 활용한 것이 ‘ratiocination’, 즉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추론 과정’(logical and methodical reasoning)입니다. 이 영어 단어는 그가 “마리 로제의 미스터리” 속에서 언급한 것인데, 이런 탁월한 추론 능력의 기반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뛰어난 관찰력입니다. 추론 과정(reasoning)이란 말 자체가 ‘모든 사실을 고려한 후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the process by which you reach a conclusion after thinking about all the facts)이니까요. 모든 사실을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올바른 추론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호기심 어린 세밀한 관찰과 그 추론 과정이 포의 탐정소설에서 기여한 역할에 주목하면서 얻은 교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보량을 결정짓는 요소, 관찰의 내용과 질.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뒤팽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정보량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추리의 타당성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관찰의 질에 있다.”(the difference in the extent of the information obtained, lies not so much in the validity of the inference as in the quality of the observation.)라고 지적합니다. 추리를 아무리 합리적으로 많이 한다고 해도 없던 정보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관찰을 더욱 철저하고 세밀하게 진행하는 게 합당한 추리를 하는 데 필요한 보다 많은 정보를 확보하는 길이 됩니다. 물론 관찰의 질뿐 아니라, 그 내용, 즉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what to observe)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뒤팽은 카드놀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도 손에 쥘 수 있는 정보라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어떤 루트를 통해서든 가장 많이 확보하기 위해 “자신에게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다”(Our player confines himself not at all)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연역법을 통해 외부 상황에서 게임에 대한 정보를 추론하는 것”(deductions from things external to the game)도 물리치지 않습니다. “게임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because the game is the object)

 

뒤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살인 사건의 ”진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하고 세밀하게 그 사건 발생지 내부 상황과 외부 환경까지 샅샅이 관찰하며 추론할 내용들을 축적해 갔습니다. 뒤팽은 집안만이 아니라 동네 전체를 주의 깊게 조사했습니다. 이런 관찰 과정을 거쳐 그가 주목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범인(들)의 “괴상한 목소리”, 땅과 창과 지붕을 오르내릴 수 있는 “비범한 운동 능력”, 두 여성에게 가한 “흉포한 잔인성”, “동기도 없는 살인 행위”[예: 고급 의류나 4천 프랑이나 되는 금화를 내 버려둠]에 덧붙여 기묘하게 어질러져 있는 방. 그 기간 동안 뒤팽을 보좌한 화자는 조사 대상이 될 만한 것을 하나도 찾지 못했지만, 뒤팽은 이런 것들의 비범한 의미에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관찰의 내용과 질이 정보량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정한 당면 목표는 이러한 관찰 내용들을 나란히 놓고 추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일반인이 아니라 어떤 동물이 저지른 살인이라는 단서들에 착안할 수 있게 되었고, 살해당한 부인의 손아귀에서 발견된 털뭉치는 그 범법자가 오랑우탄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상한 것과 난해한 것을 혼동하는 오류. 뒤팽은 이 사건이 그 특징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데도, 오히려 경찰이 “불가해한 미스터리”(insoluble mystery)로 여기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가 언급한 특징은 ‘그 사건의 양상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점’(the atrocity of the murder)이었습니다.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딸의 시신을 굴뚝에 거꾸로 처박고, 부인의 신체를 심하게 훼손한 후 집 밖으로 던져 버린 상황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몀백한 특징을 경찰이 인식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뒤팽은 그 이유로 경찰이 “이상한 것난해한 것을 혼동하는 오류”(error of confounding the unusual with the abstruse)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이 오류는 중대하지만 흔히 저지르는 오류라는 점도 덧붙입니다. ‘The abstruse’(난해한 것)라는 표현은 쉽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을 가리키는 반면, ‘the unusual’(이상한 것)이란 것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탈”(deviations from the plane of the ordinary)을 의미합니다. 뒤팽은 우리가 진실을 발견하려면 ‘난해한 것’이 아니라 ‘이상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때 던져야 할 질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what has occurred)가 아니라 “전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what has occurred that has never occurred before)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찰의 오류는 경찰청장의 실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뒤팽은 그가 “너무 약삭빨라서 깊이가 없다”(somewhat too cunning to be profound)고 진단합니다. 그의 지혜는 수술(stamen)이 없는 꽃이나, 머리만 있고 몸은 없는 여신이거나, 머리와 어깨만 있고 몸통은 없는 대구(codfish)와 마찬가지라고 비유합니다. 잔머리를 굴려 다른 사람을 속여서라도 자기 뜻을 성취하려는 데 능한(‘cunning’의 의미) 경찰청장은 정작 자기 본업인 수사 영역에 있어서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추론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유의미한 생산적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꽃가루를 만들어내는 수술 없는 꽃과 같은 신세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경찰청장은 위선적인 말솜씨(master stroke of cant)로 자신의 재간(ingenuity)을 광고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본색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저 “있는 것을 부정하고 없는 것을 설명하는” 능력만 뛰어난 그의 본색 말입니다.

 

눈에 잘 띄는 명백한 것을 간과하는 오류. 경찰청장의 이런 오류는 “도둑맞은 편지”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자기 눈앞에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는 것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자기 생각이 꽂힌 것에만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 말입니다. 이런 오류를 뒤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기서 [눈에 너무 잘 띄는 것을 오히려 보지 못하는] 물리적인 간과는 정신적인 몰이해와 거의 비슷해. 인간의 지성은 너무 중뿔나고 긍방 알 수 있을 만큼 명백한 고려 사항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지.”(and here the physical oversight is precisely analogous with the moral inapprehension by which the intellect suffers to pass unnoticed those considerations which are too obtrusively and too palpably self-evident.) 지도나 거리의 간판이나 플래카드에 지나치게 크게 쓰인 글자가 “너무 확연해서”(by dint of being excessively obvious)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듯이, 마땅히 감안해야 할 사항이 너무 유별나고 명백한 나머지 오히려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정신적인 몰이해 혹은 도덕적인 불감증(moral inapprehension)이 발생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눈에 잘 띄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몰이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광고판은 죄다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만인이 명백하게 알아차릴 수 있도록 아주 큰 글자로 쓰였으니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주목하고 영향을 받습니다. 문제는 그 확연한 광고판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다른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는 한 아무리 큰 글자로 현란하게 장식된 광고판도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입니다.

 

역지사지하지 않는 오류. “도둑맞은 편지”에서 뒤팽은 경찰이 자주 오류를 범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상대의 지적 능력과 자기 능력을 일치시키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상대의 지적 능력을 측정하지 않거나 잘못 측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첫째 이유는 둘째 이유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상대의 지적 능력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그것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그것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의 능력이 그것에 부합하도록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범인의 지적 능력을 합당하게 측정해서 그것에 부합하는 수사 원칙을 세우기보다는, “그저 재래의 수사 방식을 확대하거나 강화하는 게 고작이지요.”(they extend or exaggerate their old modes of practice) 사정이 이러하니 자기들보다 지적 능력이 탁월한 악당들에게 번번이 당하기만 합니다. 이 사건의 예로 든다면, “범인이 편지를 감춘 원칙”(the principle of its concealment)이 파악되거나 고려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경찰청장은 “자기 원칙”(the principles of the Prefect)을 조금도 변경하지 않은 채, “그저 주의력과 끈기와 결심”(the mere care, patience, and determination of the seekers)으로 밀어붙이기만 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재간(ingenuity)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러나 뒤팽은 그들과 달랐습니다. 먼저 범인인 장관이 수학자이자 시인인데다 궁정 관료이자 대담한 책략가라는 점에 주목한 후, 그의 능력과 처지를 참고하여 자기의 수사 원칙을 조정했습니다. 그가 이 수사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입니다.

 

정리해보겠습니다. 포의 공포소설과 탐정소설을 잇대어 주는 호기심이란 요소는 섬세한 관찰이라는 모양새를 취하여 지식이나 정보라는 꽃가루를 많이 만들어 냅니다. 이것들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추론 과정과 만나 수정이 이루어질 때 의미 있는 판단이나 원리라는 꽃으로 태어납니다. 판단이나 원리의 원재료가 되는 지식이나 정보의 양은 관찰의 내용과 질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관찰하는 과정은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지며 탐색해 가는 과정이겠지만, 관찰하는 기본자세는 유념해둘 만합니다. 우선 자기 생각은 접어두고 관찰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게 기본입니다. 그 대상의 지적 능력과 특성과 처지를 다각도로 관찰하여 관계되는 원리와 방도를 모색하지 않으면, 허공을 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자기 선입견이나 편견을 관찰하는 대상에게 덧씌우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그리하여 너무나도 확연하게 눈에 띄는 점을 간과하거나 오해하게 되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서 벗어난 주요한 일탈 사항을 주목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건전한 판단이란 꽃이 필 것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입니다. 지금까지 논의한 오류들은 경찰청장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보편적인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늘 깨어 있어 마음을 챙기지 않는 한 우리도 얼마든지 이미 언급된 오류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철학자 강신주가 언급했듯이, 논리적인 사람이란 그저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추론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태를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이 능력은 우리가 “예리한 감수성”을 갖출 뿐 아니라 어떤 대상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섬세하고 체계적으로 관찰해 갈 때 형성됩니다.

 

-“어셔가의 붕괴”가 선사하는 경고-

“어셔가의 붕괴”가 선사하는 혜안 한 가지를 마지막으로 나누겠습니다. 전체와 부분의 부조화가 낳는 파멸이 그것입니다. 화자가 로더릭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주위를 관찰하던 중에 발견하게 된 것으로 그 집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단면입니다. “집을 이루고 있는 석재는 한 장도 떨어지지 않았고, 개개의 돌은 부서지고 깨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완벽하게 맞물려 있어서 전체와 부분 사이에 엄청난 부조화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No portion of the masonry had fallen; and there appeared to be a wild inconsistency between its still perfect adaptation of parts, and the crumbling condition of the individual stones.)  전체로서 그 집은 온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석재 한 장도 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그 각각의 돌은 깨지고 부서진 상태로 서로 완전히 맞물려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건물의 정면 지붕부터 균열이 생겨 지그재그로 생긴 그 선이 벽을 타고 내려와 탁한 호수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이 균열은 감지하기가 힘든 것이었기에 “날카로운 눈을 가진 관찰자”(the eye of a scrutinizing observer)라야 인식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무보다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권면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특정 사안을 관찰할 때 그것의 개개 항목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것의 전체 의미나 그것이 처한 전체적인 맥락을 간과하거나 놓칠 수가 있다는 권면이었습니다. 큰 그림이나 거시적인 안목을 고려하는 것이 항상 자연스럽게, 수월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한번씩 기억에 떠올려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게 현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숲을 볼 필요를 염두에 두고 참고해야 했습니다. 부분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전체만의 독특한 특성이  자주 부각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전체가 중요한 만큼 각 부분도 중요했습니다. 특히 각 부분이 각 개인을 의미한다면,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관건은 전체와 부분의 조화와 균형이었습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전체로서 외면은 멀쩡하고 그럴 듯한데, 속을 들여다보면 구석구석이 부실하거나 곪아 썩은 데가 적지 않습니다. 우선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헌란한 모양새를 띠고 진을 치고 있는 그 숱한 아파트들이 떠오릅니다. 그것들 중 철근이 빠지거나 콘크리트 강도가 약하거나 수준 미달의 재료들을 사용하여 부실하게 시공된 곳이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일까요?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초중등교육기관 및 대학들입니다. 아낌없이 국고를 들여 최신식으로 안팎을 치장한 이 학교들의 외양은 국제 수준입니다. 그 내실은 어떠할까요? ‘교실이 무너졌다.’는 진단이 나온 지도 한참 지난 상태이고, 이제는 급기야 미래가 창창한 교사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는 지경에 도달해 있습니다. 우리나라 종교기관들의 사정은 어떠할까요?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곤란하지만, 우리나라 개신교는 그럴듯한 외양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속은 점점 비어 가고 있습니다. 이미 어리고 젊은 세대 대다수가 교회 공동체를 빠져나갔고, 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끝으로 선진국이라는 이름에 빚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는 어떠할까요? 예컨대 선진국 클럽인 OECD 국가 중에 1위를 차지하는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나타내는 사회적 균열을 보세요. 국가 전체는 번듯하게 보이지만, 연약한 개인들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체와 부분이 엄청난 부조화를 이룬 채로 지속되면 그 끝은 붕괴입니다. (끝)